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23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44화(423/432)
외전 44화
101층 (2)
“거, 말 더럽게 많네. 진짜.”
화풀이 삼아 아부부를 드래곤의 시체에 푹푹 찔러 넣었다.
아, 얘 피 좋아하지.
다시 뽑았다.
아부부는 정말 말이 많았다.
이 빌어먹을 수다쟁이 검 같으니라고.
좀 적당히 해야지.
어떻게 싸우는 내내 한 번을 안 쉬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걸까.
쉬운 싸움도 아니었다.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이번에 등장한 적은 드래곤이었다.
마법도, 신력도 통하지 않는 황금 갑주를 입고, 질서의 신의 힘을 휘두르는.
도저히 내 신성을 잃은 상태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고.
나는 다시 단기적으로 신성을 생성해가며 싸워야 했다.
그러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 전투 와중에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 아부부의 수다를 들어주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수능 금지곡을 틀어 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예 무시하면 좋았을 텐데.
이야기가 쓸데없이 흥미로웠던 데다가, 워낙 중요한 정보라 무시하지도 못했다.
전투가 끝나고 집중이 풀어지자마자 신성이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 신성을 없애 버리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거지.
탈력감 뒤에 고통이 찾아왔다.
신성을 받아들였던 신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팔뚝을 강하게 꼬집어 보았다.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신체 내부에서 느껴지는 지나치게 큰 고통에, 외부 통증에 둔감해졌다.
이게 문제였다.
고통은 익숙했으나 감각이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신력을 잃었다 한들, 고통 내성 등을 비롯한 감각 계열 스킬들은 그대로 있을 텐데.
신력을 얻었다가 잃어버린 고통은 그 모든 스킬들을 무시할 정도였다.
[그래도 재밌었잖아요. 그렇죠?]그래. 아부부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흥미로웠고.
그러지 않았다면 당장에 침묵 마법을 먹여 버렸을 것이다.
예전에는 아부부의 마법 실력이 더 뛰어났기에 아부부의 입을 막으려면 인벤토리에 던져 넣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니었다.
아주 간단한 조치로 아부부를 침묵시킬 수 있었다.
[제 입장에서의 이야기라 사실과는 좀 다를 수 있지만, 거의 맞을걸요. 어디 가서 이런 역사 수업을 또 듣겠습니까. 세상이 한번 멸망하기 전의 역사인데요. 아무도 모르죠.]그건 그랬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의 이야기다.
당연히 기록 따위가 남아 있지도 않았고.
알고 있는 존재도 몇 없었다.
그 희망의 신조차도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희망의 신은 스스로 대격변 말기, 종말 시기에 태어났다고 했으니.
그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모를 법도 했다.
항상 희망의 신의 설명에서 빈틈이 느껴졌던 이유도 거기 있으리라.
[하핫.]하핫은 뭐가 하핫이야.
“그나저나.”
[예?]나는 천공의 신에게서 아부부를 빼앗아왔다.
아부부가 튜토리얼 속에 존재했었다는 것이, 그가 천공의 신에게 버림 받었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수되자마자 여러 개로 나뉘어지고 다시 합쳐지며 실험체처럼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데려와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부부와 천공의 신의 관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뭐, 나중에 돌려주면 되겠지.”
[이왕이면 임대료도 좀 지불하시면 좋겠군요.]재미없는 농담이었다.
[농담 아닌데요.]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감각이 돌아왔다.
아직 몸이 저려 왔고 간헐적인 경련이 일어났지만, 움직일 수는 있게 되었다.
충분한 휴식으로 만전의 상태를 기하고 출발하면 좋겠지만, 호치 놈이 이곳에 따라 들어온 덕분에 그러지도 못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문이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이런 문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특정 상황과 적들이 등장하고.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좀 걷다 보면 다시 문이 나타난다.
아주 오래전에 거쳐 갔던 튜토리얼 13층이 떠올랐다.
서른 개가 넘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던 도깨비들의 사원.
시련의 관문이라는 테마에 잘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아마 그곳을 본 따 만든 모양이다.
[13층이라. 전 가 보지 못했습니다. 아주아주아주 오래전, 인간이던 시절에 도깨비들의 사원에는 가 보았습니다. 아, 그때 이야기는 안 해 드렸었죠? 지금 해드릴까요?]또, 또.
