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1화(11/350)
【크릭!】
호박 결정처럼 단단해 보이는 괴물의 눈이 기분 나쁘게 얇아지며 거꾸로 뒤집어진 초승달 모양을 했다.
그것은 알리시아가 볼 때 오랜만에 만난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다.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성대가 파열돼도 좋으니 그렇게라도 대항하고 싶다.
“허… 끄으… 거.”
그러나 알리시아의 입에 머금어진 단어들은 언어의 기능은커녕 온전히 내뱉어지지도 못하곤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진득하게 엉겨 붙는다.
그날에도 그랬다.
알리시아는 안전한 창고 안에서 언니의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죽음을 관망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주변에 널브러진 날카로운 농기구를 들고 같이 싸우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겁먹어 바라보는 것밖엔 하지 못했다.
아무런 말도, 소리도 내지 못했어.
왜?
언니가 창고에 자신을 밀어 넣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해서? 혹시 싸우는 언니의 방해가 될까 봐?
깔깔깔.
웃기다 웃겨.
완전히 틀리지는 않아.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 하지만 좀 더 원천적이고 사소하며 까슬거리는 뭔가가 있잖아. 목구멍에서 걸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만이 아니잖아.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한다.
익숙한 음성. 익숙한 억양. 하지만 오랜 기억의 저편에 사라졌었던, 이제는 낯선 목소리.
부스럭.
바닥에 깔려 있던 짚이 단단해 보이는 붉은 고깃덩어리에 밟히며 바스러진다. 콰득, 꾸득. 이어서 촌장이었던 자의 육신이 짓밟힌 곳은 사방으로 피육이 튀겨 나간다.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괴이하게 생긴 그것은 알리시아에게 다가왔다. 사마귀가 먹이를 낚아채기 전 살금살금 다가가듯 조심스럽지만, 그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사마귀가 방심한 먹이에 다가가는 것이라면 이건.
【크륵.】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먹잇감의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쇄액! 괴물의 몸에서 뻗어 나온 촉수 같은 것이 알리시아의 머리에 꽂힌다. 생명체의 약점을 알고 있다. 즐기는 태도와는 달리 한 번에 죽일 생각이다.
“…!”
알리시아가 본능적으로 몸을 내던지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얼떨결에 자신에게 날아온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두 손은 머리를 보호한 채로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다리는 쓰러진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방금 태어나 세상의 중력에 거스르지 못하는 새끼처럼 알리시아는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머리는 비상이 걸려 도망칠 것을 갈구했으나 몸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켁…!”
괴물의 단단한 꼬리 같은 것이 알리시아의 복부를 강타했고 알리시아는 너무나도 가볍게 날아가 뒤에 있던 나무 상자들과 부딪혔다.
그 충격에 창고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일며 얹어져 있던 각종 도구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몇 개는 알리시아의 머리에도 떨어져 충격을 주었지만 알리시아는 그것이 자신의 머리에 떨어진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감각은 공포와 충격으로 이미 전염되어 약한 통증은 그녀가 신경 쓸 것이 못 되었다.
부스럭부스럭. 그것이 다시 다가온다. 색색거리는 짙은 숨소리를 내는 것이 먹잇감이 반항하려 하자 약간 흥분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알리시아도 그 소리를 들었다. 생존본능에 의해 눈은 탈출구를 향한다. 거기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붉은 피 웅덩이가 되어 머리가 사라져 버린 노인의 몸. 악몽 속에서 주변에 널려 있던 마을 주민들처럼 잔혹하다.
“끄…아…!”
또다시 알리시아는 소리를 내려 했지만, 도저히 단어가 나오질 않았다. 무언가 막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크륵!】
녀석의 단단한 근육질의 다리가 성큼성큼 알리시아에게 다가왔다. 저항해야 한다. 하지 않고서는 죽어 버릴 것이다! 알리시아는 눈에 보이는 아무 물건이나 던지기 시작했다.
툭, 툭. 마구잡이식으로 던진 것들은 괴물의 두꺼운 피부에 스친 상처도 주지 못하고 나뭇잎처럼 떨어져 나갔다. 안면에 날아와 부딪히면 불쾌한 기색을 비쳤지만 그게 전부.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한 건 아니다.
