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3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32화(132/350)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역시 왕자님이십니다!”
늦은 오후의 수업이 끝나고.
아르텔리온과 같은 수업을 들었던 오셀 왕국의 포른 백작가 자제 팔론은 언제나와 같이 아르텔리온의 곁을 따라다니며 말을 걸고 있다.
그 옆에서 아르텔리온의 방패와 같은 여인, 라우가도 함께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좀처럼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히고를 반복하는 그의 입은 또다시 벌어지며 아르텔리온에 대한 무용담을 쏟아 낸다.
“1차 선출의 마지막! 그 자욱하던 안개를 뚫고 나온 용맹한 왕자님! 우리 왕자님께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격을 사악한 악당들에게 날리셨고, 그 결과 저희는 당당하게…!”
“…….”
기숙사로 복귀하던 아르텔리온의 걸음이 멈춘다.
우연히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익숙한 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진한 향기를 풍기는 커피를 들고 있는 남자.
눈 밑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그 남자가 먼저 아르텔리온을 알은체했다.
“이제 돌아가는가 보군요, 아르텔리온.”
“루센 교수님….”
아르텔리온과 팔론, 라우가가 속한 2반의 담당 교수 루센이 물안개와 같이 잔잔하게 깔리는 목소리로 대화를 이었다.
“경기는 잘 보았습니다. 아주 훌륭한 솜씨였어요.”
“…….”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군요…. 1차 선출의 우승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건가요?”
아르텔리온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자, 루센은 손에 들고 있던 글라스 잔을 흔들고는 입에 갖다 댔다.
후릅-.
원두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단순히 쓴 정도를 넘어선 커피가 루센의 입가를 맴돌다 넘어간다.
진한 커피 원두의 향을 풍기며 루센은 양해를 구했다.
“미안합니다. 내 행동이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알아요. 하지만 항상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잠시라도 떼려야 뗄 수가 없더군요.”
“…최근에 유독 피곤하신 거 같습니다.”
“나야 언제나 그렇죠. 교수라는 게 생각보다 바쁜 직업이거든요. 아르텔리온도 나중에… 아, 하기야 당신이 교수를 할 일은 없겠네요.”
루센은 다소의 변화만 있는 억양으로 말하며 다시 입술에 잔을 대고 한 입을 더 넘기더니, 이만 볼일을 보러 가기 위해 움직일 낌새를 보였다.
“아무튼, 축하해요, 아르텔리온. 당신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든, 담당 교수인 저는 미력하게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그의 축하에 진심으로 느껴지는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아르텔리온은 약간 고개를 숙이며 교수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
루센 역시 살짝 고개를 숙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걸음을 떼곤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아, 그런데 말이에요.”
루센이 들고 있던 글라스 잔의 액체가 흔들린다. 그는 아르텔리온을 다시 불러 세웠다.
그는 끝난 줄 알았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르텔리온은 오늘 선거인단을 데리고 어디 안 가나요?”
“…….”
“별 뜻이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최소한의 축하 정도는 하나 싶어서 물어본 겁니다.”
“축하….”
“듣자 하니, 다른 어떤 후보는 자신의 선거인단과 함께 외출을 나갔다고 하더군요. …고급 레스토랑을 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루센은 말을 어중간하게 끊었으나, 아르텔리온의 선거인단이기도 한 팔론과 라우가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르텔리온을 나무라기 위해서 뱉은 말이라기보다는 다른 어떠한 의도가 느껴졌다.
루센이 말하는 후보가 누구인 줄 안다.
하나, 정확히 말해 그의 표현에는 틀린 구석이 있다.
그가 일부러 돌려서 말했음을 모르지 않는 아르텔리온.
잠시 양옆에 서 있는 팔론과 라우가에게 눈길을 주더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피한다.
멀어져 가는 아르텔리온 일행을 바라보는 루센은, 아직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를 입에 대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요….”
지독하게 쓴 음료로 잠을 몰아내곤, 그도 마찬가지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
1차 선출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저녁.
나는 내가 미는 후보자와 선거인단을 데리고 외출을 나섰다.
최근 며칠 동안의 고생을 치하하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귀찮게 움직인 이유는.
알리시아만 있었다면 모를까.
포트레트가인 에리카와 성녀 디피엘리아에게 적당한 칭찬이나 물건만 턱 내어 주고 끝낼 순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1학기 당시 에리카와 외출로 방문했던 코스 요릿집이 아닌, 다른 레스토랑으로 잡아 두었다.
원래는 예약이 꽉 차서 곤란했던 것을, 슈겐하르츠의 이름을 대니 마련할 수 있었다.
역시 잘난 가문명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도, 도련님… 정말 제가 이런 귀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속에 붉은 핏기가 보이는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자 김과 함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고.
