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9화(19/350)
“굉장한 우연이네요…! 설마 아카데미아의 교수님과 만나 뵙게 될 줄이야.”
“호호호, 그러게. 나도 설마 신입생을 벌써 둘이나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아, 내가 교수니까 말 놓아도 되지?”
리암이라는 남학생과 에밀리라는 여학생의 동의가 떨어지기도 전에 편하게 말을 놓은 파울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함께했다.
그러던 와중, 에밀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더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을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선 왜 이곳에 계시는 건가요? 지금 이 시기면 한창 아카데미아의 모두가 바쁠 것 같은데.”
에밀리의 순수한 물음에 파울라는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하였건만 차마 근신이 풀리고 복귀하는 중이라고는 입에 담기 힘든 것이다.
“아… 그건 말이지.”
“다 이유가 있으셨겠지. 다른 지역으로 파견 같은 걸 갔다 오신 거죠?”
“뭐…? 어, 어어. 맞아 맞아. 눈썰미가 좋은 학생이구나. 잠시 파견을 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음, 그런 거지. 호, 호호.”
에밀리의 의문에 먼저 답을 내보인 것은 파울라가 아닌 상황을 지켜보던 리암이었다.
파울라의 시점에서, 리암이라는 남학생이 자신의 처지를 알 겨를은 없었으나 우연히도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교수님들은 바쁘시구나’와 같은 혼잣말을 했다.
그것을 들은 파울라는 주제를 전환할 겸 둘에 대해서 물었다.
“두 사람 다 오리아 지역에서 왔다고 했지? 오리아 지역이면 트로아 제국의 거의 끝자락인데 용케 잘 도착했네?”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시골 마을에서 왔어요. 오는 데만 1달 정도가 소요됐죠. 교통비도 어마어마했고요.”
“리암, 네가 길을 헤매지만 않았더라도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을 거야.”
“그건… 내가 할 말이 없다.”
여학생이 살짝 놀리듯이 남학생을 공격하면 남학생은 익숙하게 인정하거나 나름대로 받아친다.
조금 전에 처음 만난 사이였으나 파울라는 이 둘의 관계가 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둘이 사귀는 사이인가 봐?”
친한 남녀 사이를 본다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질문.
“아니요.”
“아, 아니에요!”
리암과 에밀리는 제각기로 부정적인 답변을 내밀었다.
오호라.
이건 예상 밖이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잘 받아 주기에 분명 마음이 있다면 그건 남학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연정이 있는 것은 여학생이다.
남학생은 담담하게 답변하는 반면, 여학생은 살짝 놀란 것처럼 발끈하고 나선다.
“그냥 소꿉친구일 뿐이에요. 저희 마을의 촌장님의 딸이 얘라서 말이죠. 서로 남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마, 맞아요. 남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런, 여학생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남학생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에밀리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있다.
“아, 그그, 입학증! 둘 다 입학증 받았지? 혹시 보여 줄 수 있을까?”
파울라는 서둘러서 다음 화두를 던졌다. 둘은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두고 있는 입학증을 꺼내 파울라에게 보였다.
먼저 확인한 것은 여학생인 에밀리의 것. 고급 진 편지 봉투를 열어, 멋들어지게 문장들이 즐비한 곳은 무시한다. 시선을 입학증의 아래로 내리자 진한 붉은색의 인장이 눈에 들어온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문양이다.
그 안에 담긴 미세한 마나를 느낀다.
‘여학생은 평범한 수준인가. 아니, 사실 그보단 아래… 재능이 있다고는 말하기 힘든 정도. 시골 마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인재로 입학 규정은 통과했겠지만 아카데미아의 천재들과 자웅을 겨루기에는 힘들 것 같네. 그래도 마나가 호쾌하고 신속해서 검술과 섞일 때 나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에밀리는 검사를 직업으로 골랐구나? 적성에 맞는 걸 골랐네.”
“그런가요?! 다행이다. 마법에 대한 재능이 부족한 건 알았지만 검을 휘두르는 것은 좋아하고 자신이 있어서요.”
