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6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63화(163/350)
마법 술식 기초 수업을 듣고 있던 1학년 학생들.
그중에서는 오셀 랑피트 보르그도 있었다.
수업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보르그 역시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 서 마법 술식에 대한 실험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 보르그에게 다가왔고, 자연스레 쪽지를 건넸다. 오랜만에 받는 쪽지.
보르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아카데미아 내부에 있는 형상파 인원들에게 특정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바르간의 사역마가 배 속에 자리 잡고 나서, 그에게 떨어지는 임무는 없다시피 하였는데 바르간이 내부 여신교의 세력을 휘어잡은 후에는 그에게도 이와 같이 소식이 전달되었다.
쪽지를 건넨 이는 하이오드 트로아 펠릭스. 검술 명가 하이오드가의 남학생이었다. 그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떠나갔다.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 바르간의 탓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일상생활을 이어 가던 보르그는 생각하였다.
형상파의 주축이던 루센 교수는 죽었고, 퍼티글은 아카데미아를 떠났다.
그들이 떠남으로써 아카데미아에 포진되어 있는 형상파는 역력하게 약화되었고, 중심을 잃었다.
캄 교수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는 학생회장 선거 1차 선출에서 별도로 움직여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레제크를 도와주다 클레멘스에게 걸려 활동을 제한당하고 있다.
이 부정행위로 인해, 레제크는 선거를 포기하고 클레멘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것.
레제크는 여신교가 아니기도 해서 클레멘스는 아직 캄 교수가 여신교인 것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선거 부정 이후로 그의 동태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또한, 루센 교수의 죽음으로 인해 외부와의 통신도 두절되었다. 그의 축복을 사용하여 아카데미아와 외부의 통신망을 일시적으로라도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이제는 꿈같은 일이다.
즉, 현재 아카데미아 내부의 형상파 세력은 섬과 같이 고립되어 있었다.
외부에서는 어떠한 지시 사항도 떨어지지 못하고 교류할 수도 없으며, 내부로는 이끌어 나갈 장(將)이 없는 상황.
이 틈을 바르간이 노려 움켜쥐고 있으니 꼼짝할 수 없었다. …아니,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반발할 수 없었다.
‘신충(神蟲)은 또 어찌해서 이리도 난리란 말인가…!’
보르그는 신충이 자리 잡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바르간은 형상파에게 멀지 않은 미래에 아카데미아를 붕괴시킬 것이며 이는 여신교의 뜻과도 일치하니 자신을 따르라고 지시하였다.
당연히 이는 믿을 수 없을뿐더러, 따를 수도 없었다. 형상파도 아니고 심지어는 여신교의 신자도 아닌 자를 무엇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이에 거세게 저항했던 두 명의 인물이 3학년 선배들.
바르간이 여신교의 세력을 색출하려는 척하며 통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시키는 것은 여신교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이니 신충에 의해 불가능, 따라서 바르간을 암살하려 들었었다.
하나, 어찌 된 일인지 바르간을 죽이려 들자 그들의 몸속에 있는 신충은 여신교를 배반하려는 때와 같이 꿈틀거리며 무지성 알티프로 강제 변형을 일으키려 들었고.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였다.
결국 바르간은 본보기로 그들을 사형시켰으며, 다른 여신교 세력은 우선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관관계.
바르간을 죽음과 여신교의 배반이 어떻게 연관되는 것이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보르그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들은 정보가 부족하였기 때문은 아닐 터이다.
그랬다면 3학년 선배들이 죽어 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하이오드 트로아 펠릭스가 그렇게나 어두운 표정으로 쪽지를 건네지도 않았겠지.
‘이번에는 또 어떤 망발을 적었는지 한번 보자.’
수업이 전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보르그.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게 아니라 건네받은 쪽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쪽지는 하이오드 트로아 펠릭스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지정된 인원 외에게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보르그에게는 쪽지에 적혀 있는 글귀들이 보였다.
