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8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84화(184/350)
외부의 모든 일정을 종료하고 복귀한 아카데미아.
하나, 에리카는 더는 예전과 같이 당당하게 아카데미아의 복도를 걸을 수 없었다.
“에리카! 대체 무슨 일 때문이냐니까요?! 어째서 갑자기 학생회를 나간 건데요?”
도망치듯 빠른 걸음을 더욱 재촉하는 에리카. 그녀의 뒤에는 차기 학생회장으로 확정이 된 성녀 디피엘리아가 쫓고 있다. 디피엘리아는 건드리면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에리카. 잠시 멈춰 줘요! 제발 대화를 해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요…! 왜 저를 피하—”
“—가까이 오지 말아 줘!”
에리카가 비명에 가깝게 외쳤다. 작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현저하게 떨리는 푸른 눈동자에는 공포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있다.
디피엘리아는 사역마의 눈을 통해 불안정한 에리카를 보았다.
“에리카… 대체… 대체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저한테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혼자서 힘들면 제가 도와줄게요… 네?”
한겨울의 얼음장같이 차갑고 깨질 것만 같은 불안함.
에리카의 눈을 본 디피엘리아는 그 냉기에 전염된 듯 움츠러들려 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천천히 손을 내밀고 에리카의 가는 손을 잡는데.
“싫어—!!”
마치 괴물을 본 어린아이처럼.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에리카. 그녀는 디피엘리아의 손을 쳐내며 제 몸을 감쌌다. 바들바들 떠는 뒷걸음으로 물러나려 한다.
“에리카… 어째서….”
사물을 보지 못하는 디피엘리아의 눈꺼풀이 벌려졌다. 지금의 현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큰 충격이 디피엘리아를 강타했다.
비록 1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에리카와 쌓은 인연이 소중하였기에, 디피엘리아는 그녀의 이러한 모습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경직되어 있을 때. 복도의 한편에서 바르간이 나타났다.
“……!”
바르간을 발견하자 안색이 완전히 달라진 에리카.
어미를 발견한 새끼가 품에 달려드는 것처럼, 한순간에 워프 마법을 발현해 그의 곁으로 이동했다. 그대로 바르간의 한쪽 소매를 붙잡아 약간의 안심감을 되찾고는 급하게 말했다.
“슈겐하르츠…! 나… 나… 학생회를 나갔어! 네가 있는 연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에리카….”
“나… 워프 마법을 쓸 수 있잖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이런 나라도 분명……! 너를 돕고 싶어. 허가해 주면 안 될까? 어?”
디피엘리아는 다시 한번 자신의 후두부를 가격받은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주인에게 버려질 것이 두려운 강아지가 낑낑대듯 달라붙는 에리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 남자에 대한 분노가 인상을 구기며 나아가게 만들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바르간!”
에리카와 바르간이 함께 외출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디피엘리아. 처음으로 타인에게 화를 내며 쏘아붙인다.
아카데미아에 와서 처음을 생긴 친구 에리카.
겉으로는 차갑게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여리고 착한 여인. 그런 그녀에게….
“에리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무슨 짓을 했기에 에리카가 이러는 거냐고요!”
“…….”
“어서 말해요! 대체 에리카에게 무슨 짓을—”
“—슈겐하르츠한테 뭐라고 하지 마! 전부 내가 잘못한 거니까!”
성을 내며 바르간에게 다가가는 디피엘리아를 에리카가 막아섰다. 조금 전에는 공포를 담았던 눈동자가 이번에는 적의와 공존하고 있다.
도저히 친밀한 인물을 보는 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처음 보는 낯선 이도 이런 눈으로 보지는 않을 터였다.
에리카가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혐오의 대상은 주로 자기 자신.
“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욕할 거면 내게 하고, 화를 낼 거면 나에게 해.”
강렬했던 어조가 점차 잦아들고 에리카는 어느새 부탁을 하고 있었다.
바르간을 욕하는 대신 자신의 배에 칼을 찔러 넣어도 좋으니 더는 그에게 못된 말을 말아 달라고.
“에리카… 정말 왜 그래요….”
울먹이는 디피엘리아의 목소리. 하지만 에리카는 그녀의 울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향하는 곳은 오직 바르간. 그 말곤 없었다.
디피엘리아는 에리카의 시선을 따라 바르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토사물에 가까운 눈물을 쏟아 내고 싶은 걸 참아 내면서, 고개를 올린다.
“…….”
그러다, 바르간의 동공의 옅은 진동을 직면했다.
그 역시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괴로워 보인다.
디피엘리아와 시선이 마주하게 된 바르간.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에리카와 함께 멀어졌다.
복도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디피엘리아는 흐느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두 눈을 가렸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할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에리카는 완전히 망가졌다.
라일라에 대한 배신과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숨긴 아버지.
그리고 ‘나’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
타인을 기피하고 신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아카데미아에서 그녀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던 디피엘리아와 몇 년을 함께한 밴틀로에게도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언제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신. 타인과 관계를 쌓는 것 자체에 극도의 불안감이 형성되었다.
가문의 명예 의식도 함께 사라졌다. 오히려 가주인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포트레트가에 대한 혐오만이 존재했다.
지독한 자기혐오와, 나에 대한 극도의 신뢰.
그녀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은 나였고, 현재 그녀가 죽지 못하고 있는 이유 또한 나였다.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 또한 나.
이러한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행동에 모순이 발생했다.
“…….”
