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27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48화(427/432)
외전 48화
천사백 (4)
“소행성?”
“어.”
지르지는 말했다.
“존경과 감사. 뭐, 그런 거겠지.”
소행성과 하늘에 박제되어 버린 초능력자는 존경과 감사를 받을 만한 위인이었다.
아직도 점심시간이 되면, 하늘을 쳐다보며 초능력자의 희생을 기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소행성을 향해 기도를 하며 마치 신처럼 숭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지르지는 말했다.
평소라면 덧붙이지 않았을 말이었다.
“저게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 저렇게 영원히 하늘에 박혀 있는 게 말이야.”
“왜?”
위대한 초능력자는 희생을 통해 세상을 구원했다.
그 희생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후대의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기릴 것이다.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긍정이 있으면 항상 부정적인 영향 또한 있었다.
초능력자들은 저 소행성을 보며 보상심리를 느낀다.
본래 가지고 있던 우월감과 특권 의식에 더해, 우리 초능력자들이 세상을 바꾸었으니, 이런 내 행동은 용인되어야 해, 라는 착각을 한다.
비능력자들에게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상징물이 하늘 한가운데 박혀, 사시사철 언제나 고개만 높이 들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르지는 과연 저 소행성이 인류에게 영원히 좋은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언젠가는 저 소행성을 보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소행성은 모욕과 부정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위인의 숭고한 희생 따위는 잊힌 채로
“그런 거지.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지르지는 마음속에 담고 있던 것 하나를 풀어놓자, 몸이 조금 홀가분해진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상대가 호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마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사회적인 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소행성에 박제된 위인을 존경하고 사랑했고, 그를 비방하고 비하하는 듯한 지르지의 의견에 분노할 것이다.
“상징이란 그런 거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래서 …들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거고”
호가 말했다.
호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몇몇 단어가 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베란다의 창문은 닫혀 있었다.
지르지는 자신이 듣지 못한 호의 말에 아무런 위화감도 의문도 느끼지 못했다.
* * *
“시끄럽다.”
“아, 투명 개구리 보여 주세요! 보여 주라니까요!”
되바라진 꼬맹이였다.
호가 인상을 썼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면 지르지는 놀라서 호가 아이를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소.”
하지만 자신이 보아 왔던 호는 애한테 쌍욕을 할지언정, 무턱대고 때리지는 않았다.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애한테 위험한 친구는 아니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더니. 야, 투명 개구리 맡겨 놨냐? 어? 맡겨 놨냐고”
물론 때리지 않는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개들은 개장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개장수가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겁에 질린다는 이야기인데.
지르지는 그게 참 신빙성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아, 이 새끼, 미친놈이다.
나사가 풀려 있구나.
눈이 마주치면 딱 그런 예감이 든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험한 인상이었다.
애가 울기 시작했다.
호는 갑자기 허둥지둥 쩔쩔매며 애를 달래려 했다.
옆에서 보기에는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한 미친놈이 애를 쥐어 패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호는 결국 포기하고, 애를 달래기 위해 개구리를 소환해 주었다.
“와! 개구리!”
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그치고 개구리에게 달려들었다.
“이 영악한 꼬맹이. 분명 우는 척한 거야.”
호가 중얼거렸다.
“아니, 애를 좀 울릴 수도 있지. 이걸 가지고 사람을 쓰레기로 몰아가네. 애 달래는 게 쉬운 줄 아냐?”
“너, 누구랑 얘기하냐.”
호는 허공에다 대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혼잣말이 잦은 친구였다.
하지만 가끔은 혼잣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방금 같은 경우가 그랬다.
혼잣말이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
“누구랑 얘기하냐니까.”
호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변명거리를 찾아내었다.
“투명 개구리.”
“케에엑!”
아이랑 놀아 주고 있던 개구리가 포효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신나 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르지는 정말 궁금했다.
한 번은 호가 소형 이어폰을 통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의 귓가를 살펴본 적도 있었다.
호는 정말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무슨 텔레파시 능력자라도 있는 건가.
호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앞서 말했듯이, 호의 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못생기고, 험하게 생긴 건 아니었지만.