알리시아는 그런 내 행동을 바라보며 불안한 눈초리로 물었다.
“역시 저에게는 맞지 않는… 앗!”
나는 팔을 길게 뻗어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얘는 진짜 변하는 게 없네.
“이젠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이런 곳에 온 것은 또 처음인지라….”
“가만히 먹기나 해라.”
“네, 도련님….”
대답을 한 알리시아는 조심조심 나이프질을 하며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썬다.
그에 따라 짙은 남색의 드레스 자락이 팔락인다.
평소 칼질도 잘하면서 뭘 그렇게 조심하는가 했더니, 옷에 혹여라도 튈 것을 염려하는 모양이다.
디피엘리아는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뜩 물었다. 적막한 식탁보다 다소 대화가 오고 가는 게 취향인 그녀였다.
“알리시아, 그 옷 되게 예쁘네요. 알리시아의 피부 톤과 딱 어울려요. 어디서 샀어요? …아니면 주문 제작인가요?”
“앗, 감사해요. …아, 그러니까 이 옷은… 어…….”
알리시아가 맞은편에 앉은 에리카를 흘깃흘깃 바라보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에리카는 고개를 갸웃했고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답답한 공기를 참을 수 없어 말했다.
숨길 것도 아니니까.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기 전에 몇 벌 옷을 사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산 거다. 여기서는 멀긴 하다만, 원한다면 위치나 디자이너를 알려 줄 수 있다.”
당시 알리시아가 가지고 있는 사복이라고는 몇 번이나 꿰맨 누더기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사 주지 않으면 내가 창피를 당할 수준이었지.
“…….”
어쩐지 침착하게 변한 에리카의 눈동자가 나를 피하더니 도로 알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에리카의 작은 입이 움직였다.
“환영회 때 입었던 분홍 드레스도 같은 곳에서 산 거 같은데.”
“아, 그때 저를 보셨나요…?”
“뭐… 어쩌다 보니.”
에리카의 추측대로, 신입생들을 환영하기 위한 자리에서 알리시아가 입었던 옷도 내가 사 줬던 옷 중 한 벌이다.
지금 에리카가 말하는 때란, 에밀리에게 사과하기 위해 알리시아를 보냈던 순간을 말하는 거겠지.
그 장면은 1년 만에 바르간과 에리카와 재회한 순간이자, 빙의를 한 내가 처음 에리카와 마주했던 날이니까.
…새초롬한 표정으로 날카롭게 각이 서 있던 에리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만만치 않지만…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다.
에리카는 작은 손으로 나이프를 움직이며 음식을 썰어 천천히 맛보더니, 순간 나에게 차가운 눈매를 활처럼 쏘았다.
…분명히 처음보다는 나아졌었는데 어째 지금은 더 날카로운 거 같다.
그녀는 말했다.
“정말 바쁜가 보네? 얼마나 큰 풍년을 맞이하려고 그렇게 ‘이곳저곳’에 씨앗을 뿌리고 다니시나.”
바쁜 것도 사실이고.
나중의 수확을 위해 곳곳에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지금의 오해는 옳지 못하군.
나는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입을 닦은 채 답했다.
“클레멘스의 일이라면 그렇게 샘낼 것 없다. 그 녀석은 원래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다면 탐을 내지. 나와 같은 족속이라서 뱉은 말이다.”
“샘이나 그런 건 모르겠고. 그 대단하신 선배의 마음에 들어서 좋으시겠어.”
“약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터이니 그리 토라지지 말거라.”
“흥, 토라지기는 누가.”
고개를 홱 돌린 에리카는 와인을 마셨다.
술이 약해서인지 입이 작아서인지 기세에 비해서는 줄어드는 양이 적다.
나 역시 식사를 도로 재개하며 고기를 입에 넣었다.
음미는 하지 않은 채 적당히 씹고 뒤로 넘겼다. 좋은 고기이고, 제대로 요리했다는 것도 알겠지만 지금은 어차피….
“…….”
“알리시아,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냐?”
“예? …아, 아! 죄송합니다, 도련님.”
몰래 현상을 관찰하는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던 알리시아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딱밤을 한 대 더 때릴까 하다가 참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음식도 다 못 먹고 할 말도 다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알리시아의 몸이 떨린 것을 무시하고, 나는 와인 잔을 두 번 치며 테이블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았다.
…얘는 누가 보면 내가 엄청 괴롭히는 줄 알겠네.
“잠시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
대충 시간도 얼추 지났고, 분위기도 풀렸으니 지금이 적기다.
모두의 눈이 향한 것을 확인한 뒤, 연이어 말했다.
