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0화(10/350)
“다시, 농도가 연하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흐름이 불안정하다.”
“다, 다시… 네, 알겠습니다!”
“다시.”
“…네!”
“다시.”
“…….”
알리시아가 대답은 하지 않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런, 고얀 것. 기껏 귀한 시간을 내서 검에 오러를 두르는 것을 봐주고 있건만!
“저… 도련님. 죄송하지만… 더, 더는 마나가 나오질 않습니다.”
“헛소리. 여러 번 말했으나, 네 재능은 이 정도가 아니다. 이 정도였다면 내가 너를 그런 촌구석에서 꺼내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야.”
“그런 칭찬은 감사하….”
“네 기분이 좋아지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지.”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알리시아는 천근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몸을 거대한 철검 하나에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숨은 턱밑까지 찼고,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질척거렸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그래.”
알리시아는 비틀거리는 다리의 힘을 끌어모아 흙바닥을 밀어냈고, 중심을 유지했다. 그륵. 흙바닥에 그녀가 안간힘을 쓰는 흔적이 남는다.
다시 한번, 체내에 있는 모든 마나를 검신에 끌어모은다. 날카로운 검의 예기에 푸른 빛의 마나의 층이 형성된다.
“좋아, 그대로 그것의 농도를 더욱 짙게, 그리고 얇게 만들어라.”
“예, 예! 더욱 짙고… 얇게….”
두 눈이 모일 정도로 눈을 찌푸리며 검에 집중하는 알리시아의 노력을 대변하듯 검에 담긴 마나의 형태가 제법 그럴듯하게 변모한다.
“서, 성공했습니다. 도련님!”
알리시아는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담긴 마나의 농도도, 얇기도 제법 완성도가 뛰어나다.
“수고했다. 수개월 동안 마나를 다스리며 미리 길을 터놓았다고는 하나, 잘도 며칠 만에 오러를 습득했구나. 역시 내가 인정한 천재다.”
“황송합니다, 도련님!”
방금까지 피로에 찌들어 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대답에 한층 기운이 살아나 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알리시아를 봤을 때와 비교하면 얼굴색도 한결 좋아 보인다. 영양분 가득한 음식을 잘 챙겨 먹어서 그런가?
“축하합니다.”
“감사해요, 브람 선생님, 전부 선생님과 도련님 덕분이에요.”
무뚝뚝하게 축하하는 브람과, 반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알리시아. 자세히 보면 한결같이 무감정한 브람의 굳은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피어 있다. 너무 작아서 유심히 봐야 알 수 있으나 틀림없는 그만의 미소다.
잠시 기쁨을 만끽한 알리시아는 그것을 뒤로하곤 나를 바라본다. 어물쩍한 모습으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도련님, 한 가지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응? 그래, 곤란한 일이 아니라면 들어줄 테니 말해 보아라.”
알리시아가 부탁을 다 한다니. 별일이다. 이토록 빠른 성취를 보이는데 어느 정도의 보상을 챙겨 줘도 괜찮겠지.
“그… 도련님께서 제가 이곳에서 수련하는 동안, 세 분이 어딘가 다녀올 거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리 말했지.”
“그렇다는 것은, 원래의 예정보다 수련이 일찍 끝났으니 저도 합류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자신을 이곳에 두지 말고 함께 데려가 달라. 이 말이구나.
“아, 그건 말이다.”
나는 긴장한 듯 입술을 꽉 물고 있는 알리시아에게 말했다.
***
파울라의 입이 삐쭉 튀어나와 오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저번에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낌새를 눈치채고부터 계속 이 모양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나잇값도 못 하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 주둥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브람의 검으로 잘라 버리겠다고 했다.”
루비드 마을에 온 지 5일째. 알리시아만을 마을에 남긴 채 나, 파울라, 브람은 이 더럽게 작은 마을의 주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이곳에 온 세 가지 연유와 관련이 있다. 셋 다 시기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하루라도 지나 버리면 수몰되어 버린다.
