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6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7화(416/432)
외전 37화
키리키리 (5)
키리키리는 바닥을 타박타박 밟으며 걸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얼마 전에 들른 마을에서 새로 산 신발은 폭신폭신했다.
정돈되지 않은 흙길을 걸어도 토끼 마을에서처럼 바닥이 편하게 느껴졌다.
길을 걷다가 팔랑거리면서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를 발견하는 것도 좋았다.
토끼 마을은 좋은 곳이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생물은 한정되어 있었다.
마을을 떠나 보아 온 모든 것이 새로웠다.
축제 전날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설움은 어느새 잊혔고, 이 여행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여행에 있어 아무런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하이시커라는 괴상한 이름의 늙은 인간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또한 좋은 사람이었다.
토끼들이 그들의 가족으로 맞이하고 마을 한편에 집을 마련해 줄 만큼.
그녀의 아비는 어느 날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두를 배신하고 떠나 버렸다.
야영을 위해 땅을 고르고 간이 텐트를 쳤다.
키리키리의 커다란 배낭에는 온갖 야영 도구가 꽉꽉 차 있었다.
토끼들은 자는 것과 먹는 것에는 항상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키리키리도 마찬가지였다.
텐트에 누워 잠들 때면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나간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있는 기분이라고.
토끼 마을을 떠나 인간 세상에 나왔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기분 탓이었는지, 키리키리는 종종 잠을 설쳤다.
자고 일어나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흐릿한 꿈이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렇게 안 좋은 꿈을 꾸고 날 때마다 키리키리는 생각했다.
너무 마음을 풀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또 아무것도 모른 채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눈에 힘을 줘 부릅떴다.
영리하게 사냥감의 단서와 흔적을 찾아 추적하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하이시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지, 저 표정은.
그래, 자신의 똑똑한 모습에 당황한 것이 틀림없었다.
키리키리는 관찰을 이어 갔다.
“혹시 고기도 좋아하니?”
하이시커가 물어보았다.
아침은 고기를 먹을 모양이다.
키리키리는 신나서 네! 하고 대답했다.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다.
하이시커는 피식 웃으며 사냥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키리키리는 빨리 갔다 오라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하이시커의 모습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고 나자 키리키리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이게 아닌데!’
키리키리가 상상한 자신의 모습은 명석하고, 이지적이고, 빈틈없는 토끼였다.
이렇게 쉽게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었다!
하이시커는 금방 돌아왔다.
키리키리는 열심히 다짐했던 것과는 달리,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죽어 버린 사슴을 보며 슬퍼하다가.
도축되어 구워지기 시작하는 고기의 모
습에 다시 기뻐했다.
“잘 먹으니 보기 좋구나.”
하이시커가 말했다.
한입 가득 고기를 베어 물고 행복해하
던 키리키리는 다시 충격을 받았다.
‘으으! 이게 아닌데! 정말로 이게 아닌
데!’
왜 자신은 진지하지 못하는가.
통탄할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같은 풍경이 계속되었다.
“키리키리야.”
“흥!”
하이시커는 이제 밑도 끝도 없이 경계하는 키리키리에 의해 놀라지도 않았다.
“꿀이 다 떨어졌다.”
……!?
키리키리는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눈을 동그랑게 떴다.
세상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다행히 어제 봐 둔 벌집이 있다.”
하이시커는 같이 가서 벌집을 따 보겠느냐고 물어보았다.
키리키리는 오늘도 신나서 하이시커를 따라갔다.
‘아, 이게 아닌데!’
* * *
두 사람은 마침내 목적지였던 도시에 다다랐다.
키리키리는 고개를 들어 성벽을 올려다 보았다.
그동안 인간들의 마을과 작은 규모의 도시는 몇 번 거쳐 왔지만, 저렇게 높은 성벽이 있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하이시커는, 이곳이라면 진주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 말했고.
키리키리도 저 성벽을 보며 동의했다.
하이시커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커다란 로브를 꺼내 주었다.
키리키리의 귀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이곳에는 푸른 산맥의 고원에 사는 신비한 토끼들에 대한 설화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키리키리를 보고 설화 속의 토끼를 떠올리진 않을 것이다.
아마 평범하고 예쁘장한 토끼 수인으로만 보일 것이다.
조심해야 했다.
