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2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3화(412/432)
외전 33화
키리키리 (1)
키리키리는 쪼그려 앉아 있었다.
폴짝폴짝 뛰어 볼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뛰어다니기에는 주변 땅이 너무할 정도로 파헤쳐져 있었다.
“에공 ”
쪼그려 앉아 있는 그녀 옆으로 뿌리째 뽑힌 꽃 한 송이가 바람에 밀려 데굴데굴 굴러왔다.
키리키리는 꽃을 주워 들어 땅에 잘 묻어 주었다.
바람에 다시 날아가지 않도록 땅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키리키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흙은 파헤쳐졌고, 풀은 뿌리째 뽑혀 바람에 휩쓸려 날아다녔다.
언덕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들판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키리키리는 속상했다.
이런 모습의 들판은 그녀의 안 좋은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가 신이 된 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신이 되었기 때문에 기억이 잊히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녀가 신으로서 재탄생했던 그날의 기억이기에 더더욱 깊이 박혀 잊히지 않는지도 모른다.
키리키리는 주변의 흙을 골라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파헤쳐진 땅을 메꾸어 주었다.
들판이 원래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키리키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용용이와 용암 거인의 저항은 격렬했다.
61층의 용암 거인은 신격을 잃어버린 와중에도 본래 설정된 61층에서의 힘을 한참 상회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용용이의 경우에는…….
이호재가 왜 용용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묘한 자신감을 내비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100살도 되지 않은 해츨링이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키리키리는 살짝 몸서리쳤다.
귀가 팔랑팔랑 흔들렸다.
[신이시여.]누군가 자신을 불러왔다.
키리키리는 곧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자신을 신이라 지칭하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키세아린.
50층 후반대에서 도전자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맡고 있는 드래곤이다.
50층 구간은 사도와 신격 그리고 근원에 대해 도전자가 인지해 나가는 구간이다.
가장 중요한 구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기에 조언자 역할의 키세아린을 그곳에 배치해 두었다.
저 드래곤의 정체는 과거 튜토리얼 헬 난이도를 클리어하고, 키리키리의 선택을 받은 도전자였다.
시련의 장을 클리어시키기 위해 육성한 헬 난이도 출신의 도전자였지만, 정작 그 시련의 장이 지나치게 위험해 투입되지 못한 사도.
키리키리의 원래 계획은 키세아린과 같은 도전자를 여럿 모아 함께 시련의 장에 도전시키는 것이었다.
질서의 신에 의해 시련의 장이 위험천만하게 변하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 계획이었고.
이호재라는 이레귤러가 툭 튀어나오면서 무용해진 계획이었다.
“미안해.”
키리키리는 드래곤에게 사과했다.
호치와 용용이가 고집을 꺾지 않고 시련의 장에 들어가겠다고 우겨 대었을 때.
키리키리는 키세아린을 동행시킬 작정이었다.
저 드래곤은 시련의 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위해 육성되었으니까.
훌륭하게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먼저 들어가 버렸어.”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61층의 용암 거인은 길잡이조차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버렸다.
어쩌면 그들은 드래곤의 길 안내를 받기엔 지나치게 강력한지도 모른다.
둘은 신격이거나 신격이었던 존재였고.
하나는 인과에서 벗어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아니, 길잡이를 기다리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키리키리 때문이었다.
그녀가 일행을 공격했기에 그녀가 준비한 길잡이도 껄끄러워 그들끼리 들어가버린 것이다.
호치가 인과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 키리키리는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보려 했다.
어떤 방식이었냐 하면, 호치를 직접 공격해 보려 했다.
곧바로 용용이와 용암 거인이 막아섰고, 전투가 있었다.
그녀의 성지가 쑥대밭이 될 정도의 전투가.
전투의 끝에서 키리키리는 결국 호치에게 닿을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주변에 황금빛 금속 파편이 흩뿌려져 있었다.
모든 이상을 소멸시키고 확정된 순리만을 강요하는 황금 칼날.
이 세상 모든 신격이 두려워하는 황금 칼날은 호치의 목에 닿자마자 산산조각나 버렸다.
용용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호치에게는 인과가 없었다.
황금 칼날에 찔린다면 그냥 찔리는 것이다.
