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00화(100/350)
전장의 중앙.
이곳은 붉은 물결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바닥에 깔린 건 피육과 핏자국이 아닌 허연 눈밭.
그 위를 물들이는 건 두 존재의 흔적이었다.
『왜… 왜왜…!』
아미의 핏기 없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분노와 열등감에 휩싸여 찢어진 동공으로 헤일리온을 직시한다.
15년 전에는 분명 먹이였다. 가볍게 사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숙성시켰던 것이다! 훗날 더 맛있게 먹으려고!
사람이라는 종족의 빠르게 강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잖아. 자신은 무려 권능해방을 한 상태인데.
빠드득.
아미의 이가 갈리며 다시 달려든다.
흉악하게 생긴 투구를 비롯한 껍데기로 전신을 무장한 아미의 속도는 번개 그 자체였다.
전갈과 같은 꼬리에 달린 낫은 헤일리온의 목을 노린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
헤일리온이 펼치는 성스러운 빛의 방패에 의해 간단히 막혀 버린다.
『먹이, 넌 먹이야! 먹이라고!』
아미의 보랏빛 마나가 일렁인다.
끓어오르는 물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춤을 추듯 부드럽기도 하고, 지면에 내리치는 번개처럼 불규칙적이기도 하다.
아미는 방패를 뚫어 버릴 요량으로 마나를 잔뜩 뿜어 대며 밀어붙인다. 헤일리온의 주변에는 아미가 만들어 낸 마력포의 구체들이 행성의 중력과 같이 마나를 모은다.
『헤일리온, 너는 먹이에 불과하다고⎯⎯!』
아미의 외침과 동시에 헤일리온을 지키던 마나의 방패가 깨졌고, 힘의 응축을 완료한 마력포는 곧장 뻗어 나갔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단련을 한 용사의 몸이라고 해도 단숨에 관통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이다.
충격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아미는 거리를 벌렸다.
그 충격파가 벌여 놓은 여파 속에서 헤일리온이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아무런 상처도 없다.
스친 기색조차 없다!
『그러니까… 이게,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어⎯?!』
아미가 대주교를 들먹이며 자신의 무력을 과신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주교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 될 수 있는 대주교.
그 어떤 대주교라고 해도 이들의 온전한 무력 앞에서 대부분의 용사들은 사냥감 그 이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목숨을 잃은 대주교들은 흔히 다구리라고 불리는 것에 당해 목숨을 잃거나, 약점을 간파당해 살해된 경우. 그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헤일리온.
이건 뭐 하는 놈이지?
단신으로 대주교인 자신을 막는 그의 존재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강하더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 그런 천한 종족, 단 하나에게 이렇게 당하고 있으니.
단 한 번이라도 닿으면 저 육신에 담긴 영혼을 뺏을 수 있을….
그때. 아미는 감지했다.
이는 헤일리온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녀석들’이 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건 자신 이상의 불길함 덩어리.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이들의 존재감은 확실하게 이 공간에 존재한다. 대부분의 이들은 못 느끼고 있을 마나를, 아미와 헤일리온은 느꼈다.
헤일리온의 온화하던 눈동자가 조금이지만 흔들렸다.
아미는 이를 똑똑히 보았다.
빙그레 웃으며 다시 달려들 준비를 마친다.
비록, 지금의 상황은 치욕스러운 일이기는 했으나 감수할 수 있다.
『이거, 어쩌냐.』
이제부터 전장이 판세가 뒤바뀌게 될 거 같은데.
***
흠, 정녕 변화수가 없는 것인가?
이상한 일이군.
이번 전장의 판도는 기존의 전개와는 크게 다르다.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 맞겠지만.
너무 순조롭게 흘러가는 감에 괴리감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케르르륵, 케륵!】
나는 주변에서 달려드는 사제급들에게 대충 저주 마법의 일종인 쇄약 마법이나 부패 마법의 실험을 이어 가다가 다시금 전장을 살폈다.