“잘 선택했어. 마나가 검사와 어울리는 속성이야.”
“그런 것도 알 수 있는군요? 아, 리암은 어때요? 애 원래는 저위 마법 하나도 하지 못했던 애인데 몇 개월 만에 이상할 정도로 부쩍 강해지고 있어요. 혹시 천재성이 늦게 개화한 걸까요?”
“에밀리…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 한번 봐 볼까?”
파울라는 호응을 하며 에밀리의 장단에 맞추었으나 속으로는 그녀가 살짝 과장을 덧붙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위 마법 하나도 못 하던 애가 단 몇 개월 만에 아카데미아에 입학할 정도로 마나를 발전시켰다? 알리시아 양 같은 특출난 경우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다. 아카데미아는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디 보자~.”
리암의 입학증서를 펼친 파울라는 에밀리의 것과 마찬가지로 글씨는 무시한 채 아래에 새겨져 있는 인장에 주목했다.
오, 인장의 문양이 잠재력을 나타낸다. 그녀의 말대로 어느 정도의 발전 가능성은 있는 모양이다.
안에 담긴 마나를 끄집어낸다. 그러자 담겨 있던 정보들이 파울라에게 전해진다.
‘일반적인 신입생의 평균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자존심이 누구(?)처럼 높지만 않다면 아카데미아에 가서도 기죽지 않고 있을 수 있어. 음? 이 찌릿한 느낌은. 오호, 번개 속성에서 특히나 두각을 드러내네. 그럼 잠재력은… 어라?’
파울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무시한 채 다시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시 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그러시죠?”
리암은 살짝 긴장된 시선으로 파울라를 바라봤다. 파울라는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은 채 리암을 마주한다.
“안 보여.”
“네?”
“네 잠재력, 뿌예서 안 보여.”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알겠다. 이 남학생은 잠재력이 있으며 아직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밤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재능이 있으면 있는 거지 숨겨져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저주에 걸려 있다는 말인가? 그거랑은 다른 거 같은데. 뭔가… 다른 차원의 이질적인 그런 느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나 참.
“아니, 이번 신입생들은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예?”
자신의 두 제자를 떠올린 파울라는, 마땅한 반응을 보이기 난처해하는 남학생을 보곤 헛웃음을 뱉었다.
***
“아이고 좋다~!”
“먼지 날려. 침대에서 뛰지 마.”
“에밀리, 그러지 말고 너도 누워 봐 엄청 푹신하고 냄새도 좋아.”
“됐어. 애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 그러고 싶은 기분도 아니야.”
잔잔하지만 목소리에 날이 서 있는 에밀리는 태평한 리암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카데미아라는 거대한 공중도시에 들어온 이후로, 본인은 당장 내일 있을 입학식이 실감이 나 긴장이 되는데 이 남자는 아무런 의식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네가 왜 바보야?”
“너 때문이잖아 이 바보야.”
리암은 얼빠진 소리를 내면서 그녀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일관했다.
에밀리는 길게 한숨을 쉬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자신보다 어쩌면 별생각 없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리암이 더 똑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다. 네 말이 맞아. 내가 바보였어.”
“지금 우리 무슨 대화 하는 거야 에밀리? 이거 대화가 되고 있는 거 맞지?”
리암은 침대에 파묻혀 있던 자신의 상체를 일으켜 에밀리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가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자 에밀리는 긴장하며 살짝 고개를 뒤로 빼고 말았다.
“왜, 왜…! 뭔데?”
“에밀리, 너 많이 긴장했구나?”
“뭐?”
자신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에밀리는 그렇지 않다며 강하게 부정했으나 곧 바람에 숙이는 풀잎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맞아. 긴장돼…. 떨려서 미치겠어.”
“그렇게 신경 쓰지 말라니까.”
“어떻게 그래. 우린 마을의 자랑이고 나는 촌장의 딸인데.”
