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24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45화(424/432)
외전 45화
천사백 (1)
‘예전 집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지르지, 우린 이미 이사를 왔단다. 이제부터는 여기서 살아야 해.’
오래된 기억이었다.
도시로 이사 오고 나서는 모든 게 어색했다.
마을 주민이 이백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지내다가,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
그것도 행성 최고 규모의 도시에서 살게 된 시골 소년이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고향 마을에서의 삶과 도시에서의 삶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당장 입고 다니는 것이 바뀌었고, 먹는 것이 바뀌었다.
만나는 사람이 바뀌었고, 시간을 보내는 시간도, 장소도 바뀌었다.
소년은 적응해야 했다.
‘지르지 칸타비아? 촌스러워, 어떻게 이름도 촌스러울 수가 있어. 너는 태생부터 촌스럽게 태어났나 봐.’
또래 아이들의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도 있었다.
소년은 많은 게 당황스러웠지만, 하나하나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학교를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친구들과 학원에 가야 했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이내 도시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고향 마을을 그리워했지만, 더 이상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다.
지르지 칸타비아라는 이름의 소년은 그렇게 도시의 삶에 익숙해졌다.
불행히도 그의 가족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이었을까.
지르지의 아버지가 한 손에 술병을 든 채로 집에 돌아온 날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도 소리를 지르며 계속 술을 마셨다.
그날이 기점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건 큰 차이였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가정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르지는 매일매일 아버지의 술주정을 지켜보았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간다 한들, 잠은 집에서 자야 했기에 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밤낮조차 잊고 하루 종일 모든 시간을 술을 마시는 데 쓰고 있었다.
그가 조용할 때는 오직 취해 잠들었을 때뿐이었다.
지르지는 항상 아버지가 잠들어 있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초능력자 새끼들!”
지르지의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소리쳤다.
지르지는 그의 아버지가 초능력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항상 떠들고 있었으니까.
이상 현상을 막아 낸 초능력자들은 할 일을 잃게 되었다.
그들은 존경받는 초인이었지만, 할 일 없이는 사회에 남을 수 없었다.
초능력자들이 사회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도 그것을 장려했다.
이따금 범죄자가 되는 초능력자와 그들을 막는 초능력자들을 제외하면, 초능력자들도 각자 할 일을 찾아 기업에 취직하기 시작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초능력자들은 백 명의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해낼 수 있었다.
지르지의 아버지는 그렇게 일을 잃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능력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곧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능력 있는 일반인 사원을 원하는 회사는 있었을지언정 알코올 중독자 사원을 원하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르지를 엄하게 혼내는 일이 잦아졌다.
엄하다는 정도를 넘어 지르지가 아프고 무섭게 했다.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집에 남은 건 아버지와 지르지 그리고 술병들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르지는 초능력자가 되었다.
극히 드문 확률로 나타나는 후천성 초능력자였다.
아버지에게 맞고 지내던 시간이 그의 각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지르지는 기뻐했다.
순수하게.
소년은 이 사회에서 초능력자가 가지는 위상과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자신이 기뻐하는 만큼, 아버지도 기뻐하리라 믿었다.
돌아온 것은 술병이었다.
끈적한 술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유리병 조각이 피부에서 느껴졌다.
다치지는 않았다.
상처 또한 생기지 않았다.
그의 초능력은 육체의 강화였다.
하지만 술병은 그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깨진 술병의 유리 조각은 차가웠고, 섬뜩했다.
악의가 느껴졌고, 살의가 느껴졌다.
당황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이미 술에 절어 버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지르지는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초능력자를 싫어했다.
초능력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초능력자들이 더 능력 있었기 때문에.
지르지는 아버지가 자신의 각성을 반겨줄 줄 알았다.
아버지는 아들인 그를 사랑하니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지르지는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전제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각성으로 인해 아버지도 힘을 얻고 술도 떨쳐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지르지는 그대로 가족과 의절해 버렸다.
쉬운 일이었다.
초능력자가 되어 의무교육 기간이 시작되었기에 가족들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년간에 걸친 능력 조절과 도덕, 사회성 향상을 위한 교육을 마칠 때까지, 지르지는 가족들과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교육을 마친 지르지가 도시로 돌아왔을 때.
그는 아주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그 모든 상처에도 지르지는 1년 만에 보는 가족의 얼굴이 반가웠다.
흩어졌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도 기뻤다.
가족이 그에게 물은 건 생활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그를 양육한 자신들에게, 앞으로 지르지가 초능력자로 살며 벌게 될 돈의 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르지는 다시 그들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은 그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어느 날, 지르지는 충동적으로 경찰을 불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대뜸 지르지의 가족을 향해 전기 곤봉을 들이대었다.
지르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초능력자 교육 중 여러 차례 그 성능을 시험했던 만큼, 저 전기 곤봉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일반인들에겐 목숨도 쉽게 앗아갈 수 있는 흉기였다.
하필 출동한 경찰이 이런 미친 폭력 경찰인 줄은 몰랐다.
지르지는 경찰을 말렸다.
경찰은 지르지의 만류에 왜 그러나냐는듯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너무 화사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가족은 도망쳤다.
경찰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자신의 번호까지 주고 갔다.
지르지는 그녀의 미소 속에 자신에 대한 호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찰이 돌아가고, 지르지가 복잡한 심경으로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변기물에 흘려보내는 데까지는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에 복귀한 지르지는 초능력자 문제가 비단 자신의 가정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온 사회가 신음하고 있었다.
