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6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60화(160/350)
어느 날, 알리시아는 남들보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했다.
축제가 있은 후 알리시아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적었던 그녀의 수면 시간은 더욱 줄게 되었으며 하루에 채 1시간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알리시아는 채 날이 밝지도 않은 이르디이른 시간에 자신의 기숙사 방 안에서 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검을 꽈악 쥔 채, 두 눈을 감고 체내의 마력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안에 성질을 부여한다.
큰 틀인 오러의 구성식을 이끌고 세부 분야인 바람에 대한 자신만의 식을 마음속으로 적어 나가간다.
식이 쭉쭉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막히기도 하고 다시 뒤로 돌아가기도 한다.
배움에 있어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과정.
학문이란 뻥 뚫린 고속도로가 아니라 복잡한 미로와도 같은 것이다. 탈출구에 가까워지는가 싶다가도 알고 보니 뒤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마법과 같이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특질이 변모하는 것은 더욱이 그랬다.
그러나 대주교 베리스와의 전투 이후로 알리시아는 일종의 무력감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발전 정도가 미진하다고 느껴졌다.
대주교는 강력하다.
여신교를 이끄는 열다섯의 존재들이니 당연한 말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철저하게’ 놀아났다.
그녀는 온전한 권능 해방을 한 상태도 아니었다.
만약 권능 해방을 끝마친 상황이었다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진 것은 베리스의 민들레씨가 아닌 잘게 분해된 자신의 육신이었을 터.
베리스의 딱딱한 겉껍질에 닿은 순간.
알리시아는 그녀와 자신의 절대적인 차이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고, 실제로 나이아스가 아니었다면 몇 번을 죽었을지 모른다.
물론, 당장 대주교를 상대로 박빙의 일대일 대결을 벌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여도 그 정도로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최소한 모두의 지원을 받고서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알리시아의 몸을 움직였다.
스아앙-.
바람의 속성을 부여받은 검은 쾌속의 오러로 뒤덮여 울었다.
알리시아의 검은 베리스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이유는 예기가 부족해서다.
붉은 오러로 가는 마지막 단계.
검의 날카로움.
그것만 깨닫게 된다면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을 텐데.
보다 도련님의 도움이 되고, 더욱 강한 알티프를 상대할 수 있을진대.
알리시아의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좀처럼 그 ‘감각’이 전해지지 않았고. 이에 회의감이 밀려올 적에는 또 다른 방해물이 알리시아의 주위를 산만하게 하였다.
-혹시 뭐 ‘언니’ 같은 거 있고 그랬어요? 그게 아니고서야….
대주교 베리스가 말했던 것은 그저 우연일까?
그러나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하다.
-아하하하-! 덕분에 앞으로 보는 재미가 있겠네요. 그때가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나 보고 싶어요.
아직도 귓바퀴에 울리는 그녀의 웃음.
그녀는 당시의 상황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보인 반응으로 인해 베리스는 어떠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과거,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언니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
알리시아는 사고를 멈춤과 동시에 검에 담았던 거센 기운을 흩어 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더 늦기 전에 부단히 몸을 씻고 도련님을 맞이하러 가지 않으면 일정에 어긋나게 된다.
알리시아는 고민이 있다고 하여 그에만 머물지만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녀는 할 일이 많았고, 개인적인 사유로 자신의 주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흘리던 땀을 깨끗이 씻어 내고 머리칼을 바짝 마르게 한 뒤, 옷을 입으며 정돈한다. 샤를로테가 건네준 목걸이를 조심스레 두른다.
마지막으론 거울을 보며 자신의 표정을 가다듬는다.
도련님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입꼬리를 올린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곧바로 기숙사의 문을 열고 바르간을 맞이하러 이동하는 알리시아.
그녀는 최근 바르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상황이라, 본래였다면 얼굴과 자잘한 동작에서 기계와 같은 어색함이 묻어났어야 했다.
그의 작은 배려에 설레고, 얼굴을 붉혔어야 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억누르는 다른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외부로 표출되지 않았으며, 석연치는 않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꽤 감출 수 있었다.
“앗-!”
“아직까지도 잡생각이 많구나, 알리시아. 넓은 아량으로 오늘까지는 넘어가겠으나 내일도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딱밤 한 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녀의 주인에 관한 부끄럽고 죄스러운 감정을 숨기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로 인해 알리시아의 이마는 붉게 물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뭘 그리 보고 있느냐?”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앗!”
