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13화(113/350)
모든 멘토링 과정을 마친 알리시아는 귀성길에 올랐다.
멘토링이 끝나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동생을 한동안 못 보겠네. 잘 지내고 나중에 만나자.
말총머리의 용사 샤를로테는 알리시아의 향기가 밸 정도로 꼬옥 그녀를 안았다.
언제부터인지 알리시아와 샤를로테의 인사는 껴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보고 있던 에밀리와 리암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따뜻한 눈을 했고. 손을 흔들었다.
에밀리와 리암과는 이미 인사를 마쳤었다.
이들이 살았던 마을은 들렀다 가기에는 지나치게 거리가 멀어 아카데미아로 바로 복귀한다고 했다.
리암의 표정 변화가 눈에 띈다.
한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그의 안색에 어느 정도 활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다그닥다그닥.
짐칸으로도 사용하는 마차의 한구석에 앉아, 굴러가는 바퀴의 소리를 듣는다.
반복적이게 흙 위를 굴러가는 바퀴.
가끔 자갈이나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거나 하면 불규칙하게 바뀌기도 한다.
이 소리는 지그시 감고 있던 알리시아의 눈꺼풀이 올라가게 만들었고.
그녀와 함께 마차에 탄 이들이 담는다.
어머니의 품에서 안겨 곤히 잠든 아이.
서로 몸을 기댄 채 조곤조곤 속삭이고 있는 젊은 부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자꾸만 숙여지는 고개를 까딱거리는 노인.
몇 번 옷감을 덧대어 사용하고 흙이 묻어 있기도 한, 생활감이 묻어나는 그들의 옷과 냄새.
그 안에 있는 알리시아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리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정갈하고 깔끔하다.
분명 그곳에는 더욱 청결하고 높이 평가받는 품격이 존재했다.
하지만, 자신은 본래 그것들과는 연이 먼.
펜과 검보다는 흙이 어울리던 평범한 시골 여자였다.
그래서인 걸까.
이처럼 지극히 서민적이고 투박한 정경에 향수를 느낀다.
아직 고향에는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마음만은 몸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듯하다.
“감사합니다. 가는 길 조심하세요.”
마차는 알리시아의 마을 근방까지 도착하였고, 그녀는 마부에게 간략하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부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하였고, 마차는 알리시아를 둔 채 다시 길에 오른다.
알리시아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을 근처라고 해도, 아직 꽤 거리가 남아 있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해가 지고서야 도착할 것이다.
그러다, 바람의 알리시아의 뺨을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바람의 정취를 맡았다.
고향의 냄새.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는, 시골의 냄새.
그것이 알리시아를 설레게 만들었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이번에 고향에 방문하는 건 슈겐하르츠가의 시종이 되고 나서 처음이다.
약 1년 만에 돌아온 이곳.
처음의 계약으로는 알리시아는 1년에 단 하루만 고향에 방문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하루면 사실, 왕복하는 데 모든 시간을 써 버리고 정말 어머니의 얼굴만 잠시 확인하는 정도의 시간.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의 주인은 그녀가 원하는 만큼 고향에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덕분에 알리시아는 시간에 쫓기는 일 없이 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뵐 수 있게 되었다.
‘도련님께는 몇 번 감사를 표해도 부족해. 이 은혜를 어떻게 해야 다 갚을 수 있을까.’
숲속을 지나면서 알리시아의 머릿속은 바르간의 생각으로 점점 쌓여 가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오랜만의 고향의 정취에 들뜬다 하더라도 바르간의 존재는 굳은 기둥과 같이 깊숙이 꽂혀 있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 드린다면 기뻐하실까?
…기뻐하시는 도련님을 보고 싶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알리시아는 바르간에게 작은 구슬만 한 일회용 통신 수정구를 몇 개 건네받았다.
크기가 거대한 수정구 대신 긴급할 때 주로 사용하는 예비용으로 영상이 아닌 음성만이 전달된다.
혹시 모를 상황에 알리시아가 부딪히게 되면 곧바로 연락을 통해 보고를 하거나 자문을 구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를 사용할 만한 순간은 오지 않았고. 알리시아는 두 달 동안 바르간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적합한 까닭 없이 쓸 수도 없고, 반기지 않으실 터이니.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기만을 이어 갔다.
⎯끄아아아아!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알리시아가 현 위치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
감각을 확장하고 마나의 기운을 살피자 알티프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리시아의 눈빛이 바뀐다.
