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3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35화(135/350)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마련한 모의 전투장.
프란체스카를 제외한 아르볼 프루탈의 여성 간부진은 이곳을 대여하여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주목을 끄는 하얀 머리칼의 여인. 재빠른 몸놀림으로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피한다.
화살 세례가 일시적으로 멈추자, 폭발적인 속도로 날아들고는.
칠흑같이 어두운 흑도를 휘두른다.
카가가각⎯!
이를 마주한 에밀리는 자신의 모든 마나와 체력을 끄집어 내어 간신히 막는 데 성공했다.
두 팔이 부들거리며 오러가 점차 먹혀 들어가는 게 느껴지지만 끝까지 버틴다.
에밀리가 하얀 머리칼의 여인, 알리시아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자. 측면에서 달려드는 여우 귀 여인 프리다.
프리다의 길게 뻗은 손톱이 알리시아에게 쇄도한다.
그녀의 손톱을 감싸고 있는 얇고 촘촘한 오러.
그 끝이 간신히 알리시아의 고운 뺨에 닫았으나.
닫는 순간 프리다는 깨닫는다.
‘이건 허상이다.’
손톱에 찔려진 알리시아의 형체는 사라지고 검은 안개만이 터져 나온다.
프리다는 동물적인 능력으로 어둠에 강한 눈을 밝혔고 주위를 빠르게 확인하다 멈칫.
목 끝에 차가운 검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 짧은 틈에 배려를 한 것인지 오러는 싸여 있지 않다.
움직임만을 봉할 요량이다.
이미 전투는 끝났다.
“…못 당하겠네.”
프리다는 천천히 양손을 들며 항복을 알린다.
길게 뻗어져 있던 손톱은 금세 들어가 전투의 의지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자 이들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는 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비로소 온전한 모습이 눈에 담겼다.
알리시아는 한 손으로는 검게 변한 나이아스를 들고 프리다의 목을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에밀리에게 빼앗은 단도로 주저앉아 있는 에밀리의 이마 앞에 날을 세우고 있다.
멀찍이서는 셋의 난전에 가세할 수 없었던 세레나 역시 활을 내린다.
알리시아 혼자서 세레나, 프리다, 에밀리를 상대해서 이겼다.
특별히 허가를 받아 유물의 사용을 통한 전투였음을 고려하더라도 알리시아는 이제 이 셋의 힘을 합치더라도 견주기 힘든 여인이 되어 있었다.
호흡을 멈추고 있던 에밀리가 숨을 토해 내며 말한다.
“알리시아 너무 강해!”
환경에 따라서 세레나는 나름 알리시아를 막을 수 있을지 몰랐지만, 에밀리와 프리다는 알리시아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
아카데미아 안에서도 알리시아는 바르간과 리암에 버금가는 성장 속도를 자랑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지는 게 아닌, 오히려 가속을 하고 있었다.
나이아스를 집어넣은 알리시아는 에밀리에게 손을 내밀어 일어서도록 도와주었고, 잠시 빼앗았던 검을 돌려주었다.
에밀리는 무참히 져서 조금 분하다는 기색과 알리시아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대체 어디까지 강해질 생각인 거야?”
“아직 멀었는걸요. 더 노력해야죠.”
“알리시아는 맨날 그렇게 말하더라.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 아, 그런데….”
에밀리는 조금 전의 전투를 되짚다 갑자기 생각났다며 말을 잇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검이 가벼웠던 거 같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평소에도 혼자서 무쌍을 찍는 알리시아였지만, 오늘은 더욱 검과 동작이 수려하고 가뿐해 보였다.
에밀리의 물음에 알리시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기 힘들어하며 넘기려 든다.
“아… 기, 기분 탓 아닐까요?”
“에이, 내가 알리시아의 검을 얼마나 자주 봤는데 설마. 뭔데? 내가 모르는 틈이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거야?”
알리시아가 수줍게 양손을 흔들며 부정하자, 이를 좁은 눈으로 살피던 프리다가 입을 연다.
“바르간 님이랑 뭔가 있구나?”
“예에? 왜, 왜 도련님이…! 그리고 도련님이랑 무슨 일이 있기는요… 아무것도…”
“거짓말이네.”
프리다의 말에 에밀리가 동의한다.
“응, 거짓말이야. 그렇지 세레나?”
“…….”
어느새 다가온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이들의 반응에 알리시아는 역력히 당황해하며 허둥지둥댔고, 프리다와 에밀리의 끈질긴 추궁 끝에 진실을 입에 담았다.