저 맛탱이 가 버린 눈깔이 인상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호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자세를 다잡자, 지르지도 절로 긴장이 되었다.
“진실이 궁금해?”
지르지는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그 진실을 그냥 알려 줄 수는 없어.”
“왜?”
“너무 위험한 진실이거든. 진실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네가 선택해야 해.”
뭔 소리일까.
이 미친놈이 오늘은 어떤 참신한 개소리를 하는 걸까.
지르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자, 여기 파란 약이 있고, 빨간 약이 있어. 파란 약을 먹으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지금 믿고 있는 걸 앞으로도 믿으며 사는거야. 하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나는 네 질문에 답을 해 줄 거야.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알려 주는 거지.”
호의 손바닥 위에는 파란 약도 빨간 약도 없었다.
“어떻게 할래?”
“됐어. 알려 주기 싫으면 말아. 말하기 싫은 걸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지르지는 그렇게 말했다.
속으로는 어쩐지 철렁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지르지가 정말 끝까지 답을 원했다면, 호는 아마 답을 알려 줬을 것이다.
지르지 또한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몰랐지만, 추측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말을 직접 들어 버리면 호가 그날로 자신을 떠나 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야, 삐졌냐. 그냥 말해 줄까?”
“아, 됐다고”
“아, 이 새끼. 뭘 그런 걸로 삐지고, 알았어, 내가 말해 줄게.”
“됐다니까!”
지르지는 버럭 소리를 높였다.
“말해 줄게. 사실은, 자, 봐. 이게 에고 소드라는 거야. 얘가 말도 할 줄 알아서 가끔씩 얘랑 대화를 하는 거야. 방금도 얘랑 말하고 있었어. 이름은 원래 아우부츠인가 뭔가 하는데, 편하게 아부부라고 불러도 돼. 마법도 쓸 줄 알아서, 사실 그동안 투명 개구리가 했다고 했던 일들은 모두 이 녀석이 한 거야. 그래서 네가 개구리 마사지해 줄 때마다 얘가 질투를 좀 해. 말투는 평범한 아저씨 같은데, 조금 기분 나쁘게 꿍꿍거리면서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자칭 신의 성검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딱 마검…… 야, 어디 가.”
“에라이.”
투명 개구리 다음은 말하는 마법 검이었다.
지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호는 아이에게서 개구리를 떼어 내고 역소환시키느라 곧바로 쫓아오지 못했다.
지르지는 복잡한 심경을 느껴야 했다.
섭섭했고, 황당하고, 화가 조금 나기도 했다.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진짜 진짠데.”
쫓아온 호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 * *
2주가 지났다.
협회에서 다시 공문이 왔다.
초능력자 총회의에 참가하라는 공문이었다.
2주 만에 또 총회의.
“난 이래서 연말이 싫어.”
가뜩이나 사건 사고가 많아서 일이 많은 시기에 회의가 몇 번이나 연달아 열리기 때문이었다.
지르지와 호는 간단한 복장으로 회의실을 찾아갔다.
지르지는 그 사실을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조금 번듯한 옷을 입고 올 것을.
너무 편하게 왔다.
아무리 회의를 멀리서 관람하기만 할 뿐이라지만, 너무 프리한 옷차림이었다.
호와 함께 살면서 자신이 호에게 물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 저게 그 투명 개구리지?”
“날개도 달렸다던데.”
투명 개구리를 부리는 호는 어느새 초능력자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떠오르는 신인은 놀라울 정도로 과도한 시선을 받았고.
바로 옆에 있던 지르지 또한 그 시선에 노출되어야 했다.
지르지는 자신과 호의 너무 편한 옷차림 때문에 더 부끄러워했고, 누구보다 빠른 속보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르지 칸타비아] [호]위대한 초능력자 아카이덴 구출 작전에 포함된 유이한 B급 초능력자들이었다.
지르지는 그 사실에 뿌듯해하기보다는 재수 옴 붙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잘못하면 개죽음당할 수 있었다.
“하아, 모르겠다, 나는”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다.
아카이덴은 성역이었다.
