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25화(125/350)
1차 선출은 선거인단과 해당 후보가 한 팀이 되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이다.
세 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은 다리의 역할을 하고, 후보는 주먹의 역할을 맡는다.
원작에서도 1차 선출의 무대는 하늘이었는데.
마력으로 특수 가공을 한 널찍한 판때기 같은 것에 네 명이 올라타, 하늘 끝 지점에 있는 결승점까지 도달하는 방식의 레이스였다.
선거인단 셋은 발판의 조종 구역을 맡아야 하고, 해당 호송 임무를 맡아 전투를 벌이는 게 후보.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마나의 출력을 맞추고 ‘공명’을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합이 맞지 않더라도 하늘을 날아오르던 발판은 기울어지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번 종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엔진이라 볼 수 있는 팀원들의 수준과, 합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번 경쟁에서는 훈련이 필수이기에 모두를 불러내어 현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인데….
주변을 감싸고 있는 돔 형태의 검은 막.
내 소중한 사역마인 어둑이와 공급이가 이중융합을 해서 만들어 낸 색다른 형태이다.
내면이 이렇듯, 밖에서 보더라도 지면에 박혀 있는 검은 반구가 수상쩍기 그지없겠으나 상관없다.
어둑이의 암막과 크기 조절, 공급이의 마나 흡수 특징을 통해 지금 이 안은 어지간한 경지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 확인이 불가하다.
어차피, 후보나 선거인단이 된 순간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정보원들은 많이 있다. 비밀스럽게 어디 한 곳에 모인다고 한들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발 빠르게 훈련을 이어 가는 게 제일이다. 숨든 숨지 않든 똑같은 결과라면 말이다.
화악⎯.
어둠으로 가득할 것 같은 돔의 안의 중심에서 푸른 마나의 기운이 발광한다.
주위를 돛단배처럼 여유 있게 맴도는 마나는 고적한 새벽과 같아 운치마저 느껴진다.
이는 알리시아와 에리카의 마나였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두 눈을 감고 있다.
서로의 마나가 소통하며 합을 이루며 넘실넘실 춤춘다.
나와 디피엘리아는 그 기운을 느꼈다.
밝기는 천천히 줄어들었다가, 커졌다가를 반복한다.
그 새파란 반딧불에서 두 사람의 고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빛을 받고 있는, 디피엘리아의 어깨 위에 있는 사역마가 총, 뛰어 작은 몸을 돌린다. 그녀의 고개도 함께하며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합은 어떤 거 같아요?”
디피엘리아는 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스레 나에게 물었다.
이에 나 역시 한결 풀이 꺾인,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고.
천천히 대답하였다.
“상상 이상으로 형편없다.”
쓰레기 같다고 할 뻔한 것을 중화하여 표현한 문장.
장담하지.
이대로 선출에 나서면 선거고 뭐고 광탈이다.
***
예상했던 수치를 가볍게 넘기며, 에리카와 알리시아의 마나 성향이 극도로 맞지 않는다.
두 날개 역할을 맡아야 하는 그녀들의 합이 얼추 맞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제대로 맞춰 보니 더욱 심각하다.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건데?”
직설적으로 사실을 꽂아 넣자.
에리카는 뾰로통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알리시아 역시 궁금했는지 살며시 얼굴을 돌린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마나의 흐름이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어나가 결국 에너지가 0으로 수렴하듯. 다른 두 형태의 마나가 서로를 붙잡고 있다.
붙잡았으면 합쳐지기라도 하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다.
“심지어 융화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본인의 색을 드러낸다.”
두 색의 물감이 만났으면 새로운 색깔을 보여야 하는데 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억지로 저은 것처럼 분리되어 있다.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도, 두 사람은 개인들의 고유성을 놓을 생각이 없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타고나길 다르게 부여된 것이다.
내 입으로부터 다시금 현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듣게 되자, 에리카의 기세는 줄어들었고 입도 닫히게 되었다.
알리시아와 손을 잡고 마나를 공명한 순간부터,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재확인한 것은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리카는 힘없이 탓하듯 말한다.
“그럼 왜 우리를 고른 건데….”
내가 그녀와 알리시아를 선거인단으로 넣은 것은 마땅한 이유가 있음이라 본 모양이다.
“약혼자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높아지는구나.”
“…슈겐하르츠. 지금이 그런 장난할 때야?”
“흠, 그래. 염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나는 에리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린 에리카. 고양이 같은 눈매로 아무런 말 없이 내민 손을 바라본다.
몸을 뒤로 빼며 질색을 표할 줄 알았더니 그 정도는 아니다.
“걱정하지 말거라 에리카. 이건 장난이나 수작질 따위가 아니다.”
“그럼?”
“어차피 너와 알리시아의 마나를 중심에서 활용하는 역할 또한 나의 임무이니 그 연습이다.”
다른 한 손은 알리시아를 향해 뻗었다.
알리시아는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실전에서는 이렇게 신체를 접촉하여 직접적으로 마나를 공명하지는 않겠으나, 보다 수월하게 연습하기 위해 일정 부분 신체를 맞닿을 필요가 있다.
“…….”
에리카의 눈동자가 한동안 가만히 한 곳을 바라보더니.
“…대체 몇 번째야 이게.”
작은 손을 올렸다.
눈매는 지금의 상황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낸다.
“시작해라.”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훈련을 재개했다.
에리카의 마력과 알리시아의 마력이 손을 타고 들어온다. 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두 마력이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다.
가슴의 정중앙에서 지나치게 다른.
양과 음을 연상시킬 정도의 극단적인 두 마력이 맞부딪히더니.
두 마리 용의 형상을 하고 몸을 합하여 용오름이 된다.
