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3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31화(131/350)
“나를 데려가겠다라… 녀석다운 당돌한 발언이군.”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추호도 없겠지만.
클레멘스가 남기고 간 것은 죽어 버린 와이번과 대사 몇 줄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폭발적인 불길로 인해 비행 물체를 감싸고 있던 디피엘리아의 나무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디피엘리아는 나무를 조종하며 타 버리는 것들을 강제로 잘라 내어 떨구었고, 동시에 죽어 버린 와이번 역시 함께 떨어뜨린다.
그것을 본 나는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성녀라는 작자가 위험물 외부로 방출하고 가엾은 사역마를 내팽개치다니. 통탄할 노릇이구나.”
“짓궂은 말이네요.”
디피엘리아의 감겨 있는 눈이 장난꾸러기를 보아 난감하다는 식으로 굴곡 진다.
그녀의 말뜻은, 경기 시작부터 사람들이 자칫하면 다칠 수 있는 대규모 마법을 걸도록 지시해 놓고서는 지금의 행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내가 불이 붙어 있는 줄기를 잘라 내어 던지라고 말할 것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와이번 역시 타 버렸다는 사실 자체는 몹시 슬프지만, 그 사체를 아카데미아 측에서 잘 수거해 갈 것이다.
요 며칠간 성녀와 제법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해서 이제는 제법 서로의 성향에 대한 이해가 높은 듯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에리카와 알리시아를 살폈다.
그녀들은 조금 지친 기색을 비쳤는데, 조금의 대화도 없이 집중하여 속도를 내는 데 매진하고 있다.
클레멘스의 일격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기는 했으나, 속력은 어떤 후보들보다도 압도적이다.
다양한 재주를 보인 성녀도 성녀지만, 이번 경기의 주인공들은 조용히 힘쓰고 있는 이 두 여인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일이 모두 끝난 후,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겠다.
…우선, 지금의 경기가 끝난다면 말이지.
“머지않아 디버프 구역에 돌입한다.”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상들과 함정들이 설치된 구역은 지났으니 이제 마지막 위험 구역이다.
보랏빛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는 저곳은.
마력의 제한, 시야 일정 차단, 호흡곤란…….
여러 디버프 마법, 즉 저주 마법이 깔려 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해당 구역이 꽤 길어, 모든 순위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디버프 구역에 돌입하기 전, 모두에게 지시했다.
“디피엘리아. 너는 지금부터 신성 마법에 주력하도록 해라.”
“알겠어요. 외부 경계를 낮추고 신성 마법을 우선시할게요.”
“에리카, 알리시아. 속도를 좀 낮춰라. 남는 마력은 보존에 들어간다.”
“…알겠어.”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련님!”
저 구역에 들어서는 순간, 마지막 세 번째 계획… 아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우습군. 이건 계획도 뭣도 아니다.
카이만의 말을 빌리자면, 객기(客氣).
그리고 본격적인 선거를 위한 밑 작업.
수확⎯!
앞서가던 클레멘스 일행은 먼저 디버프 구역에 들어섰다. 그들의 형체가 안개 속에 사라지며 거리가 가늠되지 않게 되었다.
제법 괜찮은 완성도의 저주 마법이다.
이 정도 크기면 여러 명이서 작업한 게 분명한데 통일성 있게 잘 만들었다.
나는 해당 구역에 짜인 술식을 보며 작게 감탄하였고, 말을 이었다.
이는 피날레를 장식할, 변화수였다.
“디버프 지역을 나가는 즉시, 가지고 있을 출력용 마력을 전부 터트린다.”
그래도 공중전인데 제대로 얽혀 보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일행 또한.
디버프 구역에 진입했다.
***
짙게 깔려 있는 안개가 방해되는 곳.
황금의 기사 아르텔리온 역시 해당 구역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팀원들은 갈수록 해당 물체에 대한 적응도가 높아져 괜찮은 속력을 내고 있었다.
일전의 클레멘스와 디피엘리아 팀의 충돌로 둘 모두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아르텔리온은 제법 가까이까지 선두를 따라잡았다.
이번 구역을 잘만 해결한다면 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조금 전에는 클레멘스의 견제를 위해 디피엘리아 일행을 잠시 놓아주었지만, 그때가 되면 또다시 전쟁의 시작이다.
“…….”
아르텔리온은 검을 높이 들어 붉은 기운을 몰아낸다.
그의 검을 빨갛게 칠하고 있던 오러가 사라지며, 대신 그의 머리칼과 같은 찬란한 황금빛이 감기기 시작했다.
검신에서 환하게 비추어 앞을 막아 세우는 안개를 흩어지게 만들어 버리는 환한 빛.
