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5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53화(153/350)
왼팔의 감각이 거의 없다. 전격의 창에 의해 마비를 당해서인지 좀처럼 근육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오른 어깨는 살가죽이 깊게 파여 있다. 치유 마법으로 응급처치를 했으나 그 사이로 삼각근의 형태인지 시뻘건 줄기의 다발 같은 것이 보인다.
체력도 상당히 소비했다. 이 세계에서 마나는 곧 체력과도 연관되는 신비. 마나 총량의 높은 계위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아직 끝을 볼 수 없으니 괜찮다.
내가 아무리 과소모를 한다고 해도, 헤일리온의 대규모 고유술식 같은 마법을 연속으로 십몇 발 사용하지 않는 이상 바닷물이 전부 증발될 일은 없으니.
치유 마법으로 대강의 응급처치를 마치고 한적한 골목으로 몸을 피한 나는 착마마법(着魔魔法)을 풀었다. 내가 착용하고 있던 늑돌이는 현현화하지 않고 그대로 술식과 함께 돌아간다.
본래 바르간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사역마가 없다. 신성의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치유와 관련된 녀석을 한 마리도 데리고 있지 않는다.
‘…저번에 ‘유니’를 얻었기에 망정이지.’
유니는 가장 최근에 내 사역마 무리에 들어온 녀석으로 여름방학 기간 에리카의 저택에 가기 전, 슈겐하르츠 본가에 있을 때 던전을 정리하면서 사역한 개체이다.
유니콘의 생김새를 하고 있어 유니라고 이름 지어 줬다.
현재 내가 기르고 있는 유일한 신성 계열 사역마이다.
유니의 특징은 급속 자가 회복.
어지간한 회복 마법보다 그 속도와 재생도가 뛰어나다.
다만, 문제는 다른 생물의 회복은 불가하다는 것… 이나, 나는 헤일리온에게 습득한 착마마법이 있으니 예외이다.
늑돌이를 해제한 나는 새로운 착마 대상으로 유니를 선정하였고 술식을 공유한다.
늑돌이와는 성향이 완전히 달라 감각이 새롭다.
단순히 새로운 것만이 아니다. 그 효력을 체감할 수 있다.
감각이 거의 없던 왼팔에는 전류가 빠져나가듯 천천히 통제를 받아들인다.
오른 어깨에 꼴 보기 싫게 파여 있던 부위는 빠르게 수복되기 시작한다. 다른 상처 부위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복원되어 간다.
‘비율만 적었더라면 전투 시에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당연하게도, 유니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자해를 하여 착마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유니는 제 기능을 다하는 뛰어난 사역마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력’의 소모가 대단하다는 점이다.
이미 다른 마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확인한 바.
이와 같이 싸움이 끝나고 짬을 내서 회복하는 데는 용이할지 몰라도, 안 그래도 동시에 처리할 정보의 양이 넘쳐 나는 전투 중에는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래도 뭐, 유니 덕분에 이와 같이 퍼티글 블뤼란스와 일대일로 상대할 계획도 세웠던 것이지만.
“후우….”
유니의 치유는 상냥하지만은 않아서 고통이 상당하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숨과 함께 통증을 몰아내었고.
생각한다.
자, 블뤼란스와는 예정대로 결투를 벌였고 승부의 결말도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현 아카데미아의 상황은 어떻지?
아카데미아의 곳곳에 뿌려 둔 찍찍이 100마리.
정확히는, 시야를 공유하는 쌍둥이 부엉이 사역마, 왕눈이와 이중융합을 한 100마리의 사역마들.
CCTV처럼 모든 곳을 살피는 녀석들이 보내는 정보의 양은 방대하여 이를 전부 살필 수는 없다.
필요한 곳만 빠르게 확인한다.
먼저, 알리시아가 있는 대강당.
대주교 베리스가 수많은 학생을 대적하고 있다.
아카데미아 측의 주요 멤버는 알리시아, 디피엘리아, 파울라, 에리카, 알렉세리아, 브락키움.
베리스의 권능해방은 아직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절반만 되어 있다.
자신의 힘을 씨앗의 형태로 상당히 압축시켜야만 이동이 가능했던 베리스.
녀석은 대강당에 있는 사람들의 정기와 마나를 빨아먹어 빠르게 압축했던 힘을 풀려고 하였으나, 거대한 고목을 다루는 디피엘리아의 제지로 인해 큰 방해를 받고 있다.
때문에 현재까지 절반 정도만 권능해방을 한 상태.
그런데도 저 엘리트들과 대적하며 대등한 승부를 보이고 있다.
에리카와 4학년 멤버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미 베리스는 대강당의 모든 생명을 앗아 가곤 온전한 힘으로 아카데미아를 활보하고 있었을 터.
…에리카의 지친 모습이 눈에 띈다.
워프 마법으로 세 명이나 되는 고용량의 인물들을 장거리 이동시켰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될 것을 알고 되도록 전투에는 참여하지 말라 일러 놨는데 혼자 숨어 있기는 싫었던 그녀.
