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5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52화(152/350)
격돌하는 두 기운.
알티프를 의미하는 진한 자색의 마나와, 눈에 인식되지는 않아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마나.
바르간이 블뤼란스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마력포는 어느새 12개가 되었다. 부패의 마법이 담겨 있어 검게 타오르는 마력포.
처음에 선언한 것보다 개수가 많아진 까닭은.
바르간과 얼추 합을 나누자 전력을 다해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블뤼란스가, 대주교급 이상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해방의 초기 형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최초로 자신의 힘을 개방한 블뤼란스.
아직 온전한 권능해방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미완성의 형태였어도 그의 신체를 강화시켰고, 마나와 힘을 크게 증가시켰다.
블뤼란스는 즐거웠다.
바르간이 보이는 기술들은 하나하나가 기묘하며 강력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드넓은 마나 총량은 가히 사기적이라 부를 만했다.
아카데미아에 잠입해 있는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전투라고는 전혀 하지 못한 블뤼란스.
과거,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전장을 누볐던 그의 몸은 그 역사를 되풀이하지 못하여 근질근질했었다.
그러나, 지금.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바르간은 이미 학생의 수준을 월등히 벗어나 있다.
교회 용사랭킹의 숫자를 대입하여도 두 자릿수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아 갈 터이다.
이런 녀석이 현재 힘을 제어하고 있다.
본래의 힘은 이것 이상.
심지어는 고유술식을 연구하고 있다.
…그게 완성된다면?
그럼, 대체 어디까지 재밌는 놈이 될 것이란 말인가!
싸우고 싶다.
미치도록 싸우고 싶다.
그런 너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고 싶단 말이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블뤼란스는 자신의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흥분과 광기에 미쳐 창을 휘둘렀다.
사람의 것을 유지하고 있던 푸른 번개는 어느새 알티프의 것이 되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인간과 알티프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 블뤼란스.
본래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태어난 그의 기구한 운명.
자신을 무시하는 것들을 힘으로 제압해 온 그가.
그 순수한 무력으로.
여신을 위한다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다른 목적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채.
지금의 싸움을 즐기고 있다.
권능을 해방하였음에도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재생을 이어 가도 끊임없는 부패의 마법이 서서히 몸을 좀먹어 간다. 붉은 오러에 베일 적에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선에서 끝이었으나 바르간의 마법은 더욱 치명적이다.
지금의 전투는 블뤼란스 신체 밖에서,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카하하하학⎯⎯!』
바르간의 압도적인 마력과 흑마법 특유의 성질 때문인지, 마치 여신교의, 그것도 어지간히 대단한 주교급 이상과 싸우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부패 마법 또한 대주교였던 아미를 연상시키는….
인식되지 않을 속도로.
보이지 않는 전격의 창을 쏘아 대며 맹공을 이어 가던 블뤼란스.
문뜩,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여신교와 비슷한 성향의 바르간.
그는 이런 곳에서 썩어 있기는 아깝다.
그 재능이, 행보가 용사와는 맞지 않는다.
블뤼란스는 자신에게 쏘이는 부패의 마력포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씨익 미소를 짓는다.
『너, 여신교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고속으로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
블뤼란스의 목소리는 직접적으로 바르간의 뇌에 전달되듯 왜곡이 없었다.
블뤼란스가 이러한 말을 한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여신교에 들어온다면 ‘축복’을 받을 수 있지. 알고 있겠지만 축복이란 마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것이다.』
그가 히죽거린다.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면서 잔뜩 달궈진 목소리를 뱉어 낸다.
『생각해 봐라! 축복을 받은 너의 모습을! 너는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 뿐만이랴?! 생사결을…! 전쟁을…! 죽을 때까지 이어 갈 수 있단 말이다!』
블뤼란스는 바르간의 성향 안에 자신과 같은 싸움꾼의 피가 흐른다고 여겼다.
지금 자신의 피가 이처럼 들끓는 이유도 분명 같은 족속을 만났기 때문이겠지.
귀족이니, 용사니 뭐니 하는 시답잖은 것으로 포장하려고 하고 있지만, 녀석은 틀림없이 여신의 비호 아래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권위적인 네놈이라면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를 해 주마.』
블뤼란스는 바르간을 포섭하려 한다.
그의 재능을 탐내어 훗날 자신을 지지할 세력으로 규합시키려 한다.
『여신교에서 계급이란 절대적인 것! 너 정도라면 주교로 들어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 너를 따르는 수많은 사제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힘이 곧 계급이 되는 세계.
