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6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67화(167/350)
공간의 지배자, 추기경 벨레드.
그녀를 어찌 잊겠는가.
강렬했던 그녀의 첫 등장 글귀가 아직도 선명하다. 토씨 하나 잊지 않은 채 기억하고 있다.
“리암⎯⎯⎯!”
위기를 감지하고 리암을 외치던 루이사의 목이 댕강 날아간다.
온몸을 견고한 오러로 보호하고 있던 그녀의 방어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통째로 잘려 나갔다.
아카데미아 시절 리암의 담당 교수였던 루이사. 그녀는 머리는 외마디와 함께 땅으로 꺼졌다.
피는 터져 나가지 않는다. 잘려진 그녀의 목 절단부는 유리판에 막혀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토하지 않는다.
리암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리암과 알리시아, 에밀리, 그리고 아르텔리온을 비롯한 여러 용사들은 헤일리온의 뒤를 따라 꽃의 대주교 베리스의 토벌을 무사히 완료하고 복귀하는 도중이었다.
비록 지쳤다고는 해도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치는 않았다. 다른 어떤 대주교들이 틈을 노리려 들지 모르니까.
그런데, 돌연 재해(災害)처럼 허공에서 나타난 그녀는 대뜸 그룹에서도 강자였던 루이사를 간단하게 죽여 버렸다.
이어서는 그 마수를 리암에게도 뻗는다. 초고속 전투에 익숙해진 리암의 눈동자는 그녀를 담는다.
흑연과 같이 시꺼먼 머리와 허연 동공.
검은 머리칼이 스치는 피부는 흰 물감처럼 새하얗다.
서로 극한까지 상반되는 명도가 더욱 존재감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성인 남성을 웃도는 키에 두개골 양쪽에 달린 거대한 백색의 뿔.
뻗은 손에 박힌 긴 손톱은 모든 빛을 흡수한 듯 역시 백색이다.
리암은 해당 묘사를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어 그녀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추기경 벨레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헤일리온과 다른 랭킹 10위 안팎의 용사들이 지켜 주었기에 리암은 목숨을 간신히 건질 수 있었지만,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의 여정은 거기서 끝이 날 뻔했었다.
용사들은 필사적으로 벨레드와 항쟁하였고, 벨레드는 용사랭킹에서도 20 안에 속하는 용사 셋과 그 외의 용사 여섯의 목을 추가로 가져가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대주교 베리스에게서 승리하였으나, 교회로 돌아온 이들은 결코 환호할 수 없었다.
***
『아가야, 우린 구면이구나.』
벨레드의 음성이 바르간의 정신을 깨웠다.
사방이 검은 방. 그러나 사물같이 보이는 것들은 새하얗다. 바닥이며 천장이며 벽이며 온통 먹과 같은데 주변에서 떠다니는 정육면체들은 하얗다.
바르간은 자신의 앞, 피라미드와 같이 높이 솟아올라 있는 계단을 보았다. 그 꼭대기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여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
바르간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만. 고개를 숙인 채 내 앞으로 오거라.』
“……!”
소리도 없이 나타나 바르간의 주변을 감싸는 수백 개의 허연 손. 시체와도 같은 것들이 바르간의 행동을 제약한다.
바르간은 꼼짝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의 몸은 언제 이동된 것인지 계단의 아래에 있지 않다.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바르간의 바로 앞.
권좌에 앉아 있던 벨레드가 몸을 일으켜 바르간의 턱 끝을 잡고 들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바르간에게 전해진다.
『인간의 아이치고는 좋은 눈이야.』
벨레드는 자신을 직시하는 바르간의 눈동자를 보고 거꾸러진 초승달과 같이 미소 지었다.
압도적인 차이. 지금의 상황에 벌벌 떨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거늘, 바르간은 제 기운을 죽이지 않는다.
야생 동물과 같이 살벌하게 노려보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바르간은 벨레드를 앞에 두고 적대시한다는 우책을 벌이지 않는다.