“이번 1차 선출의 흐름은 생각대로 잘 흘러갔다. 원하는 그대로 그려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1차 선출의 성적은,
1위 아르텔리온, 2위 클레멘스, 3위 디피엘리아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 순위를 보자면 고작 3위를 차지한 건데 뭐가 생각대로 잘 흘러가는지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하나, 애초에 내가 이번에 노린 게 우승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세 후보가 모두 박빙인 상황에서, 아르텔리온이 우승을 했다는 건 나름의 영향력이 있다.”
이번의 1차 선출은 선거를 위한 밑바탕이지 이 자체로 끝이 아니다.
오셀 왕국의 왕자, 아르텔리온.
그런 그를 짓누르고 오셀 왕국 상당수의 표를 쓸어 담았던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
아카데미아에서 제일 유명한 학생은 나도, 아르텔리온도 아닌 클레멘스다.
그런 그녀와 대등할 정도로 싸우고, 또한 승리했다는 사실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터.
“아르텔리온의 지지율은 이번 선출로 인해 제법 상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지지율은 클레멘스에게서부터 가져온 것이지.”
동향의 파워는 생각보다 단단하여 좀처럼 그 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같은 그룹 안에서는 변동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아의 유권자들, 개중에서도 왕가의 눈치를 보고 있던 오셀 왕국의 귀족들이 아르텔리온으로 갈아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나게 된다.
아, 물론 내가 아르텔리온을 학생회장으로 밀어 넣기 위해 이러한 판을 짜는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디피엘리아가 학생회장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경기 도중, 관객석에 앉아 있던 프리다의 보고에 따르면.
클레멘스의 지지율 65%.
아르텔리온의 지지율 10%.
디피엘리아의 지지율 20%.
기타 5%.
“디피엘리아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아르텔리온이 클레멘스의 표를 뽑아먹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활약을 보이며 나설 필요는 있지만, 우선은 클레멘스를 이루는 단단한 기반에 금을 가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더없이 좋고.
“당연하게 우리의 지지율도 일정치 상승하게 된다. 우리 역시 이들과 좋은 승부를 펼쳤고, 무려 ‘그’ 클레멘스를 괴롭혔으니.”
본래의 스토리대로라면 공중전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클레멘스는 이번 선출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우승하곤, 학생회장이 되게 된다.
그녀의 주 무대에서.
그녀를 대표하는 와이번을 죽어 버리게 만들었다.
내 사역마에 대한 애환이 솟아 올라오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확실한 성과다.
“오늘의 자리는 그 성과의 축하와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했다. 특히 마나 공명도를 높이느라 수고했다. 에리카, 알리시아.”
“다시는 그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도련님.”
동시에,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
나는 와인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2차 선출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고, 공명도가 높아진 지금은 수월하게 통과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할 게 없다.”
2차 선출은 1차 선출과는 달리 경기식으로 진행되거나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지 않는다.
표를 긁어모으고 싶다면 2차 선출보단, 그 전에 있는 아카데미아의 커다란 이벤트에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는 각자 ‘축제’를 위한 준비를 한다.”
이는 사령술사 프란체스카와 고대의 드래곤이 혼란을 일으켰던 2학기의 메인 에피소드 중 하나.
…동시에, 아카데미아 내부에 잠입해 있는 여신교의 세력이 활동하는 시기.
말을 듣고 있던 디피엘리아가 입을 열어 의문을 표한다.
“축제의 준비라면… 2학년 선배들과 있을 전투를 대비하라는 뜻인가요?”
“그런 셈이지. 각자의 무력을 높여 모두의 앞에서 피로해야만 하니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3학년과 4학년은 없는, 외부인들이 잔뜩 들어와 있는 아카데미아에서.
1학년은 영웅, 2학년은 빌런 역할을 맡게 되는 축제의 마지막 날.
2학년이라기보다는 다른 적들과 싸우기 위한 준비이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래의 일이기에 언급하지 않는다.
“최상의 상태로 축제에 임해야 한다.”
원작과는 짜임새가 크게 다를 터이다.
프란체스카의 마법이 원작보다 훨씬 발전한 상황.
또한, 여신교의 움직임에 명확한 변화가 발생하는 중인 지금.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에 대처하려면, 확실한 힘이 필요하다.
“선거를 위해서.”
새로운 붉은 주(酒)를 채워 넣은 나는 잔을 들었다.
알리시아와 디피엘리아는 내 행동을 따라 각자의 잔을 들었고. 뒤늦게 에리카가 귀찮다는 듯 살짝 들어 올린다.
“선거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그 목적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자신이어도 되고.
아카데미아여도 되며.
누군가를 위해서도 된다.
“그거면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끝내 맺힐 먹음직스러운 과실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