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02화(102/350)
아미의 체력과 마나가 상당히 떨어졌다.
찰흙보다도 잘 붙여졌던 신체는 한 번 잘리면 복원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게 되었고, 온몸을 철통같이 보호하던 껍데기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반면, 헤일리온은 숨이 조금 거칠어진 것이 전부.
그도 상당히 많은 마나와 체력을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법 하나하나의 위력이 버티기 힘들다.
이는 아미의 전체적인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헤일리온의 힘이 끝없이 올라오는 샘물처럼 풍부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알티프의 마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것을 월등히 뛰어넘는데 헤일리온은 효율로 이를 묵살했다.
‘살레오스는 발이 붙잡혀 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건 글라샬라볼라스.’
전투를 이어 가는 와중, 아미는 전장을 살핀다.
먼저 전장에 도착한 살레오스는 아미가 아닌 전장의 한편에서 모습을 드러내 프릭칸리스크와 바르간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
언뜻 확인된 상황은 유리해 보이나, 비등비등하다.
바르간이라는 녀석을 잡으라고 주교 하나도 보냈건만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 듯하다.
학생이라고 했는데 무슨… 헤일리온급으로 괴랄한 놈이 분명하다.
‘그래도 괜찮아. 글라샬라볼라스가 끼어들면 헤일리온을 사냥할 수 있을 테니.’
실제로 헤일리온 역시 전장의 변화를 알아차린 뒤, 급하게 아미를 몰아치는 중이었다.
같은 대주교, 그것도 다른 추기경을 따르는 이들에게 도움을 받는 건 꼴사납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
잘못하면 헤일리온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것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아미의 자존감을 억누르고, 생존 본능을 건드렸다.
『비겁하다고 하지는 않을 거지? 다구리는 너희가 좋아하는 거잖아.』
헤일리온의 마법을 막는다는 지친 여건 속에서도 아미는 상대를 약 올리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할 수 있는 글라샬라볼라스의 현 모습은 극한의 속도를 추구한 비행형.
그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오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느긋하게 너를 맛보고 싶었어, 헤일리온. 아쉽지만… 이만 죽어.』
아미는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짠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모든 방어도 해제한 채 이번 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노리는 건 헤일리온의 좌측. 날아오는 글라샬라볼라스의 이후 궤적은 그의 우측.
위기에 처한 헤일리온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성스러운 힘이 담긴 마법으로 두 개의 커다란 방패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또다시 충돌하는 아미와 헤일리온의 마나.
상당한 충격이 예상되어 땅을 디딘 발에 힘을 잔뜩 준 헤일리온. 밀어붙이는 아미.
이내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가 도착하였고.
아미는 승리를 확신하여 미소를 짓다가.
어?
『잠깐, 방향이 왜…?』
⎯쿠확!
가슴이 뚫렸다.
쾌속으로 질주한 글라샬라볼라스의 근육이 잔뜩 팽창되어 있다. 바닥을 끌며 착지한 흉측한 모습의 괴물은 날개를 접었다.
그러자, 뜨거운 열기가 뿜어지며 모습이 변한다.
접힌 날개는 그대로 몸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졌고, 대신 우락부락한 팔 한 쌍이 추가되었다.
지면을 딛고 있던 얇디얇은 다리에는 금세 터질듯한 말 같은 근육이 올라왔다.
그의 주변의 눈은 온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녹아내린다.
『…….』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네요.”
헤일리온은 충격을 대비해 잔뜩 마력을 모아 두었던 방패를 하나로 합친 뒤 응축시켜 검으로 만들었다.
두근두근. 글라샬라볼라스에 손에 쥐어진 심장이 밖의 공기를 접하자 강하게 반응한다.
그 심장의 주인은 헤일리온이 아닌, ‘대주교 아미’의 것이었다.
아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에 쓰러져 있다.
심장을 빼앗겼지만 곧바로 죽지 않고 생을 이어 나가는 건 괴물이라고 강조하는 것만 같다.
분노에 찬 아미가 피를 토하며 외친다.
『뭐 하자는 거야 이 X신아! 뇌까지 짐승이라서 대상을 착각한 거냐⎯⎯!』
헤일리온의 강함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순간보다도 아미는 잔뜩 성을 냈다.
지금 쓰러져 있는 게 헤일리온이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에 격한 분노를 토한다.
지금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일인지!
『글라샬라볼라스! 이 되다 만 잡종 새끼야!』
아미는 글라샬라볼라스를 모욕하는 말들을 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핏줄이 잔뜩 올라온 눈을 부라린다.
하나, 아무리 아미가 욕을 뱉는다고 하더라도 글라샬라볼라스는 그의 심장을 돌려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자 아미의 안색에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 이 잡종 녀석이 자신의 판단으로 이렇듯 움직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설마…!
아미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못한 채 말한다.
『…여신교에서 날 버린 거야?』
그 대답을 대신하는 행위.
