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26화(126/350)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바르간과 알리시아.
두 사람은 각자 9월의 등급전에서 무사히 카티아를 획득한 뒤 연구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금일은 안식일이라 강의도 없었으나, 연구회의 활동 일정을 잡아 두었다.
그렇게 잘 손질된 아카데미아의 긴 복도를 걷는다.
⎯또각.
일정하게 울리는 구둣발 소리.
어린 시절부터 사소한 예절 하나하나를 교육받아 온 바르간과, 단기간이지만 빠르게 격식을 체화시킨 알리시아.
빠른 걸음이지만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
비단길 위를 걷듯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동작이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
그러나, 곧 이 고고함을 방해하는 외부의 잡음이 알리시아에게 들렸다.
⎯레제크 선배가 기권했다면서?
레제크.
다렉 연합국 소속인 그는 이번 학생회장 선거의 유력 후보였던 인물이었다.
⎯응, 게다가 클레멘스 선배를 적극 밀어주겠다나 봐.
⎯클레멘스 선배를? 와… 세상에 이런 일도 생기네.
레제크가 클레멘스를 밀어주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이상, 레제크를 지지해 주던 거대한 세력이 클레멘스에게 이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당연히, 2차 선출이 끝나고 있을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애써 무시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잡음은 귓속으로 들어왔고, 알리시아를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이번 선거는 끝났네.
⎯그러니까. 사실상 클레멘스 선배가 학생회장이 되는 건 확정이야.
알리시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알리시아가 이렇듯 또렷하게 들었는데 바르간이 듣지 못할 리 없었다.
바르간의 얼굴은 소음이 나는 쪽을 향하고 있다.
⎯다른 후보들의 꼴이 우습게 되겠어. 나였으면 창피를 당하기 전에 사퇴하고…
⎯야, 야야! 쉿! 쉬이잇!
뒤늦게 바르간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은 황급히 대화를 숨기며 어색하게 웃으며 모른 척을 했다. 그러고는 금세 자리를 피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알리시아는 바르간을 무시하는 것 같은 그들의 발언에 화가 났지만 이러한 일이 있는 경우, 대개 그녀의 주인이 직접 나서서… 음?
바르간의 눈치를 살피던 알리시아는 그의 표정이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항시 바르간의 수발을 들며 그를 우선시하는 알리시아가 아니면 모를 정도의 작은 변화.
그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험한 말을 뱉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고, 담담하게 가던 길을 갈 뿐이다.
하나,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재밌는 현상을 본 것처럼 살짝 웃음을 보이는 바르간의 움직임을, 알리시아는 읽어 냈다.
예상했던 반응과 정반대.
그를 의심하는 건 결코 아니나,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상황임이 확실한데 이렇듯 여유롭다.
이 또한, 그가 예상한 과정의 하나인가.
그게 아니면, 새롭게 맞이한 국면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즐거움인가.
배경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알리시아는 이에 대해 고민해 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 알리시아가 할 일은 가만히 그를 믿고 따르는 것.
그게 시종으로서 할 역할이었다.
…그래, 시종.
슈겐하르츠가의 사용인 알리시아.
문뜩 그녀의 머릿속 한구석에 밀어 두었던 것이 떠오른다.
100골드.
그녀의 양어머니가 한 푼도 쓰지 않고 숨겨 두었던 돈.
이는 바르간이 알리시아를 구입한 액수이기도 하였으며, 알리시아가 슈겐하르츠에 귀속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알리시아는 아직 100골드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바르간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그녀의 마음도, 그의 생각도.
만약… 이 돈을 그녀의 주인에게 돌려준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되는 걸까.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연구실의 앞에 도착했다.
먹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을 떨쳐 낸 뒤 움직인다.
지금은 아직 이에 대해 언급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나중의 일로 미뤄 두도록 하자.
알리시아는 살짝 뛴 걸음으로 먼저 문 앞에 도착해 바르간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그러자.
쿵⎯!
“대장으로 모시겠수다! 개처럼 굴려도 되고, 노예처럼 막 대해도 되니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어제, 바르간에게 재심사를 요청해서 혼쭐이 난 카이만.
그가 거하게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주변에서는 에밀리나 다른 인물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는 것 따위를 모른다.
“난 당신보다 강해지고 싶소!”
