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1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2화(411/432)
외전 32화
호치 (5)
좁고 어두운 통로
어딘지 알 것만 같았다.
튜토리얼의 1층.
그곳과 흡사해 보였다.
[시련의 장에 입장하셨습니다.]이호재의 기억에 따르면, 여기서 무슨 ‘입장을 환영합니다’ 어쩌구 하는 메시지가 등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튜토리얼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질서의 신에게 다가갈 수 있고, 나아가 그 질서의 신을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공간에 입장했다.
무사히.
비록 영감이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고 있고, 우리 용용이가 울고 있기는 해도 어쨌든 다친 사람은 없었다.
“어후.”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튜토리얼 1층의 테마는 화살 함정이었다.
이곳 시련의 장에서도 똑같이 화살이 날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훨씬 더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대략적인 구성은 같았다.
‘예를 들어 초입 부분에는 위험이 없다는 거징.’
키리키리가 내 머릿속에 직접 넣어 준 정보들이 떠올랐다.
기억을 되돌려 보다가 다시 몸서리쳐졌다.
키리키리는 이곳에 대한 자신의 정보를 넘겨주었다.
말로 전해 준 것도 아니고, 필기된 메모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정보’라는 기억을 내 머릿속에 박아 버렸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 대한 정보를 원래 알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키리키리가 했던 가장 치명적인 경고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설계한 건 그랬어. 하지만 질서의 신이 내 조종을 벗어난 뒤에 그곳을 개조했을 거야. 훨씬 치명적으로’
갑갑했다.
키리키리가 전해 준 ‘시련의 장’의 정보로 보아, 그 난이도는 튜토리얼의 헬 난이도를 말 그대로 ‘튜토리얼’로 치부해버릴 만한 극악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질서의 신의 개조가 더해졌을 거란다.
이 시련의 장의 목적은 결국 질서의 신의 제압에 있었다.
제압의 대상인 질서의 신이, 이곳의 난이도를 건드렸다면…….
뻔한 일이다.
절대로 클리어되지 않게끔 만들어 뒀겠지.
어쩌면 초입 부분에서도 안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자신을 살펴보았다.
신체 상태와 마력은 그대로였다.
[천안(天眼)] [사용이 불가능합니다.]권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권능은 다른 신의 능력을 빌려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신력이 아니기에, 사용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모든 종류의 신력이 봉인됩니다.]메시지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종류의 신성과 신력이 배제되어 있어. 권능도 마찬가지양. 비록 자신의 신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권능은 그 자체로 어떤 신의 정체성을 대변할 만한 능력이니까.’
머릿속에 기억된 키리키리의 조언도 그렇게 말했다.
권능도 없이 이곳을 헤쳐 나가야 된다는 건가.
다시 한숨이 쉬어졌다.
“영감.”
영감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상태는 어때?”
“괜찮다.”
영감은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힘을 과도하게 소모한 것뿐이다. 조금 쉬면 괜찮아진다.”
확실히 영감은 많은 힘을 소모했다.
신이던 시절에는 아무리 많은 힘을 소모해도 아무렇지 않게 복구할 수 있었겠지만, 신격을 잃어버린 지금의 영감은 힘의 소모가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용용이는…….”
괜찮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잉잉 울고 있는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용용이는 안 괜찮았다.
다시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멈춰야 했다.
키리키리는 우리를 좋게 좋게 보내 주지 않았다.
용용이와 얘기를 나누던 키리키리는 뭔가를 확인해 보겠다며 갑자기 나를 공격하려 했다.
나는 대응조차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었지만, 영감과 용용이는 달랐다.
곧바로 키리키리를 막아서며 반격했다.
살벌한 광경이었다.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었던 전투가 이어졌고.
키리키리는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결국 나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이나.
영감의 용암 거검을 두 동강 내고, 용용이가 불러낸 온갖 환상체들을 소멸시킨 키리키리의 황금빛 칼날은 내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두 번째로 내게 황금빛 칼날을 휘둘렀을 때, 내 몸이 찢겨 나가는 대신 황금빛 칼날이 부러져 버렸다.
