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29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50화(429/432)
외전 50화
101층 (2)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돌아갈 길이 없었다.
신성이라는 것이 그랬다.
신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었다.
설령 내가 패배한다 한들, 그것이 내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발판이라고 내가 믿는다면 그건 패배가 아니게 된다.
하지만 내가 패배라 확정 지어진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면 무슨 수를 써도 돌이킬 수 없다.
패배는 패배로 확정된다.
[그게 네 선택인가.]질서의 신의 목소리였다.
그래, 이게 내 선택이었다.
[나는 너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네가 그들을 버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아주 잘나셨다.
질서의 신이 나를 지켜볼 수 있었던 시기는 내가 61층에서 신성을 완성하기 이전까지일 것이다.
당시의 나라면 승리를 위해 가까운 누군가를 기꺼이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안 지켜봤던 모양이지.
[아니, 나는 제대로 보았다. 네가 얼마나 안정과 위안을 필요로 했는지.]질서의 신은 계속 떠들어 대었다.
두어 번이었지만, 질서의 신을 마주했을 때마다 질서의 신은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내뱉지 않았다.
자아가 없는 기계신에 걸맞게 스스로의 생각을 설명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질서의 신은 묻지도 않은 말을 떠벌이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너의 동기였다. 결핍이 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연료였지. 결핍이 충족되고 나서는 예전처럼 무모하게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건 너의 새로운 약점이 되었지. 지금처럼 말이다.]그래, 약점이 되었지.
가족과 신성, 둘 중 하나를 버려라.
이 선택지를 무시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질서의 신을 때려잡고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영감이 죽기 전에 그들을 구해 내는 것이다.
완벽한 정답이었다.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영감이 내가 가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 그 점을 제외하면 완벽한 정답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주저 없이 이 정답에 도전했을 것이다.
확률에 기대지 않고.
그때는 그럴 수 있었다.
워낙 걸린 판돈이 적었으니까.
내 목숨은 그리 값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족을 두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질서의 신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질서의 신의 수다는 저 기계신이 초월을 향해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저게 꼭 내게 들려줘야만 하는 말이라는 건가.
[하지만 충족은 너를 완성시켜 주었다. 너는 네가 그토록 바라던 것을 손에 얻고 나서야 신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예상할 수 있었다. 네가 어느 것을 버릴지.]그래, 쉬운 선택이었다.
여기서 호치와 용용이 그리고 영감을 버리고 저 질서의 신을 때려잡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결과는 내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질서의 신은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금 주저하면서도.
[나는 네가 초월하기를 바랐다.]“그래.”
이해했다.
저 질서의 신이 내게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곳에 들어오라 나를 부르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네가 내 앞에 길을 보여 주기를 바랐다.]“너도 얽매어 있구나.”
다른 모든 신이 그러하듯.
질서의 신 또한 자신의 신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질서의 신은 타의에 의해 창조된 기계신이다.
그에게 신성이란 구속일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 또한 초월하지 못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과거 근원의 신이 그러했듯, 세상을 집어삼켜 모든 법칙의 바깥에 서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질서의 신은 내게 선언했다.
[꺼져라, 포기자여.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말라.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너는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나 질서의 신이 정한 순리이니, 그 순리를 돌이킬 방법은 없을 것이다.]* * *
“아빠!”
달려오는 용용이를 들어 안았다.
우리 용용이는 해츨링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용용이가 폴리모프를 익힌 뒤로는 처음이었다.
분명 공간 너머로 보았을 때는 용용이가 성체 드래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다시 작아진 걸까.
“우리 용용이, 다시 도마뱀이 됐네.”
“여기서는 폴리모프가 안 돼.”
그럴 리가.
이 장소는 신성을 억제하지만 마법까지 막지는 않았다.
“아빠가 집에 있으라니까, 왜 쫓아왔어. 위험하게.”
용용이는 히- 웃으며 아빠가 보고싶어서 쫓아왔다고 말했다.
예쁜 아이였다.
어딜 봐도 예쁜 아이였지만, 자기의 감정을 솔직히 말해 준다는 점이 가장 예쁘고 고마웠다.
“영감.”
용용이를 안아 든 채로 영감을 불렀다.
영감은 아주 흘러내리고 있었다.
“질뻑이가 따로 없네. 괜찮아?”
“괜찮다.”
용암 거인의 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긴 왜 온 거야. 몸도 성하지 않은 양반이.”
“나는 곧 죽을 거다.”
“뭐?”
영감은 흘러내리는 용암 피부를 매만지며 말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신성을 잃어 필멸자가 되었으니 언젠가는 죽는 게 당연하겠지. 그게 당장 내일이 될지, 조금 더 먼 미래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왔다. 한 번이라도 그대를 더 보고 싶었다.”
다 좋은데, 마지막 멘트가 조금 그랬다.
부담스러웠다.
“할멈이 질투하겠는데.”
영감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나는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너는.”
그리고 호치에게 물었다.
“나는 용용이 따라왔지.”
그랬겠지.
용용이가 들어온 시점에서 호치가 따라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용용이가 호치 몰래 들어올 아이도 아니고, 호치가 용용이를 혼자 들어가게 둘 리도 없었다.
“용용아.”
“응?”
내 손바닥 위에 있던 용용이가 답했다.
