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6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66화(166/350)
정상급 주교, 한.
추레한 검객의 행색을 하고 세상을 유유자적하게 떠돌아다니는 알티프.
별다른 까닭을 두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는 다른 알티프들과는 달리, 그는 살인을 하지 않는다.
한이 검을 들어 생명을 베는 순간은.
그의 ‘도덕성’에 크게 위반되는 행동을 한 자가 있을 때뿐.
사제급을 늘려 세력을 꾸리지도 않고, 둥지를 만들지도 않는다.
대주교도 아닌 것이 벌써 심판무구를 완성하였고, 권능해방까지 쓸 수 있으면서 권력에 대한 욕심 또한 없다.
정상급 주교라고 불리우며 퍼티글 블뤼란스를 비롯한 다른 주교들과 함께 언급되지만, 주교급 중 명백히 으뜸.
실력만으로 보면 대주교의 위치에 있어도 이상함이 없는데, 그는 대주교의 자리를 받지 않는다.
여신교이면서도 여신교의 뜻을 전혀 전파하지 않는 기이한 괴물.
그러나, 그가 과거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은 여타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학살을 자행하고 다녔다.
당시에도 세력은 일구지 않았었으나 일신으로 적게는 마을을 파괴시키거나 크게는 소국을 붕괴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돌연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그는 살인을 멈췄다. 사람의 행색을 갖추며 사람의 범주 안에서 살아갔다.
마치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것처럼.
그는 사람들을 ‘도왔다’.
한이 어째서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원작의 마지막까지도 밝혀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은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원작의 선한 알티프, 한은 세이만 협곡에 나타난 던전을 단신으로 정리하고 나왔다.
이후 던전에 들어간 헌터 길드의 발언에 의하면 던전 내부에는 잡다한 마물도, 보물도, 유물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한 마리, 던전의 주인으로 보이는 마물의 시체 하나뿐.
던전의 내부는 지나치게 깔끔하였다.
그럼, 끝내 밝혀지지 않은 게 세이만 협곡에 나타난 던전에 대한 정체냐고?
그것도 있지만, 더 초점을 두어야 하는 건 이후 한의 행적이다.
그는 변했다.
아니, 변했다는 표현은 틀리군.
그는 사람의 탈을 벗고 본래의 괴물로 ‘되돌아갔다’.
다만, 몇십 년 전보다 더욱 흉포해진 상태로.
원인? …글쎄.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던전 내부에 유물이 있었고 그것을 얻어서 변하게 되었다. 알티프의 성질은 사람의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그들은 괴물이기에 설명할 수 없다 등….
온갖 항설이 떠돌았으나, 밝혀진 건 없다.
확실한 정보는 흉포해진 한은 훗날 대주교의 공석을 차지하고, 미치광이 과학자 추기경 제파르의 휘하로 들어간다는 것.
따라서, 나는 이를 막으려 한다.
다른 추기경들도 위협적이지만, 제파르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귀찮은 축에 속한다.
녀석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결코 이익이 될 수 없다.
이번 던전에서 최정상급 주교 한을 죽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똑똑.
낡은 문을 두드렸다.
겉보기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정집이다.
곧이어 문 뒤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를 물었고 나는 거래인이라 답하였다.
몇 차례의 문답이 오고 가자 문이 열렸고 남성이 나를 안내했다.
그 이후의 과정은 과거와 똑같다.
뒤르테문드에서는 젊은 여성이 이 미로 같은 내부를 안내했었지.
지하로 내려가면 개미굴처럼 포진되어 있는 다수의 방.
좀 더 걸어가자 등불을 들고 앞장서던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간단히 고개를 숙이며 안내를 마친다.
나는 고민할 것 없이 특수한 마법으로 처리되어 있는 방문의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의 22번째 고객.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님.”
반기는 자는 탑햇을 벗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마 중앙에 박혀 있는 또 하나의 눈이 인상적이다.
고개를 든 탑햇의 남자는 눈을 초승달과 같이 구부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뱀이 기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이 스쳤다.
본래라면 이 알티프가 곧바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의 귀찮은 과정이 더 있는데 생략한 모양이다.
그가 기다란 탑햇을 바로 쓰며 말한다.
“저희 테라리움은 바르간 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교 한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것이 팔린다는 거래장, 테라리움에서 먼저 풀어 가야 하는 사안들이 있다.
***
“뒤르테문드에서 뵌 이후로는 처음이로군요.”
