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29화(129/350)
아카데미아의 전교생, 그리고 거의 모든 관계자가 모인 경기장.
천장이 뚫려 있는 넓은 돔.
수두룩한 객석.
커다란 와이드 스크린과 같은 영상이 허공을 떠다닌다.
이곳은 선거를 위한 장소라기보단, 경기를 하는 경기장, 행사장의 모습과 가까웠다.
학생들은 각자 지지하는 팀의 응원봉을 들고 있고, 실컷 떠들어 대느라 바쁘다.
모든 후보자들에게는 고유의 색이 지정되었고,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색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붉은 물결이 파도를 친다.
종종 회색이나, 황금 불빛 등도 보이기는 했으나 한눈에 봐도 붉은 빛의 수가 훨씬 많다.
유력 후보였던 레제크 세력을 상당수 흡수한 이후, 클레멘스가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린 지 오래.
안 그래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붉은 머리의 여인은 장악을 끝마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은색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건 회색 불빛.’
객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암은 전체적으로 살펴보며 현 지지율을 파악했다.
응원봉은 단순한 장난감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으나, 한눈에 학생들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이기도 했다.
대략적으로 봤을 때, 붉은 응원봉이 65%.
회색 응원봉이 20%.
금색 응원봉이 10%.
그 외 7가지 색이 전부 해서 5%.
회색 응원봉은 디피엘리아의 머리칼을 의미하는 색.
그녀를 지지하는 바르간이 뒤르테문드에서 보인 업적이나 지금까지 보인 행보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성적이다.
하나, 상대가 용사랭킹 1위의 유일한 자손이고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슈겐하르츠 역시 대단한 가문이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카데미아는 용사를 육성시키는 기관.
당연히 현역 1위의 용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여인은 학생들의 심리를 자극하기에는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클레멘스는 뒷배경에 못지않은 성적과 실력,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바르간은 후보자가 아닌 선거인단이다.
그나마, 포기를 선언했던 레제크가 다렉 연합국 소속이어서 클레멘스를 지지하지 않는 연합국의 표가 같은 연합국인 디피엘리아에게 향한 경향이 있었고.
디피엘리아가 성녀로서의 입지를 갖추고 있어 이 정도의 지지율을 획득하는 게 가능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격차인 거지만….’
리암은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거뒀다.
잠시 후면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울릴 것이다.
디피엘리아는… 아니, 바르간은 이번 1차 선출이 끝나고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단순히 무력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라서 더 알 수 없다.
생각에 잠겨 있는 리암에게 옆자리의 다른 붉은 머리 여성이 말을 걸었다.
“리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네가 선거 나가는 줄 알겠다.”
“응?”
“왜 이렇게 진지하게 있냐는 거야. 총장님도 말씀하셨잖아. 즐기라고.”
장난스러운 에밀리의 말투.
에밀리는 소꿉친구인 리암이 몇 달 동안이나 웃지 않았던 일을 경험했다. 그런 리암을 지켜보던 에밀리로서도 힘들었던 때이기도 하다.
에밀리는 더는 리암의 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시범을 보이듯, 이빨이 전부 드러날 정도로 밝게 웃는다.
“이번 선거는 우리가 힘 쓸 일도 없으니까. 순수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잖아.”
“…그렇긴 하지.”
리암은 지금의 상황을 곰곰이 돌이켜 보며 옅게 웃었고.
그의 웃음을 본 에밀리가 기뻐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어 가려고 하는 순간.
“⎯굳이 이런 거 볼 필요가 있나. 차라리 검을 더 휘두르는 게 훨씬 나을 텐데.”
성대가 갈려 나간 걸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팔짱을 낀 채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하는 카이만.
그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강제로 끝내 버리자, 옆에서 몰래 듣고 있던 프리다가 여우 꼬리를 세우며 경멸한다.
“눈치라는 게 없어? 여기서 너같이 사람 신경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리면 흐름이 끊기잖아.”