내게 안겨 있던 용용이는 어느새 내 손 위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아까는 성체에서 해츨링 형태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용용이는 실시간으로 작아지고 있었다.
지금도.
이러다가 세포 크기까지 줄어드는건 아닐까.
“용용아, 계속 이렇게 작게 하고 있을 거야? 아빠 안 보이는데.”
용용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몸이 작아지며 목소리도 작아진 것인지, 정말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이 모습은 별로 안 귀여워.”
“아니야, 귀여워.”
용용이는 도마뱀이던 시절에도 귀여웠다.
심지어 용용이가 알이었던 시절에도 내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아직도 슈퍼 밀웜을 손으로 하나하나 먹여 주어야 했던 용용이의 어린시절 모습이 선한데, 귀엽지 않을리가 없었다.
“정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용이는 조금 크기를 키웠다.
* * *
“자, 이제 돌아가.”
셋은 아주 격렬히 반대했다.
그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면서.
“어차피 네가 실패하면 다 죽잖아.”
그래, 죽겠지.
세상이 멸망할 테니까.
“내가 성공해도 너희는 다칠 수 있어. 죽을 수도 있고. 그래서 돌려보내려는 거야.”
세 사람을 위해서.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전할 거야. 질서의 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이곳을 이미 한 번 공략해보았다.
아무리 신성을 영구히 잃었다 한들, 중간에 가로막힐 리는 없었다.
심지어 호치와 용용이, 영감이 합류하며 일행의 전력은 더 늘었다.
“문제는 질서의 신을 만나고 나서야.”
하지만 세 사람은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영감은 이곳에 들어왔을 때, 이미 살아 돌아갈 생각을 버린 것처럼 보였다.
용용이는, 이 영특한 아이는 이곳의 위험을 분명히 인지하고서 들어온 것이었다.
내 말에 설득되어 돌아갈 것이라면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호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세 사람 중 호치가 가장 완강하게 버텼다.
호치는 참 특이한 존재였다.
내가 아닌 타인이면서, 동시에 함께 나를 공유했다.
호치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상태를.
그래서 나를 두고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결국 세 사람의 억지를 받아주고 말았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돌아왔는데, 다시 세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데려간다니.
어쩌면 못 이기는 척 억지를 받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신성을 잃으며 다시 고개를 든 내안의 나약함 때문에.
“…그래, 일단 되는 데까지는 가보자.”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 * *
영감과 용용이가 앞장섰다.
몸을 작게 만들며 조금 우울해 보였던 용용이는 금세 씩씩한 모습을 되찾았다.
호치는 용용이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외형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춘기 아이가 할 법한 고민이었다.
부모와 다른 모습을 가진 아이라면 더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고민이기도 했다.
“그래도 네가 말하니 금방 안심하네. 내가 달래 줬을 때는 계속 불안해하더라고.”
호치가 말했다.
“너도 나도 같은 이야기를 해 주니까, 그제야 안심한 거겠지.”
내 말에 호치가 웃었다.
“이놈의 자식, 예쁜 말 하는 거봐.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우리는 같이 낄낄거렸다.
그때였다.
마치 나뭇가지에 달려 있던 열매가 다 익어 땅으로 떨어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뜬금없이 내 왼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왼팔은 어깨부터 잘려 있었다.
“…….”
“가자.”
바닥에 떨어진 내 팔을 보고 벙해있는 호치에게 말했다.
호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앞서 걷고 있던 용용이와 영감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다들 알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래, 그랬었다.
신이 되기 전에 나는 팔 하나가 없었다.
신성을 억제당하는 것을 넘어 아예 상실해 버렸다.
그 차이가 여기서 나타났다.
신성을 얻은 뒤 복구해 내었던 내 팔이 다시 잘려 나갔다.
배 속에서 격통이 휘몰아쳤다.
별게 아니었다.
당시 정체되어 있던 스킬을 상승시키기 위해 나는 온갖 방법으로 내 몸을 혹사시켰다.
고통 내성을 더 올리겠다고, 내 신체가 매 순간 고통을 느끼도록 개조했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은 항상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내성 스킬을 무시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마력은 통제되지 않은 채 몸속을 휘젓고 있었다.
내 마력 때문에 몸이 터져 죽고싶지 않다면, 매 순간 마력을 통제해 내야만 했다.
가끔 감정적인 동요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해질 때면, 억지로 체외에 마력을 쏟아 내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61층이 쓸려 나가고는 했었다.
한참 저주와 축복류 마법을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모든 마법이 내 몸에 축적되어 있었다.
마법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연쇄를 일으키기도 했다.
잠복기를 가진 질병과 극독도 체내에 존재했다.
당시 나는 의도적으로 몸속에 투여한 독을 해독하지 않고 방치했었다.
참 놀라운 몸뚱이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그때는 이랬지.
예기치 않게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다지 반가운 과거는 아니었다.
“괜찮아?”
호치가 물었다.
막 몰려오던 통증을 참아 내느라 입을 열어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저 태연해 보이길 바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때문이지. 우리 때문에 싸우다 돌아와서 그런 거지.”
차마 고갯짓으로만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니야.”
호치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한참 그렇게 걷다가 호치가 불쑥 말했다.
“할 말이 있어.”
호치의 얼굴은 세상 진지했다.
“이게 다 끝나면 말이야, 우리 모두 지구에 무사히 돌아가고 나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 진지한 얼굴로 사망 플래그를 박아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