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04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25화(404/432)
외전 25화
호치 (4)
평평한 돌 위에 진주가 놓여 있었다.
진주는 상서로운 보석이다.
여타 다른 보석들과는 달리 생명이 잉태해 내놓는 진주는 그 자체로 탄생과 죽음을 담고 있다.
티 하나 없이 매끈한 진주였다.
키리키리는 진주를 향해 돌을 내리쳤다.
이걸 잘못 내리쳤다가는 튕겨져 나가 멀리 굴러가 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키리키리는 아주 깔끔하게 진주를 박살 내었다.
“으응…….”
깨진 진주의 잔해를 들여다보던 키리키리가 신음했다.
이번 점괘도 좋지 못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좋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점괘였다.
문득 키리키리는 자신이 점괘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 적이 있나 싶었다.
없었다.
신이 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럴 만한 점괘였다.
시작은 역시 도전자 때문이었다.
도전자 이호재가 멋대로 질서의 신을 찾아가 버렸다.
도저히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질서의 신은 이미 키리키리의 예상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존재였다.
통제에서 벗어나 초월의 신에 근접하게 된 기계의 신이 어떤 능력으로 어떤 의지를 실현하려 할지는 아마 위대한 느림의 신만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호재 또한 함부로 예단하기 어려운 도전자였다.
고작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혼자서 신이 되어 버린 인간이었다.
결과를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미래를 엿보아 얻을 것은 후회뿐이었다.
회한의 신이 그 증거로써 존재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키리키리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을 이겨 내지 못했다.
키리키리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점괘를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긍정적인 점괘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부정적인 점괘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오려 했다.
점괘는 경향의 방향이고, 인과의 그림자였다.
그 모습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 모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키리키리는 자신 있게 점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점괘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감은 사라져 버렸다.
흉도 이런 흉이 없었다.
끝이 있으나 시작은 없었다.
점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보았지만 계속 같은 결과만 나오고 있었다.
모험에서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영원한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주한다 하더라도.
그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 또한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점괘는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새로운 시작은 없으리라.
오랜 모험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진정한 끝이 다가올 것이다.
키리키리는 무의식중에 붙잡고 있던 자신의 귀를 놓아주었다.
손에서 놓자마자 귀가 하늘을 향해 쫑긋 세워졌다.
귀는 열기가 느껴질 만큼 뺏빳하게 서 있었다.
‘내가 죽는 건가’
점괘가 말하는 끝은 생의 종착역을 연상케 했다.
모든 모험의 끝.
소우주의 파멸을 통해 실행되는 대우주의 소멸.
죽음.
키리키리는 생각했다.
자신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그녀는 이미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호오우재애가 지는구나.”
결국 질서의 신이 완연한 초월을 이루어 낸다.
세상은 그렇게 끝을 맞이한다.
“아으으으으…….”
키리키리가 신음했다.
역시 세상을 멸망시켜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질서의 신을 약화시켰어야 한다.
그런다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승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았을 것이다.
“어쩌징…….”
키리키리에게는 저 점괘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놓을 만한 강력한 카드가 존재하지 않았다.
질서의 신과 도전자의 대결에 변수를 이끌어 낼 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들판 한복판에 포털이 나타났다.
포털 위로 세 사람이 소환되었다.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61층의 용암 거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키리키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읭?”
* * *
“와아아!”
용용이였다.
용용이가 키리키리의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키리키리는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윙윙거리며 용용이의 손에 이끌려 빙빙 돌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호치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용용이는 키리키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강한 호감이 있다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이나 어린이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보고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토끼라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호치는 자신의 생각에 강하게 긍정했다.
키리키리는 끝도 없이 돌려고 하는 용용이를 뒤에서 안아 들었다.
호치가 안았을 때는 품에 쏙 안기는 용용이이지만, 키리키리와의 키 차이가 크지 않아서인지 다리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꼬맹이가 자기 동생을 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키리키리는 용용이를 안은 채 휘적휘적 다가왔다.
그리고 호치에게 물어보았다.
“여긴 어쩐 일이양?”
호치는 난감함을 느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맞는가.
혹시 키리키리를 속여야 하나.
키리키리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면 어쩌지.
순식간에 온갖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호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영감을 쳐다보았다.
영감은 아주 훌륭하게 대처했다.
그냥 호치의 시선을 무시하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귀찮은 건 사절이라는, 아주 확고한 의지를 담은 거절이었다.
호치는 속으로 섭섭함을 느꼈다.
이 와중에도 키리키리의 동글동글한 눈동자는 호치의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이거 예쁘지!”
키리키리에게 안겨 있는 용용이가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으… 응.”
키리키리의 대답이 시원찮았다.
밀리터리룩은 키리키리의 취향이 아닌가 보다.
“여긴 어쩐 일이냐니깡.”
키리키리는 곧바로 다시 질문했다.
호치는 할 수 없이 이실직고해야 했다.
“호오우재애를 찾으러 가는 중이라고?”
“응. 괜찮지?”
키리키리의 동그란 눈이 더 커졌다.
“안 괜찮앙! 절대 안 돼!”
* * *
“자꾸 고집부리면 내가 혼내 줄 거양!”
키리키리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외쳤다.
엄하고 깐깐한 선생님처럼.
하지만 용용이는 보통 학생이 아니었다.