아르볼 프루탈의 연구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에리카가 불안하다는 듯 내 옷 소매를 살짝 잡아당긴다. 자신이 잡아당기고 있다는 의식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왜곡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지만 나로 인해 죽을 수 없고.
나에 대한 극도의 애정을 품고 있지만 그에 맞먹는 정도의 짙은 죄책감을 지니고 있어 말하지 못한다.
또한 내가 떠나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옷 끝을 잡아당기며 버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함께 있으려 한다.
내가 떠나간다면, 죽을 수도 없는 무서운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사실을 견딜 수 없는 탓이다.
“…그러한 경위로 에리카가 아르볼 프루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만 소속은 정해 두지 않고 활동할 테니 알아 두도록.”
나는 아르볼 프루탈의 간부진을 모아 두고 말했다. 그들은 대답하였고, 각자의 눈빛으로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길이 향하자 에리카가 내게 몸을 붙이려 들었다. 옷 소매를 잡고 있는 힘도 더욱 강해졌다. 나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실은 달라붙고 싶은 것을 참고 있다.
“……에리카.”
그녀의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밴틀로의 낯빛이 어둡다. 아마 나에 관한 일정 분노도 섞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따지려 들지는 않는다.
에리카의 상태에 대해 모든 사실을 밝혀 외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원작 바르간의 수명에 대해서도 관련된 것이기에 민감한 문제.
따라서 나는 던전에서 에리카가 끔찍한 환각을 겪었고, 그로 인해 극도의 불안증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했다.
에리카에게도 미리 입을 맞추어 그렇게 알리자고 했는데,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겠다고 답하며 걱정하지 말라 하였다.
—절대로 네 방해가 되지 않을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하던 에리카. 절실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녀의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아카데미아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던전에서 환각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저주에 걸려 있는 것도 아니며 마나와 관련된 사항도 아니다.
심리적인 문제.
아카데미아에서는 에리카의 이후 활동을 우려하며 잠시 휴학을 권하였지만, 그녀가 격렬하게 반대하며 불안 증세를 보여 무산되었다.
그나마 그녀가 이렇듯 밖을 다니며 사회 활동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큰 줄기로, 하지 않을 경우 나와 떨어져야 하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일종의 보호자로 그녀를 책임지기로 하였고 에리카는 아카데미아에 다닐 수 있었다.
“또한 에리카가 1반으로 이동되었으니 참고하도록.”
기존 반의 리더였던 에리카가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에 내가 있는 1반으로 옮겨졌다. 잠정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1학년이 끝날 때까지는 쭉 1반일 터이다.
“…….”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프리다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못마땅한 눈매로 에리카를 흘겨보다 고개를 돌렸다.
…….
그렇게 한동안 에리카가 아르볼 프루탈에 들어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거짓을 섞어 설명하고, 나는 주제를 돌렸다. 에리카에 관한 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침울한 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마력을 움직여 연구실의 불을 끄고 영상을 허공에 띄웠다.
앞으로 아르볼 프루탈이 해야 할 달성 임무와 세부적인 사항들이 적혀 있다.
목을 간단하게 풀며 우울한 어조를 덜어 내곤 말했다.
“다시 과제의 시기가 돌아왔다. 이 때문에 다들 바쁠 것을 알지만 연구회 활동을 소홀히 하면 곤란하지. 각 그룹의 장들은 철저히 연구회원들을 평가하고 교육해라. 방침은 자유이나 결과가 따르지 못한다면 내가 개입할 것이다.”
여태까지 아르볼 프루탈은 연구회원들의 교육과 경쟁, 실전에 가까운 경험을 시켜 주었고 그 결과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현시점의 원작에서 묘사되고 설명되었던 많은 인원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고, 기록상으로도 처음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언제나 순탄할 수는 없는 법. 이를 바로잡고 나태함을 채찍질하는 장들의 임무는 중요하다.
“과제 기간이 끝나면 기말고사가 눈앞에 다가오겠지. 그때를 위해서라도 더욱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열릴 기말고사. 세부적인 사항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틀은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1학년의 성적도 종합이 될 것이고 그럼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만들고자 하는 무기의 필수적인 재료이니 반드시 얻어야 한다.
또한, 기말고사는 핀 녀석이 돌아오겠다고 선언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오지 않은 걸 보면 이미 절명했거나, 때를 놓칠 것 같기도 한데…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나는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보고를 들었다.
그렇게 뿌리 멤버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연구실을 불을 켰다.
***
회의가 끝나자 바르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리카가 그림자와 같이 벌떡 일어나 그를 따랐고 이들이 가장 먼저 나가려는 형국이 되었다.
“저… 도련님.”
바르간이 연구실의 문을 열자 알리시아가 그를 불렀다.
주변에서의 모든 시선이 이들을 향했다.
“왜 그러느냐.”
바르간은 잠시 걸음을 멈췄고, 에리카는 그의 뒤에 반쯤 숨어 알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알리시아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말하려 한다. 에리카의 정황에 대해 듣고 눈물까지 흘려 눈가가 붉다. 어색한 표정을 짓는 입술이 움직인다.
“…괜찮으십니까?”
에리카에 건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랜만에 바르간을 볼 생각에 설렜던 알리시아.
본래라면 괜찮냐는 말이 아닌 금일 저녁에 기숙사로 찾아가 자신과 나이아스의 발전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을 터이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먼저 바르간을 살폈다. 에리카에 관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를 알기에, 상처입었을 그를 챙긴다.
그러고 바르간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알리시아.”
알리시아와는 다소 생각이 다르다.
“지금 가장 힘든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