‘죽지 않는 필멸자…….’
키리키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 주었다.
무슨 뜻이었을까.
용용이가 계속 말하던, 내게 인과가 없다는 이야기와 같은 걸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 일행 중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영감은 매우 지쳐 버렸고, 용용이는 속상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용아, 괜찮아. 그만 울어.”
용용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용용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 울다가 기운이 빠져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가끔 중얼거리기는 했다.
“…키리키리가 나빴어.”
그래, 나빴지.
갑자기 그렇게 공격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내가 혼내 줄 거야…….”
용용아, 내가 보기에 그건 좀 힘들 것 같아.
걔 생각보다 엄청 세더라.
그냥 케이크 좋아하는 토끼가 아니었어.
용용이와 영감 그리고 키리키리 사이의 전투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그 공방을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만큼.
하지만 누가 전투의 주도권을 가졌고, 누가 우위에 있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결국 키리키리는 용용이와 영감의 방해를 물리치고, 나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황금빛 칼날이 내 목에 와 닿았을 때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다.
소름이 끼쳤다.
용용이는 계속 키리키리를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 내었다.
살벌한 말들은 아니었고, 그냥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가 징징거리며 할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래도 용용이는 키리키리 좋아했잖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맨날 만날 때마다 손잡고 빙빙 돌면서 좋아했으면서.
“아냐, 처음부터 싫어했어!”
퍽이나 그랬겠다.
“진짜야. 히잉.”
용용이는 말을 하다가 또 설움이 북받쳤는지 다시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새 다시 기운이 났는지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주 대성통곡을 한다.
“아빠도 키리키리 싫어해!”
용용이가 빽 소리쳤다.
아닐 것 같은데.
용용이를 꼭 안아 주었다.
용용이가 이렇게 서럽게도 울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갑자기 공격받아서도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키리키리에게 배신당해서도 아니었다.
키리키리의 공격을 막기 위해, 용용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작고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덧 성장이 끝난 드래곤의 모습을.
용용이는 자신의 본모습을 내보이는 걸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프라이버시에 대해 철저한 아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면이 두드러졌다.
폴리모프를 익히고 인간 형상을 하게 된 이후로는 해츨링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키리키리를 막아서며 용용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만 했다.
결국 전투 중에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 용용이는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덕분에 빈틈이 생겼다.
내가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빈틈이.
키리키리는 그 틈을 파고들어 내게 칼
날을 휘둘렀다.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용용이가 울고 있는 이유는.
“삼촌, 미안해…….”
역시 그랬다.
괜한 죄책감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 주려 했다.
“나 안 귀여워…….”
“어……?”
“나 안 귀여워. 미안해, 삼촌…….”
용용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목을 놓고 울어 대었다.
안 귀여워서 미안하다니.
그럼 내게 안겨서 꼬물거리면서 울고있는 이 귀여운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용용이에게 ‘아니야, 용용이는 귀여워’ 라고 말해 주려다가 멈추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호재 놈과 나는 항상 용용이에게 귀엽다고 했다.
실제로도 귀여웠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의 우리가 용용이에게 건넸던 칭찬은, 그냥 칭찬이 아니었다.
당시 용용이의 존재는 우리에게 희망이었고, 구원이었고, 안식이었다.
따뜻하고 푸근하기보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이 작은 아이가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기를 바랐었다.
어쩌면 용용이에게 귀엽다는 말은 그냥 칭찬이 아니라 너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강요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이 아이가 느꼈을 부담감을 뒤늦게나마 떠올려 보았다.
나도 같은 부담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부담이 싫어 도망쳤었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용용이를 더 꼭 안아 주었다.
“용용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빠랑 삼촌은 용용이를 사랑해. 용용이가 귀여워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용용이라서 그런 거야.”
모르겠다.
어떻게 말하면 내 마음이 전해질지를.
나는 용용이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용용이는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나도 용용이에게 그런 존재로 남고 싶었다.
