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1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16화(116/350)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한 알리시아.
그녀의 살던 마을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함이 없었다. 마을 입구 근처에 터를 잡은 떠돌이 개도, 마을을 관통해서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도, 그녀가 살던 낡은 나무 집도.
마치 어제 봤던 것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알리시아는 그녀의 집 앞에서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이 마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도 뒤로 전부 넘겨 정갈했다.
알리시아는 그에게 말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알리시아는 평소보다 침착하고 가라앉아 있다.
“아닙니다. 저는 바르간 님이 명령하신 대로 움직였을 뿐이니까요.”
남자 또한 살짝 고개를 숙인다.
알리시아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녀가 마을에 없었던 요 1년 동안.
슈겐하르츠가의 사용인인 남자가 알리시아의 양어머니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100골드라는 거금이 들어왔다는 게 소문난 상황이었기에 그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그는 기운이 없는 알리시아의 눈을 바라보더니 말한다.
“되레, 저는 사과해야만 합니다. 무력하게도. 당신의 어머니 건강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니까요.”
“아니요. …덕분에 지금까지 세상에 눈을 뜨고 계신 거라고 생각해요. 본래의 업도 아닌데, 신경 써 주신 거잖아요. 제가 어떻게 그 사과를 받을 수 있겠어요.”
알리시아가 팔려 가고 나서 몇 달 뒤.
그녀의 양어머니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원래부터 잔병치레가 잦은 그녀였으나, 이번에 찾아온 재난은 그녀를 꽉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최초에 단순 호위 임무를 맡았던 남자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가 보며 그녀의 양어머니를 도와주었으나 효과는 크지 못했다.
마치, 본인의 역할이 끝나 버린 것처럼.
그녀는 확실하게 죽음에 가까워져 갔다.
“알리시아 양.”
남자는 알리시아를 불렀다.
그 부름에 알리시아의 힘없는 고개가 올라갔고. 남자는 고민하다가.
“…아닙니다. 어머니를 혼자 오래 놔두면 좋지 않으니 이만 들어가도록 하죠.”
“네. …그래야죠.”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만 남성.
이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의 일이었기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다.
***
그로부터 며칠 동안.
알리시아는 지극정성이라는 말이 때깔을 잃어버릴 정도로.
정성을 다해 그녀의 양어머니를 모셨다.
자신을 위한 시간은 단 몇 분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항상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옆을 지키며 모든 수발을 들어 주었다.
종종 옆집에 살고 있는 야울 가족이 찾아와 제공해 주는 음식이나, 불을 피울 목재 등을 감사히 받으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
침대에 누워 있는 여성은 눈을 떴다.
조금 시선을 내리자 앙상한 가지 같은 그녀의 팔과 다리가 보인다.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억지로라도 호흡하는 걸 잊어버린다면 그대로 숨이 멎어 버려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기계적인 소리를 반복해서 숨을 고르고 있던 그녀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서서히 눈알을 돌렸다.
하얀 머리의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음이 거의 나질 않았다.
원래도 집안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더욱 능숙하다.
저렇게까지 조용히 집안일을 하는 건, 아마 죽어 가고 있는 자신을 신경 쓴 탓일 것이다.
참, 쟤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타인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게, 어리석을 정도로 선한 알리시아.
슈겐하르츠가에 팔린 그녀가 여기에 왔다는 건, 얼마 안 되는 휴일을 받았던 것일 텐데, 멍청하게도 여기에 와서 저러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
정말로. 어릴 때부터 변함이 없어 여전히 철부지야.
“아, 일어나셨네요. 목은 마르지 않으세요?”
여자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린 알리시아는 어느새 준비한 물을 내밀어 보인다.
여성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이를 거부했다.
대신 비틀어진 입술을 움직이며 건조한 어조로 말한다.
“…정신머리 없는 년.”