“너무 많이 때려서 그런 건가? 맞고 나서 되레 얼굴색이 좋아지는 걸 보니 역시 너는 정상이 아니구나.”
알리시아는 바르간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이때만큼은 부정적인 생각이 잠시 잦아들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 올라오려 노력했다.
사람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할 수 있다. 이는 바르간과 함께 지내면서 알리시아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바르간과 함께 강의실로 들어가 오전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축제가 끝난 지 2주째가 조금 넘는 날.
마법과 기술을 사용하여 아카데미아의 건물들이 빠르게 복원되었듯 아카데미아의 일정도 정상화의 궤도에 이르렀다.
아직, 모든 수업이 전과 같은 커리큘럼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고 학생회장선거와 같은 행사들은 뒤로 밀렸으나, 대부분의 수업 일정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모든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인지라 평소였으면 점심을 먹고 연구실에 들렀을 알리시아.
하지만 바르간이 에리카와의 어떠한 대화를 하기 위해 연구회의 문을 열지 않았고, 알리시아는 드물게 혼자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줄기에 속하는 아르볼 프루탈의 멤버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자신의 성취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휘두르고 있자 다시금 생각에 잠겨 간다.
오전에 그녀의 주인이 잡념을 떨쳐 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거늘, 망령과도 같이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검을 휘두르고 있자.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품위가 느껴지는 이지적인 목소리였다.
오셀 뷔 아르텔리온.
우연히도 같은 시간, 같은 연무장에 들른 그는 알리시아의 검을 보았고, 그녀의 검에 깃든 불순물을 보았다.
알리시아는 검을 잠시 내려놓으며 왕족에 대한 예를 보였다. 부끄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저… 요즘 정체기를 지나고 있는 듯하여 약간의 근심이 들 뿐입니다.”
“그런가….”
아르텔리온은 알리시아의 말을 곱씹었다.
검제의 재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검에 대한 재능이 걸출한 아르텔리온, 그가 봤을 때 현 알리시아의 성장 곡선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듣는다면 기만이라고 부를 정도로, 알리시아는 정체기라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하나… 그녀가 그렇게 느낀다면 정말로 그러한 것이겠지.’
알리시아라는 여인 자체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사고이기도 하였으나, 조금 전 동작에서 보았던 불순물 탓에 아르텔리온은 그녀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가만히 알리시아의 고민을 추측하다 묻는다.
“…붉은 오러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가?”
알리시아는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연스레 도달할 터인데도 서두르려 드는군…. 이는 바르간의 탓이겠지.’
오만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 아르텔리온.
곧게 뻗은 눈썹이 다소 흔들리고, 곧 그 인상을 지워 버렸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여인에 주목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검의 길을 걷는 자.
천재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재일수록 내뻗는 걸음의 무게가 다르다.
그녀의 고민은 아르텔리온 역시 경험했던 것이며.
공감할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
“…예?”
“그대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돕겠다고 말하였다.”
붉은 오러는 개인의 진실된 깨달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 따라서 타인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그다지 효력이 없다.
하나, 같은 길을, 같은 보폭으로 걸었던 사람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
알리시아는 예상치 못한 말에 조금 당황하였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별다른 연고도 없는 자신을 도와주겠노라 말하였는지 몰랐다.
“…….”
깜빡거리는 눈동자로 그와 마주하고 있자.
그가 가벼운 뜻으로 뱉은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분 탓일지 몰라도 살짝 애틋하기까지 한 그의 올곧은 시선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슬쩍 피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민폐가 될까…….”
거절의 의사를 비치려던 알리시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베리스와의 전투와 그녀가 남겼던 말이 떠오르며 입을 막는다.
알리시아가 고민하는 반응을 보이자, 아르텔리온은 천천히 첨언하였다.
“많은 시간을 낼 필요는 없다. 하루에 한 시간. 그 정도면 되겠지.”
“…….”
한참을 고민하던 알리시아는 대답을 유보하였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녀는 바르간에게 이번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의견을 물을 생각이었다.
바르간이 안 된다 하면, 곧바로 거절할 것이고.
된다 하면 더욱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
아르텔리온 역시 그녀의 의중을 알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해라.”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일단락되고.
정적이 흐르려고 하자.
“알리시아….”
