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7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8화(417/432)
외전 38화
키리키리 (6)
우르릉.
하늘이 꿍꿍거렸다.
당장 벼락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쾅!
실제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하이시커는 벼락에 맞아 튀어 오르는 돌 파편을 피해야 했다.
빛의 신의 의지였다.
허구한 날 천벌, 천벌, 하더니, 기어코 벼락을 떨어뜨리는구나.
하이시커는 식겁했다.
빛의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왕이 되고, 오랜 시간 왕좌에 앉아 정무에 힘쓰느라 빛의 검은커녕 검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싸울 기회가 생겨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던 빛의 신이, 하이시커가 에고 소드의 능력에 의존하자 크게 실망
한 모양이다.
쾅! 쾅!
벼락이 계속 떨어졌다.
하이시커는 촐싹거리듯 발을 바쁘게 놀리며 파편을 피해야 했다.
떼쓰는 게 위협적이었지만, 하이시커는 무시하기로 했다.
빛의 검은 그 자체로 자신을 증명하는 유명한 기술이다.
신분이 노출되는 데다,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영지의 태반이 휩쓸려 나간다.
불필요한 살상이었다.
하이시커는 서둘러 영주성 내부로 들어갔다.
경비병들은 그를 막아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손짓만으로 성벽을 무너뜨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지 않는 검에 의해 갑옷과 창이 잘려 나간다.
심지어 벼락이 연거푸 떨어지며 그를 수호하고 있었다(병사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키리키리의 흔적은 영주성 내실로 이어졌다.
몇 명의 경비병을 더 제압한 하이시커는 곧 키리키리의 흔적이 이어져 있는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커다란 식탁이 펼쳐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키리키리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정확히 문 맞은편에 있는 자리라 문이 열리자마자 키리키리와 하이시커는 눈이 마주쳤다.
하이시커와 눈이 마주친 키리키리는 열심히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호옹이!”
괴상한 감탄사였다.
하이시커가 찾아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 키리키리는 입에 가득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맛있어!”
“…그게 날 보면서 할 말이니.”
하이시커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맛있으니 빨리 먹으라는 키리키리의 말을 들으며 민망함마저 느껴야 했다.
* * *
다행히 키리키리는 잘 먹고, 잘 놀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영주는 병사들에게 시켜 키리키리를 데려왔다.
그것도 먹을 걸 사 줘 가며 환심을 사고, 더 많은 음식이 있다는 말로 유혹해가며.
보호자가 없는 틈을 타 피보호자를 데려온 이 행위는 분명 납치였다.
아무리 납치한 아이를 잘 대해 주고, 약속한 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있었다지만.
물론 하이시커가 키리키리의 보호자가 맞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하이시커는 자신이 저 철없이 해맑은 토끼의 보호자라고 생각했고.
키리키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하이시커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영주도 그렇게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영주는 곧바로 납작 엎드렸다.
의외의 태도였다.
당장 목이 잘려 나갈 상황에서도 괜한 자존심으로 핏대를 세우다 죽어 나가던 귀족들을 많이 보아 온 하이시커로서는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일단 영주의 변명을 들어 보기로 했다.
“예언?”
“예, 제 아들이 4년째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주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4년 전 병을 크게 앓은 뒤로는 아예 침대 위에서 생활하고 있단다.
의사들도 사제들도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
언제 나을지 혹은 언제 죽을지조차 알지 못한 채 간병만 계속되고 있었다.
“토끼는 미래를 점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주는 푸른 산맥의 고원에 사는 토끼들에 대해 알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영지에 토끼 수인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병사들을 시켜 데려오게 한 건가.
점을 쳐 달라 부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키리키리를 데려와 잘 먹이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제대로 초청을 할 것이지, 먹을 걸로 꼬셔 온단 말인가.
“그야… 토끼니까…….”
[그렇지. 토끼는 그냥 먹을 걸로 부탁하는 게 최고지. 이야, 저 친구, 토끼들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인데.]검이 맞장구쳤다.
시끄러웠다.
하이시커는 이해하기로 했다.
올바르지 못한 일이었으나 영주의 행동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한들 하이시커가 오기 전까지 키리키리를 잘 대해 주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이시커는 무너진 성벽값을 보상하기로 했다.
하이시커는 돈이 많았고.
가지고 다니는 비상금만으로도 무너진 성벽을 배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에게, 그녀에게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뭐어?”
키리키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날 속이다니! 나쁜 인간들이었어!”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혼내 줘야겠다는 듯 콧바람을 훅훅 내불며.
하이시커는 이미 자신이 잘 혼내 주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하.”
키리키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이러니 먹을 거에 속아 넘어가지…….’
도시에 들어오며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 말들은 다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 * *
하이시커와 키리키리는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주성에 머물게 되었다.
영주가 성벽이 무너지는 난리에 놀란 영주민들과 병사들을 다독이는 동안 하이시커와 키리키리가 밖을 나다니는 건 좋지 못했다.
영주는 성벽 붕괴는 벼락이 떨어져 일어난 사고라고 공표했다.