다행히도 알리시아의 능력 개화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어 다음 스토리로 넘어가는 데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
“…….”
입을 집어넣은 파울라가 하늘을 바라본다. 꽃잎처럼 살랑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눈… 눈이 내려요!”
파울라가 완전히 고개를 위로 꺾었다. 계속 짓누르던 우울감이 한층 덜어져 보인다. 구름은 해를 가리고 두꺼운 층을 형성해 하얀 재를 뿌려 댄다.
입자가 굵고 수가 상당하다. 아마, 목적을 달성하고 나올 적엔 발목 정도까지는 쌓여 있을 것 같다.
손에 닿은 눈의 꽃은 체온을 이기지 못하고 즉시 사그라진다. 파울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굳세게 했다. 무언가 다짐을 한 것 같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높은 톤의 목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정말로 이곳에 비밀 던전이 있는 건가요?”
비밀 던전.
문자 그대로 숨겨져 있는 던전.
“있다. 그것도 아주 먹기 좋은 형태로 말이지.”
“먹기 좋은 형태라면… 던전이 약해져 있거나 파훼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요? 어쩐지, 그래서 소수로 도전하시는 거군요.”
도전이랄 것도 없다, 파울라. 이미 다 쓰러져 가는 던전에서 간단하게 유물만 가져오면 되는 일이니까. 도전이라는 거창한 문구는 어울리지 않지.
“확실한 건 가 봐야 알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대단한 건데요? 용케도 그런 정보를 얻으셨네요.”
“높은 곳에 있으니 모든 것이 훤히 보일 뿐이다.”
사실 이번 던전은 본래 바르간과 연이 없는 장소다. 오히려 바르간에게 있어서 유쾌하지 않은 장소라는 말이 더 올바를 것이다.
원래 전개대로라면, 소설 속 주인공인 리암. 그 녀석이 얻어 요긴하게 쓰는 물건이니까. 바르간에 몰입해서 소설을 읽었던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유물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 근방을 지나면… 아, 마침 저기 입구가 보이는군.”
“네? 어디… 어? 호수가 있어요! 브람 씨 보이세요? 엄청나게 큰 호수예요!”
“네, 호수입니다.”
“싱겁기는. 더 크게 놀라도 된다고요? …하기야, 브람 씨는 과묵한 게 매력이긴 하지만요.”
“…….”
바다로 착각될 정도의 넓고 청량한 호수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다. 주변에 심겨 있는 나무들이 이쑤시개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호수다.
도착했다.
아직 저 안에서 녀석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이 시기에.
리암이 얻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나 흘러 그 녀석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유물이 온전한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지. 그랬음에도 상당한 출력으로 나를 괴롭혔다. 만약 녀석이 살아 있다면 그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 어리숙한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리암, 주인공인 네가 아니라, 내가 먼저 이곳에 도착했다. 하필이면, 네 이야기 속 악역인 이 바르간이 말이야.
재미있지 않나.
모든 것이 네가 알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 이것도 그중 하나지.
네가 훗날 키워 무기로 삼으려 했던 애완동물이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두고 너를 물게 된다면.
너는 어떤 얼굴을 보여 줄 거지?
“어서 보고 싶군.”
그 얼간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떠오르니 입가의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
“아이고… 고맙네, 어여쁜 아가씨.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어.”
촌장은 오랫동안 숙이고 있어 뻐근하던 척추를 펴며 오만상을 지었다. 오랜만에 바쁘게 움직이니 허리의 통증이 더하다.
촌장댁의 낡은 창고. 먼지가 가득한 이곳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렇게 우릴 도와줘도 되는 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괜히 우리 일을 도운 게 아닌 거 몰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모시는 도련님께서 외출을 다녀오시는 동안 마음대로 하고 있으라고 하셨거든요.”
“에구구, 그럼 젊은 아가씨의 쉬는 시간을 뺏어 버린 것이 아닌가. 미안하게 됐네….”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한 일인데요.”