【크르르르륵⎯⎯⎯!】
괴물이 분노하기 시작했으니.
쿠궁쿠궁! 녀석은 노는 건 그만두기로 했는지 맹렬하게 돌진한다. 질량이 상당한 녀석이라 땅에 울리는 소리도 엄청나다.
알리시아는 그것을 보고 주변에서 던질 것을 더욱 갈구하였으나 이미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을 지킬 것이 없어진 알리시아는 땅을 긁는다. 파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양손으로 바닥을 박박 긁으며 녀석에게 멀어져 보려 하지만 창고의 벽 때문에 물러설 곳도 없는 상황. 패닉에 빠진 알리시아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밀어 댔지만, 몸이 움직일 리 없다.
그러다.
⎯찰그락.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던 어떤 철붙이를 건들게 된다.
쿠궁쿠궁!
콰왕. 붉은 괴물은 커다란 입으로 괴성을 지르며 알라시아와 부딪힌다. 괴물은 알리시아째로 벽을 부수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아간다. 앉아 있던 알리시아의 다리가 바닥에 끌리면서 살가죽에 찢어져 가고 비틀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괴롭다.
그러나, 그 괴물과 부딪혀 날아가는 순간의 도중. 알리시아는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잡았던 칼날을 녀석의 눈에다 찔러 넣었다. 그토록 연습했던 오러도 약간의 마력도 담기지 않은 평범한 찌르기였다.
【크레에에엑!】
강렬하게 돌진하던 녀석이 다리를 멈추고 고통을 호소한다. 녀석의 힘으로 공중을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쿵. 알리시아는 나무와 부딪혀 간신히 정지할 수 있었다.
“…커헉!”
나무와 부딪힌 알리시아의 목구멍에서 토악질이 올라오듯 외마디의 고통이 터져 나왔다. 속력을 잃어버린 몸뚱이가 툭 하고 떨어진다.
“케, 케흑. 커헉.”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위액이 올라왔다. 속에 들어 있는 것도 별로 없건만 싹 게워 내려는 것처럼 연신 꿈틀거린다.
얻어맞기 전만 하더라도 그녀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확실한 고통이 몸을 강타하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의식은 있다.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일어서지질 않는다.
귀를 강타하는 울부짖음이 진동하자, 알리시아가 얼굴을 돌려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숨은 여전히 넘어가 버릴 것처럼 얕고 가빴으며 눈에는 초점이 없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으아아아… 으아아!”
“엄마! 아빠!”
사방에서 비명과 울음소리.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의 집합체가 울려 퍼진다.
길게 뻗어 있던 작은 돌담길은 곳곳이 무너져 있다. 나무로 지어진 집들은 타오르거나 무언가 들이받은 것처럼 큰 구멍이 뚫려 있다. 부서지고 있는 마을. 알리시아의 탁한 눈동자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루비드 마을을 담았다.
깔깔깔.
이게 뭐야, 예전이랑 똑같잖아.
괴물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마을도.
사방에 낭자한 핏자국도.
터져 나가는 사람들의 머리통도.
그때랑 똑같아!
다시 한번, 익숙하지만 낯선 그 음성이 알리시아에게 들렸다. 알리시아의 심장이 그에 반응하듯 거칠게 뛴다. 기존의 몇 배 이상은 빠르게 움직이는 거 같다.
그럴 리가 없다.
이 목소리가 자신에게 들릴 리가 없다. 수없이 꾸었던 악몽에서조차 그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작은 숨소리도, 커다란 기합 소리도. 그 창고에서 들리는 음성은 자신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다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기서 들린다고?
알리시아가 초점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눈으로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생생하게 들리는 그것을 찾아 헤맨다.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모든 게 그대로야.
너도 마찬가지지.
그 사람은 너를 천재니 뭐니 말했지만, 지금 너의 꼬락서니를 좀 봐.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
“어… 어….”
알리시아는 처음 입을 연 사람처럼 혹은 약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뻥긋거렸다.
아직 그녀를 찾지 못했다.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분명 여기에 있는데. 이 근처에 있는데.
