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5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6화(415/432)
외전 36화
키리키리 (4)
히― 웃으며 자랑스레 황금 칼을 보여주는 키리키리를 보며 하이시커는 적잖이 당황해야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놀랄 거리가 너무 많았다.
갑자기 사라지는 능력도 놀라웠는데, 키리키리의 손에 들린 칼은 그 이상으로 놀라웠다.
일국의 왕이 되고, 온갖 진기한 보물과 신비한 보구들을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그가 떠나온 왕궁 창고에는 아직 그의 소유로 남아 있는 수많은 보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키리키리가 들고 있는 이 황금 검은.
[가아악! 저리 치워!]황금 칼이 자신을 향해 가까이 들이밀어지자 하이시커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검이 질색을 했다.
하이시커도 같은 심정이었다.
자랑하듯 황금 칼을 보여 주는 키리키리에게 제발 그것 좀 치우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저주에 걸린 마검도 아니고.
[이건 저주 따위가 아니야! 저건…….]검이 비명이라도 지르듯 말했다.
하이시커 또한 저 칼의 내력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저건 아마도.
‘파마.’
세상에 기적을 불러오는 힘.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위대한 입자.
마력.
하이시커는 적지 않은 양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마력 양만을 놓고 보면 대륙 최고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인간 중에서는 그랬다.
그런 하이시커의 마력이, 검이 들이밀어짐에 따라 밀려나고 있었다.
밀려나다 못해 몸 밖으로 마력이 유출되고 있었다.
의지를 벗어나 체외로 나가 버린 마력은 그대로 통제권을 잃고 허공에 흩어졌다.
영구한 마력의 손실이었다.
“이쁘죠!”
[가아아악! 나 죽는다, 이 토끼 놈아!]에고를 담은 마법검, 검의 경우는 하이시커보다 더 심했던 모양이다.
정말 죽을 듯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하이시커는 급히 칼을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키리키리는 눈이 동그래져서 칼을 가방에 넣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정말 굉장한 보검이군요…….”
아름다운 황금으로 빛나는 칼.
하지만 금붙이라는 사실 따위는 아무런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존재만으로 마력을 밀어내는 금속이라니.
누가 감히 저런 무기를 휘두를 수 있을까.
[저 토끼가 휘두르고 있잖아, 멍청아…….]그래, 저 토끼만이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마력 한 줌 없는 저 토끼만이.
하이시커는 키리키리가 약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녀의 몸에선 아무런 마력이 감지되지 않았다.
평생 농사만 짓던 평범한 농부조차도 미량의 마력을 품고 있다.
자연의 마력은 자연히 신체 속에 고이게 된다.
수련을 통해 마력 축적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미량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 토끼는 정말 한 줌의 마력도 가지지 못했다.
마력이 없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마력을 활용할 수 없다.
마력이 없는 토끼는 당연히 약해 보였다.
하지만 마력이 없는 대신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무기를 휘두를 수 있었다.
하이시커는 마력 결정과 마찬가지로, 황금 칼도 다른 사람 앞에서 되도록 꺼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키리키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쳐라.]문득 들려온 목소리.
하이시커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소처럼 검이 말을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내게 바쳐라.]‘오, 이런.’
하이시커는 잠시 침묵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신의 목소리에.
‘빛의 신이시여.’
[나의 성기사여, 저것을 내게 공양하라.]목소리는 방금 막 키리키리가 가방에 집어넣은 황금 칼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이시커는 난감함을 느꼈다.
[저 칼을 불태워 내게 공양하거라.]‘안 됩니다.”
냅다 거부했다.
하이시커는 어쩐지 죄 짓는 기분을 느꼈다.
죄가 맞는지도 모른다.
감히 신께서 원하는 일을 거부했으니.
‘신이시여, 불가합니다. 저건 제 물건도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가로채어 신께 공양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미쳤냐고 만류했겠지만, 하이시커는 거침이 없었다.
[괜찮다, 바르다.]‘아닙니다,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나의 말은 절대적이다. 내 의지가 세상의 규칙이고, 나의 말이 세상의 법도이다. 내 말을 따르거라, 나의 성기사여.]하이시커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신께서 질척거리셨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바르지 못한 건 바르지 못한 겁니다.
신은 침묵했다.
드디어 포기한 건가.
하이시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한 번만! 딱 한 번만!]뭘 한 번만이라는 걸까.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번만 해 달라는건가.
빛의 신, 자신을 위해서.
신을 사랑해 마지않는 성기사라면 응당 응해야 할 부탁이겠지만.
‘안 됩니다.”
[정말 너무하는구나!]갑작스러운 신의 일갈에 하이시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강한 두통에 뇌가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너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빛의 신이 엄포를 놓았다.
하이시커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의 한숨은 심각한 불경죄이며, 동시에 신성모독죄이기에 참아야 했다.
‘천벌을 내리시면 전 죽습니다.”
하이시커는 담담히 말했다.
정말이었다.
아무리 초인인 하이시커일지라도 신의 분노로부터 살아남을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신께서는 침묵했다.
하이시커는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신께서 본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당연했다.
빛의 검을 수련할 때마다 신나서 종알거리는 신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신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안 된다.]빛의 신이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하이시커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의 징벌은 무서운 것이었다.
굳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서도 죽음 이상의 고통과 절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이 빛의 신의 징벌은 단순하고 강력할지언정 음험하지는 못했다.
