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24화(124/350)
등급전용으로 사용되는 경기장.
계단식 관중석에 몰려 있는 인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온 것인지, 연구회의 멤버가 아닌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한가운데.
차폐물이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전투만을 위해 준비된 넓은 원형경기장 위에 두 사람이 있다.
바르간과 카이만의 순위는 등급전을 치를 수 없을 정도의 차이라, 등급전이 아닌 모의 전투를 사유로 해당 공간을 빌렸다.
관객이 잔뜩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강자와 싸우기를 즐기는 카이만의 경우, 지금 이 자리의 모든 것들이 그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로 바르간을 노려봤다.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바르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살핀다.
장신의 키와 마법사임에도 극도로 단련된 신체.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게 저릿할 정도의 짙은 마나와 크기.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을 것만 같은, 태생이 다른 아우라!
지금부터 저 무지막지한 놈과 싸울 생각을 하니 오싹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환희가 솟구쳐 올랐다.
카이만은 바르간이 보여 줬던 행적을 두 눈으로 보았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떤 대단한 마법과 능력으로 적들을 짓밟았는지를 안다.
얼마나 압도적으로.
또한 처참하게 박살 냈는지를 두 눈깔에 새겼다.
바르간은 카이만이 태어나서 처음 본, 동 세대의 제일가는 강자. 우두머리.
지금까지의 짧은 삶을 살아오며, 뒷거리에서 깡패들과 생사결을 수도 없이 벌여 왔던 카이만이지만.
돼지의 멱을 딴 널찍한 칼날이 복부에 박혔던 때보다, 지금 단순히 준비 자세를 잡고 있는 이 순간에.
더 없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 그렇기에 상대할 가치가 있다.
저런 사람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들과 싸우기 위해 아카데미아에 온 것이다!
카이만은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혹여나 내가 실수로 당신의 팔을 잘라 버렸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진 마소.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싸웠을 뿐이오.”
재심사를 위한 전투라고는 해도, 진검을 들고 싸우는 싸움이다.
목검 가지고 설쳐 대는 애들 싸움에서도 크게 다치는 일이 종종 있는데, 희번뜩한 철붙이로 상대와 맞붙으면 응당 팔 한쪽 정도는 잘려 나갈 수 있다.
바르간은 그런 카이만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였고.
카이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부른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소.”
재심사를 위해, 본인에게 작은 상처라도 입힐 경우 통과시켜 주겠다고 말한 바르간은 추가적인 룰을 덧붙였다.
그는 ‘저주 마법’만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어디서 그런 괴상한 규칙을 알아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들었을 때. 아무리 그라고 해도 허풍이 아닌지 순간 의심이 들었다.
클래스전에서 보여 줬던 그 수많은 마물의 무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겠다니.
그러나, 바르간의 눈을 마주하자, 괜한 근거 없는 자신감에 그런 말을 뱉은 게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고.
다소 창피할 정도의 유리한 위치에서 전투를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긴장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
카이만의 검에 푸른 빛이 발하기 시작하자.
삐이이익⎯⎯⎯!
전투가 시작된다.
시끄러운 고음이 귓바퀴를 울리고.
카이만은 처음 자세 그대로 들이받기 위해 달려드려 한다.
그의 검술은 정확한 뿌리를 찾을 수 없는 날것. 하나 실전에서만큼은 제대로 먹혔었던.
지극히 실전용이자 대인용인 검이었다.
그 시퍼런 살기를 내뿜는 검이. 발자국과 함께 앞으로 한 걸음 터벅, 나아가더니.
‘어라…?’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탈그락 탈그락⎯.
다소 우스꽝스러운, 흡사 바나나 껍질을 밟아 넘어진 것처럼.
카이만의 몸뚱아리는 경기장의 바닥에 달라붙어 허우적거렸다. 꽉 쥐고 있는 검이 지면과 맞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감각이 괴랄하다.
이건 괴랄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뭐냐, 뭐냐 이건…!
몸이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고 하는 뜻이 아니다.
움직인다. 발가락도 까딱거리고 손에 쥐고 있는 검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이상하다.
카이만은 뛰어난 감각과 신체 능력으로 현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왼팔을 움직여 보려 하자, 오른 다리가 들썩인다.
왼 다리를 움직이려 하자, 오른팔이 반응한다.
시합이 시작됨과 동시에 바르간이 그에게 어떠한 저주 마법을 걸었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뭣 같은 경우가…!”
바닥에 들러붙은 카이만은 입을 달싹이며 연신 꿈틀거렸다.
저주 마법이 얼마나 성가시고 범용성이 큰지는 알고 있었으나 이런 일도 가능하단 말인가?!
하다못해, 신체에 직접적으로 접촉하여 발동시킨 것도 아니건만…!