또다시 수다가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집중 좀 해. 너 그렇게 집중 안 하다가 부러진다. 그러다 죽는다고.”
정말이었다.
검이라고 무작정 부러지지 않는 게 아니다.
아무리 성검이라 할지라도, 부러지는 게 이상하지 않는 전투였다.
아부부가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아는 검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전투를 행하는 나만큼이나, 아부부도 집중해야 했다.
[괜찮습니다. 인생, 아니 검생에 뭐 있겠습니까. 당장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요.]갑자기 해탈한 현자가 되셨다.
현자 타임이라도 오셨나.
[이미 여러 번 죽어 본 몸이라서요. 그거 아십니까. 죽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짐을 덜게 되는 기분이죠.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쯤 죽어 보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이해는 했다.
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많은 것이 편해진다.
선택지도 더 넓어지고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멍청아, 나는 한 번 지면 끝나.”
내 신성은 극단적이다.
단 한 번의 기회뿐이다.
아무리 부활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들, 한번 죽어 보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내 신성이 그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그것이 패배로 판정된다면, 나는 거기서 끝난다.
[신성은 극단적이면 극단적일수록 위험한 거예요.]아부부가 말했다.
그걸 누가 모르겠나.
신성을 처음 싹틔우고 나면,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
이게 나를 쥐고 흔들겠구나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신성이 극단적이었던 건.
그만큼 당시 내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 만큼.
[오우. 제가 바로 그 경험자죠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어요.]“시끄러.”
만약 이연희가 튜토리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용용이와 호치가 내게 가족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 보았다.
아마 튜토리얼을 빠져나오긴 했을 것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뭐…….]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문을 열었다.
번뜩이는 황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이곳을 나가고 나면, 평생 황금을 싫어하게 될 것만 같다.
도대체 저 질서의 신의 힘을 담은 황금은 뭘로 만든 걸까.
뭔데 마법도 파훼해 버리고, 신력마저 무시해 버리는 건가.
성능이 너무 사기적이라, 상대하는 입장에선 얼척이 없을 정도다.
황금을 무시하고 착용자를 직접 해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어떻게든 저 황금에 스치지 않으려 애쓰며.
황금 갑옷과 황금 창을 든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괴물들은…….
아니, 저걸 괴물이라 할 수 있을까.
적들의 정체는 작은 토끼 수인들이었다.
키리키리와 흡사해 보였지만, 조금 달랐다.
키리키리가 인간에 더 가깝게 보였다면, 저 토끼 수인들은 분명 이족 보행하는 키 큰 토끼처럼 보였다.
아부부가 이야기해 주었던 키리키리가 살던 마을의 토끼들 같았다.
토끼들이라.
은근히 의미심장했다.
바로 이전 방에서 우리가 죽였던 건 드래곤이었다.
“전전 방에서 우리가 죽였던 게 바다 괴수였지?”
방문을 열었더니 인어들이 등장하는 해안가가 나왔고.
해안가에서 거대한 바다 괴수가 튀어나왔었다.
물론 질서의 신의 힘을 품은 황금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는 이상을 비웃던 요정들이 등장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인간 도적 무리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한참 전에는 대악마를 죽이기도 했다.
아부부에게 들었던 하이시커의 여정 속 적들과 동일한 순서였다.
이쯤 되니 확신할 수 있었다.
키리키리가 이곳을 만들었을 때.
누군가가 이곳에 도전하게 되면, 그건 반드시 천공의 신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실제로 아부부는 천공의 신이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흥미로웠다.
얽힌 비사를 알고 나니 더더욱 흥미로웠다.
그보다 흥미로운 건, 토끼들의 행동이었다.
토끼들은 갑자기 들고 있던 황금 창을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나는 그 행동에 당황했다.
분명 내게 집어 던지는 줄 알았는데.
토끼들은 일렬로 서서 팔짱을 끼더니.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그 모양새가 마치… 시위 현장에 나간 아저씨들이 다 함께 팔짱 끼고 드러눕는 것처럼 보였다.
“뭐하니. 너희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토끼들은 내 말을 듣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너머로 가면 안 됑! 가려면 우리를 밟고 가!”
“맞아. 우리를 갈 거면 밟고 가야 행!”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저 너머로 가면 안 되는데.”
토끼들은 설명했다.
“모든 힘에는 규칙이 있어야 돼. 신들에게도 규칙이 있어야 행. 아무리 불면하다고 해도 그 규칙을 함부로 무너뜨리면 안 되는 거양.”
