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11화(111/350)
중앙교회로부터 각자 보상을 수여받은 바르간과 핀.
핀의 유물은 바르간이 미리 언질을 줘, 원작 리암이 가지고 있었던 세 자루의 검 중 하나로 고르게 했다.
1품의 검은 핀에게 과분할지 모르나, 어차피 리암은 검 하나면 충분하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용사들도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유물을 받고 난 이후 실베스테르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1위의 자리를 유지하는 그는 단순 용사의 일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의 지분도 상당량 가지고 있으니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다.
직접 바르간과 핀을 만나 보상을 준 날도 간신히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
중앙교회에서의 한 달은 금세 흘러갔다.
바르간은 헤일리온에게서, 핀은 크샤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온종일 매진할 수 있었다.
헤일리온과 크샤놀의 일정은 빼곡하여 시간을 많이 내 주지는 못했으나, 전수받은 술식이나 자세를 스스로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훈련을 하면서 핀은 중앙교회로부터 수여받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두꺼운 철검으로 대체하였는데.
이는 단련을 위한 크샤놀의 방침이자, 준비가 되었을 때 유물을 건들고자 하는 핀의 각오였다.
핀은 자신에게 자격이 주어졌다고 여겨지는 상태에서 유물을 쥐고 싶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해가 뜨고를 반복하고.
마지막 날의 해가 올랐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네, 바르간 님. 이미 결정을 끝마쳤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 죽음에 이른다고 한들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중앙교회의 배웅을 받는 바르간과 핀은 트로아 제국으로 향하는 비공정의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비공정을 타는 사람은 바르간 한 명.
핀은 타지 않는다. 중앙교회에서 단련을 받는 요 한 달 동안의 기간 동안 그는 첫 번째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저는 아카데미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크샤놀로부터 지옥 같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가혹한 훈련을 받은 핀은 며칠 전 혼백관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게 가능했다.
혼백관은 대륙의 동쪽.
아카데미아와 멀찍이 떨어진, 대륙의 끄트머리.
그곳에 거대한 ‘안개의 산맥’이 있고 그 산맥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한다.
산맥까지는 알아도,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짙은 안개가 침입자를 거부하고 방향감각을 잃게 만들어 도착했을 때는 어디인지 알 수 없다고.
과거에 들렀던 크샤놀 역시 죽기 직전, 신기루처럼 보이는 혼백관에 우연히 도달한 것이지 결코 위치를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크샤놀이 혼백관을 찾기 위해 산맥을 뒤집고 다녔던 기간은 대략 3개월.
막상 혼백관에서 단련을 받는 과정에서, 육신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아 시간이 흐르지 않았고.
하산하는 데는 눈 깜짝할 사이면 가능하다.
다만, 혼백관을 찾는 데 개인이 필요한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죽는 이들은 몇 년의 문제가 아니나, 꺼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조건 속에서 핀은 선언한다.
“2학기 기말고사 때까지는 반드시 돌아가겠습니다.”
바르간과 아르볼 프루탈의 모두 앞에서 밝혔던 최초의 날짜에 변동 없이 기말고사를 치르기 위해서 오겠다고 한다.
휴학 중에도 시험은 미리 치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는 핀.
결국 핀은 약 4개월 정도 안에 모든 과정을 끝마치고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다.
“만약 제가 그 기간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아르볼 프루탈에서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핀의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다.
그의 뜻은 항상 비굴하고 패배주의적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년이 달라질 테니, 같은 조원으로서 활동할 수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연구회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핀의 부정적인 단어는 배수의 진을 쳐 자신을 더욱 몰아붙이기 위한 ‘수단’이지 결과가 아니다.
핀은 자신이 돌아올 자리에 제한 시간을 걸어 둔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그래.”
바르간은 길게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핀은 이미 모든 판단과 결정을 마쳤다. 그에게 어떠한 말을 해 준다고 해서 변화는 없을 것이다.
바르간은 대충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비공정에 몸을 실으려 했다. 필요한 대화가 끝나면 바로 움직이는 게 그의 성향.
이번 역시 그러려고 했으나.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바르간은 자신의 앞에서, 땅바닥에 고개를 넙죽 맞닿은 채 절을 하고 있는 핀을 보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그림자 진 핀의 자세는 부끄러운 그런 감정이 아니라 평온해 보였다.
용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땅에 부딪히는 핀, 하지만 지금 그는 부탁하거나 창피하여 고개를 내린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아에 들어와, 우상이던 바르간 님의 조원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제겐 ‘기적’이었습니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핀은 그대로 입을 움직여 반년 동안 자신에게 생겼던 놀라운 일의 연속을 말한다.
높낮이에 변함이 없는 담담한 어조.
핀의 목소리는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바르간 님이 창설하신 연구회에 들어와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쟁하며, 깨달음을 얻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하던 핀은 클래스전을 언급하는 때가 오자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제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해서 이런 몸뚱아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바르간 님에게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무의식중에 알리시아가 많은 영향을 끼쳤을 터이다.
그녀가 얼마나 빨리, 그것도 바로 옆에서 단숨에 멀어지는 걸 경험한 핀은 자신의 무력함을 직면했고.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런 저에게, 바르간 님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다시 확정적인 고요함을 되찾는다.
“바르간 님께서 본래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결정을 내리셨다는 걸 압니다. 감히 바르간 님 입장의 되어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누가 보더라도. 헤일리온 님의 멘티 자리를 저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그것이 동정심이었든, 인정이었다고 한들.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며 합리적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것을 제게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기적은 아무런 개입이 없었던, 외부에 의한 것.