깔깔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네.
몸만 커지면 뭐 해.
마나를 배우면 뭐 해.
결국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데.
무언가가 알리시아를 향해 다가온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는 들렸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알리시아가 손을 뻗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아…?”
【크르륵.】
알리시아의 뻗은 손에 닿는 것은 부드러운 살갗이 아니라 질척거리고 딱딱한 표피였다. 끈적거리는 액체가 흐르고 있다. 그것이 묻은 손을 눈에 가까이하자 붉은 혈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목소리의 주인이 아니다.
“케, 켁…!”
그 괴물의 꼬리가 알리시아의 목을 조이며 허공에 올렸다. 대롱대롱. 알리시아의 발이 괴로움을 호소하며 물장구치듯 팔딱거린다.
알리시아는 두 손으로 목을 조이는 것을 막으려 한다. 손톱으로 할퀴기도, 있는 힘껏 쥐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힘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체력만 떨어져 갈 뿐 괴물은 점점 강도를 높여 갔다.
아, 다른 점이 하나 있었네!
가장 중요한 거였는데 말이야.
흐릿해져 가는 알리시아의 시야에는 오른 눈알이 검에 찔려 잔뜩 안면의 근육을 수축시킨 괴물의 얼굴이 보인다. 구렁이 같은 핏줄도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옆.
오랜만이야. 알리시아.
활짝 웃음을 만개한 어린 소녀의 모습이 곧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어른거린다.
생각날 때마다 가슴에 창을 찌르는 것 같이 괴롭지만, 그 고통을 감내할지라도 보고 싶은 얼굴.
“…커, 어…!”
각막에 상처가 생긴 것인지, 그게 아니면 괴물이 숨통을 조여 와서인지. 알리시아의 시야가 자꾸만 뿌예진다. 피가 몰린 얼굴에서는 그보다 더 뜨거운 액체가 눈에서 쏟아져 나온다.
알리시아.
그때랑은 다르게 말이야.
너를 지켜 줄.
‘내’가 없잖아!
깔깔깔.
당시, 14세의 소녀. 고향의 자랑이자 알리시아의 4살 위 친언니였던 그녀.
샤를로테.
그녀의 환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허우적대던 알리시아는 움직임을 정지했다.
***
“아이고… 고맙네, 어여쁜 아가씨.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어.”
촌장은 오랫동안 숙이고 있어 뻐근하던 척추를 피며 오만상을 지었다. 오랜만에 바쁘게 움직이니 허리의 통증이 더하다.
촌장댁의 낡은 창고. 먼지가 가득한 이곳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렇게 우릴 도와줘도 되는 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괜히 우리 일을 도운 게 아닌가 몰라.”
“…….”
“응…?”
그녀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촌장은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서로 대화를 원만하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생기 있게 웃어 주며 함께 일하던 젊은 여자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왜 그런가 젊은 아가씨? 어디가 아픈 겐가? 악몽이라도 꾼 것마냥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네!”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워 보인다. 공기가 부족한 것인지 과한 호흡이 이어진다.
촌장은 급히 그녀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얼굴을 잡았다 깜짝 놀랐다. 사람의 기본적인 체온을 무시하듯 얼음장 같은 냉기가 그의 손에 닿았기 때문이다.
“상태가 심각하군…! 이럴 땐… 그, 그래! 잠깐만 기다리고 있게나. 내 금방 따뜻한 물을 받아 올 테니!”
알리시아는 창고를 나서려는 그의 손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게나. 내 퍼뜩 갔다 올 테니.”
알리시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촌장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곤 움직였다.
그렇게 창고를 나가기 위해 문지방을 넘던 촌장이 사라졌다. …사라졌다? 뭐가? 뭐가 사라졌지.
아니, 아니지.
알리시아, 알고 있잖아.
우리 이런 건 빠르게 넘어가자고.
【크륵?】
문지방 너머,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내는 저기 저 붉은 녀석도 분명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저 호박색의 눈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처음일 수 없다.
그야, 조금 전에 자신을 죽인 괴물의 것이니까.
“이게… 대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자.
알리시아는 드디어 제대로 된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