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7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72화(172/350)
불과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1년 전, 그보다 약간 더 시간을 과거로 넘겨 내가 빙의하기 전.
바르간의 몸 안에 오롯이 한 개의 영혼만이 남아 있던 때.
“비록 가짜라고는 하나, 곧 죽을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군.”
나는 눈앞에서 넘어갈 듯 숨을 헐떡이고 있는 1년 전의 바르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1년 전의 바르간은 어둑이로 자신의 몸을 방어하려 했으나 무참히 관통당하였고, 한쪽 팔은 진즉에 나가떨어져 연기가 되었다.
이번에 상대한 게 여섯 번째 바르간.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는 주기는 거의 1년을 기준으로 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아마 이 녀석이 마지막일 터.
나는 손목을 돌렸다.
착마마법을 통해 입은 어둑이. 자유자재로 변형 가능한 가죽장갑의 촉감이 전해진다.
지금까지 다른 아이들을 쓸 필요도 없이 어둑이 하나로 간단히 끝냈다. 다만, 1년 전의 바르간은 나름 질기게 생을 이어 가려고 발악 중이었다.
헐떡거리는 과거의 바르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팔이 달려 있던 곳을 치료 마법을 통해 지혈하고 있다.
⎯너는… 누구냐,
아, 하기야. 저 바르간의 입장에서는 고작 1년이라는 시간 만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낸 나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럼, 그럼.
온갖 기연을 흡수하고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으니.
“쉽사리 믿기 힘들겠지. 하나, 그 좋은 두뇌로 우자를 연기하지 마라. 이미 너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끝마쳤을 것이다.”
비릿한 미소를 지어 주자 녀석은 이를 갈았다. 비록 가짜라고는 해도 슈겐하르츠가의 명예를 잇는 자. 고작 던전 따위의 현상일 뿐인 현 상황에 대해 자괴감이…….
⎯닥쳐라! 그딴 걸 묻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딴 걸 묻는 게 아니라….
“그럼 무엇을 말하는 거냐.”
나는 천천히 과거의 바르간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장갑의 형태를 하고 있던 어둑이는 꾸물거리면서 형태를 바꾸려고 했다.
⎯네가 정말 1년 후의 나라고…? 그럴 리가! 정체가 뭐냐! 누구이기에 내 허물을 뒤집어쓴 채 연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냔 말이다!
뭐야, 그런 거였나.
참 이거 설명해 주기 난해한데 말이지.
본래 바르간이 살던 세계가 소설이었고 한 몸뚱이 안에 두 개의 영혼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라 인격이 다소 바뀌었을 수 있다….
친절하게 말해 준다고 해서 받아들일지의 문제는 또 별개이고.
흠…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내가 갈 길이 급해서 말이다.”
휙, 하고 손날을 그으니 녀석의 목에 댕강 잘려 나갔다.
움직임을 파악하였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바르간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과거의 바르간은 눈을 감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져갔다.
머리를 잃은 몸통마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혹시 몰라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차 식을 감지하려 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퉁퉁. 주변의 벽을 두드리거나 마나를 슬쩍 흘려 보면서, 뚫을 수 있는 것인지 종종 확인하고 있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구조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걸음을 이어 갔을까.
슬슬 복도의 끝이 보이려 할 것만 같이 공간이 확장되어 가더니.
“…이건 좀 곤란하군.”
나는 공급이를 소환시켜 그다지 줄지 않은 마나 총량을 최대치로 회복시켰다. 길었던 복도의 끝을 알리듯. 확장된 공동의 가운데, 한 남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내 모습만 나타나는 줄 알았는데 아닌 건가.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내 기억 속에 박혀 있는 나의 모습이라는 점은 공통되는군.”
던전이 캐릭터의 정보를 확인해서 소환시키는 것은 아닐 테니까. 뇌를 스캔하거나 했겠지.
…자, 그럼 어떻게 될까.
승산은 얼마나 되지?
내가 다가오기를 원하는 듯 그는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 역시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계산을 이어 가면서 상황을 분석한다.
눈앞에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성.
그는 분명 바르간이나 세계선이 다르다.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의 바르간이라….’
원작에서 주인공 일행에 의해 죽어 버린 그. 에리카를 그리워하며, 원망과 후회로 점철된 생을 끝내려는 바르간.