그러니까 저건.
질서의 신을 통제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도전자에게 하는 말이다.
이곳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질서의 신이 폭주해서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는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미안하지만 지나가야겠는데.”
“안 됑! 갈 거면 우리를 밟고 가!”
“설마 그 커다란 발로 우리를 밟고 가지는 못할 거양!”
재밌는 토끼들이었다.
황금 창과 검은 내팽개치고 육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누가 밟고 가라면 못 밟고 갈까.
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토끼들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진짜로 밟고 가려고 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엉!”
“야만인이양! 못됐어!”
아니, 밟고 가라며.
토끼들은 팔짱을 풀지 않았다.
“저 너머로 갈 거면 우리를 죽이고 가!”
“저기로 가면 안 됑!”
“그래, 안 됑!”
재밌네, 재밌어.
확실히 재밌었다.
나조차도 궁금했다.
신성을 잃어버린 채 이곳에 당도한 천공의 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저도 모르겠군요.]아부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나는 신성이 있건 없건, 토끼들을 죽이고 지나갈 수 있었다.
검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토끼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래. 이곳은 더 이상 키리키리가 만든 시련의 장이 아니었다.
질서의 신의 영역이었다.
토끼들의 몸에 갑옷처럼, 비늘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황금이 웅웅거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천히 팔짱을 풀었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무기를 주워 들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해안가가 등장했던 이전 방에서도 이랬으니까.
중립으로 등장했던 해안가 마을의 사람들이 황금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것을 겪어 보았기에, 충격이나 당황은 없었다.
안타까움은 있었다.
저 토끼들은 아무래도 못된 신들에게 조종당할 팔자를 타고난 모양이다.
“미안해… 도망쳐…….”
토끼가 창을 휘둘렀다.
질서의 신의 힘을 담은 창끝은 그 자체로 우주를 창조하고 멸망시킬 힘을 품고 있었다.
미안은 무슨.
내가 더 미안하지.
나는 토끼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내게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잠들어 있던 나의 신성이었다.
전투 중에 일시적으로 생성시켜 휘둘렀던 신성이 아니다.
61층에서 스스로 얻어 내었고,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보살피고 성장시켜 온 나의 신성이었다.
신성의 존재를 자각함과 동시에, 나는 다시 신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고 있는 아부부에게 설명해 주었다.
“신성이 돌아왔어.”
이 장소가 억제하고 있던 내 신성이 풀려났다.
그 사실은 다른 변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과자가 먹고 싶습니다.]신성을 잃고 침묵하고 있던 세레지아가 오랜만에 말을 꺼냈다.
다시 신이 되자마자 하는 말이 과자 타령이라니.
“여기부터는 신성 억제가 없는 모양인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갑자기 신성을 되돌려 준 걸까.
내가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이 장소를 만들고 설계한 존재는 정말이지 신성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명백한 악의가 느껴졌다.
어떻게든 신성을 배척하고 배제하려 했다.
집요함을 넘어 강박적일 정도였다.
질서의 신의 통제권을 위한 시련을 들이밀면서.
신성이 있으면 객관적이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없으니, 신성을 없애버린 채로 시련을 겪고 판단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그랬다.
신성에 대한 강한 불신이었다.
[과자가 먹고 싶습니다.]“들었어, 세레지아. 여기서 나가자마자 과자를 구해다 줄게.”
세레지아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과자 귀신이 되어 버린 세레지아를 보면, 설계자의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성은 지능과 판단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설계자가 이제 와서 신성을 되돌려 준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두 가지는 알겠네.”
[그게 뭡니까.]아부부가 물었다.
“끝이 머지않았다는 거.”
얼마 남지 않았다.
질서의 신의 존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거의 지척이었다.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신이 되자마자 나는 초입에 들어선 호치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곧 나를 뒤따라온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영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치와 용용이는 몰라도 영감까지 나를 쫓아왔을 줄은 몰랐다.
몸도 성치 않은 양반이 뭣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용용이가 평소답지 않게 본신의 모습까지 꺼내 들었고.
영감도 성치 않은 몸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분전하고 있었다.
심지어 호치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모습을 한 채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별로 없어. 최대한 빨리 끝내고 애들한테 돌아가야 돼.”
내게 설명을 들은 아부부가 물었다.
[많이 위험합니까?]“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