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18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39화(418/432)
외전 39화
키리키리 (7)
신이 된다.
하이시커는 가능하다고 믿었다.
지난 일 년간의 여정으로 확신을 얻었다.
대륙 곳곳에서 신이 되겠답시고 난리를 부리는 영물들과 정말 신적인 존재로 거듭난 이들을 만나 보면서.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 정도였다.
초월적인 힘.
만민의 추앙과 숭배.
하이시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자신이 있었다.
[어떤 신이 되느냐가 중요하겠지.]신이 된다고 이상을 이룰 수 있는가.
가장 익숙한 빛의 신을 떠올려 보자.
빛의 신이 아무리 강력할지언정, 하이시커의 이상을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가능하고?]검이 물었다.
하이시커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었다.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정말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야.]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대륙 동쪽 끝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며, 저 대륙 서쪽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공간을 넘어 다닐 수 있는 마법사를 구해도, 대륙 끝과 대륙 끝을 오가지는 못했다.
마력의 한계가 있었다.
신이 된다면 그런 한계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라면 엄청나게 강한 초인과 다를 게 없잖아.]사고를 해결해 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왕국을 통치하며 통치 체계와 사회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인간이 가지는 행동 동기의 대다수는 부족함과 그것의 충족으로부터 비롯된다.
위대한 신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양하는 세상에 부족함이란 없을 것이다.
배 곯는 이가 없을 것이다.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만한 식량을 창조해 낼 수 있다면.
시기와 질시가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보석을 가질 수 있다면.
싸움도 전쟁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합만이 있을 것이다.
단조로워진 그들의 삶에 자극이란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남을 것이다.
높아진 의식과 도덕은 그들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 것이다.
창조의 힘을 탐구하고, 그들보다 작은 세계를 관조하게 될 것이다.
그게 하이시커가 꿈꾸는 세상이었다.
[내 취향의 세상은 아니겠는데.]검이 말했다.
그는 무기였다.
인간이던 시절에도 그랬고.
검령이 된 지금도 그랬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존재했다.
비록 그 쓰임새가 누군가를 지키고 구하기 위함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무력의 보강을 위한 도구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만약 그런 세상이 된다면, 나는 필요없겠어.]그럴 것이다.
[그리고 너도 필요 없어질 거야.]완벽한 세상.
완벽이란 그런 법이었다.
하이시커가 신이 되어 그런 세상을 이끌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성을 획득한 세상에는, 더 이상 신이라는 이름의 정원사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무어가 대수이겠습니까.”
이상을 이룬 뒤에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건 아쉬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다.
“저는 그런 신이 되고 싶습니다.”
검과 검사의 문답이었다.
키리키리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 * *
하이시커와 키리키기리는 곧 푸른 산맥의 초입 지역에 다다랐다.
정확히 일 년 만의 귀향이었다.
키리키리가 여관에서 하이시커를 만나고 함께 여행을 떠났던 그날로부터 딱 일 년이 지나 있었다.
키리키리는 들떠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배낭에는 이제 야영 도구가 아니라 다른 토끼들을 위해 준비한 마른 과일과 설탕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여행의 목적이었던 진주도 한가득 얻어왔다.
키리키리는 뿌듯했고.
산을 오르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쳤다.
고원 위로 향하는 계단 앞에 도착하자 키리키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만큼 신나 버렸다.
하이시커의 주변을 뱅뱅 돌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참 정신 사나웠지만, 하이시커는 키리키리를 말리지 않고 허허 웃었다.
계단을 보고 반가웠던 건 하이시커도 마찬가지였다.
저 계단에서 더 나아가지 못해 마을로 돌아갔었고, 거기서 키리키리를 만나 일 년간 여행을 했다.
드디어 목표로 했던 고원 위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하이시커와 키리키리가 각자의 방식대로 기뻐하고 있을 때,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토끼들이었다.
“읭? 키리키리다!”
“정말 키리키리다!”
“인간도 있엉!”
계단을 내려오고 있던 토끼들은 키리키리를 발견하고서는 깡총깡총 달려들었다.
“읭? 엉?”
키리키리도 계단 아래서 토끼들을 만나자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워했다.
토끼들이 오랜만의 재회에 기뻐하며 깡총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이시커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원래 저렇게 작은 건가?”
갑자기 나타난 토끼들은 정말 작았다.
대부분 키리키리의 허리춤까지 오지도 않는 작은 키였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다리도 그리고 얼굴이나 몸에 난 털을 보아도 인간보다는 정말 토끼에 가까워 보였다.
사람들이 토끼 수인이 아니라, 그냥 토끼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저건 애들이야. 다 성장한 토끼는 좀 더 커. 그래 봐야 키리키리보다 작지만.]키리키리가 인간과 토끼의 혼혈이라는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토끼와 키리키리 사이에 차이가 정말 컸다.
똑같은 건 귀뿐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키리키리가 물었다.
토끼들은 계단 아래로 잘 내려오지 않는다.
이렇게 어린 토끼들끼리 내려오는 일은 더더욱 없다.
“어른들이 부탁했엉!”
“우리한테 부탁한 거양!”
“사과나무가 많이 피어 있는 곳이 있다고 했어!”
“거기서 사과를 따 오라고 했엉! 이만큼! 이만큼이나 가득!”
어린 토끼 중 하나가 바구니 하나를 내보이며 말했다.
키리키리는 머리를 갸웃했다.
식량의 조달은 아랫마을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하는 일이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식량을 모으러 다니는 건 당연히 어른들의 일이다.