키리키리는 속여 먹기 쉬운 순진한 수인인 데다, 대륙을 뒤흔들 크기의 마력 결정도 가지고 있었다.
토끼들을 신성시하던 푸른 산맥 초입의 마을에서도 키리키리의 마력 결정을 보고 도적이 쫓아왔었다.
대도시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았다.
다행히 키리키리는 귀를 제외하면 수인의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뽁!
“와!”
키리키리가 도시의 시장 거리를 보며 소리쳤다.
뭐가 그리 놀라웠는지 귀가 뽁, 하고 바짝 세워졌다.
축 늘어져 있던 긴 귀가 하늘을 향해 뾰족 세워지자 로브의 후드가 벗겨져 버렸다.
하이시커는 급히 후드를 다시 씌워 주었지만, 귀가 바짝 서 있는 통에 쓰나 마나 한 상태였다.
하이시커가 주의를 주고 나서야 키리키리의 귀가 다시 수그러들었다.
“오와!”
키리키리가 또 소리쳤다.
어떤 남자가 품에 빵 봉투를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빵에서는 달큰한 향이 풍겨 왔다.
키리키리의 귀가 다시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여관을 찾아 들어가기 전까지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나중에 가서는 하이시커도 키리키리에게 계속 후드를 씌워 주는 자신이 조금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키리키리는 여관을 마음에 들어 했다.
푸른 산맥 초입의 여관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식당으로 쓰이는 홀도 정말 컸고.
객실은 2층과 3층에 있었다.
키리키리는 하이시커의 손에 이끌려 3층으로 올라가면서도 계속 홀을 힐끗힐꿋 보며 발을 질질 끌었다.
항상 충분히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토끼의 식탐은 생각 이상이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를 객실에 데려다 놓은 뒤에야 안심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에게 도시에서의 주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알려 주었다.
도시에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쁜 사람도 있었다.
언변과 상술이 아주 교묘한 사람들도 많았다.
어리숙해 보이는 수인 하나 등쳐 먹는건 일도 아니었다.
키리키리는 자신은 어리숙해 보이는 수인이 아니라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하이시커는 여전히 불안했다.
재차 경고를 해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리키리와 함께 진주를 구하러 다니기보다는 하이시커가 혼자 구입처를 확정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객실을 나서기 직전, 하이시커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키리키리를 돌아보았다.
키리키리는 걱정 말라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자.’
그렇게 다짐하고는 여관을 나섰다.
하이시커는 곧 후회하게 되었다.
고작 두 시간 만에 돌아온 여관의 객실은 비어 있었다.
아주 비어 있지는 않았다.
키리키리의 커다란 배낭도 있었고, 침대 위에는 정체불명의 편지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키리키리 본인이 보이지 않았다.
하이시커는 급히 편지를 읽어 보았다.
편지는 삐뚤뼈뚤한 글씨체로 씌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이시커 님.]여기서부터 하이시커는 불안해졌다.
왜 하이시커 ‘님’ 이란 말인가.
요즘에는 아저씨, 아저씨, 하고 편하게 부르면서.
글로 써서 그런가.
일단 편지를 계속 읽어 보았다.
[저는 식당 홀에 내려가 보았어요.]‘…내려가지 말라니까.’
분명 그런 당부를 여러 차례 해 두었던 것 같은데, 키리키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홀로 내려갔던 모양이다.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그게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야 맛있는 냄새가 났겠지.
슬슬 저녁 시간이니까.
홀에 내려간 것까지는 괜찮다.
여관을 벗어나지만 않았다면.
하지만 하이시커는 여관 홀에서도 키리키리를 보지 못했다.
[식당에 내려갔다가 착한 인간들을 만났어요.]하이시커는 이 시점에서 편지를 읽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껴야 했다.
[착한 인간들은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 주었어요.]그래, 그랬겠지.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최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적당히 겁을 주려 하거나 다른 걸로 꾀려 했으면 키리키리는 그 사람들을 경계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먹는 걸로 꼬시다니.
[인간들의 집에는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했어요. 인간들의 집에 다녀올게요.]편지의 말미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었다.
[아저씨가 먹을 것도 싸 올게요!]편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불행히도.
하이시커는 정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음식 냄새를 맡은 키리키리가 홀로 내려갔고, 거기서 인간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에 낚여 버렸다.
[…암 걸릴 것 같아.]검이 말했다.