연무실로 찾아온 에밀리가 굵직한 눈물방울들을 흘리며 다가왔다. 두 입술은 추운 사람처럼 덜덜덜 떨리고 있다.
“왜, 왜 그러세요, 에밀리 씨?!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에밀리에게 순식간에 다가간 알리시아는 그녀를 부축하듯이 잡는다. 에밀리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계속해서 쏟아 냈다.
“어떡해, 알리시아…… 진짜 어떡해….”
에밀리의 몸과 맞닿고 있자, 그녀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마치 추위가 전염되듯 서늘한 냉기가 알리시아의 몸을 스쳐 지나간다.
에밀리는 슬픔을 토로했다. 그녀와 이를 듣고 있던 알리시아의 눈동자는 동시에 흔들렸다.
그리고.
알리시아의 목에 걸린 푸른 마석이 반짝, 빛이 났다.
***
“너구나… 그 새로운 대주교라는 게.”
말총머리의 용사 샤를로테는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쏘아붙이듯이 말하였다.
그녀의 뒤에는 팀원들이 각자의 무장을 한 채 전투의 준비를 하고 있다.
『…….』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마을.
주변에는 넝마처럼 널려 있는 시체가 너저분하다.
샤를로테의 말을 분명히 들었을 ‘하얀 머리의 여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는 피의 홍수에 젖은 것처럼 온몸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무언가를 그리워하듯 하늘을 바라보며 여린 손만을 뻗고 있을 뿐이다.
“설마 여기서 갑자기 대주교급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최근 가장 말이 많은 대주교 살레오스를.”
최근 아카데미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아직 여신교의 대주교가 선정되지 않은 상황.
따라서, 뒤르테문드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살레오스는 가장 새롭게 대주교가 된 존재였다.
샤를로테는 빠르게 그녀의 전신을 확인했다.
듣던 대로 정말 인간의 모습을 한 개체였다.
마치 자신이 용사라고 말하고 싶은 듯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살레오스.
하얀 머리칼이 계곡과 같이 길게 흐르며 이 역시 마을 사람들의 피로 곳곳이 이염되어 있다.
“샤를로테… 지원군 요청을 완료했어.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빨리는…….”
팀원 중 한 명이 말하였다. 샤를로테도 알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라고 하더라도 최대속력으로 달린다 한들 족히 2시간은 걸릴 것이다.
상위권 용사의 초인적인 신체를 생각하면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샤를로테는 경계를 지우지 않으며 팀원에게 전했다.
“어쩔 수 없어. 우리가 버티고 있는 수밖….”
……어라.
왜 갑자기 관심을 보이지?
처음에는 그런 물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샤를로테의 일행을 길거리의 돌덩이 보듯 관심을 두지 않던 살레오스. 그녀가 돌연 ‘어떠한 단어’에 반응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텅 비어 있던 살레오스의 눈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감정이 차오른다.
그러나, 샤를로테가 인상을 찌푸린 연유는 그게 아니었다.
‘닮았어…… 상당히 많이.’
“알리시아랑… 닮았다고?”
샤를로테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꺼냈다.
알리시아의 이름이 들리자 살레오스는 더욱 관심을 보이며 전신을 돌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눈동자에 차올랐던 감정은 더욱 짙어지고 알 수 없게 되어 애처롭게 변하였다.
도대체 왜… 대주교인 살레오스가 이런 반응을….
샤를로테의 동공은 확장된다.
‘설마… 그런 거였나…!’
알리시아로부터 그녀가 겪었던 일들을 전해 들었던 그녀는 상황을 조합하였고, 진실을 깨달았다.
살레오스는 축 내리고 있던 검을 들었다.
살기가 가득한 붉은 오러가 검신을 타고 올라온다.
‘그 아이가…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이 단번에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샤를로테는 알리시아를 걱정하였다.
샤를로테 역시 맹렬한 기운의 오러를 뽑아냈다.
더욱 의지를 불태우며 눈을 부릅뜬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그 아이가 견딜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 덮치게 될 터이다.
겨우 행복을 찾아 첫발을 뗀 소녀인데.
어떻게…… 그걸 어떻게……!
샤를로테는 오랜 세월 자신의 목에 걸려 있었던 목걸이 대신 주먹을 움켜쥐었다.
각오를 마친 뒤.
작게 읊조린다.
“…걱정하지 마, 알리시아.”
나, 절대로 죽지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