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28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49화(428/432)
외전 49화
101층 (1)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다 왔다.
“세레지아.”
[예, 용사님.]“고마워. 여기까지 따라와 줘서.”
세레지아는 괜찮다고 말했다.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평소의 말투 그대로.
사실 후회가 많았다.
세레지아를 검으로 만들어 데리고 다니기로 했던 결정에.
나는 그녀가 아부부처럼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에고 소드가 될 줄 알았다.
그저 육신을 잃을 뿐 사람이던 시절과 별다를 바 없는.
언젠가는 육신마저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세레지아는 정말 검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은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를 사람이 아닌 검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세레지아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튜토리얼 속에 있던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들은 차라리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거라 생각될 만큼 험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안해.”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쿨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였다.
그녀와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용사님, 저는요, 저는요. 저도 고생했는데요. 저한테도 몹쓸 짓 많이 하시지 않았나요. 엄청 험하게 굴리셨었는데. 맨날 인벤토리에 처박아 놓으시고.]아부부가 촐싹대며 끼어들었다.
“시끄러워.”
[와, 사람, 아니 검 차별하시는 겁니까.]차별하는 게 맞다.
아부부는 저 수다를 반으로만 줄였어도 참 좋았을 텐데.
[헹, 역시 애교가 부족해서 그런거죠. 저도 다 압니다. 오랜만에 애교 발사 한번 하겠습니다. 에, 뀨… 이런, 오랜만에 하려니 잘 안 되는군요. 자, 다시 갑니다.]“하지 마라. 진짜 화낸다.”
저 빌어먹을 애교는 언제 들어도 사람의 빡침을 유도한다.
왜 내가 낮은 남자 목소리로 뀽뀽거리는 걸 들어야 돼.
아부부가 껄껄 웃었다.
[승산은 있습니까?]아부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걸 묻고 그러냐.”
[아, 승리의 신이 되셨다고 했죠.]아부부는 내 신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연했다.
내 신성은 승리 그 자체였다.
그런 내가 신성을 품은 채로 질서의 신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건, 충분한 승산이 있으며 스스로의 승리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객관적으로도 그렇습니까?]아부부가 다시 물었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신성이 연관된 문제에서 객관과 주관을 구별할 수 있으면 애초에 신이 되지 못한다.
오랫동안 신들과 가까이 지냈던 아부부였지만, 스스로 신이 되어 본 적은 없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부부를 좀 안심시켜 주어야겠다.
나에 대한 믿음을 제외하고, 아부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승리의 근거를 설명해 주자.
“확실한 건.”
[예?]“아직 초월 신이 되지는 못했어.”
질서의 신 말이다.
아직 초월 신은 아니었다.
분명 그에 근접한 것 같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신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초월 신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던 키리키리의 설명과는 차이가 조금 있었다.
오판의 이유는 뻔했다.
저 황금을 비롯한 질서의 신의 능력들 때문일 것이다.
질서의 신의 능력들은 하나같이 신을 억제하고 공격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신성의 상성, 신성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처음부터 신들을 제어하고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신이라 그럴 것이다.
그런 존재였으니 다른 신들이 보기에는 질서의 신이 더더욱 강력해 보이고, 초월 신에 가까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질서의 신은 아직 모든 것을 초월하지 못했다.
그 본질과 이만큼이나 가까워져 있으니,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앞에 섰다.
거대한 문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101]참 재밌는 센스야.
101층의 101번째 방이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문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절로 문이 열렸다.
문의 틈새로 칠흑 같은 어둠만이 보였다.
[…저길 들어가는 겁니까?]당연하지.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될까요?]
“시끄럽다.”
아부부의 말을 무시하고.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기점으로 펼쳐진 어둠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어둠이 몸을 감싸 안았고.
다음 순간 내가 다른 세상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불쾌하지 않은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황스럽지 않았고, 공포스럽지 않았다.
어두운 독방에 갇힌 감각이라기보다는 수면 중에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 감각은 예전에 느껴 본 적이 있었다.
느림의 신의 신전에 갔을 때.
그래, 그때였다.
스테이지 클리어 보상으로 나는 느림의 신과의 면담을 원했다.
느림의 신의 성지에 방문했을 때도 이런 감각을 느꼈었다.
초월 신에 근접했기에 나타나는 공통점인가.
아니면 질서의 신 자체가 느림의 신의 힘을 본떠 만들어진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도전자.]아무것도 없던 세상에 목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허공에 눈동자 하나가 내걸렸다.
질서의 신이었다.
질서의 신의 자아가 드러남에 따라, 어둠에 가려져 있던 내 몸도 함께 드러났다.
이런 점은 느림의 신과 달랐다.
느림의 신은 공간으로 존재하며 자아를 표현하는 상징을 가지지 않았었다.
질서의 신은 거대한 눈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대할 뿐 일견 평범해 보이기도 했다.
거대한 흰자 속에 거대한 검은 동공.
검은 동공의 모습이 눈동자를 둘러싼 어둠과 동일해 보여, 반대로 고리 형태의 흰자가 거대한 동공 속에 담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눈동자는 스스로 질서의 신임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질서의 신을 본 적이 있었기에, 저것이 질서의 신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끝끝내 여기까지 와 버렸다.
산 정상을 목전에 둔 등산가의 감정이 이러할까.
나는 질서의 신을 향해 말했다.
“내가 예전에 그랬었지.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거라고.”
정말 오랫동안 담아 둔 말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내 근원 내놔라, 이 도둑놈 새끼야!”
[…그 얘기였습니까.]아부부가 중얼거렸다.
이건 중대 사항이다.