아직까지도 헤일리온의 팀원들 중 부상을 당한 인원은 없다. 핀은 유독 꼴이 말이 아니긴 한데 저 정도면 뭐 됐고.
중앙에서 싸우고 있는 아미와 헤일리온의 전투도 헤일리온이 우세하다. 이 역시 예상한 바. 헤일리온이라는 괴물은 대주교인 아미의 완전한 해방조차도 압도했다.
추가적으로 참전하게 된 프릭칸리스크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주교급들을 박살 내거나 특이체를 얼음으로 만들어 조각 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용사들은 사상자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깔끔하게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반면 알티프는 몰살당하게 되겠지.
안정된 전장.
확정된 승리.
즉, 지금의 불안감은 정확한 판단이라기보단 감에 가까운 감각.
미래에 승기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분명한데… 묘하다. 너무 온전해서 도리어 불안정하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완벽하기에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예상했던 변수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추기경 벨레드의 주교들이나 대주교 하나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크에에에엑⎯⎯!】
바로 앞에서 깝죽대던 거인 형태의 알티프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몸집을 가진 사역마, 태산이를 사용했다.
태산이의 출력도 거의 완벽하게 파악이 되었다.
…이런 거까지는 좋은데 말이지.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를 덮치려던 사제급들에게 저주를 걸어 벽을 세운다. 이들은 벽이 되어 잠시 내게 들이닥칠 붉은 파도를 막아 줄 것이다.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확인해 봐야 한다.
모든 일은 의심에서 시작된다.
고오오⎯.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를 모은다.
가공의 심장에 모인 마나에 특성을 부여한다. 이는 곧 해석(解釋)이며, 그 성향은 저주(咀呪). 만물의 본질을 꿰뚫는 특질.
지금 하고 있는 마법은 어쩌면 나에게 걸려 있을지 모르는 저주 마법의 확인을 동반한 파훼.
…만약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사역마와 저주를 주로 하는 내가.
특히 저주 마법은 해득의 계위에 도달했음에도.
누군가가 건 저주 마법을 받고 있어 허상을 보고 있을 아주 낮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는 저주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서 정말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라면. 그래, 헤일리온이 저주 마법을 특기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확인한다.
나를 함정에 빠트릴 수 있는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이윽고 정제된 마나가 가상의 혈관을 지나 모든 신체의 끝에 퍼지자.
현실이 내비쳐진다.
“이런. …최악의 가정이 들어맞았군.”
나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냈다.
고도의 저주 마법이 걸려 있다.
그것도 술식이 굉장히 복잡하여 뛰어난 두뇌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처음 보는 형식.
머뭇거릴 틈 없이, 빠르게 그 식을 풀어 간다.
마력을 투여하여 존재하는 식의 형태를 변형하고 새로운 식을 이끌어 낸다.
식은 각기의 답을 가지고 있다.
지금 식의 답은 ‘감금’이며 이것을 바꾸는 건, 관통할 수 있는 방정식의 규칙.
단순히 저주와 형식을 알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알아차리면 비로소 문제를 마주할 자격을 얻게 된 셈.
그렇게 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규칙을 찾아내게 된다. 발견한 규칙으로 식을 변형한다.
변형된 식에서 도출할 답은 ‘해방’.
그것은 갇혀 있는 감옥에서 탈출하게 만들 열쇠가 된다.
유물을 가지고 있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이니.
교회에서 받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해석된 마나를 잔뜩 집어넣어 박아 넣는다.
와장창⎯!
주변을 감싸고 있던 세상이 깨진다. 유리창에 해머를 휘두른 것처럼 파편화되어 사라진다.
***
그러자, 그 뒤에 감춰져 있던 진실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피부의 잔털을 세우게 만든다.
오랜만에 느끼는 경각심이었다.
“프릭칸리스크.”
겨울의 신수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그녀는 계약에 의거하여 나를 지키고 있었다. 십이신수로 무력이라면 아미라고 해도 쉽게 밀리지 않을 그녀가 이렇게 처참하게 되었다.