탑햇의 주교 얼트레만은 상냥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손님을 대하는 전형적인 사기꾼의 미소와 같이 음흉한 구석이 있다.
“인사치레는 되었다. 시간의 낭비일 뿐이야.”
귀찮다는 듯 대충 손을 휘젓자 얼트레만은 놀랐음을 과장하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보다도 더욱 반응이 없으시군요. 다른 손님들 같으시면 가장 먼저 왜 제가 이곳에 있는지 물으십니다만… 바르간 님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니….”
“뒤르테문드에 있어야 할 네가 이곳에도 있는 연유 말인가? 여신교의 일이니 상식으로 이해할 게 있나. 축복이니 권능이니 하는 뭔가를 사용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참고로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가 입에 담아야 하는 이유는?”
“바르간 고객님의 대한 테라리움의 평가가 높아지는 건 곧 거래에서도 유리하게 적용될 테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얼트레만은 세 치 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막힘없이 답하였다.
하여간 언변 하나는 청산유수인 녀석이다.
나는 헛움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거짓과 진실을 섞어 답하였다.
“순식간에 여러 지부를 이동할 수 있거나, 그게 아니면 네 몸이 분신처럼 여러 개이거나. 뭐, 바닥도 천장도 없는 망상을 펼치자면 끝이 없겠지.”
“…….”
대답을 들은 얼트레만은 잠시 가늠하는가 싶더니 길게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바르간 님은 특별한 고객님이시군요.”
“알았으면 특별한 고객의 시간을 더는 빼앗지 말고 거래로 들어가라. 나를 평가하기 위해 뱉은 정보의 값도 정산하여 받아 낼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얼트레만은 곧바로 자신이 어떠한 일을 도울 수 있는지 물었다.
물건이라면 물건, 사람이라면 사람, 정보라면 정보. 거래하고 싶은 항목이 있다면 세상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여신교에 관한 정보는 최소한의 것만을 다루면서 입은 아주 훨훨 날아다닌다.
나는 얼트레만에게 말했다.
“내 무기를 만들 제작자를 구해 와라.”
“무기 제작자 말씀이시군요….”
얼트레만은 고심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슈겐하르츠의 거대한 가문을 타고 있는 내가 무기 제작자를 찾기 위해 테라리움까지 발을 옮겼으니 웬만한 이들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이다.
얼트레만은 추가로 물었다.
“바르간 님께서 쓰실 무기입니까?”
“그래.”
“종류는 어떻게 되죠?”
“대충 지팡이의 형태가 되겠군.”
“대충이라… 그건 또 선택지가 다채로운 말이로군요. 재료는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나는 곱게 접혀 있는 하얀이를 펼쳐 그 안에서 세 개의 재료를 꺼냈다.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얼트레만은 흥미롭다는 듯 관심을 보였다.
얼트레만은 잠시 감정을 해 보겠다고 말하였고, 장갑을 낀 손으로 재료들을 이리저리 살핀다. 값어치를 알아보는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이 정도의 마나 밀집도와 광택이면 최상급의 마석임이 분명하군요. 상태도 아주 좋고요. 그리고 이건… 오, 공작급의 정령이 깃든 보석이로군요. 참고로 어떤 정령이 들어 있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둠의 정령 아르카네다.”
“에고웨폰인가요…. 위그드라실의 수액까지 있으니 이 재료들만 하더라도 1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살짝 과장해서 몸체로 구성할 재료가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라 하여도 상당한 물건이 나올 것이라 말하는 얼트레만.
당연히 농담 삼아 뱉은 말이었고, 몸체를 구성할 재료는 무엇인지 물었다.
“위그드라실의 가지.”
“위그드라실의 가지… 분명,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1학년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을 때 얻는 것이었죠. 거기에 바르간 님의 마력을 더한다면….”
계산을 마친 얼트레만은 씨익 웃었다.
재밌는 물건이 나올 것 같다는 반응이다.
“등외품. 예, 분명 등외품을 측정받을 것입니다.”
“등외품인가.”
“알고 계시겠지만, 수만 가지의 보물과 유물이 튀어나오는 던전에서조차 등외품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류에서는 에고웨폰이 정상급인데, 그 영혼 중 가장 등급이 높은 게 공작이니까요.”
즉, 나이아스나 아르카네와 같이 공작급 정령이 좋은 무기에 깃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1품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나는 위그드라실의 수액과 가지마저 사용하니 등외품으로 측정받는 것이고.