꾸깃거리는 종이를 펼쳐 재빨리 읽었다.
내용은 길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보르그가 확인을 끝마치자 종이는 절로 소각되었고. 보르그의 인상은 험악하게 바뀌었다.
“우리가 아주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쿵!
그는 꽉 쥔 주먹을 책상에 내리쳤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빨을 빠드득거리며 소리를 내고, 입가의 근육은 잔뜩 비틀어진다.
바르간이 여신교 세력을 가지고 농간하는 것보다 최악은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이것은 그것보다 더하다.
‘프리다…? 그 좀도둑 년을 말하는 건가? 하하하, 하하하하! 여신교도… 형상파도 아니더니, 이제는 귀족조차도 아니라니.’
쪽지에서는 현 형상파 세력의 장에 프리다를 임명하니 이를 수용하라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보르그는 여신교의 신자인 동시에 랑피트라는 자랑스러운 가문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런데 바르간은 그런 자신들을 한천한 할렘가 출신의 개로 만들 심산인 것이다.
씹어죽일 놈의 바르간! 너는 죽어도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여신님께서는 지금의 죄악을 모두 알고 계시며 훗날 피의 숙청이……!
“흐, 흐이익!”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보르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르간을 떠올리며 악한 감정을 뿜어 댔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콩벌레마냥 몸을 굽혀 벌벌 떨었다.
수없이 반복된 과정을 통해 그의 몸은 이미 고통의 때를 알았다.
에리카, 혹은 바르간에 대한 좋지 못한 사고는 고통을 유발한다.
그가 새겨 둔 저주가 발동하여 옥죄어 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분명 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온몸을 괴롭게 하겠지!
이제는 고통이 오는 타이밍과 정도까지 가늠할 수 있게 된 보르그.
그는 달달달 떨며 통증의 때를 기다리다가.
“끄아악, 끄아아아아악!”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신충이 몸을 갉아먹는 것처럼 짙은 아픔이 그에게 마구잡이로 폭행을 시도하였고 절명하고 싶은 생각까지도 드는…….
“끄흐, 어……?”
보르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시간이 짧다. 이 정도의 반발심을 가졌으면 더욱 긴 시간 동안 고통이 이어졌을 터인데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다.
착각? 그럴 리가….
결코 좋은 일은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은 추호도 아니지만, 저주 통증 감별사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보르그는 대가성 저주에 대한 고통의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동안 괴롭혀진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단순 횟수로만 따져도 이백은 족히 넘게 바닥을 굴렀는데 이 정도도 파악하지 못할 리 없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 왜……?’
보르그는 눈알을 굴린다.
동시에 머리도 함께 가동시키며 사고의 범위를 확장해 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 정박하여.
“…저주가 약해지고 있는 건가?”
결론에 이른다.
***
밤이 어스름하게 찾아온 시각.
포트레트 트로아 에리카는 바르간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정하진 않았으나 그에게 대충 언질을 해 두었으니 예정 없는 방문은 아니었다.
축제 이후로 더욱 바르간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진 에리카. 밴틀로가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녀의 마음은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었다.
‘슈겐하르츠와 내 사이에 오해가 있을 거라고…?’
대체 무슨 오해?
우리가 현재 무엇을 보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지?
에리카는 의문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걸음을 이었다. 어느새 그의 방 근처에 다다랐고 곧 있으면….
“……허.”
에리카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뱉었다.
갑자기 바르간의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나오는 여성이 프리다였기 때문이었다.
알리시아라면 그렇다고 해도 저 여우 년이 여기를? 이런 시간에?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지럽던 정신이 바로 차려지는 것만 같다.
프리다 역시 에리카를 곁눈질로 보았고, 입을 열었다.
평등을 추구하는 아카데미아의 규칙이라고 한들 고위 귀족을 보면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기 마련인데 프리다는 시건방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에리카 님. 에리카 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러한 일은 ‘아쉽게도’ 전혀 없었으니까.”
“…뭐?”
