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04화(104/350)
프릭칸리스크가 트로아 제국의 북부를 떠나갔다.
역사를 이어받으면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난 적 없었던 십이신수가 규칙을 어기면서 모습을 감춘 것이다.
하나, 이에 관해서 아무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뒤르테문드의 시민들에게 있어 프릭칸리스크를 비난했던 자신들은 죄인과 마찬가지였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은 이들이다.
⎯프릭칸리스크는 억울한 누명에도 굴하지 않고 불문율을 어기면서까지 뒤르테문드를 구하는 데 앞장섰다!
해당 소문이 더욱 빠르게 퍼진 건, 일부러 사람을 고용해 분위기를 조장한 것도 있지만, 뒤르테문드 지부 교회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 플레이이긴 해도 올바른 쪽으로 썼다고 자부할 수 있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교회가 도왔던 까닭은 본인들도 죄인이라는 점을 들먹였다는 점과, 크라인과 아미의 관계의 암묵화와 프릭칸리스크가 아미의 군세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는 대가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녀가 설산에 묶여 있지 않고 이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었다.
…뭐, 사실 사람이 신수에게 권한을 주고 자시고 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우습기는 하다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사항이니까 조건에 넣었다.
십이신수인 그녀의 입장에서도 규칙을 어기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니까.
오, 돌이켜 보면 전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참 바쁘게 보낸 몇 주다.
이곳저곳을 직접 다니며 종족을 불문하고 다중으로 교섭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유일하게 거슬렸던 점, 추기경 제파르의 간섭으로 아미의 심판무구를 얻지 못한 점을 제외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쉽긴 하네.
나중에 만들 ‘무기’의 재료를 미리 강화시켜 두려고 했거늘.
…아무튼,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다시 뒤르테문드의 교회로 불렸다. 이번에는 대주교 살레오스에 관한 일로.
“십이신수, 프릭칸리스크는 무사히 떠나갔습니다. 그녀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만사에 개입하지 않으며 조용히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성왕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헤일리온과 몇몇 인원들을 제외하곤, 교회는 내가 불리한 조건으로 그녀와 계약 맺어 약속을 했다고 알고 있다.
신수와 동등한 조건의 계약을 맺었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눈의 힘을 받지 않았고, 추기경의 계약서를 썼다고 떠벌리기에는 알티프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는가.
물론, 일반 시민들은 그녀와 내가 동등한 조건의 계약을 맺었다고 선언하였으니 마찬가지로 잘못 알고 있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며, 구태여 정정해 줄 필요도 없다.
아, 교회의 이들을 속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당장 십이신수가 내 말을 따라 곧이곧대로 움직여 주는 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계약을 맺지 않은 이상 한낱 인간의 말을 따를 리 없으니.
연쇄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아름다운 거짓의 구조 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우리 어린 용사가 아주 큰일을 해 주었습니다. 뒤르테문드는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며 교회는 마땅한 보상을 내릴 것입니다.”
성왕이 달달한 소리부터 하는 건, 뒤에 이어질 다소 쌉쌀한 의문을 빙자한 추궁을 잇기 위함이다.
나는 숙인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구태여 답했다.
“용사의 길을 좇고자 하는 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개 이런 고리타분한 자에게는 가문의 이름을 언급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보이기보다는, 용사와 인류를 내세우며 공익을 추구함을 표출하는 게 먹히는 법이다.
내 정석적인 대답과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성왕의 이어지는 음성의 어조가 바뀐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당신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인류애를 높이 삽니다. 부디 용사가 되어서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바랍니다.”
나는 다른 말로 대꾸하지 않고 더욱 고개를 숙여 예를 보였다.
그 악역 바르간이 한 지부 교회의 최고 권위자, 성왕이라는 작자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참 인생 어찌 될지 모른다.
성왕의 인자한 목소리가 다시금 내부를 울린다.
자질구레한 말을 전부 제외하면 결국은 이거다.
⎯이번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주교 살레오스는 어떤 자였으며 어떻게 저항할 수 있었는가.
감염된 거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붉은 오러를 사용하는 대주교.
과거 용사였던 자가 타락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일이긴 했다.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나, 당시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를 상대한 제 의견을 밝히자면….”