상냥하던 눈동자는 날짐승이 되어 사냥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곤 소리의 근원지로 빠르게 뛰어간다.
***
숲속에서 나무를 베고 있던 중년 남성.
여느 날과 같이 나무를 베며 목재를 얻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돌연 등골이 오싹하더니 모골이 송연해지기 시작했다.
【크르라락!】
얼굴만 허연 붉은 괴물이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평소에 이곳은 괴물들이 들어오는 구역이 아니었는데 왜?!
놈은 성이 나 있다.
배고파 보이기도 하고, 다급해 보이기도 하다.
다치기도 하여 두꺼운 가죽이 뚫려 피를 흘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먹이를 찾으러 왔고, 지금 발견한 듯하다.
“끄아아아아!”
중년의 남성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도망쳤다.
짊어지고 있던 목재를 도끼와 함께 전부 녀석에게 내던지고 냅다 달린다.
괴물에게 죽고 싶지 않다.
모체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다,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리게 되고. 바닥에 그대로 나자빠진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한다.
괴물이 아직 멀리 있기를 바랐건만, 이런 소망은 간단히 깨져 버린다.
“끄, 흐윽!”
겁에 질린 남성은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채 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괴물은 이빨을 내민 채 길게 웃었다. 역시 잡아먹을 생각이다.
이제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남성이 삶을 포기하려고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때.
【크에에엑⎯⎯!】
괴물의 외마디 비명과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들리는 음성은 고운 여성의 말소리다.
“괜찮으세요?”
용기인지 배짱인지 조심스레 눈을 뜬 중년 남성은 하얀 머리칼의 여인을 보게 되었다.
뒷모습만 보더라도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와는 대비되는 살벌한 검을 집어넣은 여성은 고개를 돌려 남성과 마주한다.
그러자 남자는.
“알리시아?”
“야울 아저씨…?”
둘은 초면이 아니었다.
제법 오랫동안 말을 터고 지낸, 친밀한 사이.
“네, 네가 어떻게….”
급작스러운 재회에 당황한 남성은 눈동자를 굴리며 알리시아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불길한 기운이 뿜어지는 검은 대검.
이를 가볍게 휘두른 알리시아.
두 동강이 나 죽어 버린 괴물.
이상하다. 알리시아는 1년 전에 슈겐하르츠가에 팔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건 마치.
“알리시아… 너, 너 용사가 된 거냐?”
그 이후, 알리시아는 중년 남성이 떨구고 온 목재와 도끼를 찾는 걸 도왔고 둘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고 답한다.
1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만은 않았다는 걸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중년 남성, 야울의 일상은 1년 전과 달라진 바가 거의 없었지만, 알리시아는 완전히 바뀌었다.
야울은 그녀의 변화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린다.
“토끼도 잡지 못하던 네가 이렇게 어엿한 용사가 된 걸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아직 용사가 아니라 학생이에요.”
“아참. 아카데미아에 들어갔다고 했었지? 이야,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나 알리시아! 너는 마을의 자랑이다.”
마치 자기 딸의 업적인 양 기분 좋게 웃는 남성.
그는 바르간이 알리시아를 데려가기 전까지 그녀의 옆집에서 살았던 가족의 가장으로, 양어미로부터 구박을 받는 알리시아에게 친절을 베풀던 인물이었다.
“네가 팔려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빚을 져서라도 너를 다시 데려오고 싶었는데… 액수가 액수이다 보니 쉽지가 않더구나.”
“미안해하지 마세요. 말씀드렸지만, 슈겐하르츠가에서 정말로 잘 지냈으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아카데미아까지 들어가서는 이렇게 고향에 들르는 것도 가능한 거 아니겠어요?”
야울은 그가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솔직하게 터놓았고, 알리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긍정했다.
알리시아의 입장에서 야울에게 욕을 보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과거 어머니에게 혼나 밥을 먹지 못하고 굶고 있으면,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몰래 다가와 빵 조각을 건네주기도 했었고, 다치면 약초를 발라 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을 알리시아의 양어미 또한 알았다.
알리시아가 그렇게까지 크게 학대당하지 않았던 데에는 그들의 영향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알리시아는 과거를 떠올리며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저씨는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하하, 나 같은 중년에게는 최고의 칭찬이구나.”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다른 가족분들도 다 잘 지내시죠?”
“그럼 당연하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건강한 게 아마 우리 자식들일 거다. 아니지, 아내인가.”
그는 껄껄거리며 웃었고, 알리시아 또한 그 웃음에 전염되듯 미소 지었다.
