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4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47화(147/350)
주변이 시끄럽다.
⎯급습이다! 모두 빠르게 움직여!
⎯2학년들에게 지지 마라!
주도적인 1학년생들은 미리 준비한 대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활활 타오르던 고목은 하루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소화(消火)되었다.
아카데미아의 모든 전등 역시 불이 꺼졌다.
골목골목을 비추던 등불이 꺼져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전과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정전을 시킨 채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이벤트.
사실상 1학년과 2학년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상기된 얼굴로 열을 올리는 것이다.
현재 암흑에 먹힌 중앙광장은, 발광하는 몇몇 구체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1학년들 중 해당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 시야 확보와 사람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켰다.
불을 켜면 상대에게도 현장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려 주는 셈이 되기는 하나, 외부인들이 인파에 밀려 다치는 상황은 발생해서는 안 되기에 어쩔 수 없는 처우였다.
“…시작되었군.”
알리시아와 바르간 사이의 잠깐의 정적이 있은 후.
바르간은 환호성에 가까운 비명을 들으며 말했다.
현재 이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외부인들은 일종의 오락거리쯤으로 여기고 있다.
정전이 남과 동시에, 곳곳에서는 무섭다며 소리를 치거나 호들갑을 떨어도 진정성이 떨어진다.
마치 놀이동산에 있는 유령의 집을 즐기듯. 이색적인 체험을 위한 놀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다.
어차피 들이닥치는 이들도 진정한 적들이 아닌, 아카데미아의 학생들이니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터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알리시아, 받거라.”
바르간은 품 안에서 하얀이를 꺼내 쭉 늘리고는, 그 안에서 나이아스를 꺼내어 건넸다.
현재 그녀의 감정이 고조되어 있음은 알고 있으나 해야 할 일을 모른 체할 순 없다.
알리시아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낸다. 눈두덩이가 붉어져 있으나 다행인지 어둠의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바르간은 지그시 눈을 감고 아카데미아에 깔아 둔 수많은 눈 중에서 몇 개를 확인한다.
그의 사역마인 찍찍이 100마리를 아카데미아에 미리 뿌려 두었기에 주요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그의 눈이 닿을 수 있었다.
축제 기간 동안 직접 돌아다니며 포인트를 확인하였기에 더욱 빠르게 작업하는 게 가능했다.
현 상황을 파악한 그는 알리시아에게 지시한다.
“너는 대강당으로 향하도록 해라. 그곳에 디피엘리아가 있을 터이니 녀석과 함께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면 된다.”
2학년들의 목적은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절반 이상의 외부인들을 인질로 삼는 것.
현재 공중 도시 아카데미아에는 중앙광장 말고도 외부인들이 모여 있는 몇몇 지점들이 있다.
이는 일부러 아카데미아에서 준비한 것으로.
히어로 역인 1학년들은 그 위치를 알고 있으며.
빌런 역인 2학년들은 그 위치를 모른다.
신목제를 진행했던 중앙광장,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은 2학년들 역시 당연히 인지하고 있으나 다른 지점은 알려 주지 않는다는 규칙이다.
학년의 차이에 따른 일종의 페널티라고 보면 된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알리시아는 연약해진 마음을 붙들기 위해 일부러 더욱 눈을 부릅뜨며 답했다.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수분감이 그대로 나타났지만 아닌 척한다.
바르간은 알리시아에게 참언한다.
“명심해라. 네 목적은 디피엘리아를 다른 후보들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것. 성녀가 학생회장감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인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선거의 연장선인 축제를 이용하기 위해.
바르간은 디피엘리아를 중앙광장에 이어 두 번째로 사람 수가 많은 대강당으로 미리 보내 놨었다.
중앙광장에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지만 그녀의 마법 성향을 고려하면 사방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공간보다는 막힌 곳이 유리했다.
또한, 중앙광장은 디피엘리아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한 무대였기에 남겨 두어야 했다.
상당수의 1학년들 그리고.
아르볼 프루탈의 일부와 에밀리, 리암은 이곳을 지키며 빼앗기지 않도록 버티고 있는 임무를 맡았다.
중앙광장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잘 맡아 주어야 부드러운 시나리오 전개가 가능하다.
모든 지시를 받은 알리시아는 곧바로 뛰어나가려 한다.
바르간 역시 사설을 잇지 않으며 움직이기 위해 몸을 돌린다.