다소 복잡한 마음이 들지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다른 시야를 살핀다.
…….
그렇게 모든 확인이 끝난다.
아카데미아를 휘젓는 여신교는 대주교 베리스와 최상위급 주교 3체, 기타 주교 4체.
최상위 주교급 중 하나인 ‘그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기가 최대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변곡점은 없다. 예정된 선은 휘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최초의 계획 역시 유지한다.
그대로 직진.
지금 내가 사냥해야 할 인물은….
“프란체스카.”
녀석이다.
⎯스스스.
내가 있는 골목으로.
타이밍을 적절히 잘 맞춘 태산이와 어둑이의 융합체가 다가왔다. 고대 드래곤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으나 기회를 보다가 잘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치유가 완료되자 유니를 해제하여 돌려보낸 나는 태산이와 어둑이의 이중융합 역시 풀었다.
태산이는 돌려보내고 어둑이는 남긴다.
결전을 향할 복장으로는 다른 사역마들이 아닌 어둑이.
오랜 시간을 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갔던 이 녀석이 적합하다.
***
오셀 빅토리아 프란체스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그리운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
언제나 따뜻하게 포용하여 주시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웃음을 지으시던 분.
책을 자주 읽어 주셨고, 그중에서도 어머니께서 읽어 주시는 동화들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랬던 어머니는 이제 없다.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과거에 남아 버리셨다.
그리운 사람, 아버지.
사령술에 관한 지식과 흥미를 심어 준 장본인.
아버지께서는 가족을 사랑하셨던 만큼 어머니의 별세에 대한 충격이 크셨다.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어머니의 음성에 묻히어 술식 연구에 남은 인생을 바치신 분.
프란체스카가 아버지인 니클라스의 술식을 이어받은 데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바탕을 이루었다.
비록 그것이 이기적이고 남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이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술식의 의미를, 그분의 진심 어린 애정을 간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설령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붙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나비처럼 긴 속눈썹이 가라앉아 있다.
영원히 뜨지 않고 싶다는 듯, 프란체스카는 닫힌 두 눈.
주변의 소음이 아무리 귓구멍을 강타하여도.
자신의 마나가 뿌리부터 뽑히듯 갈취당하고 있어도.
먼 옛적의 꿈에 젖어 있는 그녀의 눈꺼풀은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성대라고는 없을 고대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마나와 함께 대기를 거세게 울렸고.
“……!”
프란체스카는 눈을 뜨게 되었다.
노란 달이 비치는 눈동자로, 여리한 움직임으로 현 상황을 확인한다.
몸은 구속당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뼈 무더기에 의해 수몰되어 프란체스카는 동작의 자유를 빼앗겼다.
그녀는 현재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무언가의 부속품이 되어 끊임없이 마나를 뽑히는 중이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실패한 거구나.”
현재 프란체스카는 고대 드래곤의 심장이 되어 있었다.
고대 드래곤은 살갗이나 장기 따위는 실존하지 않았으나, 마나로 형성되어 얼추 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짙은 마나의 덩어리, 뼈의 뭉치로 되어 있는 게 프란체스카를 뒤덮고 있었고.
그것은 빠르게 박동하며 고대 드래곤의 출력을 도왔다.
가녀린 시선을 훑어 주변을 바라본다.
고대 드래곤의 양옆에는 프란체스카의 든든한 문지기였던 두 해골 병사가 보인다.
대충 보기에도 그 둘은 다른 병사들에 비해서 입고 있는 갑옷의 완성도나 분위기가 남달랐는데,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뿜어내는 기운 역시 더욱 첨예하여 새로운 주인을 모시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 전혀 없다.
쿠궁.쿠궁.
고대 드래곤은 아카데미아의 중심부를 향해 가는 듯하다.
자신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본능적으로.
아카데미아에서 가장 마력이 짙은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공중도시 아카데미아를 지탱하는 거대한 마석.
그 마력을 다스리는 정수.
최초의 마법사의 창조물 중 하나인 ‘조절장치’는 중앙에 위치한 대시계탑 안에 숨어져 있다.
…라는 소문이 떠돌기는 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고대 드래곤이 직선거리로 나아가는 걸 보면 얼추 맞는 소리인 듯하다.
그것을 흡수하여 거대한 마석의 기운 역시 뽑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렇게 된다면 전성기는커녕 그 이상의 방대한 힘을 얻게 될 터이다.
“…….”
술식에 실패하고 부품이 되어 버린 프란체스카.
아카데미아는 그녀가 벌인 행각에 의해 소란스럽고.
착취당하고 있는 그녀의 몸은 되레 고적하다.
적막하고, 애처롭다.
“…의미가 없었어.”
그녀의 비애는 음성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토대를 이룬 고유술식을 다시금 속으로 해석하며. 줄곧 느끼고 있던, 하나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골격 식의 ‘오류’를.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거였어…….”