살레오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전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정보, 직접 상대했을 때 알 만한 정보를 추려 전한다.
너무 적지도,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도 않게.
“…그녀는 저주 마법에 능통한 마검사와 같습니다. 용사의 외관은 물론 전투 방식도 상당히 유사합니다. 제가 그녀를 상대할 수 있었던 건 우연히도 교회에서 대여했던 유물에 담긴 마법이 저주를 관통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이신수인 프릭칸리스크가 적극적으로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을 끝마쳤다.
내 능력이 뭐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는 내가 내 입으로 나를 올려칠 게 아니라 내리면 내릴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신비한 곳이니까.
그 이후로도 몇 마디의 말이 오갔지만 나는 더 이상 이들에게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곳에서 그녀가 어디 소속인지 누구의 언니인지를 아는 건 나와 그 빌어먹을 주인공뿐이다.
대답을 모두 들었다고 판단한 성왕은 이만 나를 돌려보내려고 할 때쯤, 자신의 이름이 박혀 있는 명패를 건네주었다.
얇은 은으로 코팅된 철인데 음각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보였다.
“중앙교회로 가거든 그 명패를 보이십시오.”
뒤르테문드 성왕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
내가 원하는 물건이기도 했고, 대충 그의 의도가 짐작이 되었기에 아무런 물음 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올렸다.
더는 오고 갈 게 없다. 받을 건 다 받았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앞으로 당신이 가는 길에 위그드라실 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탁.탁.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는 성왕.
나 또한 끝까지 절도와 예를 잊지 않은 채 관습을 이어받았다.
***
“거기, 핀. 잠깐 여기로 좀 와 봐.”
숙소 앞에 마련된 작은 뜰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핀.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칸투르만이 부르자 검을 집어넣은 채 다가갔다.
칸투르만은 대충 던지듯 말한다.
“네 전력의 검으로 나에게 휘둘러 봐라.”
“예?”
“허수아비 패듯이 때려 보란 말이다.”
갑자기 검으로 패라는 말을 들은 핀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고, 이내 칸투르만의 우락부락한 팔뚝에 목이 졸렸다.
“케, 케켁!”
핀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가자 칸투르만은 대강 던졌고 핀은 풀어진 목을 매만지며 괴로워한다.
“사내새끼가 엄살은. 빨리 검술이나 보여 봐라.”
“하지만… 제가 감히 칸투르만 님에게….”
“되게 쫑알쫑알하네. 내가 X신으로 보이냐? 다 필요한 일이니까 이러는 거지 아님 뭐하러 이러겠어. 어?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 빨리 자세나 잡아라.”
핀은 얼떨떨한 마음이 컸으나 저 우직한 눈을 보고 있자니 피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은 그가 항상 검을 휘두르던 초식의 형태를 잡았다.
곧바로 달려들어 상대의 머리를 노리기 쉬운 자세였다.
그 상태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곧.
쉬악⎯⎯!
칸투르만의 머리를 제대로 노린 일격이 꽂혔다.
일직선으로 나아간 공격은 지나칠 정도로 정직했지만, 오랜 반복으로 단련되어 나름 견고했다.
바르간이 핀에게 죽도록 반복하게 시킨 동작이기도 했다.
이를 목 까딱임만으로 피한 칸투르만은 굳게 닫힌 입으로 길게 목대를 속에서 울리며 분석을 하더니 묻는다.
“왜 멈춰? 그게 다야?”
“다른 동작이… 있긴 한데….”
“있으면 끌지 말고 재깍재깍 보여 봐.”
핀은 나머지 동작을 이어 나갔다.
검술의 유파를 따지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것이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핀이 연마해 온 동작이었다.
후우.
핀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검술이 시연이 끝났다.
결과적으로 핀의 검은 덩치가 큰 칸투르만의 옷 끝에조차도 닿지 못했다.
“너, 몇 년 동안 검을 휘둘렀다고 했지?”
“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게 7살 때니까. 이제 11년 차입니다.”
“…심각하군. 재능이 정말 쥐똥만큼도 없구나.”
“…예. 그건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칸투르만은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푹 쉬었다.
근심 어린 표정을 하곤 고개를 젓는다.
