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4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5화(414/432)
외전 35화
키리키리 (3)
“응으으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키리키리는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두통에 괴로워했다.
하이시커는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세상에 와인 두 잔 마시고 숙취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토끼라서 그런가.’
하이시커는 조금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포도주를 권하지 않을 걸 그랬다.
맛이나 보라고 조금씩 따라 주었던 건데.
“으그극……!”
아침부터 일어난 소동에, 방에서 자고 있던 여관 주인이 홀로 나와 보았다.
여관 주인은 키리키리를 보자마자 크게 감격했다.
어렸을 적부터 토끼들에 대한 설화를 듣고 자란 여관 주인은, 토끼가 자신의 여관에 하룻밤을 묵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늦은 새벽에 찾아왔길래 일단 자신의 방을 내주었다는 하이시커의 설명을 듣고는 정말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주방을 뒤지던 여관 주인은 새로 시장을 봐 오겠다며 나가 버렸다.
여관 홀에는 다시 키리키리와 하이시커만 남게 되었다.
키리키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면서도 하이시커를 향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하이시커는 속으로 웃었다.
너무 대놓고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제 딴에는 엄청 심각한 척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하이시커는 고민했다.
어제 새벽에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저 토끼의 경계심은 금세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어찌해야 하나.’
하이시커는 고민했다.
처음부터 다시 친해져야 하는가.
설탕은 어제 다 줘 버렸는데.
이번엔 뭘 선물해 줘야 하나.
하이시커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이 나섰다.
[어휴, 이러니 다 늙어서도 독신이지.]갑자기 명치를 때렸다.
[내가 하는 걸 잘 보라고!]검은 자신이 넘쳤다.
하이시커는 검의 말대로 검을 키리키리에게 넘겨주었다.
하이시커는 어쨌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과 동행할 거라면 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따금 검과 대화하는 자신을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키리키리는 왜 갑자기 검을 꺼내 주냐며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굉장히 수상해했다.
키리키리는 검을 받아 들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검을 잡자마자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냥! 나는 아우부츠라고 행! 반가웡!]발랄한 인사였다.
키리키리는 깜짝 놀라 잠시 굳어 있다가 하이시커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이시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복화술로 낸 목소리가 아니라 해명해야 했다.
키리키리의 이상한 눈빛은 다시 검을 향해 옮겨졌다.
“이 안에 있는 분이 혹시 토끼이신가요?”
키리키리가 물었다.
하이시커는 에고 소드 안에 들어 있는 검령이 평범한 인간 출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키리키리는 찝찝한 표정으로 검을 돌려 주었다.
“에… 제 이름은 키리키리라고 전해 주세요. 그… 인간 검 님한테.”
하이시커는 머쓱해하며 검을 받아 들었다.
[…….]검도 민망했는지 한참을 침묵했다.
* * *
하이시커와 키리키리는 금방 다시 친해질 수 있었다.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관 주인이 차려 준 음식을 먹으며, 나이프와 포크의 사용법을 알려 주다가 친해졌다.
토끼는 금방금방 경계심이 복구되었지만, 다시 친해지는 것도 쉬웠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도를 보며 도시로 향하는 길을 확인하고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대부분 하이시커가 설명하고, 키리키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식이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에게 진주는 어떻게 구매할 생각이냐고 물어보았다.
진주는 귀한 보석이다.
아무것도 없는 고원 위에 사는 토끼가 여러 개의 진주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멍청아, 토끼들은 다 부자야.]검이 하이시커에게 말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키리키리는 자신의 가방에서 커다란 돌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살 수 있을 거예요.”
키리키리가 자랑스럽게 꺼내 든 그것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력 결정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예, 충분할 겁니다.”
하이시커는 장담할 수 있었다.
키리키리가 꺼내 든 마력 결정은 매우 컸다.
하이시커조차도 저렇게 커다란 마력 결정을 본 적은 없었다.
‘저게 시장에 풀리면 마탑들이 난리가 나겠군.’
마법사들에게 마력 결정은 여분의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저 결정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자들의 목숨쯤은 가볍게 헌납할 수 있는 게 마법사들이다.
마력 결정의 판매처를 신중히 고민해야겠다.
주변을 살폈다.
홀을 살피고 있는 여관 주인.
여관 창문 밖에 달라붙은 채 키리키리를 구경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
보는 눈이 있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에게 마력 결정을 가방에 집어넣으라 말했다.
최대한 밖에 내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도.
모르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의심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으나 무턱대고 믿는 것 또한 좋지 못한 일이었다.
가장 현명한 것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악해질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키리키리는 여행에 기한이 없다고 말했지만, 하이시커는 최대한 빨리 진주를 구해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의 직감은 아직 저 고원 위를 향해 있었다.
키리키리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 달라는 여관 주인의 부탁을 거절하고, 두 사람은 여관을 나섰다.