아니면 굳이 접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자신과 저 남자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지금까지 본 놈들과는 격이 다르다!
신경의 감각을 빼앗겼음에도, 카이만은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 상태에 적응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발가락 근육의 감각을 확인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가능했고, 검의 날을 세우게 되었다.
처음의 기세보다 더욱 이를 갈며 전투의 의지를 보인다.
환희와 광기마저 보이는 카이만의 눈동자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투견과 같다.
이를 보던 바르간은 작게 감탄했다.
“오, 주둥이가 멋대로 놀아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낯선 경험일 텐데 이토록 빠르게 적응하다니.”
카이만이 바르간의 저주를 버텨 내고 있는 건, 술식을 파훼했다거나 그에 대응하는 마법을 발동한 게 아니다.
오로지 몸의 감각과 집념.
이 두 가지로 바뀌어 버린 신체의 균형을 이겨 낸다.
거친 입의 끝을 올려 보이며 카이만이 말한다.
“내 귀족 나리들처럼 곱게 자라지 못했어서, 괴상한 경험이라는 경험은 다 해 가지고 말이오. …그렇다고 해도 이런 개 같은 감각은 역시 처음이지만.”
“이대로 계속 이어 가도 괜찮겠느냐? 어차피 승부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일진대.”
“사내자식이 한 번 뱉은 걸 도로 입안에 집어넣어야 되겠소? 신경 쓰지 말고 제대로 붙기나 합시다.”
카이만의 성격이 단번에 드러나는 문장을 듣게 되자, 바르간은 헛웃음을 뱉었다.
“그 열의는 핀 정도가 되겠구나.”
그러자, 카이만의 눈살이 찌푸려지며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달떠졌던 기운이 조금 사그라드는 듯 보였다.
카이만은 입을 벌린다.
“이번 기회에 좀 묻겠소. 대체 왜 그런 얼간이를 감싸고 도는 것이오? 헤일리온의 멘티로도 추천한 거 같던데 당신같이 정신 똑바로 박혀 있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소.”
카이만은 연구회에 들어왔던 첫 순간부터 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능이라고는 코빼기도 없는 놈이 강해지겠다고 설쳐 대는 꼬락서니가 한심했다.
자고로 강해질 수 있는 놈과 없는 놈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자신은 강해질 수 있는 놈이고, 핀은 강해질 수 없는 놈이다.
“휴학해서 수행인지 뭔지를 한다는 것 같은데 그거 다 헛짓 거리오. 이만 정신 차리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편이 백번 낫지.”
카이만의 혀 끓는 소리에 바르간은 가볍게 대꾸한다.
“뭐, 일단 두고 보면 될 일이다. 녀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나도 모른다. 대성할 수도 있고, 파멸할 수도 있지.”
“그럼 왜…”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다시 덤벼들어 보거라. 시간을 끌어 적응도를 높이려는 수작은 이 정도 봐주었으면 되었다.”
카이만은 정곡을 찔렸다는 듯 웃어 젖히며 검 손잡이의 악력을 강하게 쥐었다.
대화를 이어 가면서도 카이만은 꾸준하게 몸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자연스러움을 되찾고 있었다.
전투를 가장 즐기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기만 하는 우책은 되도록 범하지 않는 인물이 카이만이다.
가끔가다 한 번씩 머리의 뚜껑이 열리면 그러는 일도 있긴 하나, 자신보다 강한 놈과 싸울 때에는 주변 환경이나 여건을 활용할 줄 알았다.
“여간 눈치가 아닌 듯하지만. 이미 늦었소!”
카이만은 한 마리의 말처럼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그대로 목을 베어 버릴 것처럼 내찌르는 검.
정갈하지 않은 굴곡진 오러가 견고해진다.
앞으로 몇 걸음만 더 가면 바르간에게 다다르게 되어…!
“이런 제기랄! 미쳐 버리겠네⎯!”
잘 나아가던 카이만의 몸이 돌연 홱 꺾여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감각을 뒤틀렸던 방금 전과 같은 수법으로 이번에는 연결시키는 부위가 달라졌다.
이래서야 겨우 적응한 이유가 없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꼴.
두 번 연속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쓰러지게 된 카이만.
그걸 지켜보던 관중의 한구석에서.
풉⎯.
하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소리 하나는 정확하게 카이만의 귓구멍에 박혔고. 안 그래도 타오르고 있던 승부욕에 기름을 부었다.
카이만은 이를 악물고는.
콱!
자빠져 있던 그는 간신히 검을 휘둘러 꽂았다.
자신의 다리에 말이다.
“큭…!”
어지간한 정도로 깊게 박힌 칼날을 억지로 더욱 쑤셔 대며 몸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실력으로 붙을 수 없다면 객기다.