“크샤놀이 왜 그렇게 싫어하나 했더니 이 정도라서 그랬던 거였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칸투르만은 핀의 등을 툭툭 가볍게 때리더니 근처 적당한 구조물에 걸터앉아 답을 해 주었다.
“크샤놀은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용사랭킹 23위를 달성한 괴물이다. 자신의 실력은 물론이고, 특히 남의, 개중에서도 검사의 자질을 확인하는 데 도가 튼 녀석이지.”
“예….”
“그런 눈을 가진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게 재능 없는 사람인데, 하필이면 또 헤일리온의 멘티로 들어왔다는 거야. 그래서 녀석이 빡이 쳤던 거고.”
핀은 처음 그와 만나 모욕적인 말들을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칸투르만은 이어서 말했다.
크샤놀이 제일 존경하고 따르는 인물이 헤일리온인데, 그런 헤일리온의 멘티라고 뽑혀 온 핀의 수준이 하도 처참하여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거라고 했다.
“그나마 처음에 보였던 대가리를 노리는 동작은 나름 쓸 만한 거 같은데 나머지는 아예 깽판이야. 막 나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단련을 이어 나가면 조금이라도 발전이….”
“아니. 접어라.”
칸투르만은 냉철하게, 단칼에 자른다.
“이대로 네가 간신히 용사가 된다고 해도 알티프의 밥이 되거나 제물이 될 거다. 네 미래의 팀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접어.”
핀의 재능은 괴멸적이다.
아무리 주변에 뛰어난 인물을 데려다 놓고, 좋은 유물로 치장을 한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는 검사에게 금방 추월당할 것이다.
자기 한 몸을 바쳐 미래의 팀원들에게 동료가 죽는다는 감정을 맛보게 해 줄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럴 순 없습니다.”
핀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한다.
살갑게 굴던 눈빛도 강렬하게 바뀌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용사가 될 겁니다. 그렇게 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그 자신에게 한 번.
바르간에게서 헤일리온이라는 기회를 받았을 때 한 번.
핀은 그 어떤 모진 말을 들어도 이때의 다짐만큼은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건 핀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 끝이 아무리 참혹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정한 길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네 죽음은 가치가 없을 수 있다. 쌓아 가는 노력의 끝이 허무로 가득할 것이다.”
“말씀드렸듯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의 끝이 낭떠러지라면 힘차게 뛰어들 것입니다.”
“…….”
핀은 감사하다는 것으로 말을 끝맺음을 지으려 했다.
칸투르만이 어떤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알고 고마움을 느끼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대화가 일단락 나는 듯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칸투르만이 몸을 일으킨다.
그의 커다란 몸집이 핀의 앞을 가렸고, 솥뚜껑만 한 손으로 핀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핀은 피하지 않는다.
그러곤 칸투르만이 말했다.
“크하하하! 요놈, 생각보다도 고집이 있는 놈이었네.”
그는 호방하게 웃어 젖혔다.
“전쟁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 제 분수도 모르는 꼴이 아주 마음에 들어. 네가 맞다. 자고로 남자란 이래야지!”
“칸투르만 님…?”
“핀.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네 재능이 쥐 꼬랑지만큼도 없는 건 사실이지. 그래서, 너에게 특급 비밀을 하나 알려 주려고 한다.”
칸투르만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했다.
“오늘부터 당장 크샤놀에게 달라붙어라. 접착제처럼 딱 달라붙어서는 사정사정하면서 빌어.”
“무엇을 말입니까?”
“제발 「혼백관」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말이다.”
혼백관.
처음 듣는 장소의 명칭이었다.
“모르는 게 정상이다.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곳이니. 나도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안다고 해도 자격이 부족해서 안 되지만.”
“거기에 가면 어떻게 되기에….”
“나도 자세한 걸 몰라. 알면 비밀이 아니지. 근데, 이거 하나는 알고 있다.”
칸투르만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진다. 주변에 있는 쥐나 새도 듣지 못할 정도로.
“크샤놀도 혼백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너와 비슷할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는 것을.”
“예?! 하, 하지만 분명 현재 랭킹 23위에…!”
“쉬잇.”
그의 커다란 손이 핀의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크게 웃으며 조심하게 말하던 태도로 도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내가 특급 비밀이라고 하지 않았냐. 크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