굳이 아이들끼리만 내보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산 아래에 내려가보고 싶다고 졸랐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럼 우리가 바래다줄게.”
아이들을 사과나무가 있다는 곳까지 바래다주고 함께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이시커가 생각하기에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함께 마을에 들어가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외진 마을에 많이 찾아가 보았던 하이시커는, 외지인이 환영받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한참 소란스럽게 떠들던 토끼들과 함께 사과나무가 있다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막상 출발하자 토끼들은 조용해졌다.
키리키리에게서 들었던 토끼의 인상은 매우 시끄럽고, 매우 산만한 천방지축이었다.
하이시커는 키리키리에게 토끼들이 생각보다 얌전하다고 말했다.
키리키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떠들고 있는 중일 거예요.”
마을 밖에 소풍 나온 어린 토끼들이 조용할 리가 없다.
그들은 텔레파시를 통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까는 제가 있어서 말로 이야기한 것 뿐이에요.”
토끼는 모두 정신적으로 연결고리가 있어, 그걸 통해 대화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안에만 있다면,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가 가능하단다.
그냥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는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 의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정말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그냥 정신이 연결되어 텔레파시가 가능하다니.
심지어 마법사가 사용하는 텔레파시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차원적인 수준의 텔레파시가.
[쟤들은 기본적으로 반신이라니까. 원시부터 진화를 통해 발전한 종족이 아니라, 종족신으로부터 분화해 탄생한 종족이라. 어쩌면 종족 전체가 한 개체라고 볼 수도 있어.]검이 말했다.
[아마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야. 아,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생전에 내 동료였던 소환 마법사가 했던 말이야.]신으로부터 분화해 탄생한 종족이라니.
하이시커는 무심결에 키리키리를 쳐다보았다.
“…저는 못 해요.”
키리키리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토끼들과는 달리 텔레파시의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이시커는 걸으며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토끼 마을은 제법 조용할 것 같다고.
물론 토끼들이야 신나게 떠들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텔레파시 능력이 없는 자신에게는 참 고요한 세상일 것이다.
아마 키리키리에게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는 키리키리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따라 걷기 시작했다.
* * *
어린 토끼들이 말했던 장소에는 정말 사과나무가 있었다.
발강게 잘 익은 사과들이 한가득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가져온 작은 바구니는 금방 가득 차 버렸다.
나무 하나에 달린 사과도 다 담지 못했다.
결국 키리키리의 가방 남은 공간에 사과를 꾸깃꾸깃 밀어 넣어야 했다.
열심히 사과를 딴 뒤에 다시 마을로 향했다.
어린 토끼들은 잘 걷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우리 사과 하나만 먹장.”
“안 돼.”
키리키리는 단호했다.
어린 토끼들은 섭섭했는지 쌍심지를 켜고 쳐다봤지만, 키리키리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부탁과 설득과 애원을 모두 무시당한 토끼들은 깡총깡총 뛰어올라 키리키리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빼앗으려 했다.
키리키리가 머리 위로 바구니를 들어올리자, 어린 토끼들이 아무리 뛰어올라도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토끼들은 징징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처량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하이시커가 말했다.
“몇 개만 먹고 가자.”
어차피 한 바구니 정도만 가져가려던 사과였다.
키리키리의 가방에 더 많은 사과를 담았으니, 바구니에 든 사과 몇 개 정도는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착한 인간!”
“상냥한 인간!”
어린 토끼들이 환호했다.
키리키리는 금세 자기를 내팽개치고, 처음 보는 하이시커에게 달라붙는 토끼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그럼.”
주변에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그곳에 모여 앉아 사과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
키리키리도 사과 반쪽을 잡고 먹었다.
달달해서 맛있었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온갖 달고 맛난 음식을 먹고 돌아온 키리키리가 느끼기에도 정말 달고 맛있는 사과였다.
과일이 귀한 토끼 마을에 살던 어린 토끼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좋아했다.
하이시커는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어른 토끼들은 아이들에게 작은 바구니 하나만을 들려서 보냈을까.
바구니 하나에는 사과 열댓 개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하나씩 까먹으면 금방 동나 버린다.
아이들이 오는 도중에 사과를 먹지 않고 마을로 가져올 거라 생각한 걸까.
하이시커가 아는 토끼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종족이다.
그리고 그게 올바른 이치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사과 반쪽을 다 먹어치운 키리키리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왜 아이들끼리 사과를 따 오라고 한 걸까.
사과나무가 숨겨져 있던 곳은 마을에서 제법 멀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마을 밖에 나가 보고 싶었다 하더라도, 어른들이 동행해야 하는 거리였다.
“어른들은 바빠. 힝.”
키리키리의 물음에 어린 토끼 하나가 대답했다.
“많이 바빠?”
“응. 오늘은 축제 날이니깡.”
키리키리는 머리를 갸웃했다.
“축제 날은 작년이었잖아.”
“응. 작년에도 축제였는데, 올해도 축제양.”
마을의 축제는 십 년에 한 번씩 열리는 행사다.
작년에 열린 축제가 올해 또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 토끼들이 말하기로는 올해에도 연이어 축제가 열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연례행사가 되어 버리다니.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지만, 키리키리에겐 기쁜 소식이었다.
진주를 구하기 위해 참가하지 못했던 축제였다.
올해 축제가 다시 열린다면, 십 년이나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키리키리는 신나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토끼들이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칭얼거릴 만큼, 흥분해서 앞서나갔다.
거침없던 키리키리의 발걸음은 계단 앞에서 가로막혔다.
“…뭐지.”
마을의 입구는 투명한 막으로 가로막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