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8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87화(187/350)
바르간, 그는 확실히 천재였다.
며칠 동안 레온과의 프로텍터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벨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사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의 전투 스타일은 일반적인 마법사와는 다르다. 무투가나 검사와 같이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제법 크다.
반사신경, 힘, 속도.
만약 그가 마법사를 택하지 않았더라도 꽤 높은 성취를 이룩했겠지.
그러니, 단순히 천재라는 말보다는 ‘전투의 천재’라는 말이 올바르겠다.
—쿠웅!
또다시 이어지는 바르간의 일격.
레온은 두꺼운 프로텍터로 이를 방어하였고 입가에 길게 호를 그었다.
그의 주먹이 마음에 든다는 반응이다.
타고난 육체의 감각.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저 머리는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거지…?’
벨은 계산과 행동을 가능케 하는 그의 두뇌가 가장 놀라웠다.
위기 상황에 빠지더라도 그는 항시 미리 대비했던 것처럼 반응한다. 공방이 이어지는 찰나의 순간. 그 짧은 때에 수많은 사고를 하는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가령 레온이 정권을 내찌른다고 하면.
이를 회피할 것인지 정면으로 대항할 것인지, 회피한다면 반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로 인해 벌어지는 변수는 무엇인지….
정말로 가능한지를 고사하고, 마치 모든 요소를 계산하면서 싸우고 있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프로텍터만 사용하고 있으니 여유가 있으려나.’
그는 현재 특기인 저주나 사역마 따위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집중하는 사항은 오러와 오감뿐.
평소 전투에 이용되는 뇌 용량을 생각하면 어쩌면 가능할지 몰랐다. …그게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어떡해. …슈겐하르츠….”
이른 아침인데도 바르간과 함께 연무장을 찾은 에리카.
그녀는 누가 봐도 불안한 사람처럼 두 손을 모은 채 멀리서 바르간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표정은 우려감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다. 바르간이 레온의 주먹을 맞을 때는 특히.
벨은 그런 에리카의 모습이 낯설었다.
포트레트가의 영애, 그녀가 클래스전이나 학생회 활동에서 보여 주었던 당당함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환각을 보았다고 했었나?
대체 어떤 던전이었기에….
“저기….”
“……!”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에리카에게 말을 걸려고 하자, 에리카는 깜짝 놀란 소동물처럼 몸을 피했다.
대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바르간에게 관심이 쏠린 지금이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걸었던 것인데 말짱 꽝이다.
벨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콰앙—!
커다란 진동과 함께 바르간과 레온의 아침 수련이 종료되었다.
에리카도 그것을 알고 바로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가 바르간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매번 수련이 끝날 때마다 저러니 정성도 저런 지극정성이 없다.
“하하하하—!”
레온은 크게 웃어 재꼈다. 그가 저런 모습으로 웃는 건 대개 만족스러울 때.
바르간과의 훈련에 흡족했는지, 치켜올려진 짙은 눈썹이 제자리를 찾자 말했다.
“아주 뜨거운 열기였다 바르간!”
바르간은 대충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대꾸를 해 주었다.
에리카가 건네준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는 그. 에리카는 바르간이 다치지 않았음을 알아야 비로소 안심하는 듯 보였다.
“고맙구나 에리카.”
“아니야…. 힘든 일도 아닌데. 고생은 네가 하고 있잖아.”
그녀가 유일하게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
바르간은 꿀이 떨어질 것만 같은 에리카의 눈동자에서 애달픔을 보았다.
“저… 그런데 슈겐하르츠. 오늘 이후 일정이 어떻게 돼…? 아, 귀찮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계속 따라붙는 것도 민폐일 테니까.”
“민폐라고 여기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정말이야…? 괜히 하는 말 아니고?”
“정말이다.”
“…고마워.”
별 대단한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눈가를 촉촉이 하는 에리카.
바르간은 착잡한 심정이 들었지만, 이를 잠시 뒤로하고 일부러 사고를 틀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기만 해서는 일을 진행할 수 없으니까.
이제 프로텍터 수련에 들어간 지 4일 차.
금일을 포함하면 앞으로 남은 기간은 2일.
모레면 후각의 한 달이 채워져, 이번에는 청각이 들리지 않게 된다.
다행히도 프로텍터는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고 성장하여 목표했던 수준에는 도달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체재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완벽히 대신할 순 없다.
감각확장의 단계에 입문하여 오러를 통해 어느 정도는 마나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명확하게 한계가 있다.
따라서 청각부터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건 그녀다.’
바르간은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에리카는 자신에게 극도로 의지하며, 아카데미아의 공식적인 허가를 통해 대부분의 동행이 가능한 상태.
알리시아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
그렇다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에리카가 그 역을 맡는 게 효율적이겠지.
“에리카. 오늘 오후 수업이 끝나고 잠시 기숙사에 들르자꾸나.”
“응. 알겠어…! 어디든 좋으니까 말만 해 줘.”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에 화색을 보이는 에리카.
바르간은 여린 그녀와 알리시아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 밝히려 했다.
반응이 요란할 것을 알기에 숨겨 두었었는데 이제부터는 싫어도 알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 * *
오후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의 방에 모여 있는 나와 에리카, 알리시아.
“그런 건… 그런 건 싫어….”
겨우 참아 내던 눈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서럽게 울어 버리는 에리카.
의외로 알리시아는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듯 착잡한 눈동자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도련님 말씀은, 고유술식을 위한 시련의 기간 동안 일정 감각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 맞습니까?”
“그렇다.”