두 번째 기적은 바르간 님이 자신에게 하사하였던 것.
“저는 평생 있을 운을 모두 써 버린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없을 테니까요.”
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눈은 웃고 있었다.
분명히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전해지면서도, 지금 보이는 환한 웃음 또한 진심이었다.
그 입이 벌어진다.
“이제는 제가 기적을 보일 차례입니다.”
세 번째 기적.
끔찍할 정도로 재능이 없는 영혼의 한계를 탈피하고 다시금 태어나는 일.
핀은 이제 스스로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했다.
“…….”
그 질고한 눈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바르간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가벼운 손짓으로 그를 일으켰다.
핀의 의지는 이미 더 확인할 것 없이 확인을 했었다.
이 이상은 시간 낭비다.
그렇게 판단한 바르간은 가벼운 어조로 말한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 네 스승인 크샤놀에게나 해라.”
그제야 자리에 일어난 핀의 바지에는 흙이 그대로 묻어 있다. 이를 개의치 않는,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핀의 얼굴.
그 투박한 입이 움직인다.
“이미 하고 온 참입니다.”
멋쩍게 웃음을 짓는 핀. 주변에서는 여린 햇살과 바람이 살랑이며 상쾌하게 분다.
그런 뒤.
바르간과 핀은 각자의 길에 올랐다.
더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핀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면 이후의 대화는 2학기 기말고사가 되어서 하면 된다. 그날을 위해 지금은 말을 아낀다.
각자 조금씩 성장한 두 다리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 나아간다.
***
중앙교회를 떠오르던 비공정은 순식간에 지평선 끝으로 사라져 간다.
중앙교회의 대문 앞.
아침의 눈부심 속에서 헤일리온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기척이 들렸고 헤일리온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자라고 부를 만한 학생을 떠나보낸 크샤놀이었다.
“헤일리온 님. 다음 임무가 결정되었습니다.”
크샤놀은 교회에서 내린 명령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했고 헤일리온은 이를 가만히 들었다.
멀리 떨어진 구역으로 내려진 파견이다.
뒤르테문드에서의 일은 바르간의 도움으로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 금방 해결되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대략적인 정보를 읊은 크샤놀은 말한다.
“용사랭킹 6위가 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크샤놀도 마찬가지로요.”
헤일리온은 이번 뒤르테문드의 사건의 공로를 인정받아 용사랭킹이 7위에서 6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헤일리온뿐만이 아니라 팀원 모두가 한 단계, 많으면 몇 단계 랭킹이 올라가게 되었다.
용사랭킹은 교회에 끼칠 수 있는 개인의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높으면 높은 만큼 도움이 되는 수치다.
헤일리온은 반드시 높은 정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은 없었어도, 어느 정도 달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서로를 축하하기를 끝내자, 잠시 고요해졌고.
“하나뿐인 제자가 떠나가서 서운하거나 해 보이지는 않네요?”
헤일리온은 바르간과 핀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크샤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듯, 무관심하게 답한다.
“제게 제자는 없습니다. 둘 필요도 없고, 둘 자격도 없습니다.”
“크샤놀은 핀 학생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죠. 가끔은 만족할 줄도 알아야 좀 편할 텐데요.”
“제가 편할 날은 알티프가 멸종하는 날입니다.”
헤일리온은 크샤놀과 핀이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세한 성격적인 건 다를지 몰라도, 큰 골격.
재능이 없었다는 것과 그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어 한다는 점. 과거부터 존재하는 자기혐오와 멈출 줄 모르는 노력.
크샤놀이 그토록 재능없는 자들을 하찮게 여기고 괄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마,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인 동시에 그들이 겪을 미래가 가시밭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혼백관의 생존률은 극악.
그곳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에 가깝다.
모든 이에게 혼백관을 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하라는 나름의 상냥함⎯이라고 헤일리온은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혼백관에 대한 정보까지 알려 줄 줄은 몰랐지만요.”
“…칸투르만이 멋대로 입을 놀려 발설한 혼백관의 뒤처리를 했을 뿐입니다.”
“그 말은 핀 학생이 혼백관의 여정에서 탈락할 거란 말인가요?”
탈락.
그것은 즉 죽음을 의미한다.
헤일리온의 물음을 들은 크샤놀은 고즈넉한 눈으로 넓은 지대를 바라보았고, 답한다.
“그러겠지요.”
직접 혼백관의 수행을 끝낸 크샤놀의 대답이다.
명백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고 헤일리온은 더 이상 그에 관해 묻지 않는다. 그가 어떤 기분인지도 짐작이 갔다.
“그보다, 그 손은 괜찮으신 겁니까?”
크샤놀은 주제를 돌렸다.
그가 가리키는 건 아미가 죽고 돌려진 왼팔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아, 이거요?”
“헤일리온 님의 치유 마법으로도 아직까지 완치가 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위력과 지속력이 상당하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죠. 사실은 아직까지도 따끔따끔해요.”
헤일리온의 오른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시뻘건 것에 물들어 있었고, 그 주위를 노란빛의 입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
그는 치유 마법을 통해 회복되고 있는 오른손과 함께, 입꼬리를 올렸다.
다친 사람치고는 상당히 밝은, 기분 좋은 미소.
“바르간 학생의 성장 속도가 제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빨라서요. 결국 내기에서 지고 말았어요.”
바르간이 중앙교회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일찍부터 마지막 실전 강습을 한 헤일리온과 바르간.
그 흔적으로.
신성 마법으로 인해 철통 보안을 받고 있던 헤일리온의 오른손은 부패로 인한, 갉아먹어진 상처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