현 세계관의 줄기에서는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녀석이 지금 이곳에 있다.
그의 눈동자에는 증오와 허망함이 담겨 있다. 나이로 보면 앞으로 5년 후. 22세. 생기 있고 젊은 나이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
소설에서 묘사된 것보다 수척한 모습이다. 식사의 행위를 잊은 미라처럼 두 볼이 움푹 파여 있다.
잡초와 같이 억척스럽게 버티려 해 봤자 영혼에 새겨진 병으로 인해 1년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남은 생을 포기한, 패배자의 모습.
바로 전에 나왔던 바르간과는 달리 말도 걸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죽어 버린 눈으로 상대를 죽이려 들 뿐.
그러나,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뭐…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으나. 긍정적으로 봤을 때,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지표이긴 하군.”
원작의 바르간.
녀석은 착마마법도, 마나 총량이 초월에 계위에 오르지도 못하였지만.
“시작부터 고유술식인가.”
미완성된 고유술식을 사용할 수 있다.
…….
주변이 어둠에 휩싸인다.
던전을 멋대로 조종하는 것만 같은 전능.
배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원작의 바르간은 그대로 서 있고, 그 뒤에 수두룩 빽빽하게 붉은 괴물들이 잔뜩 성이 나 있다. 주변에는 용사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아는 얼굴들도 보인다. 알리시아, 아르텔리온….
마치 이루지 못한 욕망을 표출한 듯. 그의 마지막 전투에서의 판국이 뒤바뀌어져 있다.
용사들은 패배하였고, 살아남은 자는 바르간과 그의 무리였다.
【크륵. 그르륵⎯!】
알티프 떼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배가 고픈 것 같지는 않은데 호박색의 눈동자는 상대를 물어뜯고 싶어 난리가 났다. 침을 줄줄 흘리며, 원작 바르간의 지시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특이체는 없고… 일반적인 사제급만 대략 1만인가.”
나는 전체적인 상황을 짚으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고유술식에 의해 만들어진 환각.
…하지만, 이 공간에서 당한 피해는 고스란히 실제의 몸에도 나타난다.
팔이 뜯어지면 실제 몸에 달려 있던 팔도 떨어져 나가고.
뇌수가 터지면, 실제 머리통도 수박처럼 깨진다.
허상과 실제의 붕괴.
있어서는 안 되는 두 세계의 접선.
그와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환각이지만 실제이다.
명확한 위기의 상황.
…한데 다 알고 있었으면서 피하지 않았냐고? 피할 수 있었으면 진즉에 피했다. 바르간의 고유술식의 가장 뛰어난 특징 때문에 앎에도 피하지 못한 것이지.
바르간의 고유술식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할 수 없다는 것.’
그가 지배하는 공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모든 생명체는 그가 선보이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현 세계에 초대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미완성이라고 해도 그 규칙은 동일했으니.
⎯…….
원작의 바르간이 한쪽 팔을 든다.
넘실거리는 붉은 파도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한 제스처임이 분명하다.
그의 작은 행동에 반응하듯 알티프들이 울부짖는다.
고릴라처럼 근육덩어리의 가슴을 쿵쿵 치는 놈들도 있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꺼림칙한 웃음을 짓고 있는 놈들도 있다.
저 시기의 바르간은 실제로 주교였고 사제급 알티프의 무리를 데리고 다녔다. 수도 1만으로 묘사되었었고.
주교급에서 데리고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군세.
그 군세는 바르간이 죽인 사람의 수를 간접적으로 의미했다.
“이건 혼자서 싸워서 될 일이 아니군.”
나 역시 밀고 들어올 군세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입고 있는 어둑이를 제외하고 모든 사역마를 소환했다. 크라이, 태산이, 공급이, 늑돌이…. 이중융합은 하지 않는다. 강력한 개체도 중요하지만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잽싸게 주변 바위 위에 올라간 크라이는 알티프의 대군을 보며 위협적인 포효를 보였다. 사자 머리를 한 크라이의 거대한 울림통은 듣는 이를 흠칫 놀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주변에 마력구도 잔뜩 생성했다. 현재 내 최대치인 12개. 부패의 마법을 띈 마력구들이 타오르며 발포 준비를 완료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사역마들과 함께 소환된 어둠의 정령 아르카네가 난색을 표했다. 눈앞에 있는 바르간은 어딜 봐도 과거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현 상황에 집중해라. 자칫 잘못하면 정령계로 돌아가 평생을 그곳에서 썩고 있어야 할 터이니.”