저주의 카운터라 할 수 있는 신성 마법이다.
클래스전에서 저주 마법에 의해 이모저모 고생을 했던 아르텔리온은 자신의 약점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시는 바르간의 환상 같은 것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오히려 그를 붙잡는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한데 신기한 일이게도, 마법에는 좀처럼 연이 없던 아르텔리온이 신성 마법에는 재능이 있었다.
단기간 만에 제법 괜찮은 성취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를 검술과 접목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일반 오러에 속성 확립으로 신성 마법을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의 약점이 강점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바르간에게 대항하고자 했던 일이 결국에는 자신에게 큰 이점이 되었다.
⎯크에에엑!
‘역시 나타나는 건가.’
가고일의 석상들이 아르텔리온의 빛에 이끌려 오듯 몰려든다.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내린 나름의 페널티인 듯한데,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신성 마법을 쓰는 편이 낫다.
그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검을 휘둘렀고.
황금색의 잔상이 그의 검을 따라 날아가 가고일들을 베어 버린다.
단 한 번의 동작에 열 마리 이상의 가고일들의 형체가 부서진다. 그의 오러는 허공에 쏘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으며.
안개를 지워 나갔다.
“와, 왕자님! 뒤쪽에도…!”
모터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팔론이 눈을 회동그래 뜨며 외쳤으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르텔리온은 적들을 잘라 냈다.
팔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가 이렇게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르텔리온의 신성 마법이 이들을 디버프로부터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곳은 신성 마법의 계위가 높을수록 유리한 구역이라는 뜻.
아르텔리온 이상으로 신성 마법에 두각을 내미는 디피엘리아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반면, 클레멘스는 무력이 대단하기는 하나 신성 마법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일절 듣지 못했다.
⎯서걱.
그는 가고일을 베어 가며 생각을 이어 간다.
여길 벗어나면 결승점의 근처까지 도달한 상황이 되어 버리니, 이곳은 전환점.
클레멘스는 이 구역에서 다소 지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미 디피엘리아에게 역전당했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서걱.
단순한 돌의 파편이 되어 버린 채 추락하는 가고일을 눈에 담던 아르텔리온.
3일 전, 미리 내용에 대해 전해 들었던 그는 이 안개 안에 ‘특이한 석상’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케아아악⎯⎯⎯!』
괴상한 음성에 대기가 울리고.
달려들던 가고일들이 실제 생물체처럼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벌벌 떨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어떠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마, 아카데미아 측에서 언급했던 특이한 석상의 울음소리일 터이다.
이 디버프 구역에만 출몰하며, 후보자들을 괴롭힐 가장 강력한 수단.
단순히 수만 많은 가고일 따위와는 들여진 공도, 완성도도 모든 게 다른 석상.
그것은 이미 석상이라기보다는 십이신수 중 하나인 ‘그리폰’에 가까웠다.
그리폰의 석상은 기존 그리폰의 특징과 비슷하게 낯선 이를 경계하며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물론, 실제 십이신수와 동등한 위력을 낼 수는 없어도.
듣기로는 마법도 사용할 수 있고, 일격에 죽지 않도록 준비해 놨다고 했으니.
불안정한 공중에서, 그것도 디버프 구역에서 그리폰 석상을 상대하는 건 용이치 않을 것이다.
아르텔리온이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상황 파악을 이어 가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는데.
‘그리폰은 디피엘리아 쪽으로 향했다.’
지금의 울음소리도 디피엘리아 일행과 맞붙는 중이기 때문일 터.
잘 만들어진 그리폰 석상은 해당 구역에서 누가 가장 위협적인 인물인지를 단숨에 파악하곤, 이곳의 약점인 신성 마법이 가장 뛰어난 디피엘리아를 노린 것이다.
하여, 이 구역에서 가장 유리한 팀은 디피엘리아도, 클레멘스도 아닌.
아르텔리온.
이 남자가 되게 된다.
그들은 막힘없이 질주했다.
가고일들이 이들의 앞길을 막으려 하지만, 무용지물.
성스러운 빛에 타들어 가는 악마와 같이.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상에 떨어졌고.
그의 오러는 방패이자 등불이 되어 자신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보랏빛 안개의 끝자락에 도착하게 되고.
“…그 정도로도 제대로 막지 못한 건가.”
아르텔리온은 다시 검의 기운을 바꾼다.
태양과 같은 빛은 감춰지고 마그마 같은 시뻘건 빛깔의 검날. 마나를 지속적으로 부어 대자 심장이 있는 것처럼 작게 진동했다.