그 어떤 신도 그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과를 비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과의 경계 바깥에 서 있는 자.
별개의 존재로서 존재하는 분신체.
이상한 존재였다.
[그럼 저는…….]조용히 답을 기다리던 드래곤이 말했다.
“돌아가.”
[알겠습니다.]드래곤은 순순히 물러났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시련의 장에 대비해 왔지만, 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 제 발로 들어간 자들이 이상한 것이다.
혼자 세상을 구하겠다며 들어간 이호재나 그냥 가족을 봐야겠다는 이유로 찾아간 호치와 용용이나.
키리키리는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조금 많이 부러웠다.
죽을 위험이 있음에도 그저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찾아와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키리키리는 귀 뒤를 긁적였다.
그녀에게도 가족은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모험이 시작되었을 때, 모두 이 들판 아래 묻혔다.
유치하고 저열한 질투였다.
키리키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키리키리 본인조차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가 시련의 장에 입장했다는 것이다.
키리키리는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용암 거인이 높은 확률로 죽을 거라 예상했다.
물론 호치는 예외적인 존재다.
하지만 불사가 모든 상황에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질서의 신에게 제압되었을 때,
호치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키리키리는 그들의 입장을 방관했다.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결국 문을 열어 줬다는 사실은 반하지 않는다.
변수 때문이었다.
대흉의 점괘를 비틀기 위해 변수를 투입해야 했다.
그리고 최고의 변수를 투입한 지금.
키리키리는 다시 한 번 점괘를 준비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반반한 돌을 준비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반듯한 제단상은 용용이 때문에 박살 나 버렸다.
돌에 진주를 올리고, 또 다른 돌로 진주를 내려쳤다.
진주의 잔해는 키리키리에게 점괘를 알려 주었다.
대흉이었다.
* * *
토끼의 다리는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길다.
몸통에 비해서도 긴 편이다.
평소에는 접혀 있지만, 앞으로 뛸 때는 다리가 쭉 펴지며 멀리 도약할 수 있게 해 준다.
키리키리는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았다.
깡충깡충 잘 뛰고 있었다.
쪼그려 앉으면 기다란 다리가 접히고, 다시 뛸 때는 용수철처럼 펴진다.
발에는 토실토실한 털이 있었다.
키리키리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짧고 하얀 발이었다.
털도 없었다.
발 바로 위에는 발목이 있었고, 종아리가 이어졌다.
한참을 올라와서야 무릎이 있었다.
무릎은 토끼처럼 구부려졌지만, 토끼의 다리 관절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 길었다.
이건 토끼의 다리가 아니라 사람의 다리였다.
키리키리는 귀 뒤를 긁적였다.
창문 너머로 집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자리에 쪼그려 앉아 보았다.
폴짝 뛰어 보았다.
토끼처럼.
안타깝게도 토끼만큼 멀리 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몇 번만 쪼그려 뛰어도 무릎이 금방 피곤해졌다.
균형을 잡기도 어려웠다.
콩콩!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키리키리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음식 보따리를 들고있었다.
아주머니는 보따리를 키리키리에게 주며, 그것을 조금 더 윗동네에 전해 주라고 말했다.
오늘 음식의 배달은 아주머니의 일이었다.
키리키리가 그 점에 대해 물어보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윗동네분들이 오늘은 꼭 키리키리가 음식을 배달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단다.
이상한 일이었다.
키리키리는 보따리를 받아 들고, 조금 더 윗동네로 향했다.
그녀의 고향은 총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아랫동네.
보통 산에서 열매와 나물을 캐 와 음식을 준비하는 젊은 토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다음은 윗동네.
나이 든 토끼들이 많이 살고, 옷을 짓거나 나무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이 사는 동네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윗동네.
이곳은 점괘를 보고, 종족 신을 위한 기도를 주관하는 토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산 높은 곳에 있는 윗동네에서는 열매도 나물도 찾을 수 없다.
아랫동네에서 음식을 준비해 보내 주어야 했다.
키리키리는 금방 조금 더 윗동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사장 토끼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안냥! 키리키리양!”
“안녕하셨어요, 하라 님?”