그 정점에 오르기 위한 여정.
여신교란 여신을 찬양하기 위한 종교이기도 하지만.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정글과 같은 곳이며 지속적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즉, 여신교에 들어선다는 것은 강한 알티프, 사람 어느 쪽과도 싸울 수 있다는 말이다.
『흥분되지 않나! 떨리지 않나! 네 이름은 세상에 널리 퍼져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네 이름만 들으면 오줌을 지릴 것이고, 공포의 눈물을 흘리게 되겠지!』
블뤼란스는 머지않아 자신이 대주교가 된다면 바르간을 휘하에 두어 마음대로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가 감추려고 하는 살인에 대한 욕구를.
전장의 피 냄새에 대한 욕망을.
실컷 드러낼 수 있도록.
바르간은 블뤼란스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다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로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신교에 들어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많을 테지. 또한 별도로 얻을 수 있는 힘 또한 상당히 매혹적이다.”
바르간의 긍정적인 대답에 블뤼란스의 입꼬리는 다시금 길게 찢어져 귀까지 이르게 된다.
포섭에 성공할 거 같다.
역시 녀석은 자신과 똑같은 놈이다…!
『그래, 그거다 바르간! 사람을 지켜 무엇을 하겠나! 어떤 즐거움이 있나! 살육전…!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피 말리는 죽음의 현장이야말로 네게 어울리는 곳이다!』
블뤼란스는 맹렬하게 이어 가던 공격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 잠시 거리를 벌리며 미쳐 버린 것처럼 웃는다. 가죽이 찢겨 나가고 검은 불길에 자글자글 타오르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잔뜩 기대하는 블뤼란스, 그에게 들리는 음성은.
“하나, 거절하겠다.”
『뭐…?』
바랐던 것과 정반대의 대답이 들려오자 블뤼란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블뤼란스는 바르간의 대답을 다시 한번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사는 같았다.
바르간은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고.
그를 자신과 같은 족속이라고 여긴 블뤼란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가 뭐냐…. 설마 네놈이 정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닐 터.』
블뤼란스의 말이 이어졌으나. 바르간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끊어 내었다.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대사를 전부 들을 생각이 없는 바르간은 요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블뤼란스가 했던 제안, 그 내용을 언급하며 짚는다.
“주교로는 부족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블뤼란스는 미간을 구긴다.
대주교 선발에서 눈에 띄기 위해 아카데미아를 침공한 주교 블뤼란스를 바라보며.
바르간은 거만한 미소를 보였다.
“나를 데려가고 싶다면 적어도 대주교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야.”
대주교.
15밖에 없는, 사실상 여신교의 실세인 추기경들을 제외하면 최고 권력에 위치한 존재들.
온갖 특혜를 누리는 그 위대한 자리를.
저리도 장난스럽게.
바르간은 교섭의 재료로 요구한다.
미친놈. 저건 제대로 미친놈이다.
블뤼란스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현재, 주교급의 정상에 위치한 자신과 다른 주교들이 아카데미아에서 난리 치려는 연유가 무엇인지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을 가볍게 불러 농락한다.
저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다.
자신, 더 나아가 주교 전체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일시적으로 소란이 멈춘 이곳.
잠시 후, 창에 맴돌던 자색의 전류가 튀기는 소리가 들리자.
『카, 하하학.』
블뤼란스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툭툭 뱉어진다.
『카, 하하학. 하하하학!』
줄줄이 새어 나와 꼬리를 잇는 웃음은 블뤼란스의 거칠거리는 목소리를 잔뜩 묻히고 있다.
『카하하하하학! 제정신이 아니야! 이건 내가 들어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군! 카하학!』
블뤼란스가 알기에.
여신교의 역사상, 전도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대주교에 도달한 존재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그걸 처음부터 요구한다고?
주교로 데려오는 것도 어지간해서는 없는 일이거늘!
바르간… 녀석은 정말로 머리가 돌아 버린 녀석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걸하게 웃던 블뤼란스.
한바탕 웃어서인지 그의 몸을 지배하던 살기 또한 옅어져 버렸다.
몸은 여전히 곳곳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길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였으나, 그는 조금의 내색도 하지 않는다.
웃음을 멈춘 그는 곁눈질로 기척을 살핀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일행이 있다.
이 정도면 대충… 1학년의 아르텔리온 일행 정도이겠군.
현 자신의 상태와 바르간의 상태를 살피며 비교해 보지만. 지금 저들이 합세하게 되면 위험하게 된다.
판단을 마친 그는 바르간에게 전한다.