“일이 끝나면 설명해 주실 겁니까?”
“생각해 보마.”
“……알겠습니다.”
분명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아르카네는 주변에 펼쳐진 어둠을 조종한다. 꾸물거리는 어둠에 질량이 부여되고 액체와 같이 변했다.
나는 아르카네를 비롯한 사역마들에게 지시했다.
“너희의 주인처럼 보이는 저 가짜 녀석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는 알티프를 상대해라.”
무리는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안광을 번뜩였다.
그러자.
【크레에에엑⎯⎯⎯!】
대지가 울리며 1만의 알티프가 돌진을 시작했다.
원작의 바르간은 그 틈새에서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녀석에게 사역마는 없다. 모두 죽어 버렸으니까.
현재의 나에게서 녀석이 앞서가는 것, 고유술식.
이 사기적인 미완성 술식을 파괴해야 한다.
***
넓은 대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피 냄새가 비명 소리와 함께 진동을 했고.
서로 얽혀진 모양새는 잔혹하여 역하기까지 하다.
잔뜩 근육을 부풀린 1만의 성난 알티프 떼. 녀석들은 사역마들의 곳곳을 물어뜯으려 들고 있고, 사역마들은 필사적으로 주인을 보호하며 이들의 멱을 딴다.
유령 형태로 주위를 떠돌아다니는 공급이는 늑대 사역마인 늑돌이의 수를 대량으로 늘리거나 마나가 부족한 사역마들에게 나 대신 마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사역마의 대부분이 수를 늘린 늑돌이였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적들의 고기를 단번에 뜯어 버린다.
쿵! 태산이의 거대한 주먹이 지면을 강타하고, 알티프들은 그대로 피와 내장을 튀기며 밟힌 벌레와 같이 납작해지거나, 깔리지 않은 몸의 일부가 튀어 오른다.
아르카네는 어둠이라는 물질을 조종하여 싸웠다.
때로는 수백 개의 칼로, 때로는 방패로 변하기도 하며. 유동성을 지닌 기름의 형태로 알티프들을 덮치곤 내부의 압력으로 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와이번의 날개를 갖은 크라이는 독수리와 같이 사냥감들을 낚아채서 죽이는가 하면, 입에서 브레스를 뿜었다. 꼬리인 뱀은 사자의 입과는 별도로 움직이며 독을 뿌렸다.
콰앙! 콰아앙⎯⎯!
부패를 머금은 마력포가 사방에서 쏘아진다.
12개의 마력구는 공중을 날아다니며 한 목표물을 향해 지속적으로 광선을 방출했다.
하나, 좀처럼 목표물에게는 맞지 않았는데.
원작의 바르간이 잽싸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맞힌다고 한들 허상과 같이 형체가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역시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안 된다.
고유술식으로 만들어진 현 공간을 파괴해야만 그를 잡을 수 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알티프의 입, 팔로 보이는 것들이 허공에서 튀어나온다. 내 살점을 뜯어내기 위해 곳곳에서 정신없이.
어둑이를 입고 있어 물린다고 해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지만, 움직임을 제한당할 위험이 있다. 물리는 곳은 곧바로 부패의 마법을 방출하여 태워 버린다.
물리적으로는 전투를 이어 가면서 고유술식의 파훼를 위해 방정식을 해제해 간다.
무조건 걸린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공간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용치에도 한계가 있고, 심지어 제대로 완성하지도 못했으니까.
원작에서 디피엘리아나 알리시아같이 저주에 대한 내성이 높은 인재들은 피해를 입더라도 결국에 파훼하지 않았던가.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해결식을 정립하면 적은 피해로 승리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녀석이 그것을….
“하…! 정말로 저것까지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성가시게 됐군.”
무언가를 준비하는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틀림없다.
저건, 고유술식 이외에 녀석의 위협적인 무기.
여신교에 들어가는 대신 내려받은 힘. ‘축복’.
던전은 여신교의 힘마저 그대로 재현하는 게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