아르텔리온은 그 떨림을 느끼며 마음을 다스린다.
눈을 감고 자신의 체내에 흐트러진 기운을 정립한다.
그는 검과 하나다.
일신과 같이 자유로우나, 예기를 잃지 않는다.
압력 때문에 주위의 소음이 묻히기 십상이나, 집중하고 있는 아르텔리온에게는 들린다.
잠시 후. 이 끝에서 펼쳐질 광경이.
자신의 바로 근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의 기운들이.
그렇게, 비행 물체가 안개를 통과하려는 그때.
아르텔리온은 번뜩 눈을 떴고. 측면으로 신속히 몸을 틀어.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위력으로 붉은 오러를 휘두른다.
그러자.
콰가가가각⎯!
마치 짜고 치기라도 한 듯.
동시에 안개에서 탈출한, 디피엘리아의 고목이 아르텔리온의 일격을 막아 낸다.
짙은 안개를 헤쳐 나오며.
아르텔리온, 디피엘리아, 클레멘스는 거의 같은 타이밍에, 일렬 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텔리온의 급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성녀의 나무는 그 힘을 받아 내지 못하고 무참하게 갈려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건….’
그의 일격 때문이라기에는 다소 ‘과하게’.
마치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디피엘리아 팀 비행 물체의 몸체가 기울어지더니, 곧.
발사되었다.
엔진을 두 개를 사용한 듯 폭발적으로 날아가는 물체.
하나, 이들이 쏘아지는 방향은 바로 근처에 놓인 결승 지점이 아니다.
살짝 비틀어진 방향은 다른 이의 직선거리로 나아간다.
속도가 워낙 빨라 이대로 간다면 디피엘리아 팀은 클레멘스 팀과 부딪히게 될 게 분명한데….
‘…그런 거였나.’
아르텔리온은 바르간이 하려는 행동의 의미를 파악했다.
저 남자는 처음부터 이번 선출 따위는 재료 중 하나로밖에 보지 않은 것이다.
‘판을 깔기 위해서는 잠시 물러설 줄도 안다 이건가….’
모든 일이 급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경기장에서는 진행자의 흥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결승점이 코앞인 지금. 아르텔리온 후보! 디피엘리아 후보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데 효과가 굉장합니다! 디피엘리아 후보와 클레멘스 후보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지….』
클레멘스 팀과 충돌하게 된 디피엘리아 팀.
부딪친 두 비행 물체는 크게 흔들렸으나, 균형이 파괴되지 않은 채. 운동 방향이 합산되어 함께 앞으로 나아가진다.
결국, 세 팀이 매우 비슷한 속도로 날아 올라가 결승 지점을 향하게 되는데.
『⎯골인! 우승자가 나왔습니다! 영광스러운 이번 1차 선출의 우승자는 바로……!』
간발의 차이로 메달권의 순위가 나온 채.
함성이 울려 퍼진다.
***
뚜벅⎯.
1차 선출의 우승자가 나온 바로 직후.
한 남자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경기장의 복도를 나아간다. 밖에서는 아직 환호성으로 시끄러워 그의 혼잣말이 묻히게 된다.
“마나 총량이 초월의 계위에 도달했는데 왜… 뭔가를 하고 있는 건가…? 알 수 없는 일이군.”
며칠 밤을 자지 못한 것 같은 기운 없는 목소리의 남자.
그는 다른 이들과 동행하지 않은 채 홀로 아카데미아의 본관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인물이다.
“녀석의 말이 맞아… 그는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 제대로 접선해 보는 게 맞을까?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까.”
중얼거림은 아주 작아 그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후로는 혹시라도 다른 이들이 들어서는 안 되니 남성은 혼잣말의 방식을 바꿨다.
“⎯⎯⎯⎯.”
조금 전과 같이 입을 뻐끔거리고 있음에도, 주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공기의 진동도, 내뱉어지는 호흡도.
하나의 신호가 되어 어딘가로 날아간다.
그것은 정확한 목적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달할 것이다.
“…….”
그러다, 남자는 자신 이외에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움직이던 입술을 멈춘다.
남자의 뒤에서는 긴 머리칼의 여인이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교수님.”
아카데미아의 교수.
그것은 남자를 부르는 직함 중 하나였다.
남자는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몸을 돌려 여성을 바라본다.
예상했듯이 그녀는 차분한 금빛 머리칼을 가진 학생이었다.
“무슨 일이죠. 프란체스카 양.”
프란체스카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는 졸린 눈매와 짙은 다크서클을 달고 있다.
열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남교수를 향해 프란체스카는 익숙하게 말했다.
“루센 교수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