『공포심을 숨길 줄도 아는 걸 보니 감정을 다스릴 수 있구나…. 특별히 너에게는 약간의 자유를 허해 주겠다.』
벨레드의 발언에 의해서 바르간을 통제하던 수백 개의 손은 사라졌다. 벨레드는 바르간의 턱을 잡고 있는 것을 놓았고 다시 긴 다리를 꼬아 앉았다.
바르간은 손에서 해방되었음에도 자신을 억누르려는 압박감을 그대로 느꼈다.
심장이 위험을 전한다.
지금의 자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른다.
주교와 대주교는 차원이 다르듯.
대주교와 추기경도 마찬가지다.
가까이에 있는 것만 하더라도 소름이 돋는 존재. 그런 여인을 바로 앞에 두고 있으니 그의 안에 잠들어 있는 본능이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벨레드 님.”
그러나, 바르간은 독한 의지로 그것을 버텨 냈다.
되레 뻔뻔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귀족의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올 것 같지만, 내성이 생길 때까지 버틸 요량으로 버티고 버틴다.
지금 물러서게 되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본능을 참아낸다.
버티고 적응하는 것은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해 온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다.
독하디 독한 그를 보자 벨레드는 살며시 웃으며 말한다.
『이곳에 살아서 온 사람종은 네가 처음이다. 내가 너를 왜 이곳으로 불렀는지 알겠나?』
이곳은 벨레드의 공간.
그녀가 창조해 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그녀‘만’의 공간이다.
“감히 추측해 보자면, 제가 세상에서 벌이는 행각을 바라보시고 흥미를 느끼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바르간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들지 않는 게 왕이나 황제를 대할 때의 예의범절이었고, 그것을 보이며 벨레드의 권위를 인정한다.
벨레드는 바르간이 고개를 들도록 하였고.
그녀의 섬뜩한 동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벨레드는 이질적인 눈동자로 빙그레 웃는다.
『그래, 모를 리가 없겠지. 너도 나를 보고자 했으니.』
그녀의 말대로 바르간은 일부러 루센과 관련된 사항을 전하여 안 그래도 끌린 그녀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바르간은 이를 모른 체하며 능청스럽게 대처한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제가 어찌 알티프의 제왕을 함부로 보고자 했겠습니까. 저의 행동거지가 요란스러워 벨레드 님의 천안(天眼)에 우연히 닿게 된 것뿐이지요.”
『재미있는 말이로군. …사역마로 여러 재주를 부릴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런 무장을 하지도 않고. 그 정도의 자유는 허가했을 텐데.』
“위대한 존재를 앞에 두고 갑옷을 입고 검을 들고 있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태풍을 앞에 두고 손바닥으로 촛불을 가릴 바에는 무장을 해제하고 예의를 갖추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가야, 입을 놀리는 게 대단하구나. 그딴 감언이설에 내가 넘어갈 것으로 보이는 건가?』
바르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제가 아무리 향수를 뿌리고 정장을 입어 꾸민다고 한들 벨레드 님을 꾈 수 없음을 모를 정도로 무지하진 않습니다.”
벨레드는 이미 바르간의 등외품 유물인 생명의 향수와, 착마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르간은 벨레드를 앞에 두고 전투태세를 취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무력과 그녀의 무력을 비교해 봤을 때, 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기 때문이며, 예의를 보이기 위해서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전신에서 경각을 알리고 있어 정신이 혼미할 텐데도 능구렁이와 같은 바르간의 모습이 벨레드는 흥미로웠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자간의 때와 테라리움에 방문했을 때 보았지만, 설마 자신의 앞에서까지 태연자약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벨레드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너를 직접 보고 싶었다. 대체 어느 정도로 버르장머리를 없는 아이이기에 눈에 띄기 위해서 그리도 안달복달인지가 궁금했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더한 놈이었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존심만 지키려다 부러지는 우인이 아니라, 때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꿀 줄 아는 인물이었어.
벨레드는 치하하는 의도로 그렇게 말하였고, 바르간은 차분하게 감사를 표하다 말꼬리를 이었다.
“…하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만.”