구출 작전에 포함이 되었는데, 거기다 거부를 한다?
그건 사회적으로 자살하는 것이었다.
“저 계획이 가능할까?”
호가 물었다.
“가능은 하겠지.”
그러니 저 안건이 여기까지 진행된 것이겠지.
다만 위험할 것이다.
더군다나 협회 수뇌부는 임무에 포함된 B급의 생명을 그리 중히 여겨 주지 않을 것이다.
S급 이상의 고위 초능력자들도 포함되어 있고, 그들은 하나하나가 국가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그 와중에 지르지와 호를 각별히 챙겨줄 것 같지는 않았다.
지르지는 호에게 그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해 주었다.
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이번에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 이제 올라가자.”
“…뭐라고?”
지르지는 반문했지만, 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호는 지르지에게 말했다.
이제 떠나겠다고.
지르지는 알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홀가분한 대답이었다.
어쩐지 오늘 떠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매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르지는 호가 떠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항상 호가 질문하고 지르지가 대답하는 것이 익숙했지만.
오늘만큼은 반대였다.
호는 이전까지 지르지가 그래 왔던 것처럼 성심성의껏 모든 질문에 답해 주었다.
지르지가 그 모든 대답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몇몇 단어를 똑바로 듣지 못했고.
그렇게 흘러가 버린 단어에 대해 다시 묻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르지가 알고 싶었던 것들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 나도.”
그게 마지막 문답이었다.
호는 그 답을 끝으로 지르지의 집을 나갔다.
아무런 짐도 없었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그냥 불쑥 나가 버렸다.
지르지는 다시 거실에 혼자 남겨졌다.
고작 몇십 초, 비어 버린 집에 서 있는 것만으로 예전의 외로움이 다시 느껴졌다.
지르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베란다로 나갔다.
호가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볼 생각이었다.
주택 단지를 벗어나 큰길로 나가겠거니 했던 호는, 갑자기 지면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새나 날벌레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공중에 떠오른 호는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밤하늘의 소행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동화 같은 광경이었다.
커다란 달과 소행성, 호가 일렬로 겹쳐 보였다.
그래, 동화 같은 시간이었고, 동화 같은 친구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함께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하며 세상을 배우려 하던 친구였다.
지르지 또한 그 시간 동안 세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소행성을 향해 날아가던 호의 모습은 이제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르지는 호가 본래 그가 속해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호를 볼 수 없게 되었음에도 지르지는 한참 동안 소행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소행성에서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고.
지르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초능력자 아카이덴의 구출 작전은 취소되었다.
소행성에서 기현상이 발생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행성이 갑자기 빛을 뿜어내었고, 행성의 모든 사람들이 기절해 버렸다.
그렇게 최소 다섯 시간 이상 기절해 있다가 깨어났다.
행성의 모두가 겪었던 일이었다.
초능력자 아카이덴이 부활했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아카이덴이 완전히 죽고 소행성의 괴물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르지는, 오직 그만은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날의 기현상은 호가 그의 집을 떠나 소행성을 향해 날아간 날, 딱 그 시간에 발생했다.
지르지는 기현상이 호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르지는 비싼 돈을 주고 망원경을 구매했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그는 망원경으로 소행성을 지켜보았다.
그의 새로운 취미 생활이었다.
호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호와 함께 지냈던 건 고작 2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지르지의 삶을 참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지르지가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호와 함께 지내던 2주간의 시간처럼 외로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커다란 소행성은 지켜보는 맛이 있는 대상이었다.
워낙 크기가 컸고.
굴곡과 흠이 많아, 매일 꾸준히 살펴봐도 매번 처음 보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느 날처럼 소행성을 보며 처음 보는 커다란 바위를 발견하고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던 지르지는, 화들짝 놀라며 망원경에서 눈을 떼어야 했다.
분명 그 어떤 인간도 생존해 있지 못할 저 소행성에서.
지르지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심지어 망원경 너머로 소행성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행성 지표면에 있는 지르지와 저 소행성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지르지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볼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도망치듯이 집 밖으로 걸어 나와 버렸다.
지르지는 자신이 방금 본 인간의 형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여자아이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