알리시아는 그녀의 발언에 놀라지 않는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연약한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여자는 알리시아의 그 웃음이 보기 싫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돌아가. 내 송장을 치는 것까지 보고 갈 셈이냐?”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 말씀 마세요는 얼어 죽을….”
목이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도, 여자는 신경질적이게 알리시아를 대한다.
반듯하게 누워 있던 자세를 움직이며 하얀 그녀가 보이지 않게 몸을 돌려 버린다.
“…….”
알리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먼지가 가라앉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무음.
두 사람은 있지만, 오가는 대화는 전혀 없다.
그렇게, 한 차례의 긴 정적이 끝없이 흘러가는 듯하다가.
“…저는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입을 떼기 시작하는 알리시아였다.
“고아였던 저를 거두어 주시고 지금까지 키워 주셨잖아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듣기 싫다.”
여자는 알리시아의 말이 이어지는 것을 끊어 낸다.
여전히 몸을 돌린 대로 유지한 채.
벽을 보면서 마른 입을 뻐끔거린다.
그녀의 분명 말은 알리시아에게 들렸으나, 당사자는 혼잣말을 하는 것과 같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린다.
“미쳐 버려도 단단히 미친년이지. …키워 줘? 뭘 키워 줬다는 거야. 몽둥이로 후려 패지 않은 걸 감사하다고 비아냥대는 거야 뭐야.”
알리시아가 10세에 그녀의 집으로 온 이후로부터.
알리시아에게 쉬는 날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집안일은 당연히 알리시아의 것이었고,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나누어 밭일을 시켰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일하고 있던 알리시아를 불러 뺨을 때리거나 폭언을 일삼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것 때문에 옆집의 오지랖 넓은 야울 가족과 대판 싸운 적도 많았었지.
고아였던 알리시아를 거두고 키워?
개소리!
선량한 마음으로, 불쌍한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서 데려온 게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신 대신 일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노동력을 원했을 뿐이다.
마침 알리시아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고. 군말 없이 일도 잘하니까.
‘…그래, 군말 없이.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알리시아, 얘는 어딘가 이상한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리니까. 대들기에는 성인과 아이라는 명확한 힘의 차이가 있으니까.
조금의 불만도,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는 건 분명 그런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알리시아의 몸이 커 가도.
그녀는 항상 어린 시절 그대로.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그런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뺨을 때린 손바닥의 통증이 진하게 남아 있음에도. 알리시아는 화를 내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는다.
“심지어는 팔아넘겼는데도… 이렇게 기어 들어와서는….”
머저리도 이런 머저리가 없다.
저 미소도 꼴 보기 싫고, 그녀 자체를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팔았으면 좀 가 버릴 것이지 왜 끝까지….
“너는 진짜 어리석은 년이야. 알리시아.”
“…….”
“어릴 때도, 지금도. 지금 하는 꼴 봐서는 앞으로도 그러고 살 것 같구나.”
“…….”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바보같이 살 거야. 세상이 우스운 줄 알아? 제발 정신을 차리란 말이야. 방금 전 말만 해도 그래. 내가… 내가….”
그녀는 절대로 몸을 돌리지 않는다.
알리시아가 지금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하도록, 최대한 숨긴다.
“내가 너한테 대체 뭘 해 줬다고….”
…나원 참.
이제 인생 좀 피나 했는데, 병들어 버려 가지곤.
나쁜 짓하면 벌 받는 거라는 말을 개무시하는게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알리시아 좀 덜 구박하고, 덜 부려 먹을걸.
“…….”
알리시아는 어떤 말을 하는 것 대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기댔다.
두 사람의 몸이 닿자, 온기가 공유되고 고동이 전해진다.
그녀도 알리시아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 정도로 지금의 공간은 조용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물기가 스며든, 그녀의 약해진 목구멍이 벌려진다.
“…알리시아.”
“…네, 어머니.”
사과의 의미라고 하기에는 형편없지만.
알리시아에게 어떤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는 전하고 싶었다.