“또한 마지막 달에는 오감 전체를 사용할 수 없으시며 그에 대한 방비책으로 프로텍터와 조력자를 필요로 하시는 것으로군요.”
알리시아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현 상황에 우울해하기보다는 앞으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자 했다.
그녀가 우려 사항에 관해 물으려 하자, 훌쩍이던 에리카가 선수를 쳤다.
“그거… 정말로 아무런 이상도 없는 거 맞아? 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거 전혀 아닌 거지? 어…?”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까 말했듯 근처에서 나를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고 그 역을 에리카, 네가 맡아 주었으면 한다.”
“알겠어… 할게…. 무조건 할 거야.”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서는 프로텍터와 다른 기관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피치 못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발생할 터.
그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력자를 항상 곁에 두어 나를 돕도록 해야 한다.
본래라면 그 인물로 알리시아를 선택하려 했으나, 그녀의 성장 건도 있고 에리카의 현 상태 또한 불안하니 내 곁에서 돕는 조력자는 에리카가 조건에 맞았다.
또한… 얼마 영향을 미치지 못할지언정, 이것으로 에리카의 죄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겠지….
나는 알리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명심하거라 알리시아.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해서 중요도가 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너는 나의 검. 세상에 주인을 따르지 않는 검은 녹슨 검과 부러진 검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도련님의 명이라면 무엇이라도 받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리시아는 목소리와 함께 눈빛을 갈무리했다.
정갈하게 자리 잡혀 의젓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거 같자 나는 추가적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뭐 어차피 머지않아 만인이 알게 될 것이나, 이 사안에 대해 외부로 발설을 금한다. 굳이 약점을 알려서 좋을 건 없지 않겠느냐.”
“응, 알겠어….”
“도련님의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두 여성의 대답을 듣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선 시련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대충 정리된 거 같고.
산처럼 쌓여 있는 과제도 차근차근 해결하면 되는데…. 이 기점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는 기말고사.
이제 이걸 어떤 식으로 깔끔하게 처리해야 할까.
조금 논의할 필요가 있다.
* * *
총장 굴레마시아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총장실.
유독 넓은 마지막 층. 버섯 형태의 독특한 탑의 꼭대기에서 굴레마시아와 루이사, 파울라는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개인적인 자리여서 그런지 파울라는 뚱한 표정을 일관하였다.
루이사는 아직도 근신 건으로 삐쳐 있는 거냐며 파울라를 건드려 보지만 그녀는 비죽이고 있는 입술을 돌려놓지 않았다.
“흥!”
되레 대놓고 토라진 기색을 보이며 몸을 돌렸다.
루이사가 그런 그녀를 강제로 제압하려 하자 굴레마시아는 인자하게 웃었다.
“호호호.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앙탈을 받아 주는 것도 스승의 일이지요.”
“사랑하는 제자는 무슨! 저는 하나도 안 사랑해요. 어쩜 아직까지도 저한테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없으세요? 너무해요 정말!”
굴레마시아는 대답 대신 느긋하게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그의 눈가는 여전히 너그러운 주름이 자리잡혀 있으나 당시의 안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파울라는 슬쩍슬쩍 스승이자 총장인 굴레마시아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성질을 부리며 뜨거운 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앗 뜨, 뜨…!”
입안을 데인 파울라. 그만 약간의 차를 흘려 버렸지만, 마법으로 흔적을 지우고 치유 마법을 걸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도로 새침한 태도를 보였다.
약간의 침묵이 있고 굴레마시아는 천천히 입을 뗐다.
“곧 있을 회의 때 말하려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먼저 밝히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는 찻잔을 놓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뒷말이 들렸다.
“이번 기말고사는 아카데미아 단독이 아닌 ‘리케이온’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방식에는 변함이 없고요.”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토너먼트식.
이것은 두 용사사관학교인 아카데미아도 리케이온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이를 함께 진행하겠다는 말은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1학년들이 전면 충돌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갑작스럽군요.”
루이사는 턱을 손으로 짚은 채 이해관계에 대해 파악하려 했다.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기관들로 서로 종종 교류하기는 했으나, 시험을 함께 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울라 역시 관심이 없는 척을 하려 했지만 굴레마시아를 바라보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는 말을 이었다.
“최근 1년 동안 아카데미아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관해 교회에서 말이 많습니다.”
“해서 리케이온을 필두로 간섭을 하겠다… 그런 뜻입니까?”
“간섭이라기보단 위험성을 줄이고자 행하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합니다. 게다가 타교와의 교류는 서로에게 유익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굴레마시아는 벌써 리케이온의 사람들이 시험의 세부 사항을 정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이 역시 급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아카데미아는 거부권이 없었다.
결국, 아카데미아를 제외하고 이미 교회와 리케이온은 결정을 마친 셈이었다.
루이사는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가 반항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럼 우리 쪽에서도 담화를 나눌 학생회 인원들과 교수들을 선발해야겠군요.”
“그렇죠. 함께 진행을 이끌 인재들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리케이온의 총장께서 특별히 부탁한 사안이 있습니다.”
굴레마시아가 회의 전에 루이사와 파울라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까닭 때문이었다.
“설마….”
불안함을 감지한 파울라의 입술이 서서히 벌려졌다.
굴레마시아가 다음으로 누구의 이름을 꺼낼지가 예상되자 걱정밖에 되지 않았다.
아카데미아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클레멘스나 알리시아의 이름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심지어 클레멘스는 자신들과 별다른 접점도 없으니 더욱.
굴레마시아는 그의 이름을 꺼냈다.
“1학년 대표, 바르간 학생과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