그는 이빨을 보이며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아직 아무런 힘도 증명하지 못했는데 이대로 끝낼 순 없다.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정체되어 있을 수 없다.
바르간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그건 두 손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 상대를 바로 옆에 두고 보고 배우며 발전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자리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인정을 받아야 그의 곁에 서든 뭐든 할 수 있다.
자신은 다른 떨거지들과는 다르다.
강해질 수 있는 재능과 감각을 타고났으며, 그런 의지 또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 핀인지 뭔지 하는 허약한 놈보다 자신이 앞서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회는 자격을 갖춘 자가 가져야 비로소 빛이 나는 법이다!
허벅지에 꽂은 검을 빼내어 피를 털어 낸 카이만.
옷을 뚫고 핏물이 흘러나왔으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까짓 상처는 어차피 아카데미아의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낫는다.
그렇게 다시.
검을 들며 다리를 움직인다.
카이만의 집념과 고통은 바르간이 걸어 둔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피가 더욱 터져 나오기 전에 긋는다!
카이만은 그런 일념과 함께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는 감각을 지배당하는 것 없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바르간에게 다가가는 검.
그대로 목을 베어 버릴 듯 무섭게 당겨지더니.
바스스⎯.
너무나도 가볍게.
그의 손에 잡혀 검게 타들어 갔다.
재가 되어 버린 것처럼 오러를 뒤덮고 있는 날이 공중으로 흩어져 간다.
순간, 얼을 타지 않을 수 없다.
검사도 아닌 자가 달려드는 검날의 궤적을 정확히 확인한 것도 어처구니없고, 촛불을 끄듯 가볍게 소멸시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운동에너지가 격돌해야 하는 지점을 잃은 카이만의 몸은 그대로 옆으로 떨어지는 양상이 되었다.
카이만의 다리는 이를 지탱하기 위해 내뻗어진다.
그러나, 몸이 쓰러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의 두 다리가 아니었다.
“제법 시간을 소모하였으니 이만 끝내겠다. 너도 이 정도 했으면 스스로 깨달았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르간은 쓰러질 뻔한 카이만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잡아 매달았다.
치욕스럽다면 한없이 치욕스러운 모습.
카이만이 그러한 감정을 채 알기도 전에.
바르간의 자유로운 한 손이 카이만의 눈앞에 다가온다.
그의 손가락은 잔뜩 구부러져 장전을 마쳤다.
“한숨 자고 일어나라.”
타앙⎯⎯!!
화약 무기가 터져 나간 듯한 소리가 경기장 내부를 울렸고. 그의 이마는 붉게 물든 것을 넘어 피가 터져 나왔다.
카이만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이후, 바르간이 모두에게 재시험을 치르면 이와 같이 된다는 걸 언급하는 듯했으나, 카이만은 그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없었다.
***
잠깐의 해프닝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와 알리시아는 잠시 미뤄 둔 약속의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카이만은 그대로 기절한 채 진료실로 옮겨졌으며, 모두에게는 훈련에 힘쓰도록 말해 두었다.
“…….”
어쩐지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알리시아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있다.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며 괜히 질끈 눈을 감기도 한다.
또 별 시답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환기시킬 겸 말을 던졌다.
“이번 재시험을 통해 깨달은 점이 무엇이냐.”
“예?!”
“…뭘 그리 놀라는 거지?”
“아, 별게 아닙니다! 그… 깨달은 점… 깨달은 점… 깨달은 점이라면….”
그렇게 중얼거리던 알리시아는 조심스레 얼굴을 들었다. 말로 꺼내도 되는지 눈치를 보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연다.
“도련님께서 왜 그동안 세게 때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지 알게 되었… 앗!”
“멍청하긴! 카이만의 감각을 엉망으로 만든 저주 마법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일부러 저주 마법을 택하였거늘 너는 엉뚱한 것에 집중하고 있었구나!”
“아앗!”
여름방학 동안 밀린 숙제를 하듯.
밀려 있던 딱밤을 최근에 연이어 맞고 있는 중인 알리시아는 이마를 매만지며 눈물이 차오르려는 것을 참았다.
그래도 카이만에게 가했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봐서인지 아프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제법 조용히 받아들일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왕복을 하자,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고.
“늦었잖아. 슈겐하르츠.”
“괜찮아요 에리카. 오늘 남은 일정이 이것 말고는 없잖아요.”
전경이 탁 트인 드넓은 공원에 에리카와 디피엘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학생회장 선거. 1차 선출의 주제는 하늘.
비록 그 종목이나 내용이 우리에게까지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본래의 전개를 알고 있으니 나름의 대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혹시 모를 유형 변화까지 고려해서 철저하게 훈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