질서의 신은 내가 59층을 클리어 했을 때, 당시 내가 만들어 내었던 근원의 힘을 훔쳐 갔었다.
이 나쁜 새끼.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
심지어 그건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본 근원의 힘이었다고!
[도전자, 너는 선택해야 한다.]질서의 신이 말했다.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절도에 관해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을 생각인가.
생각보다 뻔뻔한 성격이었다.
[도전과 포기.]도전과 포기.
키리키리가 알려 준 그대로였다.
질서의 신을 봉인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도전자로서 입장한 존재를 시험하기 위한 질문이다.
도전자가 질서의 신을 통제해 세상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시험.
도전자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관문이라고 했다.
[너는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너의 신성을 포기할 수 있는가.]“뭐?”
뭘 포기하라고?
키리키리에게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신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너의 의지를 지킬 수 있는가. 선택하라.]공간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간 너머로 보이는 건,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영감이었다.
황금으로 무장한 괴물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었다.
분전하고 있었지만 여유는 없어 보였다.
절로 손아귀가 꽉 쥐어졌다.
[저 공간으로 들어가면 너는 신성을 잃게 된다. 하지만 네 친구들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약 거부한다면?”
[너는 신성을 잃지 않고 나와 싸울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럴 수 있겠나?]빌어먹을.
키리키리에게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시험이었다.
아무리 키리키리의 통제를 벗어났다고는 한들 그 자율은 완벽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괴물들에게 질서의 신의 힘을 품은 황금 무기가 더해진 정도였다.
물론 그것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키리키리가 설명했던 이곳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이딴 관문이 추가되다니.
공간의 틈 너머에서 싸우고 있는 호치와 용용이, 영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저들이 나를 따라온 것인지 의문이었다.
혹시.
“네가 이곳으로 들어오게 만든 거냐.”
[내가 아니다. 네가 그랬지. 도전자는 이곳에 와서 자신의 신성을 포기할 수 있는지 시험받게 된다. 너를 시험하기 위해선 저들이 필요했고. 순리에 따라 저들이 너를 따라 들어온 것이다. 저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들어왔다 믿고 있겠지. 하지만 네가 저들을 끌어당긴 것이다.]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
인과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아니라면, 시험을 거부하고 나와 싸울 생각인가. 그 또한 나쁠 것 없지. 네게는 오히려 더 편한 길이 아니겠는가.]질서의 신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 나왔다.
빌어먹을 놈. 갈수록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다.
시험을 거부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다.
저 질서의 신이 아직도 이곳에 같혀 멍청하게 목소리만 내고 있는 이유는, 아직까지 키리키리가 부여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도전자인 내가 룰을 무시한다면 저쪽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이 풀려날 수 있다.
더군다나 내가 시험을 거부했다가는.
공간 너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용암 거검을 휘두르던 영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모든 힘을 자유로이 휘두르게 된 질서의 신과 싸우는 동안 저녀석들이 버틸 수 있을까.
[용사님.]아부부가 속삭였다.
[…신성을 잃는다는 게 정말 그리 쉽게 가능합니까?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아니야.”
저 공간 너머로 내가 들어가게 되면, 정말 신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건 질서의 신의 능력이 아니다.
저 빌어먹을 놈이 공언한, ‘신성을 잃는 곳’에 내가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사실이 내 신성을 옮아맬 것이다.
저곳으로 들어가 용용이와 호치, 영감을 구하게 되면 나는 정말로 신성을 잃게 된다.
[용사님.]세레지아가 말했다.
[뭘 고민하십니까.]그래, 나는 뭘 고민하고 있던 걸까.
말도 안 되는 고민이었다.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던 문제였다.
[결정을 내렸는가. 도전인가, 포기인가.]나는 결정을 했다.
* * *
황금을 두른 새들이 날아다녔다.
벌집을 건드려 온 사방에 벌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황금빛 새들로 가득 찼다.
“으아아아!”
호치는 자신의 팔을 크게 부풀렸다.
거인보다 더 크게.
거대한 팔이 휘둘러지자 그 팔에 얻어맞은 새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수백 마리의 새들이 죽어 나갔지만, 워낙 새가 많아 티도 나지 않았다.
호치는 침을 삼켰다.
초조한 상황이었다.
저 빌어먹을 황금이 문제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저 황금은, 호치 자신에게는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키리키리가 휘둘렀던 황금 칼날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영감과 용용이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강력한 적이 등장하거나 좁은 장소에서 싸운다면, 호치가 적을 막아서서 영감과 용용이를 보호하며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뺑 뚫린 개활지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적을 호치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영감도 힘차게 거검을 휘둘렀고, 잠에서 깨어난 용용이도 꼬리와 날개를 휘두르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호치는 자신도 모르게 울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용용이와 영감이 다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의미도 없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팔을 휘둘렀고, 용용이 근처로 새들이 날아들지 못하게 막아 내었다.
그때였다.
공간이 열렸다.
열린 공간의 틈을 통해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호치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그는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까아아악!
―깍깍!
하지만 새 떼가 만들어 내는 소음 때문에 그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가 검을 집어 던졌다.
벼락과도 같은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수천, 수만 갈래로 분열되었고, 분열된 검은 허공을 빼곡히 잠식해 나갔다.
수만 마리가 넘던 황금 새들은 마찬가지로 수만 개가 넘는 검에 찔려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주변이 조용해졌다.
“거,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하여튼 말은 겁나게 안 들어요.”
몇 달 만에 보는 것이었지만, 언제나와 같은 말투로.
그렇게 툴툴거리며 이호재가 다가왔다.
호치는 살았다는 안도와 반가움 그리고 미안함 때문에 눈가에 고인 물기를 닦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