“내가 죽으면 중앙 마룻바닥을 뜯어내.”
선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건 애초에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
“그걸로 네 인생을 살아.”
…….
알리시아의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간 것은 정확히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알리시아는 눈물을 쏟아 내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마지막을 위로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정리되고 나서 양어머니의 유언대로 마룻바닥을 뜯어낸다.
그곳에 있던 건.
자신을 넘긴 대가로 받았던.
100골드와 은화 몇 닢이었다.
금화는 처음 받았던 상태 그대로, 깨끗하여 조금의 더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
포트레트가의 저택.
밤의 호숫가에서, 바르간과 에리카의 대화를 나눈 일이 있고 나서 3일 후.
에리카는 긴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싶다.
슈겐하르츠가 당시 했던 말이 떠나질 않는다.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불쑥 떠올라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신을 괴롭힌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문장.
하지만, 에리카의 어머니는 심각한 불안증을 호소하는 상태.
해서, 에리카는 딱 ‘한 번만’.
정말 두 번 아니고, 이번 딱 한 번만 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를 믿는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양쪽 가문의 입장이나, 그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허튼짓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 맞아.
이건 슈겐하르츠를 믿는 게 아니다.
그를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그의 가문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무사히 완치가 되면 좋겠는데.’
에리카가 도움을 청하자, 바르간은 리리안스가 자고 있는 침실로 들어가 그녀에게 저주 마법을 걸었다.
적어도 그 자리에 함께해 과정을 지켜봤던 에리카의 시선에서 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저주 마법을 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효과는 다음 날부터 바로 나타났다.
바르간이 심은 가짜 목소리를 들은 에리카의 어머니 리리안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증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으니 이를 해결했기에 단번에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방증.
서서히 빈도를 줄여 가며 그녀에게서 목소리를 멀리하게 할 예정이다.
언젠가 목소리가 사라지더라도, 리리안스의 정신이 온전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바르간이 머물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그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포트레트가에 머물며 어머니의 상태를 봐주기로 했다.
그래서 객실용 방을 하나 빌려준 것이다.
그 방문이 조금 열려 있다.
어두운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그 틈새로 빛이 아닌, 어둠이 새어 나온다.
“…….”
그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이다.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 저 재수 없는 남자를 붙잡고 여러 가지를 실토하게 만들고 싶다.
그런다면…
그렇게 한다면.
지금 가슴에 자리 잡은 갑갑함도 조금은 내려가지 않을까.
에리카는 이유 모를 긴장감을 느끼며 조용하게 침을 삼켰다. 손잡이에 작고 하얀 손을 올리고 잠시 기다린다.
특정한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몸이 고장 난 것처럼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마음먹자.
에리카의 귀에 연약한 음성이 들렸다.
청초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소리. 하지만, 낯설거나 하지는 않다. 익숙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가냘픈 울음을 참으려 해도 참아 내지 못하고.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진한 감정을 보이고 있다.
에리카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기척을 숨기고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일반적인 수정구가 아니라, 비상용 통신을 하고 있는 탓인지 음질이 깨끗하진 않아도 뭐라고 하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바르간 도련님.
애달픈 목소리의 주인은 슈겐하르츠의 시종이자, 아카데미아에서 떠오르는 별인 알리시아였다.
그것을 제대로 확인하자 에리카는 자신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굳은 몸, 귀로 집중한다.
알리시아는 바르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마치, 생명의 은인 혹은 몇십 년은 만나지 못한 가족을 대하듯.
절절함이 넘친다.
그러다가 들었다. 듣고야 말았다.
⎯바르간 도련님. …보고 싶습니다.
알리시아는 바르간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단어는 시종의 것과는 조금 결이 달라, 적어도 지금.
이곳에 있는 에리카의 귀에는 한 명의 여자로서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
에리카는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문을 열기를 포기하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차분히 숨을 내쉰다. 고개를 돌린다.
그러곤.
⎯또각.
구둣발 소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