제사장을 맡고 있는 토끼 하라는 벌써 200살이 넘은 나이 많은 토끼였다.
겉으로는 마냥 아이처럼 어려 보였지만.
하라는 키리키리가 들고 있는 보따리를 가리키며 뭐가 들었냐고 물었다.
키리키리는 하라가 바라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보따리에 든 것 중 가장 단것이 뭐냐는 뜻이다.
“당근이에요.”
당근은 달다.
고산 지대에서 재배한 당근이라 작고 볼품없었지만, 그럭저럭 달았다.
하라는 폴짝폴짝 뛰며 당근 하나만 달라고 졸라 대었다.
“나 하나만!”
“안 돼요. 식사 시간에 다 같이 먹어야돼요.”
키리키리는 거절하며 팔을 들어 보따리를 머리 위로 올려 버렸다.
하라는 계속 뛰어오르며 보따리에 손을 대려 했지만, 거의 두 배쯤 키가 큰 키리키리에게서 보따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하라의 키가 작은 것이 아니었다.
키리키리가 유난히 큰 것이었다.
같은 토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컸다.
키리키리의 머리 위에 토끼 귀가 달려있지 않으면 토끼가 아니라 인간 이방인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키리키리는 하라와 함께 제사장의 거처에 들어갔다.
구석에 음식 보따리를 놓으며 당부했다.
“또 혼자 빼먹으시면 안 돼요. 나중에 같이 드세요.”
“알았엉. 히힝.”
순수하게 음흉한 웃음이었다.
“잠시 이쪽으로 와 봥.”
하라는 키리키리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안 그래도 오늘 굳이 자신을 오라고 한 이유가 궁금했던 키리키리이기에 순순히 하라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하라가 키리키리의 데려간 곳은 제사장의 거처 가장 안쪽, 점괘를 보는 곳이었다.
키리키리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인상이었다.
어떤 점이 그랬냐면.
“세상에… 이게 다 뭐예요, 하라 님.”
방이 지나치게 엉망이라는 점이 그랬다.
바닥에는 하얀 조각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마치 하얀 모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거… 진주예요?”
“맞앙.”
진주는 제사장이 점괘를 위해 사용하는 보석이다.
보통 일 년에 세 개 정도 사용되는 게 보통인데, 지금 바닥에 깔린 잔해를 보면 적어도 수백 개는 까부순 것처럼 보였다.
“진주가 다 떨어져서, 새로 사 와야 할 것 같앙.”
하라는 키리키리를 보며 말했다.
“네가 사 와야 할 것 같앙.”
“예… 누군가는 사 와야겠네요.”
진주는 토끼들에게 꼭 필요한 보석이었다.
그리고 산 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보석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산을 내려가 보석을 구해 와야 한다.
그 누군가가 키리키리라는 건 납득할 수 있었다.
다른 토끼가 가는 것보다는 키리키리가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키리키리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당장 출발해야 행.”
키리키리는 그 말에 멈칫했다.
“내일이… 축제인데요?”
내일은 십 년에 한 번 종족 신의 목소리를 듣는 날이다.
토끼들에게 가장 큰 축제였고, 의미가 깊은 명절이었다.
“오늘 출발해야 행.”
하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 * *
하라는 벙해 있는 키리키리에게 선물이라며 마지막 남은 진주로 점괘를 봐 주었다.
새로운 출발.
좋은 점괘라며, 이 점괘가 남아 있을 때 당장 마을을 출발해야 한다고 독촉했다.
키리키리는 속상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제사장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행 짐을 꾸리기 위해 아랫동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제사장 토끼 하라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폭 한숨을 쉬었다.
아마 불쌍한 키리키리는 자신을 따돌리기 위해 축제 전에 마을에서 내보내는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라는 부서진 진주의 잔해 속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점괘를 다시 살폈다.
하라는 그것이 아주 길한 점괘라 말했었다.
거짓말이었다.
괴상한 점괘였다.
출발, 시작 등 같은 의미가 반복되었다.
키리키리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라는 점괘였다.
긍정적인 의미의 점괘는 맞았다.
하지만 키리키리에게 펼쳐질 새로운 삶의 방향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리키고 있지 않았다.
점괘가 이야기하는 키리키리의 미래는.
대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