하이시커는 부정하지 못했다.
“일단 추적해 보아야겠습니다.”
정말 운이 좋아, 키리키리가 따라나선 사람들이 정말 선한 의도로 음식을 대접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놈들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물론 여행 중에 확인한 키리키리의 신체 능력이나 여러 신비한 힘을 생각하면, 그녀가 쉽게 제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먹을 것에 혼이 나가 있는 상황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하, 이 몸이 또 나설 차례인가.]검은 그렇게 외치며 추적 마법을 펼쳤다.
너무 오랜만에 펼치는 마법이라 조금 버벅거렸지만, 검은 곧 키리키리의 흔적을 잡아낼 수 있었다.
키리키리의 흔적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추적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하이시커도 육안으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콩콩 뛰어다니는 발자국이 아주 선명히 남아 있었다.
[일이 조금 심각해지는데.]검이 말했다.
길이 가로막혔다.
창을 든 병사들에 의해서.
키리키리의 흔적은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이 도시를 통치하는 영주가 거하는 영주성 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졌기에 영주성의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닫힌 문 앞에는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쩔 거냐.]방법은 두 가지 정도였다.
하이시커가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합법적이고 당당하게 영주성에 입성하는 것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불법적이고, 당당하게 영주성에 입성하는 것.
[몰래 들어가서 토끼만 찾아 나오면 되는 것 아니냐.]그건 하이시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괜히 수배를 당해 쫓기는 몸이 될 수도 있었다.
영주성을 돌파해야 하는 이유도 명분도 충분했다.
그냥 당당하게 쳐들어가서 키리키리를 확보하고.
영주와도 담판을 짓는 편이 깔끔했다.
물론 범인이라면 당장에 구속되어 평생 감방에서 썩거나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이편이 복잡해지지 않고 좋았다.
그리고.
[흐흫.]신께서도 이편을 선호하신다.
빛의 신은 오랜만에 빚의 검을 보게 될 거라 기대한 건지 벌써부터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이시커는 빛의 검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힘을 감추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일국의 왕이라는 자신의 신분까지 노출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하이시커는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수상한 행동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다가왔다.
[하, 이 몸은 왜 이리 잘난 건지.]검이 유난을 떨었다.
하이시커는 평소와는 달리 핀잔을 주지 않고, 검의 자화자찬을 그냥 들어 주었다.
“멈춰라! 이곳은 영주성이다! 지금은 출입이 허가되어 있지 않은 자는……!”
병사들을 설득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곳에 납치된 제 동료를 찾아왔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아 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병사들에게 말을 해 보아야 그게 상부까지 전달이 될지조차 의문이었다.
“더 이상 다가오면……!”
병사들은 경고를 거듭하다 하이시커가 너무 다가오자 말을 멈추고 창을 들었다.
병사들의 무기의 구성은 간단했다.
경갑옷에 작은 방패와 창 한 자루.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강력한 구성이었다.
하이시커도 한때 저런 복장을 하고 전장을 뛰어다니던 병졸 출신이었다.
창이 내찔러졌다.
창날은 하이시커에게 닿지 못했다.
병사가 창을 휘두르는 순간, 창날 부분이 토막 나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툭.
병사는 마음속으로 노후화된 창과 경비대에게는 언제나 적은 예산만을 책정해주는 영주를 탓하며 방패를 휘둘렀다.
하이시커는 방패를 가볍게 손으로 막았다.
허공에서 강철을 긁어 대는 소음이 일어나더니, 병사가 들고 있던 방패가 체크무늬로 조각조각 나 버렸다.
예리하게 잘려 후두둑 떨어지는 방패의 잔해를 보며, 병사는 창이 노후화되어 끝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잘려 나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병사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하이시커는 무의미하게 병사들을 상대하는 대신, 영주성의 성문에 다가섰다.
굳건한 성문이었다.
성인 남성이 혼자 열기도 힘들어 보이는 두터운 성문.
하이시커가 손짓했다.
그에 따라 검은 자신의 기술을 펼쳐 내었다.
[공간절리심검.]성문은 그리고 성벽은 잘게 잘게 조각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손짓으로 무너지는 성벽.
초월적인 광경에 병사들은 공포를 느끼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제 하이시커의 앞을 가로막은 벽은 무너졌다.
하이시커는 성벽의 잔해를 넘어 영주성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