하이시커가 이곳에 왔을 때처럼 마차를 타고 가면 편하겠지만, 이 작은 마을에는 얻어 탈 만한 마차가 없었다.
하이시커가 타고 왔던 마차도 이미 돌아가 버린 뒤였다.
그렇게 마을 밖을 조금 걸었다.
키리키리는 조금씩 멀어지는 마을과 푸른 산맥을 뒤돌아보며 우울해했다.
그러다가도 처음 보는 것을 발견하면 해맑게 좋아하기도 했다.
하이시커는 곧 이 토끼가 그저 감정 변화가 매우 다채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흐흐흐, 멈춰라.”
산적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산적이 나타나 버렸다.
그들은 ‘살고 싶으면 가진 걸 다 내놓아라!’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음흉하게 웃는 우두머리.
우두머리를 따라 껄렁거리는 놈팡이가 몇 있었고.
긴장된 얼굴로 무기를 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저들은 알고 있었다.
키리키리에게 비싼 보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에서부터 두 사람을 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저들이 가진 무기라 해 봐야 별것 아니었다.
낫에 긴 막대기를 이어 붙인 것.
오늘 아침까지 열심히 나무를 패고 있었던 것처럼 날이 많이 닮아 있는 도끼.
망치도 하나 있었다.
하이시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도적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강도 짓이란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존재해야 성립된다.
인적이 아주 없는 곳에선 강도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
저들의 직업은 강도가 아닐 것이다.
근처 마을에 살던 나무꾼이고, 사냥꾼이고, 밭을 가는 농사꾼이겠지.
우연히 마을에서 커다란 보석을 들고 있는 남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나섰겠지.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처음은 분명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충동적인 범죄.
하이시커는 고민했다.
저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어린 시절이었다면 저들을 제압한 뒤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며 사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고.
하지만 이제 그런 훈계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힘으로 제압한 뒤에 그렇게 훈계해 봐야 저들의 머릿속에 힘이 강한 자를 공격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생각만을 남겨 주게 된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저들을 모두 제압한 뒤에 큰 도시로 끌고 갔을 것이다.
명성이 드높던 시절인지라 자신이 포박해온 범죄자들은 모두 감방으로 직행했었다.
그 또한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관리에게 처벌을 맡길 때에는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관리의 권한은 항상 최소한으로 유동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 증거도 없이, 이들을 데려가 도적이었다 말하며 구속시키는 건 올바르지 못했다.
도시의 감방이 올바른 기능을 할 거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회개와 처벌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감 시설은 대개 도시에서 가장 낙후된 시설에 속했고, 자잘한 비리와 부조리가 넘쳐 나는 영역이었다.
[그냥 줘 패면 되는 거 아니냐. 너는 여전히 답답하네. 아니, 나이 먹더니 예전보다 더 답답해진 거 같아.]검이 딴지를 걸었지만, 하이시커는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무의미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이시커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사에 최선의 방법을 추구했다.
하이시커가 그렇게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키리키리가 앞으로 나섰다.
한 발 앞으로 나서, 하이시커를 등 뒤에 숨긴 키리키리가 외쳤다.
“내가 지켜 줄게요!”
아주 당찼다.
하이시커는 요상한 감정을 느꼈다.
어쩐지 감동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지켜 주겠다는 말을 듣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들어 본 적 있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하이시커는 항상 누군가를 지켜 주는 쪽이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의 어깨를 잡으며 말리려 했다.
그 순간 키리키리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키리키리의 어깨를 잡고 있던 하이시커의 손은 허공에 붕 떠 버렸다.
갑자기 사람이 사라져 버린 모습에 하이시커도 초짜 도적들도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악!”
도적 중 하나가 가랑이를 붙잡으며 쓰러졌다.
껄렁거리며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놈이었다.
“뭐, 뭔가 날 쳤어!”
혼란이 시작되었다.
도적들은 대경해서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푹.
“어… 어……?”
도적 한 명이 자신의 배를 부여잡으며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의 복부엔 구멍이 뚫려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피를 본 도적들은 이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팔을 휘두르며 보이지 않는 적을 막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하나씩, 하나씩 도적들의 몸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주다……! 요정의 저주야!”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치며 달아나 버렸다.
한 명이 달아나자 도적들 모두가 혼비백산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가랑이 사이를 당했던 도적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서 힘겹게 기어 도망쳐야 했다.
하이시커조차도 도적들만큼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대마법사의 인비저블 마법도, 특급 암살자의 은신도 한눈에 눈치챌 수 있는 하이시커였다.
그런 그가 여전히 키리키리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기감에서 벗어나 있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도적들이 시야 바깥으로 멀리 달아나고 나자 키기리키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흥!”
힘찬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렸다.
키리키리는 하이시커의 바로 옆에 있었다.
적장을 쓰러뜨린 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서서 도적들이 도망친 쪽을 바라보고 있는 키리키리의 손에는 작은 칼이 들려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