『살육전은 끝이다. 2차전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중에 보자. 제정신이 아닌 인간아.
그 말을 끝으로, 생사결을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마저 느껴지는 블뤼란스의 음성은 사그라지고.
그의 눈동자는 바뀌게 된다.
바뀐 눈동자에 담겨 있는 것 잠을 자고 싶어 하는 태평한 인간의 것이다.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그는 한순간에 ‘블뤼란스’에서 ‘퍼티글’이 되었다.
퍼티글은 늘어지는 말투로 말한다.
“이제 아카데미아에 있는 것도 끝이네…. 더 느긋하게 있고 싶었는데….”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는 가볍게 발돋움을 하였다.
퍼티글은 무게를 잃은 것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시선은 바르간을 향하여 가볍게 인사한다.
“잘 있어. 시끄러운 1학년아. 귀찮아지니까 되도록 평생 마주치지 말자.”
그렇게 하늘을 떠다니는 퍼티글은 빠른 속도로 도주하려 한다. 나무늘보를 연상시키는 말투와 행동과는 달리, 그가 보이는 결과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철컥.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던 퍼티글.
그의 팔목을 붙잡는 무언가에 의해 저지당했다.
팔목에서부터 뻗은 검은 철의 줄기는 바르간의 팔과 연결되어 있다.
바르간은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내가 이대로 순순히 보낼 리가 없지 않은가.”
“누가 봐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장면 아니었나?”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좀 봐줘… 애초에 나랑 싸우던 것도 아니고 네 부패 마법 때문에 이곳저곳이 타올라서 아파 죽겠다고….”
바르간은 지금 이 상황에서 퍼티글이 나왔다는 의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전투에는 블뤼란스.
도주에는 퍼티글이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봐달라는 식으로 말하였으나, 남은 힘을 쥐어짜 낸다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
현재 바르간은 그의 사슬 사역마인 늑돌이를 입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도 퍼티글을 막을 수 있다 장담할 수 없다.
그래.
어차피 도망칠 것이라면 최소한….
“몇 달은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럽게 만들고 나면. 도망가도 좋다.”
“그러니까 좀 봐달라니까….”
***
아르텔리온 일행이 도착한 것은 퍼티글이 극심한 피해를 입고 도망친 바로 직후였다.
온몸이 부패의 불꽃에 타고 있었는데 그래도 사슬을 해체하고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였으나.
원작에서 퍼티글이 주인공 일행에 의해 맞이한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도 도망쳤던 장면을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바르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포획이나 죽이는 쪽이 아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안을 택했다.
가볍게 떠오르던 몸도 어딘가 불안정했으니 내상까지 입었음이 틀림없다.
아마 앞으로 2달간은 아무것도 못 하고 회복에 전념해야 할 터이다.
바르간은 황금의 기사 아르텔리온과 그 일행에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보호를 맡기고 이동하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외모와 같이 목소리마저 미성인 그가 말했다.
“…그대로 가도 괜찮겠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네가 그렇게 될 정도면 상당히 강한 적이었나 보군.”
“…….”
아르텔리온은 바르간의 현 상태를 지적했다.
블뤼란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전투를 하면서 약간의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지만.
현재 그의 몸은.
“알리시아가 지금의 너를 본다면 상당히 슬퍼할 것이다.”
상당히 만신창이였다.
바르간은 전투 내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압도하고 있다는 듯한 말과 태도를 일관하였으나.
사실, 블뤼란스와 바르간의 전투는 박빙이었다.
초반이야 블뤼란스의 권능과 기술을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던 바르간이 몰아붙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이 맞추어졌고.
결국에는 수평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둘의 실력은 호각.
바르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최상위급 주교.
퍼티글 블뤼란스와 같은 수준.
아카데미아의 학생을 기준으로, 아니 용사를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였으나.
바르간은 부족함을 느꼈다.
타오르는 갈증을 느꼈다.
…아직 경지가 부족하다. 갈 길이 멀었다.
그는 만족하지 못한다.
“…왕자님께서는 정말로 제 시종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녀의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그렇다고 해 두겠습니다.”
바르간은 아르텔리온의 우려를 밀어내고 걸음을 옮기려 든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고통을 표하지 않는다.
다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 정도의 피해도 충분히 예상 범위 안에 있으니 괜찮다.
아르텔리온은 더는 그를 막지 않고 사람들을 챙긴다.
바르간은 치유 마법을 쓰며 응급조치를 하면서, 천천히 걸어 나간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바르간의 발길은 달빛이 이끄는 곳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