“그렇게 인상 쓰지 마세요. 고운 미간에 주름이라도 생겨 바르간 님의 애정이 떨어져 나가면 어쩌려고 그러시나요?”
프리다의 어투가 평소보다 공격적이다.
더는 자신이 물러서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과시하듯, 되바라졌다.
프리다가 에리카 자신에게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바르간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여실 없이 적의를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인가?
에리카는 당혹스러웠다. 하나, 그보다 더욱 비대하고 농밀한 감정은 그것이 아니다.
에리카는 노기를 띠며 말한다.
“네가 미쳤구나?”
대기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에리카의 분노에 반응하는 얼음의 입자는 곧이라도 날카로운 창으로 변하여 쏘아질 것만 같다.
프리다는 그 기운을 감지하였음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되레 한쪽 입꼬리를 보라는 듯이 올리곤 어깨를 들썩인다.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 옛날 옛적에 미쳤죠.”
장난스러운 반응으로 넘기려는 프리다.
그러나, 내뱉는 목소리는 매섭기 그지없다.
‘나는 처음부터 너에게 굽신거리고 싶지 않았다.’
에리카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였다.
이로써 에리카는 확신한다. 프리다와 슈겐하르츠 사이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고, 프리다는 그를 뒷배로 두어 본인에게 이와 같이 막나가는 것이다.
만약… 아카데미아가 아니었다면.
평민, 그것도 할렘가의 여자가 포트레트가의 차녀에게 대꾸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평소 신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내색하지 않는 에리카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학습받아 왔던 그녀의 귀족성이 꿈틀거렸다.
에리카가 별말을 하지 않고 있자, 프리다는 비튼 입가를 돌리지 않은 채 지나가려 했다. 곁눈질로는 에리카의 반응을 살폈다.
귀족의 품위인지 무엇인지 때문에 화를 억누르고 있는 모습. 프리다는 에리카의 긴 속눈썹이 옅게 파르르 떨린 것을 보았고 환호에 가까운 감각을 맛보았다.
그렇게 엇갈려 가는 두 사람.
에리카는 프리다가 완전히 멀어지기 전에 첨언을 한다.
“…너랑 슈겐하르츠가 뭔 짓거리를 하는지는 몰라.”
프리다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얼음 결정과 같은 에리카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의 기온은 계속해서 떨어져 영하 이하가 되었다.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파헤치지도 않을 거야.
에리카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작은 입술을 움직인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참아 내고 있는 분노.
그 압력을 비집고 빠져나오는 극한의 냉기.
귀족의 품격을 잃지 않은 그녀가 말한다.
“너는 철저하게 슈겐하르츠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큰 화를 입고 싶지 않으면 네 분수를 알고 까불지 마라.
에리카는 뒷말을 붙이지 않았으나, 프리다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귓구멍이 막히지 않았다.
서로 교차하는 눈빛.
그녀들은 칼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먼저 발을 뺀 이는 프리다이다. 그녀는 도로 몸을 돌리며 가던 걸음을 잇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한다.
“저만 이용당하는 게 아닙니다. 서로 이용하는 겁니다.”
악바리로 말하듯 뱉어 낸 문장.
프리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고, 에리카는 고개를 돌려 바르간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
프리다로 인해 심기가 크게 나빠진 에리카.
이대로 손잡이를 돌릴 게 아니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스쳤으나 이곳에 온 데는 목적이 있었다.
아무리 기분이 상했다고 하더라도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일의 진행을 늦출 정도로 아둔하지 않다.
천천히 눈을 감으며 숨을 뱉는 에리카.
자신의 마음을 달랜 뒤,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들며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꽤 오래 걸렸구나 에리카.”
“…….”
의자에 앉은 채 기다렸다는 듯이 대사를 뱉는 바르간.
그 거만한 남성을 보자 에리카의 눈썹이 튀기듯 꿈틀거렸다. 슈겐하르츠를 보고 진심으로 바닥부터 화가 올라오는 건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