***
“이제 슬슬 내가 왜 갑자기 불렸는지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는 우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리암 이 녀석을 연구실로 직접 부르는 일이 생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적당한 사안이 생겼으니 필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내가 귀찮았던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손가락으로 카이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의 스승이 되어라.”
“…뭐?”
“대장! 그건 좀 아니지 않소! 나는 대장에게 가르침을 구한 것이지 다른 놈들에게 부탁한 게 아니오!”
카이만이 길길이 날뛰며 내가 생각해낸 안을 부정한다.
…그나저나, 누가 대장이라는 건지. 루비드 마을의 꼬맹이들도 아니고.
“나는 마법사이지 검사가 아니다.”
“그럼 마법을 가르쳐 주면 될 것이 아니오!”
“네놈은 검사가 아니더냐.”
“그렇다면 나는 오늘부로 마검사가 되겠소.”
갑자기 골이 아파진다.
리암이 알리시아에게 했었던 만행 중 하나가 도중에 직업을 변경시킨 것인데, 지금 이 녀석은 나보고 우행을 해 달라 부탁한다.
카이만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 대략적인 정보만 파악하고 있었는데, 검이 아니라 강함 자체에 대한 갈망이 그의 원천인 듯하다.
거기에 전투가 덧붙여져 있는 셈이고.
재능은 아르볼 프루탈의 평균을 우회하고 집념이 보이기에 끌고 가려는 것인데 이렇게 나오면 떨구고 싶어진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난 뒤, 턱 끝으로 리암을 가리켰다.
“이 녀석을 스승이라고 표현했다만, 사실 서로 무를 갈고닦을 수 있게 도와주는 파트너에 가깝다.”
“그런 것보다 나는 대장의 가르침을 받아 마…!”
“마검사가 되겠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지껄인다면 지금 당장 연구회에서 내쫓을 것이다.”
“큼…!”
카이만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못마땅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곤란하오.”
그렇게 겨우 좀 자리가 진정되나 했는데, 이번에는 리암 녀석이 말썽이다.
“잠깐만. 왜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 건데? 나는 아르볼 프루탈 소속도 아니잖아.”
지금 여기서 그걸 언급하는 건, 내가 연구회에 넣어 주지 않았다는 점을 탓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최근에 내 도움이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니지. 네 도움이 아니라 조에 도움이 되겠다고 말한 거였잖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곧 조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런 억지가…!”
나는 손을 뻗어 리암의 입이 더 이상 벌어지는 것을 막아 세웠다.
뭔 이렇게 불만이 항상 많은지.
제한테도 좋은 일이니까 가만히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은가.
“카이만의 전투 감각은 아카데미아에서도 수준급이다. 직접 상대해 보니 제대로 알겠더군. 재능만으로 본다면 레온과 비견된다.”
입학성적 5위였던 레온.
그 짐승 같은 남자와 동등할 정도의 잠재력.
둘 다 신체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나, 센스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
카이만을 잘만 키운다면 레온이 두 마리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리암. 네 녀석도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리암은 상태창으로만 인해 강해지다가, 최근에야 몸으로 직접 깨닫기 시작하고 있는 중.
카이만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혹은 직접 상대하면서.
본능적으로 우수한 그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발전하지를 체감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가르침을 주면서 되레 배우는 것이다.
“…….”
리암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지는 듯한 눈을 보였다. 그는 내가 빙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전개를 뒤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존 바르간에 비해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해져 있는지는 그가 제일 잘 느끼고 있을 터.
또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쪽으로 전개를 이끌고 있다.
이젠 녀석의 눈에도, 나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는 소리지. 나도 그와 같은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물론, 같은 세상이라고 느끼는 건 녀석의 착각이지만.
리암은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이럴 거면 나를 그냥 아르볼 프루탈에 넣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싫다.”
“대체 왜?”
“네놈을 연구회에서까지 보는 고통을 참아 내면서 얻어 낼 게 없다.”
밖에다 방생하면서 키우는 것과 결과가 같거나 조금 못 미친다면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지.
이런 내 대답에 이번에는 리암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알겠어.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볼게.”
결국 승낙한다.
어차피 이렇게 나올 거, 처음부터 고분고분 나왔다면 시간 낭비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찝찝한 표정을 짓던 리암은 입맛을 다시며 뒷말을 덧붙였다.
“대신, 나중에 시간 좀 내 줘.”
“시간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
빙의와 이후 전개에 관련된 사항인가.