항상 곁에 있어 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좋은 가족으로.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용용이의 숨소리가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리고 용용이는 귀여워.”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우리 용용이가 태산보다 더 큰 거룡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용이는 거짓말처럼 잠들었다.
살짝 흔들어 보았지만, 일어날 기색은 없었다.
“잠든 건가?”
영감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보던 영감이 손을 들어 용용이의 등을 한두 번 토닥여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벽에 기대었다.
내가 영감을 쳐다보자 영감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용용이가 잠들자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다.
거미였다.
물론 거미가 그 자체로 위협적일 리는 없으나 저 거미들은 조금 달랐다.
우선 그 크기가 인간만 하다는 점, 그리고 벽과 천장을 가득 메울 만큼 수가 많다는 점이 문제였고.
거미들의 앞발 끝에 익숙한 빛깔의 황금 날이 붙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저거 키리키리가 휘두르던 그거 아닌가.
마지막 문제는.
콰가가가광!
충격파가 몸을 덮쳤다.
나와 영감을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야했다.
잠든 용용이를 보호하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평화롭던 복도가 갑자기 지옥이 되었다.
거미들에게서 느껴지는 끔찍한 마력은 저것들이 어떤 종류의 재앙인지 실감케 해 주었다.
한 마리만 있어도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놈들이, 아주 떼거지로 있구만.
‘차원의 틈새에 서식하는 차원 종의 거미양. 차원을 찢고 나타날 때면 충격파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습의 위협은 없지만, 차원 틈새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괴물들이기 때문에… 그냥 엄청 위험행.’
머릿속에서 키리키리의 정보가 재생되었다.
키리키리의 정보 중에서도 저 거미들의 앞발에 달린 황금빛 칼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질서의 신에 의해 추가된 설정이라는 뜻이다.
“아이가 일어나려면 얼마나 걸리나!”
영감이 물었다.
“몰라!”
진짜 모른다.
용용이는 아직 해츨링의 나이였고.
해츨링은 수면을 조절하지 못한다.
호재 놈이 마법적인 처리로 수면 시간을 최대한 줄여 버렸지만, 수면 시간을 아주 없애지는 못했다.
물론 억지로 깨우려면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용용이가 보통 해출링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아이를 더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용용이를 영감에게 건네주었다.
영감은 엉겁결에 용용이를 안아 들었다.
영감은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용용이는 잠든 상태고.
“어쩌려고 그러나!”
영감의 외침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죽지 않는 필멸자.
인과에 속하지 않은 자.
그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언젠가 호재 놈이 말했다.
‘너는 나다. 동시에 내가 아니기도 하지. 어쩌다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사실이 중요하다.’
거미들은 내가 가까이 접근하자 적의를 품은 마력을 방출하며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권능도 없고, 가진 마력도 이곳에서는 별반 특별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저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야 할지는 자명했다.
이런 모습을 내보이기는 싫었다.
하지만 용용이가 같은 이유로 속상해하는 지금, 내 나약함을 계속 간직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너는 그 무엇도 아니다. 다행스러운 이야기지만, 너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지.’
호재 놈이 말했다.
‘근데 넌 왜 내 모습을 계속 흉내 내고있냐. 기분 나쁘게. 죽을래?’
음, 빌어먹을 놈.
기억 속의 호재 놈에게 다시 한 번 욕을 해 주었다.
그래, 이 모습을 잠시 내려 둘 때가 되었다.
호재 놈의 얼굴, 호재 놈의 체형, 모든 것이 그 녀석과 닭아 있던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내 몸은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 버렸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영감이 말하기를, 키리키리의 황금빛 칼날은 질서의 신의 그것과 똑같다 했다.
생김새도, 성능도
질서의 신은 수많은 칼날과 그 칼날이 달린 기계 다리를 가진 기계 신이라 했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으나 모방하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키에엑-]거미들의 울음소리.
저 미물들조차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신을 초월했다는 황금빛 기계 신의 모습을 모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