글라샬라볼라스는 아직도 두근거리며 생명을 이어 나가려 하는 붉은 심장을 콱 움켜쥐었다. 망설임은 없다. 애초에 그러려고 온 것처럼 확실하게 짓뭉갠다.
아미는 자신의 심장이 터져 나가는 걸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동아줄이 끊겼다.
『이런 X발….』
그 말을 유언으로 아미의 눈동자에 총기가 사라진다.
글라샬라볼라스는 터진 심장에서 나온 둥그런 보석만을 남겼다.
곧, 그의 몸에서 그동안 흡수해 온 수만의 영혼이 세상에 빠져나오게 된다.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도랑을 빠져나오는 물고기 떼와 같이 끝도 없이 나온다.
대부분이 이미 육신이 존재하지 않으나 세상 어딘가를 향해 날아간다.
그중 하나는 헤일리온의 왼팔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자 썩어 문드러진 것만 같던 외관이 변하며 생기가 돌게 되었다.
헤일리온은 돌아온 감각으로 이를 움직여 보였다. 15년 만에 움직이는 왼팔의 손가락이었다.
“…….”
감회를 느낄 만도 하건만 헤일리온은 담담하게 시체가 된 아미를 내려다본다.
그의 몸은 먼지와 같이 흩어지며 가벼운 바람에 날아간다. 이는 대주교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허망하고 가벼운 죽음이었다.
『크륵.』
일을 만들어 낸 당사자, 글라샬라볼라스는 손에 쥐어진 아미의 핵을 흡수하기 위해, 가슴팍에 달린 또 하나의 입을 벌린다.
생물을 먹을수록 강해지는 글라샬라볼라스. 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헤일리온.
그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
막 감각이 돌아온 그의 왼팔. 회복된 영혼이 채 안정되기도 전에, 매섭게 달려들어 한층 강력해진 마력으로 악을 정화하는 검을 휘두른다.
누구라도 감탄을 할 정도의 폭발적인 속도였다.
마검사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움직임과 위력.
상대가 글라샬라볼라스만 아니었다면, 분명 단번에 정화되었을 것이다.
권능해방을 한 아미가 간신히 막는 데 급급하던 헤일리온의 마법.
글라샬라볼라스는 자신의 두꺼운 가죽과 뼈로 만들어진 방패 모양의 피부로 이를 막고는.
『크르륵.』
거친 숨을 내쉬었다.
대주교의 안광이 번쩍인다. 날짐승과 다를 바 없는 그것은 전투와 피를 원하는 듯 보였다.
글라샬라볼라스는 헤일리온의 방해에도 아미의 핵을 자신의 가슴에 뚫려 있는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요동치는 고동이 주변인들에게 들릴 정도로 거세진다. 삐쭉거리는 거친 이빨 사이에서는 침이 질질 흘렀으며 근육은 꿈틀거린다.
“…!”
헤일리온은 아미의 힘이 정착되기 전에 글라샬라볼라스를 살해하기 위해 고유마법을 사용한다. 이 녀석은 위험하니 바로 처리해야 한다!
그의 첫 번째 고유술식이 대규모로 적용되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단 하나의 존재를 파괴하기 위한 술식.
오른손을 뒤로 빼서 정권을 찌를 듯 자세를 잡은 헤일리온. 실명될 정도로 새하얀 빛이 담겨 있다.
글라샬라볼라스의 오감을 초월한 직감이 위기를 감지하여 몸 형태를 바꾼다.
⎯⎯!!
내찔러지는 헤일리온의 정권.
세상의 빛과 소음이 사라지며 대상의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그의 하얀 빛이 시야와 함께 대주교를 먹는 듯 보였다.
아주 잠깐 섬광탄이 터진 세상을 보듯, 밝혀졌던 광명은 바로 사라지고 결과가 남는다.
“…….”
헤일리온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는 그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 사라진 게 아니다.
먹혔다는 감각도 없었을뿐더러, 일렁이는 보랏빛 마나의 흔적이 알려 주었다.
얼핏 외관을 바꾸는가 싶더라니 긴급 탈출용 형태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놓쳐 버렸네요.”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는 헤일리온의 고유술식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가능했다.
***
바르간은 알리시아의 환상을 이용해 살레오스를 붙잡아 둘 수 있었다.
결국에는 살레오스가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으나, 그녀에게 커다란 피해를 남기기까지 했다.
…….
이후 전장은 급하게 변했다.
대장인 아미의 전사.
이어서 대주교 둘이 떠난 전장은 금세 정리되었다.
우두머리가 목숨을 잃었으니 병사들의 사기가 더욱 떨어지며 도망치게 된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건 승기가 잡히고 도망치는 적들 뒤쫓을 때이다. 전의를 상실한 이들을 잡는 건 더는 전쟁이 아닌 사냥에 가깝다.
실험과 고문을 하기 위해 살려 둔 주교급 2체와 사제급 20체를 제외하고는 몰살당해 가루가 되었다.
한편 용사 측은 부상자는 다수였으나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헤일리온 일행이 크게 애쓴 덕이었다.