알리시아의 울음과 그녀가 머금었던, 죄송하다는 말의 의미를 묻지 않은 채.
준비해 놓은 절차를 밟기 위해서.
***
2학년의 최강자.
오셀 율리오 클레멘스.
아카데미아의 한 골목에서 그녀를 중심으로 많은 인원들이 모여 달려 나간다.
모두가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남들에게 빌런 역할을 확실히 알리기 위한 표시였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호흡으로 클레멘스가 말했다.
그 말이 꽂히는 대상은 큰 보폭으로 느긋하게 달리는 창술사였다. 분명 동작 자체가 붕 떠 보이나 속도는 남들과 견줄 정도로 잽싸다.
“퍼티글. 이번 네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너는 왜 매번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거야….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잠을 자지 말라니 고문이잖아….”
클레멘스는 그가 어떤 식으로 말을 하든 결국에는 2학년의 세력으로 협력하여 움직이기로 한 점을 짚었고.
퍼티글은 진하게 하품을 한 뒤, 그 까닭을 설명했다.
“축제가 더 길어지면 시끄러워서 잠자는 데 방해돼.”
“그건 좋은 대답이군.”
그의 대사에 클레멘스는 미소 지었다.
가면에 가려져 있으나, 그녀가 퍼티글의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축제의 종료 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침에 해가 밝을 때까지가 이들의 활동 시간이자, 축제의 종료를 알린다.
그러나, 퍼티글은 마치 축제를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답했다.
그 말은 즉, 시간이 오기도 전에 모든 1학년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외부인들을 전부 인질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
이를 알기에 클레멘스가 말한다.
“장담한 만큼 보여 주리라 믿겠다.”
“장담이라니… 그냥 한번 해 보겠다는 의미였어. 난 귀찮은 것 자체를 싫어하긴 하지만, 귀찮은 걸 오래하는 건 더 싫어.”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지. 나는 네 본 실력을 보고 싶을 뿐이니까.”
“나랑 같이 있지도 않을 거면서 어떻게… 아 그래 얘를 붙이려고 하는 거구나….”
퍼티글은 그녀의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클레멘스의 시종 따위가 아니었으나 마치 주종 관계처럼 그녀를 극진히 모시고 있는 여학생인 ‘그리타’였다.
말이 원채 없고, 무뚝뚝한 그녀는 클레멘스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인다.
이번 그녀의 역할은 퍼티글을 따라다니며 그가 다른 짓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실력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리타는 가면 속에서 곧이라도 찔릴 것 같은 가는 눈매로 퍼티글을 직시하고 있다.
“믿는다더니 순 뻥이네. …하기야, 네가 누구를 쉽게 믿는 성격은 아니니….”
퍼티글은 늘어지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였고.
적당한 웃음으로 넘긴 클레멘스는 속도를 낮춘다.
이번엔 반대편의 한구석에서 쫓아오던 금발의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저 여인이 프란체스카라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클레멘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프란체스카는 전에 말했던 대로, 시간이 되면 광범위 사령술을 시작하면 된다.”
최대 일백 이상의 해골 병사들을 다룰 수 있는 프란체스카는 이번 일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인들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이니 일반 학생에 비해 힘이 부족한 해골병사라고 한들, 이끄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마나 총량이 관건일 테니 그 전까지는 최대한 아끼도록 하고. 그동안 마나를 비축할 곳으로는…”
클레멘스가 미리 선정해 둔 장소를 언급하려는 순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천천히 끄덕일 줄 알았던 사령술사 프란체스카가 입을 열었다.
“그 장소… 내가 정하고 싶어.”
“그런가.”
가면 아래 얼핏 보이는 클레멘스의 붉은 눈동자가 보름달과 같은 프란체스카의 눈과 마주한다.
아주 잠시.
서로를 살핀 두 사람은 곧 눈을 피하였고.
“기존에 일러 줬던 대로만 따른다면 네가 원하는 곳에서 대비하는 것도 괜찮겠지.”
마법이라는 학문이 시전자의 기분과 컨디션에도 영향을 받기에 클레멘스는 수긍하였다.
특히나 까탈스러운 흑마법 계열은 더욱 그러하니까.
“프란체스카. 네가 맡은 임무가 가장 막중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클레멘스는 지그시 웃어 보였다.
사람을 대할 때 클레멘스가 가장 흔히 보이는 표정 중 하나로,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릴 때 보인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한다.