그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조정하며 연결시킨다.
그러자, 각자의 고유성을 잃지 않던 두 맹수의 형상이 찰흙과 같이 엉겨 붙기 시작한다.
나는 하나가 되려는 형상을 손으로 빗듯 정성스레 다듬었다.
이들은 극도로 다르지만, 동시에 둘 다 극한으로 달랐기에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발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커다란 에너지가 합해지고는 비로소 온전하게 일체화된다.
나는 그 마력에 살포시 겉옷을, 즉 내 마력을 덮어 주었다.
그랬더니.
콰아앙⎯⎯!
거대한 울림이 돔 안에 터져 나갔다.
진동과 함께 빠져나간 마력.
아직 익숙하지 않아, 제법 많은 양의 마나가 대기 중으로 소실되었으나. 그랬음에도 그 원천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감탄할 정도의 마력이에요….”
디피엘리아의 감긴 눈이 떠지며 비치지 않을 이 마력을 눈동자에 담으려 했다.
생생한 반응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이게 내가 지금의 멤버로 나선 까닭이다.”
균형? 당연히 중요하다.
합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고 해도 제어할 수 없고 창고에 박혀 있는 검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카데미아 내 공중전의 최강자라고 부를 만한 클레멘스.
아무리 균형이 잡히더라도 어지간한 힘으로는 그녀를 대적할 수 없다.
그녀를 1차 선출에서 상대할 방책은 단 하나.
「압도적인 출력」
이번 선출에서 나올 하늘을 나는 도구는 나 혼자만의 마나로 작동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에리카와 알리시아의 힘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단을 사용해 클레멘스를 상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조금 불안하더라도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출력으로 날아올라야지.
서로 다른 에리카와 알리시아의 마력은 오히려, 너무나 다르기에 잘만 조절하면 보다 높은 출력을 발현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는 순수한 마나라 그렇지 이게 원소와 같은 형태로 변화할 경우에는 또 다른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는 2차 선출에서 사용할 것인데, 1차를 무사히 마치면 2차는 통과한 것이나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걸요. 실전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할까요?”
디피엘리아는 지당한 의문을 품었고.
“단기간에 둘의 가능성을 끌어올릴 선생들을 알고 있다.”
내 말에 성녀가 묻는다.
“그게 누구죠?”
디피엘리아와 함께 알리시아, 에리카의 눈이 나를 향한다. 나는 일종의 기대 어린 시선에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지금까지 별 활약도 없었던 선배들.”
아르볼 푸르탈의 멤버.
4학년 알렉세리아와, 4학년 브락키움.
이들도 슬슬 제대로 써먹을 시기가 왔다.
***
“……그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역시 그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 같군. 고생 많았어.”
아직 해가 하늘에 걸려 있음에도 그림자 진 방 안은 제법 어두웠다.
고급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은 이 정도의 그림자로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옆에 서 있다가 물러선, 동급생의 경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미소 지었다.
같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격조가 묻어났다.
그녀,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가 말한다.
“이번 신입생들은 괄목할 만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아카데미아의 앞날이 창창한 듯하여 안도의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녀는 돌아오는 대답 없이 혼자서 말하기를 이어 간다.
흥미와 기대감.
동시에 작게 서린 긴장감은 그녀의 흥을 돋아 올린다.
“특히 슈겐하르츠가의 삼남은 물건이죠. 아까운 일입니다. 그가 제 선거인단이 되었다면 비탈길을 걷게 될 일도 없을 텐데요.”
작게 미소 지었던 클레멘스는 얼굴을 들면서 동시에 웃음의 흔적을 지웠다.
진하고 강렬한 붉은 눈동자의 형태가 변한다.
평온했던 눈.
단풍보다도 색이 확고했던 그것에 차디찬 바람의 끄나풀이 불어왔고. 잎은 떨어진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듯하다.
그녀의 맞은편에 어떤 남성이 앉아 있다.
고개를 들 수 없어 푹 숙이고 있는 남자의 몸이 떨린다.
꽉 쥔 펜은 바쁘게 움직이며 종이 위에 그어진다.
빼곡히 적힌 활자들의 온점은 그의 이름이었다.
“크…흑…!”
그는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 내보낼 수 없다.
그의 안에서 고이 놓아둔 채 썩혀야만 한다.
클레멘스는 작성이 완료된 종이를 홱 가져와 살폈다.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다.
하나, 클레멘스는 아까 전처럼 웃는 일은 없었고. 되레 미천한 생물을 보듯 싸늘한 눈빛을 보낼 뿐이다.
확인을 마친 클레멘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 멀어지려는 그녀의 손을 덜컥 잡는다. 그러고는 떨리는 입을 열어 보인다.
“클레멘스. 이번 일에 대해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녀는 잠시, 그에게 차가운 눈길을 주더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레제크 선배님.”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듯, 간곡한 그의 붙잡음을 흩뿌려 버린다.
여전히 존댓말을 사용하는 건 선배를 대하는 그녀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신성한 선거에서 부정을 저지른, 당신과 그 교수에게 벌이 내려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3학년, 이번 차기 학생회장 선거의 유력 후보자 중 하나였던 레제크.
그는 불안한 동공으로 지극히 자신을 하찮게 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연이어 말했다.
클레멘스는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혐오의 감정을 씻어 내고,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보인다.
“저 역시 ‘하늘’은 놓치고 싶지 않은 무대이니까요.”
⎯아, 이젠 ‘저만이’겠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텁텁한 조소를 남기고 떠나간 클레멘스.
그녀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종이 일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인, 학생회장 선거 후보 3학년 레제크는 이번 선거를 포기하고, 2학년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