사고의 수습이 끝나고 나서, 영주는 키리키리에게 정식으로 부탁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의 미래를 점쳐 달라고.
“난 잘 못 하는데. 해 볼게.”
키리키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수락했다.
영주는 기뻐하며 점에 필요한 진주도 자신이 수배해 주겠다고 말했다.
하이시커는 일이 잘 풀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진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영주는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금속 상인들을 통해 알아보니, 최근 진주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인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진주는 해안가에 서식하는 인어들에 의해 생산된다.
자연히 생성되는 진주도 있었지만, 인어들의 보살핌을 통해 탄생하는 진주에 비해 수가 적었고, 광태와 크기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따라서 진주는 인어들이 만들어 내는 보석이라고 여겨졌다.
진주의 유통이 갑자기 끊겨 버렸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인어들과 연관된 문제일 것이다.
“제가 사람들을 보내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진주는 이 영지의 주력 유통 상품이었다.
동부 해안에서 생산되는 진주는 값을 치르기 힘든 귀금속이었고.
해안가가 아닌 대도시에서 거래되어야 했다.
이 영지는 중앙의 부유한 귀족들과 해안의 생산자들을 연결해 주는 연결 고리였다.
진주의 거래는 영지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던 만큼, 영주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이시커와 키리키리는 직접 해안가로 가서 문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영주가 보낸 사람들은 문제를 조사할 수 있을지언정 곧바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일 때문에 영주 성에 눌러앉아 주구장창 시간을 보내는 건 하이시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키리키리도 직접 가 보는 것에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이 모든 걸 신나고 재밌는 여행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여행이 길어지겠는데, 괜찮겠어?”
하이시커의 물음에 키리키리는 괜찮다고 답했다.
기한 없이 나온 여행이었다.
언제가 되었든 진주를 잔뜩 구해 마을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참 태평한 종족이었다.
하이시커와 키리키리는 해안가 마을로 향했다.
* * *
많은 일이 있었다.
인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악덕 영주를 혼내 주고.
신의 힘이 내려와 재앙이 펼쳐진 도시를 구하고.
침묵의 호수를 건너고.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신이 되어 대륙을 불태우려던 괴물을 처치하고.
드래곤에게 고통 받던 마을을 구해 주고.
두 사람들은 온갖 놀라운 사건들에 휘말렸다.
휘말렸다는 말은 바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이시커는 근처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절대 무시하지 못했다.
매사에 사사건건 참견해 가며 문제를 도우려 했다.
키리키리는 하이시커 때문에 길어진 여행에 불평하지 않았다.
고되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여행은 즐거웠고, 키리키리 또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영지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바뀌어 있었다.
수많은 진주와 함께 돌아왔지만, 영주는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영주의 아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점을 쳐야 할 이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영주의 아들이 죽은 날은, 두 사람이 영지를 떠나고 딱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당시 영주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병석에 누워 있던 아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더 절박했을 것이다.
하이시커와 키리키리는 푸른 산맥을 향해 출발했다.
많은 사건을 함께 겪었다.
키리키리는 더 성숙해졌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철없는 아이와 보호자 정도의 관계였던 그들은, 이제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어려워.”
키리키리가 말했다.
하이시커는 대꾸하지 않았다.
“완벽한 세상은 없어. 완벽한 질서도 없고, 완벽한 통치와 규칙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게 키리키리가 하이시커와 함께 여행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괜한 참견일지도 모른다.
하이시커는 한평생을 하나의 일념만을 위해 살아온 늙은이다.
이제 와서 바뀌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이 끝나 가는 지금, 키리키리는 말해 두고 싶었다.
“가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니까.”
완벽하고 융통성 없는 법은 정말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아들의 미래를 알기 위해 토끼를 납치한 영주는 처벌 받아야 하는가, 이해 받아야 하는가.
굶고 있는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삼촌은 감옥에 가야 하는가.
내 새끼를 살리기 위해 남의 새끼를 잡아먹는 것은 옳은 일인가.
그런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걸 구할 수는 없어, 아저씨.”
하이시커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수없이 들어 온 말이었다.
사람들이, 동료들이, 부하들이.
[맞는 말이야.]자신의 검조차도 그렇게 말했다.
하이시커가 바란 것은 간단했다.
모두를 돕고 싶었다.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바람이었다.
어느 하나를 구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버리게 되었다.
둘 다 구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강력한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도시를 불태워야 했다.
살인마가 강에 빠져 있고, 희생자의 가족이 강 건너편에서 살인마가 빠져 죽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살인마를 구하는 것만으로 희생자의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하이시커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법을 찾았다.
법에 의한 판결, 법에 의한 처벌.
하지만 그 법에도 모순은 존재했다.
“할 수 있다.”
하이시커는 말했다.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문제였다.
스스로도 답이 없을 거라 자조하면서도 언젠가는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기대어.
“어떻게?”
그리고 오랜 고민의 끝에.
하이시커는 길을 찾아내었다.
그는 키리키리에게 답했다.
“나는 신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