“아니, 그럼 볼 필요 없는 걸 볼 필요 없다 그러지 뭐라고 한담. 그리고 댁 목소리는 퍽이나 옥구슬 같아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쯧. 말하는 거 하고는. 이래서 깡패 새끼들은 싫은 건데. 왜 이런 놈이 여기 앉아 가지고.”
프리다가 재수 없다는 식으로 혀를 찼으나.
카이만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 프리다의 반응에 대해 대꾸했다.
“댁은 대장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더니, 없으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구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둘 다 나야. 근데 어쩔 거야?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자신의 이중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프리다의 말에 카이만은 헛웃음을 뱉고 나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세상에는 희한한 인간 군상이 다 있고, 이를 봐 왔던 그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받아들였다.
그러자, 둘의 대화를 졸지에 듣게 된 리암이 고개를 돌려 카이만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경기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 그건 또 뻔한 소리로구만.”
카이만은 당연한 이치를 읊듯 말했다.
“대장이 들어간 팀이 우승할 게 뻔한데 뭐 하러 보고 있냔 말이오. 실제 칼싸움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카이만은 바르간의 팀이 승리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동안 그와 어울리고 있는 리암은 그의 성향을 모르지 않아, 그런 말을 하는 카이만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우승이라.”
조용히 그 단어를 곱씹게 되었다.
“왜 그러는 거요? 설마, 그토록 실컷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으면서 대장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
리암은 카이만의 뼈가 박힌 말에 은근히 내상을 입으며 고심하던 답을 뱉는다.
“바르간이 원하는 게 정말 우승일까…?”
“그건 또 뭔 해괴한 말이래. 당연히 1등을 해야지 그럼 뭘 바라오?”
“글쎄…. 지금이 선거였다면 그렇겠지만…….”
리암을 말꼬리를 흘렸다.
선거의 일부분이기는 해도 지금부터 펼쳐질 경기는 선출.
우승을 한다고 해도 크게 지지율의 지각변동이 일지 않을 지금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골인하는 걸 목표로 할까?
…뭔가 아닐 거 같단 말이지.
『아, 아아. 안내드립니다. 여러분~!』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린다.
동시에 폭죽이 오르며, 마법으로 만들어진 비둘기 떼가 하늘 위로 날아올라 반짝거리는 마력을 흩뿌린다.
세상이 반짝거린다. 분명 이 연출만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마력을 사용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렇게.
선거치고는 상당히 성대한 차기 학생회장 1차 선출이 시작되려 했다.
***
입장을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
밖에서 경기의 진행을 맡은 파울라의 맹랑한 목소리가 확성되어 들린다.
진행자로 저런 인물을 뽑았다는 데에서 아카데미아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우려치고는 제법 매끄럽게 멘트를 이어 가고 있다.
나는 함께 같은 배를 탄 팀원들을 보고 미리 언급해 두었던 방안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했고, 디피엘리아는 조금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성녀. 정신 차려라. 이건 반칙도 아닐뿐더러 치사한 꼼수도 아니다. 이 정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면 어차피 떨어질 운명인 것이지.”
내 말에 에리카는 내키지만은 않지만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알리시아는 앞으로 내민 양손을 불끈 쥐며 각오를 내비친다.
알리시아와 에리카에게도 가볍게 할 말을 건네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 우리 쪽으로 진한 붉은 머리의 여성이 걸어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당당했다.
“잘 부탁한다. 디피엘리아.”
현재 밖을 꽉 채우고 있을 붉은 물결의 주인 클레멘스는 디피엘리아를 향해 살짝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디피엘리아 역시 그녀의 정중함과 같을 정도로 격식 있게 인사하며 손을 잡는다.
클레멘스는 이어서 에리카와 알리시아와도 인사를 하더니 내 앞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가 손을 내민다.
“이왕이면 너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지만, 이렇게 나눠지고 말았지. 아직까지도 그 마음에 변화는 없는 건가? 굳이 선거인단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내 곁에서 함께 일해 주었으면 한다만.”