그렇게 정겨운 대화를 이어 나가며 마을로 향하자 마을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야울의 표정이 점차 어색해져 갔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싶은,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알리시아는 이에 대해 깊게 묻지 않으려 했다.
잘 지낸다고는 하셨지만 무슨 일이 있었고 밝히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기에.
야울이 아닌 자신과 관련된 일을 묻는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알리시아의 양어머니.
그녀를 100골드에 팔아넘긴 여자.
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자, 야울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딱 걸린 사람처럼 당황해한다.
“아… 그게.”
알리시아는 의문의 눈동자로 야울을 바라본다.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알리시아였지만, 듣기를 원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유 모를 불안감을 가진 채.
“알리시아.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야울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알리시아를 마주 보며 그녀의 한쪽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긴장감과 여러 감정이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터진 입술을 달싹인다.
“네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
야울이 그녀의 어깨를 잡은 것은 알리시아가 혹여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며칠을 넘기지 못하실 거 같아.”
***
포트레트가 저택의 한 침실.
포트레트가의 안주인이자 에리카의 어머니가 사용하는 방이다.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교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가모(家母), 포트레트 트로아 리리안스.
그녀의 방에서는 항시, 그녀가 좋아하는 가벼운 꽃향기가 난분분 날아다녀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
그러나 지금.
그림으로 그린 듯 휘황찬란한 장신구와 문양으로 수놓인 방 안을, 무거운 침묵이 짓누르고 있다.
에리카의 어머니인 리리안스가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다.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를 반복하며 마치 악몽에 시달리는 것과 같이 불안해한다.
에리카는 그 옆에서 리리안스의 손을 꼭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에리카의 눈매는 오랫동안 흘린 눈물로 인해 붉어졌고, 리리안스를 잡고 있는 손은 자신이 아픈 사람인 것처럼 떨렸다.
리리안스의 입이 벌어지며 작게 중얼거리는 음성이 들렸다.
“목소리가 안 들려… 목소리가….”
에리카는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약한 불안 증세를 보이신 어머니.
이는 결코 상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 보였고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 나가셨다.
며칠 전, 가주인 아버님께서 제국의 수도로 향하기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어머니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셨다.
⎯이상하다… 이 정도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서부터는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중독 증세와 같이.
극한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호흡이 가빠진 어머니.
의사를 불러 혹시 약물을 투여한 흔적은 없는지 병은 아닌지 물었지만.
약물을 투여하거나 복용한 흔적은 없었고, 외부적인 질환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건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특정한 것에 대한 의존증이 커져 신체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지요.
그 특정한 것이 뭔지 감도 오질 않는다.
‘목소리’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입에 담고는 있지만, 이것이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인 건지, 그 자체인 건지….
에리카는 리리안스의 체온을 느꼈다.
불안감에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손끝이 차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두렵다.
에리카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불안한 호흡을 달랬다.
그러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말라고 일러 놨는데 확실하게 들렸다.
에리카는 그 소리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꼭 달라붙어 눈물을 떨어트릴 뿐.
⎯…러시면 곤란합니다. …나중에… 지금은 안 됩니다.
문밖이 소란스러워진다.
밖에서 들리는 잡음이 침묵에 휩싸여 있는 에리카의 귀를 거슬리게 한다.
누구이기에 지금…
“들어가겠다.”
문이 활짝 열린다.
캄캄하던 방에 복도의 빛이 갑작스레 들이닥치게 되고 에리카와 그녀의 어머니에까지 그 불빛이 닿는다.
“결례를 범한 건 사과하겠다, 에리카.”
제 방문인 것처럼 당당하게 열어 놓고서는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입에 발린 사과.
에리카는 흘깃 남성을 바라보았고 그가 알아차리기 전에 눈물을 닦아 냈다.
힘없는 목소리가 에리카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초대는 취소했다고 편지를 보냈던 것 같은데.”
“받았다. 그 때문에 철딱서니 없는 것에게 실컷 놀림을 당하고 온 참이지.”
“그럼 왜 온 건데.”
에리카는 화를 내지 못했다.
그럴 힘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
바르간은 그런 에리카에게 말한다.
“필요했기에.”
“뭐…?”
에리카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오는 게 필요했기에 왔다.”
바르간이 말하는 문장에는 대상이 생략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에리카를 위한 것인지.
그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명시하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군.”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에리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리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며 그것을 보았다.
저번 극장을 갔을 때와 같이.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행동한다.
“잠시 걷지 않겠나. 약혼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