알리시아는 마을 촌장의 우려를 환한 미소로 덜어 주었다. 촌장은 잠깐 감격한 것처럼 멈춰 있더니, 곧 주름이 자글거리는 손으로 알리시아의 섬섬옥수를 잡으며 말했다.
“우리 손주가… 혼기가 차 가는데 말이야… 아가씨 같은 사람이 며느리로 들어온다면 내 소원이 없겠어.”
“네…?”
“참하지, 예쁘지. 어디서 이런 아가씨가 왔을꼬.”
“저, 저기…!”
“아가씨의 주인과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알리시아는 촌장의 손을 떼어 내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의 발언이 워낙 갑작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고, 내치기에는 그가 상처 입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어때…? 괜찮겠나?”
그렇다고는 하나, 자신의 의사를 표명해야만 하는 상황. 여기서 어물쩍하게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 것이다.
알리시아는 그렇게 여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눈동자를 바로잡았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하도록 할게요. 죄송해요.”
“우리 손주 놈이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청년이긴 해도, 성실하고 밭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아일세. 성격도 모난 데 없다고 자부하지. …이래도 어떻게 안 되겠는가?”
촌장의 말투가 급해졌다. 그녀가 의외로 칼같이 거절하자 다소 당황한 것이다.
“아, 그래서가 아니라….”
촌장은 그녀의 의지가 확고한 것을 느꼈는지 잡은 힘을 천천히 풀었다. 알리시아는 그의 손에서 부드럽게 벗어났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거든요. 좋은 제안을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다소곳이 손을 모은 알리시아를 보던 촌장은 앓는 소리를 냈으나 더는 자기 뜻을 밀고 가지 않았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도 걸려 있다.
“보면 볼수록 아까운 아가씨구먼. 그 도련님이라는 자는 복에 겨운 사람이야. 아, 그렇지. 내 더는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테니 잠시 이리로 와 주겠나. 이것도 인연이니 뭐라도 주고 싶어서 말이야.”
촌장은 포기하겠다는 허탈하게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곤 말을 이으며 창고에서 나가려 든다. 알리시아도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갓 짜낸 우유로 만든 신선한 치즈라네. 꼭 먹이고 싶으니 이쪽으로⎯.”
⎯쿠확!
촌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어?”
급격한 상황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알리시아의 입에서 샌 소리가 빠져나간다. 몸이 굳어지고 머리는 해석에 들어간다.
조금 전의 상황. 창고를 나가기 위해 문지방을 넘던 촌장이 사라졌다. …사라졌다? 뭐가? 뭐가 사라졌지.
파육음과 터져 나간 머리.
뚫려 버리듯 몸에서 떨어져 버린 그것은 커다란 가시 같은 것에 박힌 채 나무로 된 창고의 벽에 붙어 있다.
털썩. 머리가 사라진 몸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쓰러진다. 나무의 나이테 같은 그것에서 짙은 액체가 뿜어져 나온다. 콸콸. 주변의 온통 자신의 색으로 물들인다.
알리시아의 숨이 불규칙적으로 변한다. 마나를 전부 고갈한 것도 아니고, 모든 체력을 소모한 것도 아니건만 그녀의 몸은 무거운 것에 짓눌리듯 무거워져만 간다.
머릿속에서 새끼줄로 묶어 둔 그 핏덩이로 이루어진 기억이 다시 살금살금 그녀의 몸을 지배해 간다.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의 이런 상황을 처음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알리시아는 알고 있다.
이 붉은 선혈이 터져 나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크륵?】
문지방 너머,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저기 저 붉은 녀석도 분명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저 호박색의 눈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꿈일까.
너무나도 꾸기 싫은 기억. 저주받은 악몽. 그날의 저주.
자신을 옭아매던 그 괴로움의 연장 선상일까. 그 고통스러운 연속의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까.
그럼에도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이것이 평소와 같은 악몽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