차별의 굴레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비능력자들은 비하를 받았고, 초능력자들은 혐오를 받았다.
지르지는 고향 마을을 떠올렸다.
그곳에도 초능력자는 있었다.
지르지의 친구였다.
손으로 얼음을 만들어 내는 친구였는데, 재주가 좋아 꽃 모양의 얼음도 만들 줄 알았다.
모두가 그 아이를 부러워했고, 그의 주변에 모였다.
지르지도 그 친구를 좋아했다.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그곳에서 초능력자는 신비하고 주목 받는 사람이었지만.
질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 초능력자 아이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미 모든 게 바뀌어 버렸다.
지르지는 초능력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공무원이 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초능력자 일도 그에게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육체 능력자에 후천성 능력자였던 지르지는 은근한 비하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의 선배들은 별 이유 없이 그에게 시비를 걸어오고는 했다.
그는 일도 잘하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다 잡은 새끼를 어떻게 코앞에서 놓쳐!”
“…하, 하지만 제가 거기서 달려들었으면 그 사람은 크게 다쳤을 겁니다. 게다가 아직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인지도 모르고.”
그의 선배는 크게 화를 냈다.
“다치면 뭐 어때. 뒈지든 말든 상관없다니까. 우리는 수사 중에 면책 특권이 있어요, 면책 특권이. 너, 교육 안 받았냐? 그리고 범인인지 모르니까 잡아서 알아보려는 것 아니야.”
지르지의 상식과 선배들의 상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휴, 이래서 비능력자 태생들은.”
그 뒤로 이어진 말들을 들으며, 지르지는 선배의 말이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기억되지 않고 그저 지나가기를 바랐다.
지르지는 지역 경찰의 지원 부서로 발령 나게 되었다.
박봉에 허드렛일이라는 인식이 있던 지원 부서의 초능력자 인원은 지르지 한 명뿐이었다.
그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일에 적응했다.
사고가 있을 때.
급히 초능력자가 나서서 중재해야 할 때.
하지만 과격한 무력 진압이 필요하지는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 지르지가 출동했다.
그의 역할은 보통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고된 일이었다.
힘을 쓰는 일은 드물었지만.
사람들을 계속 마주하고, 그들의 갈등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지르지는 갈수록 바빠졌다.
아무리 해결하고 해결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점점 위험한 일도 많아졌다.
사회에 잠재된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낳았고.
그 증오는 언제든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뚜렷해져 있었다.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 한가운데 거대한 소행성이 떠 있었다.
행성으로 낙하하던 외계 소행성이다.
초능력자들이 해결한 최후의 이상 현상.
위대한 초능력자는 스스로를 희생해 소행성을 봉인했고.
저대로 하늘에 정지되고 말았다.
위대한 초능력자의 존재는 마치 신처럼 취급되었다.
세계를 구한 영웅을 향해 사람들은 기도하며 그를 기리기도 했다.
지르지도 저 초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 소행성이 더 이상 명예와 희생의 상징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것은 부정의 상징이었다.
초능력자 우월주의를 상징하고 유지시키고 있는.
연말이 되었다.
초능력자 총회의가 열리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허구한 날 초능력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여는데, 사실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소수의 최상위 초능력자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관객이고, 들러리일 뿐.
지르지는 B급 능력자석의 가장 앞줄에 앉았다.
사실 그의 능력은 A급으로 취급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육체 능력에 비능력자 출신으로서 A급으로 올라설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총회의의 안건은 위대한 초능력자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한 그를 구출하자느니, 유해를 회수하자느니, 기념관을 짓자느니 하는 것들뿐이었다.
이 회의에서 다뤄야 할 안건들은 저런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초능력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데.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초능력자 본인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지르지에게는 발언권조차 없었다.
회의가 종료되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총회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래서 연말이 싫어.
지르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회의장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지르지의 옆자리에 앉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회의장에선 항상 등급 순으로 착석하기 때문에, 지르지의 옆자리에 앉았다는건 그와 동급의 능력자라는 뜻이다.
A등급 수준의 전력을 가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B급에 머물러 있는 굉장히 애매한 등급의 능력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천사백?”
“어, 천사백”
역시 지르지의 생각대로였다.
천사백 점.
딱 그 점수였다.
남자는 자신의 점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다.
지르지는 의아해했다.
보통 천사백 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상황을 추측해 보았다.
선천성 초능력자였지만, 비능력자처럼 능력을 숨기고 살다가 뒤늦게 초능력자 사회에 합류하면 저렇게 상식을 잘 모를 수도 있다.
지르지는 빠르게 추측을 끝냈다.
“대회의실에는 처음 와 보는 모양이네.”
지르지는 대회의실의 구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냐. 그냥 센놈들 순으로 앉은 거잖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와 바로 옆자리인 지르지의 자리를 보았다.
“너랑 나랑은 같은 등급인 거구나.”
“그렇지.”
괜한 호기심이었고, 장난이었다.
오랜만에 느낀 동질감 때문에 과하게 흥분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르지는 조금 유치한 농담을 했다.
“같은 등급이지. 내가 훨씬 강하겠지만.”
“뭐?”
지르지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농담에 정색하는 그를 향해 멋쩍게 웃으려는데, 갑자기 몸이 경직되었다.
섬뜩함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오한이 느껴졌고, 지르지는 당황해야 했다.
곧 그의 당황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친놈은 다짜고짜 지르지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러버렸다.
초능력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르지는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