은근슬쩍 다시 포섭을 시도하는 클레멘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저도 당신과 같이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는 걸 어지간히 싫어하는 사람이라 말이죠. 그리고… 마치 이미 선거에서 당선되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걸로 들립니다만.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지 의문이군요.”
그렇게 자만하다, 잘못하면 떨어져 버릴 수 있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자, 클레멘스는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예 틀렸다고는 말 못 하겠군.”
여전히 기분 나쁘거나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전혀 없다. 우리는 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이어서 말한다.
“서로의 가문에 부끄럽지 않은 승부를 벌이자.”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나도 내 아버지, 실베스테르와 율리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렇게 클레멘스는 자신의 선거인단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타이밍을 알고 노린 것처럼.
대기하고 있던 후보자들과 선거인단 전원이 나가라는 말이 들렸고, 우리 역시 그 흐름에 몸을 맡기려다.
“아.”
찬란한 황금 머리칼을 보자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최초의 주인공인 아르텔리온 왕자님께서 떨거지들과 함께 행차하고 계신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
그의 침착하게 매서운 눈길이 나와 마주쳤고, 나는 방긋 눈웃음치며 격려의 인사말을 건넸다.
“왕자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검을 미리 뽑아 두시지요.”
말을 던지고 나서, 나 역시 바로 걸음을 옮겼기에 그의 반응은 보지 못했으나. 날 향한 시선은 느껴졌다.
하나, 나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르텔리온에게는 분명히 미리 말해 줬다.
본래라면 폼 잡는다고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는 것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언질해 둔 바.
악역이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었으면, 주인공은 알아서 잘해 주리라 믿는다.
그래도 리암보다는 훨씬 쓸 만한 놈이니까.
나는 성녀의 휠체어를 직접 끌어 주며 무리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
그리고.
모든 인원들이 경기장으로 나와 밑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
아르텔리온은 자신의 선거인단과 함께 4인용 오픈형 비행 물체에 올라탔다.
왼쪽 모터와 오른쪽 모터에서부터 합산된 에너지를 중심부에서 세부 조절하는 형식의 물체.
물론, 양측의 모터는 사람이었고, 중심부도 사람이 직접 손봐야 한다.
3일 전에 구체적인 조작법과 연습을 통해 제법 숙달할 수 있었지만, 아직 어설픈 단계.
다른 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터이나, 아르텔리온은 어쩐지 겸연쩍음을 느꼈다.
이는 대비를 완벽히 한 것만 같은 디피엘리아의 선거인단과 클레멘스의 선거인단의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바르간이 조금 전에 알 수 없는 조언을 전했기 때문이다.
검을 미리 뽑아 두라는 말은, 즉 대비를 하라는 것.
붉은 오러를 사용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
단순히 무시할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꺼림칙한 것도 사실.
아르텔리온은 검의 손잡이를 잡은 채 마나를 다잡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오러를 발현시킬 수 있도록.
혹시 모를 대비를 했다.
그러다 모두의 준비가 끝날 무렵.
공기가 잠잠해지고, 관객석에서 들리는 음성도 점차 잦아들기 시작할 때.
다른 후보자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지지직거리는 미세한 전파의 소리가 들리자.
진행자는 카운트를 세었다.
그 소리를 진동을 느끼며, 아르텔리온은 왠지 모르게 바르간을 슬쩍 보게 되었는데.
그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전, 이윽고 카운팅은 끝나.
『출발⎯…』
콰좌자작⎯⎯⎯!
막힌 하구수에서 구정물이 솟구쳐 올라오듯.
정확히 디피엘리아의 위치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거대한 고목의 뿌리.
세계수가 연상되듯 지나치게 굵고 기다란 뿌리는 순식간에 경기장을 집어삼켰으며.
워낙 빠르고 성대하게 벌어진 일이라, 출발을 하지 못하고 묻혀 버린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한 톨의 먼지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매끈한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마존이 된 것처럼 나무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