“믿고 있겠다.”
“…….”
한 방향으로만 뻗어지던 골목이 나눠지기 직전.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갈림길에 따라 무리는 지정해 둔 대로 세분화되어 진열을 바꾼다.
클레멘스는 높은 허공에 식을 띄운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1차 선출 때와는 다른 와이번.
“…전부 꺼내 보이는 건 처음이군.”
아니, 와이번‘들’.
식은 하나가 아니라 십수 개였고.
그 안에서는 상급 사역마인 와이번이 한 마리씩 얼굴을 내밀었다.
1차 선출에서 활약하지 못한 와이번들은.
오랜만에 잔뜩 놀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해 있다.
프란체스카는 고적한 눈으로 잠시 동안 그들을 담았고.
혼자, 자신이 선택한 갈림길로 달려갔다.
***
“루센 교수님과 이렇듯 대화를 나누는 건 참으로 오랜만인 듯하군요. 호호호.”
넓은 아카데미아의 정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
수백 명도 수용 가능한 아카데미아 총장실.
이 지나치게 넓은 공간은 아카데미아에 세워져 있는 탑의 정상부에 위치하는데, 탑의 형태가 꽃과 같이 머리 부분이 과하게 커다랗다.
그 공간을 활용하지도 않은 채.
총장 굴레마시아와 루센은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루센은 커피 잔을 입에 대고는 살짝 기울였다.
뜨거운 음료가 혀를 지나 목을 통과하고 나자,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천천히 답한다.
“…아마 5년도 더 된 일일 겁니다.”
“루센 교수님은 항상 아카데미아를 위해서 힘써 주시고 계시니까요. 학생들의 질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도 루센 교수님이 골렘들을 시간을 쪼개 점검하고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굴레마시아의 말대로 아카데미아에 있는 골렘들은 학생들의 교육용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각종 잡업 따위도 도맡아서 해 아카데미아에서 골렘이란 필수적인 요소에 가까웠다.
그러나, 루센은 총장의 칭찬을 부정한다.
“저는 골렘 연구의 총 책임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도 팀원들이 없었다면 별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요.”
“호호호. 루센 교수님은 언제 보아도 변함이 없으시군요.”
올해는 루센이 아카데미아에 재직한 지 20년째 되는 해였다.
아카데미아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연구원이 된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아카데미아에서 보내고 있었다.
루센이 학생이었을 시절에도 굴레마시아는 아카데미아의 총장을 맡고 있었고.
두 사람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루센은 굴레마시아가 뱉은 말을 커피와 함께 머금는다. 천천히 입안에서 맴돌게 하며 향을 음미한다.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과거와 지금, 변함없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짙은 다크서클을 달고 다녔으니까요.”
“루센 교수님께서 그런 말을 하시다니. 오늘은 루센 교수님에게 특별한 날인가 봅니다.”
“…….”
루센은 입을 다문 채 곰곰이 생각한다.
이것 역시 굴레마시아의 말이 옳다.
특별한 날.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날이다.
“꽤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프로젝트가 오늘 끝날 것 같아 …조금 기분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마땅히 축하할 만한 일이로군요! 루센 교수님께서 또 어떤 놀라운 마법의 논문과 발표를 보여 주실지 기대하겠습니다.”
굴레마시아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수염을 쓸며 기뻐했다.
과거에 그를 직접 가르쳤던 적도 있었던지라 루센은 단순한 유능한 교수가 아니라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루센은 다시 커피를 홀짝인다.
최근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그는 음료의 향이 진득하게 남아 있어야지 제대로 대화를 하였다.
그가 입을 연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총장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총장님이 계셨기에 저는 아카데미아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었죠….”
그것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애교 없는 제자라 한 번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
총장 굴레마시아는 주름살 사이로 그를 보았다.
20년도 더 전에 보았던 루센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주름이 생기고, 허리가 다소 굽었어도.
늙은 그가 보기에는 충분히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호호호….”
굴레마시아가 온화하게 웃는다.
자신의 제자가 처음 보았던 그때와 변함없이.
학문을 탐구하고,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 주었기 때문에.
…….
굴레마시아는 고개를 돌려 밤하늘의 보름달을 담았다.
달빛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수척해진 총장의 얼굴을 비춘다.
그의 비쩍 마른 입술이 움직인다.
“루센 교수님….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날이로군요.”
그러자, 루센은 담담하게 답하였다.
“네…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