그러고 보니, 처음에 녀석이 따로 얘기하자고 했던 것을 거절했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평성에는 맞지 않다만, 시간이 빈다면 자리를 마련하마.”
“그거 참 고맙네.”
대화가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이자, 카이만이 끼어들어 온다.
“거기 리암인가 리안인가 하는 뭐시기! 나는 댁을 대장으로 부를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알아 두쇼!”
“나도 대장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은데….”
…….
우리 테이블이 대화가 끝나고, 나는 살짝 몸을 뒤로 빼 다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알리시아가 있는 곳이다.
그녀는 알렉세리아와 브락키움과 함께 앉아 있다.
조금 관심을 주니 대충 어떤 말이 오가는지가 들렸다.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브락키움의 것이다.
“사정은 들었다. 도와주는 것도 어렵지 않지.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겠나.”
알리시아와 에리카의 마나 공명 훈련에 관한 내용이었다.
브락키움과 알렉세리아는 마나의 공명도가 아주 높은 한 쌍이다.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마나는 알리시아와 에리카처럼 성향이 아주 다른데, 이 점을 극복하고 높은 파괴력을 보였던 경험이 있다.
실로 지금의 상황에 적합한 인물들이다.
알리시아는 굳게 결심한 목소리로 답한다.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로 자신의 입장 표명을 끝낸다.
알리시아의 의지는 언제나 굳건하다.
알리시아의 눈동자와 마주하던 브락키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렉세리아를 바라본다.
“지하의 그걸 대여해야겠어.”
“지하를? 으음… 하긴. 그게 가장 빠르게 공명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 하지만….”
망설여 하는 알렉세리아가 흔들리지 않도록, 알리시아가 바로잡아 주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바르간 도련님의 도움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진심이 담겨 있는 문장으로.
***
“도, 도련님… 왜 여기에 이 생물들이 있는 겁니까…?”
굳은 의지를 보이던 알리시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린다.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툭 건들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다.
나는 대충 답해 보였다.
“아, 그거야 아카데미아에서 먼저 제작한 시설을 슈겐하르츠가에서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그러하군요…”
아카데미아의 지하에 마련된 한 공간.
웬만해서는, 아니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 어둑한 장소는 퀴퀴한 냄새마저 나 불쾌하기 짝이 없다.
“…….”
연습을 한다는 말에 안식일임에도 찾아온 에리카의 안색 역시 좋지 않다. 알리시아처럼 울먹거리지는 않아도 속이 좋지 않은 사람처럼 그늘져 있다.
에리카는 깊게 파여 있는 구덩이의 앞까지 다가가 고개를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글바글.
바스락바스락⎯.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다.
손으로 입가를 막으며 무언가 올라올 것을 참아 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어서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는데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나는 약혼녀의 눈길을 피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 훈련에는 알렉세리아가 참석하지 않았다. 브락키움 혼자서 그녀들을 도울 것이다.
브락키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잡벌레 구덩이는 마나 공명 훈련에 도움이 된다.”
바X벌레와 닮았으나 주둥이가 더욱 괴상하고 크기 역시 거대한 벌레.
모든 걸 뜯어먹어 마나 역시 주식 중 하나로 삼는 잡벌레의 구덩이가 이번 훈련의 장소이다.
브락키움은 별다른 반응 없이 말을 이었다.
“공명하지 않은 마나는 강제로 확산시켜 잡벌레가 먹지 못하게 할 거다.”
그 말은 즉, 알리시아와 에리카가 공명한 마나만이 잡벌레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패가 된다는 것.
나는 천천히 그녀들의 근처로 다가갔다.
실로 마음이 아프고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읏.”
“뭐야…. 왜 다가오는 건데 슈겐하르츠.”
자신의 앞날을 알고 있는 알리시아는 질끈 두 눈을 감았고, 에리카는 막아 세우려 한다.
나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별 방도가 있겠는가.
모두가 바라는 꿈같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작은 희생일 뿐이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어…!”
“미안하구나, 에리카. 이러한 방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 다오.”
“잠깐!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는 없는⎯”
⎯툭.
이번에는 발이 아니라, 두 손으로 두 여인을 밀었고.
““까야아아아⎯⎯⎯!””
온갖 감정이 섞인 비명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마나의 폭풍.
역시 예나 지금이나 마나의 기초를 다지기에는 잡벌레 구덩이가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