“이… 이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바르간과 관련이 없을 거라며 군더더기를 잔뜩 붙이기는 했으나, 여기에 있는 인물 중 알리시아의 마음을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알리시아는 샤를로테에 의해 바르간과 축제 시즌 하루 동안 돌아다니게 됐다며 밝힌다.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모아 둔 손가락은 바쁘게 꼼지락거린다.
그렇게 알리시아와 바르간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 에밀리는.
“진짜로? 와, 축하해 알리시아⎯! 드디어 이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생긴 건가?!”
“추, 축하하다니요…! 별로 그런 일도 아닌….”
에밀리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 알리시아의 태도를 알았기에 표현을 달리했다.
“아, 미안미안. 그래 그런 게 전혀 아니지. …그나저나 그 바르간이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다니. 놀랍기는 하네.”
“데이트도 아닌 걸요…. 그냥 축제 때 함께 있을 뿐이에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하… 알리시아가 그 까칠한 도련님이랑 데이트도 하고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우으으…. 정말 알고 계신 건지.”
안절부절한 사람처럼 양손을 잔뜩 움츠려든 채 목소리를 떠는 알리시아.
그런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던 프리다는 옅은 숨을 뱉으며 판단한다.
“역시 알리시아가 가장 큰 경쟁자인 건가. …아니, 알리시아라면 첫 번째를 내줘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한데….”
“그게 무슨 말이야 괜찮을 거 같다니?”
에밀리의 물음에 프리다는 답한다.
“나도 알리시아 좋아하기도 하고, 비록 정실을 뺏긴다고 한들 알리시아라면 첩들에게 내색하지 않을 거 같아서. 바보같이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프리다, 너도 참 포기를 안 하는구나….”
“내가 포기를 왜 해?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프리다의 꼬리가 살랑거리며 휘어진다.
그녀가 계산하기에 약혼녀인 에리카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알리시아가 차지하는 편이 나았다.
견제도 그렇고, 개인적인 시기심으로도 그랬다.
하지만, 당연히 그 전에 그녀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게 제일이다.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프리다는 알리시아의 비현실적인 외관을 쭉 살피며 힘 빠진다는 듯이 이어 말한다.
“잘해 봐 알리시아. 방해하진 않을 테니까. 너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을 거야.”
“가능성이라니요… 다들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귀엽기는 하다만, 자꾸 그렇게 나오면 방해해 버린다?”
“으….”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알리시아의 옷 소매를 당기는 세레나.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세레나가.
웬일로 먼저 입을 열었다.
투명하고 조용한 목소리다.
“바르간은 알리시아를 아껴….”
“세레나?”
“분명히 그래.”
세레나의 잠잠한 눈의 중심이 바로잡혀 있다.
그 신비로운 호수와 마주하던 알리시아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
⎯바르간은 알리시아를 아껴.
세레나가 뱉은 말은 알리시아의 머릿속을 하루 종일 빙빙 돌아다녔다.
식사를 할 때도, 수업을 받을 때도, 훈련을 할 때도.
그리고 지금과 같이 바르간의 방에서 점검을 받는 상황에서도.
“정신 차려라 알리시아.”
“아앗!”
정신을 차리자 바르간의 날카로운 눈매가 알리시아의 바로 앞에서 보였다.
알리시아는 가슴 안쪽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는 슬그머니 눈길을 피한다.
바르간은 그런 알리시아의 태도를 용납하지 못하여,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은 채 눈을 강제로 마주한다.
“읏….”
피할 수 없게 된 알리시아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이런 모습이 그녀의 주인 앞에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지금은 바르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봐선 안 될 거 같았다.
“어이없긴.”
바르간은 헛웃음을 뱉으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크게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던 알리시아는 자신을 향해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자, 조심스레 눈을 떴고.
바르간이 흥미를 잃은 채 멀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사역마를 소환하여 상태를 확인한다.
알리시아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불경한 행동을 했는지를 떠올리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감히 도련님의…”
“⎯됐다. 또 별 같잖지도 않은 까닭 때문에 그러한 것이겠지.”
“…….”
오늘 그녀의 성취도를 확인하는 과정이 모두 끝나 알리시아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바르간은 알리시아가 자연스레 물러날 것을 알고 자신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리시아가 좀처럼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사역마의 몸을 살피던 바르간은 도로 알리시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할 말이라도 남아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러한 건 아니오나…”
“아니긴. 그리 티를 내면서 무슨. 어서 말해 보거라.”