아마 천벌이 내려져 봐야 거대한 벼락이 떨어지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벼락을 맞으면 하이시커는 죽겠지만, 그게 빛의 신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속상하다.]자신의 기분을 털어놓은 빛의 신은 연결을 끊어 버렸다.
그제야 하이시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과의 대화는 항상 부담스러웠다.
[네가 이럴 때마다 세례를 안 받았던 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검이 놀리듯이 말했다.
얄미웠다.
* * *
잠깐의 소동이 지나가고, 다시 여행이 계속되었다.
키리키리는 여전히 해맑아 보였다.
그 모습은 하이시커에게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평생을 지내다 갑작스레 사고를 맞이했던 아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곳만 찾아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갑작스레 만난 도적들.
이어진 전투.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피가 튀고, 비명으로 시끄럽던 그런 전투였다.
그렇게 도적들을 쫓아낸 키리키리는, 도적들과 전투에 대해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후련해하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토끼잖아.]피와 살상에 대한 공포가 없다는 게 토끼라는 이유로 설명이 가능한 걸까.
하이시커는 의문이었다.
[쟤들 종족은 기본적으로 반신이고 선인이야. 여관 주인이 괜히 호들갑 떨던게 아니야. 애처럼 보인다고 애처럼 대하지 않는 게 좋을걸.]검이 또 아는 척을 했다.
하이시커는 그럼 아까 키리키리가 갑자기 사라진 능력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알지.]‘그렇습니까?’
[그럼. 토끼들의 가장 유명한 두 개의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차원을 넘어 다니는 거야. 애초에 내가 토끼들을 찾아갔던 것도 내 동료였던 소환술사 놈이 토끼들에게서 차원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해서 따라갔던 거고, 아마 아까 그 능력은 반차원일 거야.]검의 옛날이야기가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하이시커는 급히 소환술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으니 토끼들의 능력이나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검은 조금 불쾌해하면서도 잘 설명해주었다.
[토끼들의 설명대로라면, 차원과 차원 사이에는 조그마한 틈이 있는데. 그 차원의 틈을 반차원이라고 해. 완전한 경계로 나뉜 차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같은 차원도 아니지.]검의 설명을 들은 하이시커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침묵의 호수에 사는 페어리 퀸이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 같은 능력일 거야.]당혹스러운 말이었다.
페어리 퀸쯤 되는 존재의 능력을 종족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다니.
[그러니 동화 속 환상의 존재 취급도 받는 거지.]검이 한껏 젠체하며 말했다.
[마을 입구에 있던 것도 차원 결계야.]검이 이야기하는 것은, 토끼들이 사는 고원 위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하이시커는 일주일 가까이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다가 결국 포기하고 내려왔었다.
‘그게 차원 결계였단 말입니까……?’
검은 너무나 산뜻하게 대답했다.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일주일이나 개고생을 했다.
[말해 줬잖아. 네 능력으로는 못 올라간다고]‘아니…….’
하이시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못 올라간다!’가 아니라 ‘차원 결계가 있으니 네 힘으로는 못 올라간다’고 말해 줬으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일주일이나 개고생하는 대신.
[이게 말해 줘도 뭐라 그러네! 삐졌냐, 속 좁게?]‘삐지기는요. 그리고 좁은 건 당신의 그 고약한 심보입니다.”
[꼬맹아, 추하다. 늙었으면 나잇값을 좀 해!]검이 일갈했다.
‘당신이 제 세 배는 더 늙었습니다.
하이시커도 지지 않았다.
각각 백 살과 삼백 살에 근접한 인간과 검이 유치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 * *
하루가 지났다.
이런저런 소동으로 밤이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지 못한 탓에 두 사람은 야영을 해야 했다.
키리키리의 거대한 가방에는 조립식 텐트도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그리 불편치 않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 아침에 있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는 화기애애하게 잠들었던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난 키리키리는 다시 하이시커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이시커는 난감해했다.
다행히 키리키리의 기분은 금방 풀렸다.
하이시커가 구해 온 벌집 통 때문이었다.
간단한 비스켓에 꿀을 발라 먹으며 키리키리는 행복해했다.
하이시커는 곧 키리키리의 경계심이 금방금방 쉽게 풀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도 토끼라서 그런 건가.’
토끼니까.
간단한 이유였지만, 수많은 물음이 그 대답으로 해결되어 왔다.
하이시커의 의문을 검이 풀어 주었다.
[다른 토끼는 더 심해. 걔들은 경계심이 아예 없어.]검은 토끼들에 대한 일화 몇 개를 알려 주었다.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토끼들은 선량하고 순수해, 항상 평화롭고 조용히 살아간다고 한다.
게다가 가진 능력이 워낙 뛰어나 외부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차원 계단을 넘어 그들을 침공할 적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자연히 경계심도 사라질 것이다.
[저 키리키리라는 아이가 유난히 경계심이 많은 거야. 토끼치고는]하이시커는 그렇게 키리키리와 토끼 종족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쌓아 갔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키리키리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도 놀라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키리키리는 자고 일어나도 하이시커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준히 가까워졌다.
대화를 편히 하게 되었다.
하이시커는 때때로 자신이 정착해 가정을 꾸렸다면 이만한 나이의 손녀가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여행은 즐거웠다.
검이 불운이 어쩌고 하며 경고했던 것과는 달리, 평화롭고, 단조로우며, 즐겁기까지 한 여정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인간 도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