“성을 사도 몇 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 나오겠군요. 거래자인 저로서도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알티프인 녀석이 알티프를 때려잡을 무기를 만드는 데 기대가 된다니.
…하지만, 본격적인 아이러니는 지금부터다.
“얼트레만, 아직 나는 재료의 언급을 끝내지 않았다.”
“필요한 재료는 전부 모였습니다만….”
내 표정을 살피던 얼트레만은 곧 뜻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다소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고객을 앞에 두고 크게 웃는 걸 참으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 녀석이 생각하는 게 맞다.
“네 계산에는 심판무구가 빠졌다.”
무기가 완성되고 나서일지, 재료 상태에서일지는 모른다.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얻으려면 우선 1학년을 마쳐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대주교 이상의 알티프를 죽일 것이고.
그 심판무구를 빼앗을 것이다.
그게 내 무기의 완성이다.
쿡쿡거리며 웃음을 참던 얼트레만은 한 번 길게 숨을 내쉬며 진정하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등의 상스러운 모습은 결국 보이지 않았다.
얼트레만은 다른 감정은 숨긴 채 상대에게 있어 긍정적인 즐거움만을 드러내며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 고객님을 모셨지만, 바르간 님 같은 분은 이례적입니다. 이례적이고 말고요. 결코 여럿이 있을 수가 없지요.”
여신교의 중축. 대주교.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심판무구.
대주교를 살해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언급하니 주교인 제 입장에서는 욕을 하거나 분노를 표해도 쓰건만, 얼트레만은 관찰자인 양 중립적인 태도를 지킨다.
…흠. 잘 생각해 보니 중립적이지는 않군.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테라리움에서 곱게 나가기는 힘들었을 테니.
얼트레만은 확인을 끝마친 재료를 돌려주며 말한다.
“좋습니다. 저희가 아는 최고의 마법구 제작자를 연결시켜 드리지요. 기간은… 3개월 정도 걸리겠군요. 최고의 대장장이를 찾는 이들은 끝이 없으니까요. 그나마도 바르간 님이기에 최대한 빠르게 잡아 드리는 겁니다.”
“그때면 나도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얻고 난 이후일 테니 적절하군.”
“등외품에다 심판무구를 더한 물건이면 현 용사랭킹 1위의 실베스테르를 제외하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상이 시끄러워지겠군요.”
얼트레만은 혼잣말을 하듯 언급하였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얼트레만의 눈빛이 한층 가라앉는다. 여전히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웃음기는 남아 있으나 그 뜻을 전하는 대상이 대상인만큼 꽤 조곤조곤하다.
“축제 기간 동안 바르간 님의 행적을 보시고 ‘그분’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오호. 해서 나를 처음에 그토록 반겼던 것이었구나.”
“뒤르테문드에서 바르간 님께서 말씀하신 게 진실로 판명 났으니까요.”
여름방학 동안 뒤르테문드 지부의 테라리움에 방문했을 당시.
나는 얼트레만이 ‘그분’이라는 칭하는 이에게 이렇게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아카데미아의 축제 기간, 형상파의 루센이 여신교를 배반할 것이다.
“그분께서 바르간 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직접?”
“예,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그분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다니. 실로…! 큼. …그럼, 지금부터 다소 흉한 장면을 보여 드리겠지만 실례를 용서해 주시지요.”
얼트레만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바로 자신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충성심 때문인지 망설임이 없는 동작이었다.
피는 튀지 않았으나 그는 그대로 의자와 함께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쩌어억⎯.
에리카의 워프 마법 때와 비슷하게 공간이 뒤틀림이 발생한다. 그러나 형태가 괴이하다. 어떤 생물의 입인 것처럼 쩍 벌려진 그것에는 이빨이 나 있었다.
그것은 생물과도 같이 덥썩 나를 삼켰고. 나는 피하지 않았다.
1학기의 기말고사.
대주교 자간이 죽어 나갈 때 모습을 드러낸 현상과 동일한 것.
‘그분’이라 불리운 존재가 사용하는 권능의 일부.
설마 직접 대화를 나누게 될지는 몰랐는데… 어지간히도 내가 궁금한 모양이다.
하기야, 대주교 자간, 뒤르테문드에서의 일, 루센의 배반을 미리 폭로한 것까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겠지.
흥미를 가지라고 떡밥을 왕창 던진 것이었으니까 잘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설렘에 가까운 긴장이 들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내 목숨 따위는 단번에 꺼져 버릴 것이니까.
공간을 다스리는 추기경 「벨레드」.
그녀가 나를 초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