알리시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 딴에는 상당한 용기를 낸 행위였다.
“도련님. 축제 날… 정말로 저와 둘이 함께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소문이… 저와 축제 날 함께하신다면 분명 좋지 못한 소문이 나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도 같이 다니거늘 새삼스러운 말이구나.”
“…축제 날에는 조금 사정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알리시아는 손에 땀을 쥔 채로 꼼지락거린다.
바르간은 알리시아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함께 축제에 함께하는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려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한, 바르간은 에리카와 약혼 관계이니 일어날 수 있는 파장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르간은 조금 전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러니까. 새삼스럽다는 거다.”
“예?”
알리시아의 고개가 살짝 올라갔다가, 바르간과 마주하니 다시 휙 피해 버린다.
바르간은 사역마의 털을 살피며 대화를 잇는다.
“어차피 매일 밤 네가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것만 하더라도 소문을 낼 연놈들은 낸다.”
“아….”
“눈에 띄는 인물일수록,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일수록 자잘한 소문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을 하나하나 신경 쓰면 정신병에 걸려 버리겠지.”
알리시아의 겉 시야에 바르간이 웃고 있는 모습이 비친다. 이를 제대로 담고 싶어 그녀는 피하던 눈동자를 원위치로 돌린다.
바르간은 우습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네 주인이 그러한 것에 연연한 인물로 보이나?”
알리시아는 바르간의 검은 눈과 마주한다.
쿵쿵. 여전히 심장 소리가 요란하다.
혹시 그의 귀에도 들릴까 우려감이 들고, 괜스레 눈을 마주하기 힘들다.
알리시아는 규칙적으로 울리는 심장의 고동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굉장히 떨린다….
떨리지만… 신기하게도 안심된다.
스스로 느끼기에 모순적인 이 감정에.
알리시아는 작게 웃음 짓게 되었다.
“전혀 아니십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돌아가서 훈련이나 이어 가거라.”
거친 말투였지만, 알리시아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 속에 담긴 정제되지 않은 따뜻함을 알기에 환히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네, 도련님…!”
***
서늘한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모두 사라져 더욱 고요해진 이곳.
고대 드래곤의 뼈.
그 거대한 역사의 산물 앞에 두꺼운 책을 펼친 채 연구를 이어 가고 있는 고고한 금발의 여인 프란체스카.
그녀는 혼자서 연구를 이어 가며 바르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었던 연구의 끝이 점차 보이는 시점이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안정성을 더욱 확보하고 싶었다.
바르간의 사역술과 마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오늘 역시 수월하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제는 일과가 되어 버린 그와의 만남.
프란체스카는 책을 넘기다가 최근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고. 이는 바르간과 연관되어 있었다.
…사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었다.
바르간이 어떤 남자이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자신은 자신의 연구를 이어 가기만 할 수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차 선발에서.
자신이 단 한 번도 이겨 내지 못한 클레멘스와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보여 준 바르간에 대해 조금은 궁금해졌다.
해서, 최근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조력자’에게 고대 드래곤의 뼈에 대한 물음과 동시에 바르간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었다.
바르간이 모든 진실을 알고 다가온 것은 틀림없이 조력자를 통해 무언가를 들었기 때문일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조력자에게 들은 말은 예상 외였다.
‘다른 사람에게 고대 드래곤이나 나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없다니….’
조력자가 거짓말을 할 입장이나 이유가 없다.
그는 정말로 다른 곳에는 일절 떠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르간은 왜, 어떻게 자신에게 접근한 것일까.
조력자의 대답으로부터 프란체스카는 이상함을 느꼈고. 바르간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숨긴 채.
우려감에 물어봤다며 둘러대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수상하고 불온한 움직임이나, 바르간이라는 남자는 더 뒤가 찝찝하다.
“…….”
이것저것을 고민하던 프란체스카는 잠시 책을 덮으며 그 표지를 바라본다.
이 책은 어떤 이가 정성스레 적은 노력과 애정의 증표다.
프란체스카는 그 무거운 책을 살며시 들어 품에 안았다.
무생물에게 온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러고 있고 싶었다.
무감정한 그녀의 입에서 입김과 함께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빠…….”
그녀 이외에는 아무런 생명도 없는 고분의 안.
뚫린 천장에서 내려오는 달빛을 받은 채, 고개를 숙인 프란체스카의 금발은 연하게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