무려 대주교를 잡고 그의 잔당을 해치웠으며, 뒤르테문드를 구하게 되었다.
전쟁 전만 하더라도 신수와 크라인에 관련된 사항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뒤르테문드의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용사들을 칭송하며 노래를 불렀으며, 감사와 찬미의 의미로 교회에 기부 행렬을 이어 갔다.
그 찬양의 대상에 아카데미아의 학생이었던 바르간과 핀도 끼어 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며 좋은 의미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특히, 명문 슈겐하르츠의 자손인 바르간은 더욱 그랬다.
“…쯧.”
해당 주인공인 바르간은 현재 병실에 앉아 있다.
밖에서 들리는 환호와는 대비되게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도무지 펴지 않았다. 심기가 크게 불편했다.
전장에서의 순간을 되짚어 보면.
마나의 총량이 아무리 많다고는 하나 출력을 극도로 하여 마나 회로를 괴롭혔고.
살레오스의 저주를 통해 감각이 이상해져 버렸으며, 붉은 오러로 당한 상처 부위는 아물지도 않아 피를 간신히 멈춘 참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 간신히 살레오스를 팔 한쪽을 저주 마법으로 앗아 가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회복될 것이다.
세간의 시선으로 보자면, 아직 정식 용사도 되지 않은 희대의 천재가 다친 신수와 함께 대주교를 퇴치한 것.
입이 닳도록 칭찬하기 바빴는데 막상 당사자는 치욕에 가까운 쓰라림을 느꼈다.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방법은 없었나?’
그는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다양한 수를 살핀다.
변화수가 있었던 것을 알고 대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폭이 좁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했어야 주도권을 잃지 않았을까.
어떻게 했어야 아미의 권능을 빼앗기지 않고 심판무구를 얻을 수 있었을까.
여러 갈래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분노의 감정을 소모한다.
이는 소설 속 바르간이 가지고 있었던 성질이라기보단,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천성이다.
…….
그렇게 한참을 몰두하고 있자니 헤일리온이 들어왔다는 걸 늦게 알아차렸다.
헤일리온은 바르간의 전신을 살피더니 말한다.
“팔이나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가지 않은 게 기적이네요.”
그 정도로 바르간이 입은 피해는 컸다.
원래 아픈 소리나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치료하는 과정에서 비명을 질러 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을 터이다.
바르간은 동시에 진행되던 수많은 가정을 잠시 멈춘 뒤 헤일리온을 바라본다.
“대신 제 소중한 사역마 하나가 크게 다쳤습니다.”
“사역마 하나로 끝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요?”
“‘무려’ 사역마 하나가 크게 다친 겁니다.”
손이 잘려 나간 태산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되었다.
하지만, 바르간의 그림자 안에서 튀어나와 항상 그를 철통같이 보호하던 사역마 어둑이.
본격적으로 살레오스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붉은 오러에 절반으로 잘려 버린 어둑이는 완전히 회복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당분간은 주인인 바르간의 그림자 안에서 쉬도록 명령해 둔 상태이다.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또 멋대로 튀어나와 방어막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역마는 속성 때문에 힘들더라도, 바르간 학생의 상태는 제가 회복을 도와줄 수 있을 거 같네요.”
헤일리온은 이미 핀의 상태를 말끔하게 돌리고 온 상황이었다.
성마법사 헤일리온의 강함은 단지 무력뿐만이 아닌 것이다.
“잠깐이면 돼요.”
곧바로 펼쳐진 마법.
헤일리온의 치유 마법은 눈에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회복되는 과정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부위도 차오르며 망가진 피부조직이 재생된다.
성자의 ‘기적’과도 가까운 수준이라고 칭해지는 까닭은 이러하기 때문이다.
치료를 이어 가며 헤일리온이 전한다.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바르간 학생은 교회로 불려 가게 될 거예요. 취조…까지는 아니지만, 바르간 학생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귀찮은 건 질색입니다만.”
“프릭칸리스크의 일과 대주교를 상대한 장본인을 교회에서 그냥 둘 리가 없잖아요.”
“뭐… 그렇겠지요.”
바르간은 그럴 줄 알았다며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다.
헤일리온은 무감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가 관심을 보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아직 멘토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뒤르테문드의 일이 모두 끝나면 본격적으로 바르간 학생과 핀 학생의 훈련에 들어가도록 하죠.”
“지금부터 배운다 한들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군요.”
“해야 할 일이요?”
그의 의문에 답하는 바르간.
추기경 제파르도 결국에는 바르간이 가려는 선로의 일부. 훗날 채비를 갖춰서 사뿐히 밟아 줄 생각이다.
한 대 얻어맞았다고 해도,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얻을 것은 많이 있으니 나중에 갚아 주면 된다.
아직은 그 도중.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
뒤르테문드에서의 에피소드 곳곳에 씨를 워낙 많이 뿌렸지 않았는가.
“범죄자를 처벌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수확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