용용이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길조차 열어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키리키리에게, 그렇다면 61층에서 곧바로 이호재를 찾아갈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시스템을 붕괴시켜서라도.
“불가능해! 흥!”
“가능한데. 아빠가 지구로 통로를 연결한 걸 따라 하면 되는데.”
불가능하다는 말에 용용이가 반박했다.
키리키리는 용용이의 말을 듣고 잠시고민했다.
곧 용용이라면 정말로 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아아앙! 도대체 나한테 왜그래애앵!”
키리키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빽빽거렸다.
용용이는 굳건했다.
키리키리의 고집을 지켜보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힝, 그냥 안 가면 안 될깡.”
키리키리는 금방 태도를 바꾸었다.
엄하게 다그치는 대신 용용이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안 돼.”
역시 용용이는 단호했다.
어느새 둘의 대화는 반대가 되어 버렸다.
“안 가면 내가 아껴 둔 마카롱 줄게.”
키리키리는 어디선가 마카롱 세트를 꺼내 들었다.
4X4 칸으로 나뉜 마카롱 세트 박스였는데, 총 열여섯 개의 마카롱 중 단 세 개만이 남아 있었다.
먹다 남은 걸 주는 거였냐.
호치는 황당함을 느꼈다.
심지어 저 마카롱 세트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 보였다.
아니, 저거 예전에 이호재가 사 준 것 같은데.
“이거 맛있엉.”
안 먹어.
필요 없어.
게다가 저거 무조건 상했을 거다.
색깔도 좀 이상하잖아.
하얀 곰팡이도 서려 있다.
아껴 먹으려다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먹지 않아 상해 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사 준 지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저 마카롱 세 개가 남아 있지.
그리고 상했으면 좀 버려라.
무슨 기념품처럼 보관하지 말고.
잔소리가 호치의 혀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최근 교단에서 이것저것 지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남에게 지적하는 일이 익숙해진 호치였다.
“힝, 맛있는데.”
호치는 무시했다.
용용이도 마카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키리키리는 다른 방법으로 설득을 시도해 보았다.
“가면 다 죽을 거양.”
“아니야, 안 죽어.”
키리키리는 칼같이 단호한 용용이의 대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두통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물론 기분 탓이었다.
“힝, 다들 내 말을 무시해.”
“괜찮지 않을까. 우리 용용이는 신인데.”
호치가 말했다.
호치가 생각하기에 용용이라면 이호재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질서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양?”
질서의 신은 애초 신격을 상대하고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의 신이었다.
지나치게 뛰어난 성능 때문에 자아를 획득해 초월의 신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신격은 무의미해질 거야. 아예 신격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고. 질서의 신은 그런 신이양.”
호치는 옆에 서 있는 영감에게로 눈이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다.
실제로 신격을 잃어버린 사례가 바로 옆에 있었다.
신이 신격을 잃어버린다.
죽음보다 더한 상실이었다.
하지만 용용이는 키리키리의 경고에도 굴하지 않았다.
“괜찮아. 나는 신력이 없어도 세. 신력이 없으면 내가 제일 세.”
키리키리는 저도 모르게 질려 버린 표정을 지었다.
질서의 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호재에게도 설명을 했었다.
그때 이호재는 자기는 신력이 없어도 세다며 멋대로 들어가 버렸었다.
용용이에게서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 집안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
답답함에 복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호치는 호치 나름대로 심란했다.
용용이의 마지막 말, 신력이 없으면 자신이 가장 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저건 사실이 아니었다.
신력이 없으면 이호재가 가장 강했다.
이호재와 용용이의 대련을 여러 번 지켜보았던 호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용용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용이가 저리 장담하는 이유는, 정말 자신이 이호재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이호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자기가 무조건 제일 강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호치가 혼자 용용이의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있을 때 키리키리가 호치를 지목하며 용용이를 설득하려 했다.
“너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위험할 거양.”
“나는 괜찮다.”
옆에 있던 영감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이미 신격을 잃어버렸다. 새삼 신격이 무력화된다 해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 그리고 위험한 것도 상관없다. 신격이 붕괴해 이미 죽어 가고 있는 몸이다. 가만히 누워서 죽을 바에야 싸우다 죽는 편이 속 편하다.”
키리키리는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힘없이 호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얘는 어쩔 거냐는 듯이.
“삼촌은 괜찮아.”
“왜?”
“삼촌은 인과가 없거든.”
키리키리는 용용이의 대답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호치도 그랬다.
인과가 없다니, 예전에 한번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왜 갑자기 다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과가 뭘 뜻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양?”
용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하는 말이라는 거지…….”
키리키리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조용히 침묵했다.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석상처럼 우뚝 선 채로.
용용이도 함께 침묵했다.
호치는 용용이와 키리키리가 텔레파시로 대화 중인가 의심해 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둘 다 침묵하고 있을 뿐.
어색한 침묵이었다.
갑자기 너무 조용해진 탓에 자신의 숨소리마저 신경 쓰였다.
호치는 눈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용용이와 키리키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키리키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혀 의외의 말이었다.
“좋아, 들여보내 줄게. 먼저 내 시험을 통과하면.”
말을 마친 키리키리는 불시에 손을 휘둘렀다.
그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칼날이 들려 있었다.
칼날은 정확히 호치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