바르간의 어조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벨레드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무언으로 두 눈길이 주고받아지다 바르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대신 짚어 드려도 괜찮은지요?”
벨레드는 압박감을 완전히 적응한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마치 자신을 가르치려는 건방짐에 미세하게 불쾌감이 일었지만, 우선 듣기로 하였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르간은 다시금 예의를 보이며 입을 연다.
“1학기 기말고사 당시 대주교 자간과 그녀를 따랐던 주교들. 뒤르테문드에서 대주교 아미와 그의 무리들. 아카데미아의 루센, 그리고 극장에 잠입해 있던 주교 칼리쿨레아를 비롯한 형상파 세력.”
이들을 엮는 하나의 구심점이 있다.
겉으로는 쌍둥이라 자처하는 아미와 자간 정도만 공통점이 있어 보이지만, 아니다.
최소 여신교의 주교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제한되어 있는 정보다.
“제가 들쑤셨던 이 세력들의 연관성 때문에 저에게 긍정적인 호기심을 느끼는 게 아니십니까?”
바르간이 여태까지 스토리를 진행해 오면서 ‘일부러’ 건드리지 않은 여신교의 세력들이 있었다.
만약 소설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여신교를 제압하고 다녔으면 그는 진즉에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즉, 그는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였으며 그 행적을 파악한 벨레드가 바르간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바르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벨레드는 가만히 그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다. 다소 눈살을 구긴 채 불쾌감을 드러낼지언정 갑자기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르간은 이들의 연관성을 밝힌다.
“모두 여신교 내에서 벨레드 님과 대립하는 또 다른 추기경 세력의 것이었다… 정도로만 우선 말을 해 두는 게 좋겠군요.”
으레 집단이 그렇듯.
겉으로는 똘똘 뭉쳐 있는 듯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일신은 여신을 찬양하는 여신교 역시 마찬가지.
여신교는 추기경을 따라 세력이 나눠져 있는데, 바르간이 현재까지 커다란 피해를 입힌 세력은 벨레드와 반대가는 추기경이자 여신교 내에서 가장 큰 세력의 것이었다.
즉, 벨레드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인간 하나가 자신의 눈엣가시인 세력을 차츰차츰 갉아먹어 가고 있는 상황.
그 덕분에 무려 상대 세력의 대주교 두 명까지 사망하게 되었으니,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심지어는 루센의 배반은 예언과도 같이 전하며 더욱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라고 돋보기까지 건네주었다.
그렇게 개미를 관찰하듯 맨눈으로 그 바르간을 살펴보고 있던 벨레드는 아예 돋보기를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였으며, 살며시 그 개미를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아카데미아 내부의 형상파를 통솔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건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들의 세력을 더욱 유용하고 편리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르간은 루센에 대한 말을 전할 때, 이와 같은 말을 첨언하였다.
⎯나는 아카데미아를 붕괴시킬 생각이다.
그러니 이것은 여신의 뜻과도 부합한다.
또한,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이들을 넘긴다면 다음 거래를 통해 이득을 쥐여 주겠다.
그의 말을 전해 들은 벨레드는 고민했다.
그가 하는 일들은 분명 자신에게 이득이 되었으나, 바르간이 하는 것을 믿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카데미아의 남은 형상파 세력이 형상파 세력 중에서도 버려지게 된 놈들이라 할지라도, 자신과는 다른 세력의 일부이기 때문에 멋대로 건들면 곤란한 상황이 생기며.
바르간의 행동은 마치 「성서」의 전 페이지를 읽은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그런 의문심 속에서 벨레드는 저울질을 하였다.
바르간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을 이용해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러곤 결국, 바르간이라는 특이점이 만들어 낼 결과를 떠올리며 계산을 끝냈다.
벨레드는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인간이 자신의 앞에서 이리 방자하게 굴 수 있을까.
벨레드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질문을 골랐고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물었다.
핵심을 뚫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아가야. 너는 궁극적으로 나에게 어떠한 이익을 창출해 줄 것이냐.』
이에 바르간은 답한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제가 당신을 교황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