그녀의 입에서 몇 마디의 말과 함께 피가 터져 나온다.
“인간. 겨우… 깨어났나 보구나.”
내가 저주에 걸려 있는 동안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신수. 그녀를 제외하고도 주변에는 뒤르테문드 소속의 용사의 사체가 넷 정도 보였다.
보였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도 있었으나, 잘게 나뉘어져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든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체감하고 있던 건 허상이었다.
전체적인 국면은 여전히 뒤르테문드가 유리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 좌익의 상황은 끔찍하다. 내가 저주에 걸려 있는 동안 심하게도 당했다.
저주.
저주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의심이 없었다면 눈치채지도 못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인가. 해득의 경지였음에도….
가장 낮을 것이라 여겼던.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게 되자, 오히려 침착해지며 상황에 대한 분석이 빨라져 간다.
『…….』
한 여성이 있다.
과거에는 찬란했을 푸석한 은발의 여인.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는 어둠만이 가득하고 총기란 없다. 만물을 오롯이 담기를 부정하는 듯이 말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몸 곳곳이 괴이하다. 핏줄이 잔뜩 올라와 흉측한 다리와 팔. 시체와 같이 과하게 하얀 피부.
나에게 저주를 건 장본인.
그녀는 여리여리해 보이는 체구와는 달리 제 몸만 한 대검을 들고 있다. 그 검은 아미나 자간의 대낫과 같이 해골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악취미적인 모양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환각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가볍게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며 자세를 잡는다.
그녀에게 검의 무게는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인간… 도망쳐라.”
비틀거리던 프릭칸리스크는 다소 간절하게 부탁하듯 말했다. 그녀가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내가 죽으면 곤란하기 때문.
하지만, 나를 통해서 제 아들을 보고 있는 그 눈동자는 진실되어 보인다.
“…….”
프릭칸리스크는 보험이었다. 변화수에 대응할 나만의 방비책.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확언하건대,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에서.
죽었다.
어쩌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허상 속을 평생 헤맸을지도 모른다.
“말은 역시 못 하는 건가?”
나는 프릭칸리스크의 우려를 뒤로하고 불길한 기운을 뿜어 대는 여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할 수 없다.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으며,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의 몸과 감정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 이후로, 그녀는 모든 통제권을 빼앗겼다. 그렇게 지금의 그녀가 만들어졌다.
이 녀석을 두고 도망가라고?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애초에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전장의 양상은 완전히 반대로 기울어 패배한다.
전장의 우익에 있는 크샤놀과 다른 일행이 합류해도 문제다. 아무리 강하다고 정평이 난 그들조차도 그녀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기에.
“사실은 벌써 만나고 싶지 않았다만… 하는 수 없군.”
하다못해 자간을 잡을 때 사용했던 일회용 마법 증폭 반지 같은 거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이젠 없다.
저주의 파훼를 돕는 소모성 유물과 나의 실력만으로 그녀를 상대해야 한다.
이루어야 하는 건 이 여자를 이기는 게 아니다. 버티는 것. 저주 마법에서도, 신체적인 스펙 면에서도 앞서는 상대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아니, 붙잡고 있다고 말하긴 이상하군. 나를 노리고 온 여인이거늘.’
용사라면 마검사라는 이름을 드높였을 그녀.
교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쟁쟁한 용사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 용사랭킹에 큰 변화를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강자.
그녀가 달려들었다.
채 눈에 담기지 않는다. 잔상이 남는다.
“그래, 어디 꽃피워 보자꾸나. 너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테니!”
원작을 읽어 약점을 알고 있지 않다면 이런 패기조차 부리지 못했겠지.
칙칙한 은발을 휘날리는 그녀.
그녀는 현재의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이자 여신교의 대주교 살레오스.
그리고, 과거에는 인간이었고 용사가 될 재목이었으며.
⎯샤를로테라 불리었던 알리시아의 언니.
무감정한 그녀의 칼날이 섬뜩하게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