결코 아버지인 니클라스가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 믿고 싶었던 마음에 보았음에도 눈을 가리고.
알았음에도 생각하기를 멈췄다.
술식의 종착점에 무언가 숨겨진 바가 있기를.
술식에 대한 자신의 이해도가 낮을 뿐이기를 기도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금술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
설령 세상이 욕하더라도 자신만은 믿고 싶었는데.
아버지에게는 선명히 들렸을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의 광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빠….”
엄밀하게 말해, 프란체스카의 고유술식은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여신교의 ‘목소리’에 홀렸던 그녀의 아버지인 니클라스가 초기에 설정한 값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으니까.
이를 기획하였던 니클라스의 흐려진 시야가 그대로 반영되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결코 프란체스카가 원한 결과가 아니었고.
그녀가 바란 숨겨진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지금의 상황이 비추는 현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 오셀 빅토리아 니클라스가.
아내를 잃고 추락해 버린 미치광이였을 뿐이라는 잔혹한 사실이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멋대로 활성화된 마력 회로는 달궈진 수준을 넘어서 충분히 과부하에 걸린 상태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확실한 죽음을 맞이할 터이다.
“…….”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남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듯, 이 거대한 과거의 흔적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가 줬으면 하고. 처연하게.
삶을 포기한 채 묶여 있다.
그러다.
⎯…처단하겠다. 프란체스카.
가장 꺼리는 인물의 음성이 들렸다.
이는 환청 따위가 아니다. 분명하게 노기가 어린 클레멘스의 목소리였다.
프란체스카는 도로 감기려는 두 눈을 올린 채 주위를 살폈다. 피와 같이 진한 머리칼의 여성이 와이번을 탄 채 랜스를 들고 있다.
그녀는 머리부터 흐르는 핏물이 한쪽 눈을 가리어도 닫지 않았다.
프란체스카는 고유술식이 발동됨과 거의 동시에 정신을 잃어 알지 못하였지만, 당시 고분에 있었던 클레멘스는 고대 드래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클레멘스는 평소 남을 느긋하게 내려다보던 태도와는 달리,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투지를 보인다.
“금술을 연구한 죄.”
강인한 음성이 프란체스카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비릿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듯한 클레멘스는 사납지만 동시에 차분하게 프란체스카의 죄를 읊는다.
“단순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교회 소유물에 멋대로 적용시킨 죄.”
그녀의 음성은 그녀의 아버지인 용사랭킹 1위 실베스테르를 닮아 굳세다.
지금의 상황은 과거의 그 순간과 자못 닮았다.
“그리고, 아카데미아를 전복시키려는 죄를 물어. 즉결사형의 적용 대상이 된 너를….”
살해한다.
살해당한다.
죽인다.
죽임을 당한다.
…마치 아버지께서 목숨을 잃으셨던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클레멘스, 그녀의 말이 옳다.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며 삶에 대한 욕구조차 없는 상황. 그녀에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이를 슬퍼하거나 격노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죽는 것이 옳다.
그래야 고대 드래곤의 출력도 약화시킬 수 있을 터니까.
…하지만.
“클레멘스….”
어쩌면 분노와 무력감, 그리고 비애감의 대상일지 모른다.
모든 것을 잃은 상태이기에 이와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하게.
프란체스카의 가슴속에 박혀 있던 클레멘스에 대한 증오가, 열등감이, 온갖 오물을 묻힌 감정들이 섞인 채 꾸역꾸역 올라왔고.
입 밖으로까지 내뱉어진다.
“클레멘스……!”
부릅뜬 프란체스카의 동공은 확실하게 붉은 머리칼의 여성을 담는다.
알고 있다.
그날도, 지금 이 순간도.
영광스러운 율리오 가문은 정의의 사도이고 히어로이며.
빅토리아 가문의 두 얼룩은 질 나쁜 악인이자 빌런이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가장 깔끔한 결말이라는 것도 모두가 원하는 방안이며 결말이다.
따라서, 이건 이기적인 욕망.
현 사달을 발발시킨 술식의 연구의 시작 역시 극심한 이기심이 출발점이었지 않았던가.
고오오⎯!
고대 드래곤의 독기와 같은 마나가 한층 강렬해진다.
수동적으로 마나를 빼앗기던 프란체스카는 적극적으로 돌변하여 자신의 뿌리부터 뽑아낸다.
클레멘스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옳다.
자신은 틀렸고, 비참하게 죽어 마땅한 년이다.
무덤은커녕 시체를 잘게 쪼개어 까마귀의 먹이로 삼아도 모자란 것.
악당(惡黨).
이 추잡하고 더러운 마음 역시 사람을 수호하는 용사의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이건 여신교, 절대 악. 그것에 준할 게 틀림없다.
그 끔찍하게 추한 목소리로.
추악하고 역겨운 감정으로.
프란체스카는 부르짖는다.
“증오스러운 율리오 가문의 계집아……!”
그렇게 프란체스카는 완연한 악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