구석에 있는 작은 촌 동네 출신인 두 사람이 아카데미아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동네 주민 모두가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를 정도로 환영할 일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두 마리나 난 것이다. 에밀리는 그들의 환호가 기뻤지만 동시에 천근과도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재능 없이 마법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있던 자신의 소꿉친구가 바뀌어 버린 일도 있다.
갑작스레 자신을 추월하더니 이젠 언제 시야에서 사라질지 모를 정도로 질주한다.
그 사실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우연히 아카데미아의 근처에서 만났던 그 교수님도 그의 잠재력은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였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된다고 하셨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한 말이었겠으나 에밀리에게 있어 이는 리암을 인정한 것으로 들렸다. 아카데미아의 무려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의 소꿉친구를 인정했다.
리암이 한 걸음 또 멀어져 간다. 자신만을 내버려 둔 채로.
“에밀리, 아니 선생님. 괜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지금은 농담하고 싶지 않아. 리암.”
“농담이라니.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군지 잊어버린 거야?”
리암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에밀리의 손을 천천히 잡아주었다.
“마법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배움을 얻지 못했었던 나에게 단지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마법을 알려 줬던 건 너야, 에밀리.”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어려운 일이야.”
리암은 말을 잇는다.
“그리고 나는 평생을 감사하게 생각할 거야.”
“…….”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용사에 대한 꿈을 꿀 수도 없었을 거고,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오지도 못했을 거야. 이건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리암은 장난기 섞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름 에밀리의 기분을 풀어 주고자 장난을 섞은 것이다.
그런 리암과 잠시 시선을 교류하고 있던 에밀리는 그의 마음을 느끼곤 살짝 기운을 차린 것처럼 새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 뭐 해. 선생님을 쉽게 능가해 버렸는데.”
“그럼 서로 도우면 되잖아. 내가 너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네가 힘들 땐 나의 도움을 받으면 돼.”
에밀리와 리암의 공간을 밝히던 등불이 흔들린다. 에밀리는 그 등불과 같은 눈동자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그리고 이런 모습은 에밀리, 너답지 않아.”
“나답지 않다….”
에밀리는 그 문장을 속으로 곱씹었다. 그러곤 살며시 미소 지으며 용기를 보였다.
“확실히 나답지 않았네.”
리암은 어느 정도 돌아온 그녀의 미소를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자신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소설에서 짧게나마 읽어 왔었던 그녀의 밝은 모습이다.
그는 잠시 생각한다.
이 소설 세계에 빙의가 되고 리암의 기억이나 감정이 이어졌기에 자신이 이 소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으로서 소설을 읽었던 기억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에밀리라는 이 여리지만 굳센 소녀는 굳이 표현하자면 조연이었다. 만약 리암의 기억이 계승되지 않았다면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을 정도이다.
그런 소녀가 이 험난한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자신처럼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도 없는 평범한 소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의문이 끝자락에 박혀 있으나 리암은 애써 모른 척하며 에밀리를 끌어안아 줬다.
물론, 그 전에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빠르게 두 번 눈을 깜빡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것’을 띄우는 데 필요한 행위니까.
⎯ 띠링!
대상의 스테이터스를 열람합니다.
에밀리
힘 : 3.5/10 ⦁ 체력 : 3.9/10
마력 : 2.9/10 ⦁ 정신력 : 2.9/10
방어력 : 3.3/10 ⦁ 민첩 : 4.3/11
이젠 익숙해진 투명한 창.
이 작은 것에 담긴 정보가 에밀리의 현 상황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비교 대상이 많지는 않았으나 오늘 만났던 파울라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고, 우연히 지나다니던 지원자들의 정보와는 얼추 비슷한 정도.
처음에는 자신보다 강했던 그녀가 이젠 추월당하여 느린 성장을 보이고 있다.
리암은 눈을 감으며 창을 껐다. 그러곤 마음에 떠다니는 이 불안한 감정을 씻어 낸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아카데미아에 오기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자신은 이 소설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뒷내용을 훤히 알고 있다.
문제라는 파도가 자신을 덮치기 전에 서핑 보드를 준비해서 그 파도에 타거나, 설령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면 물에서 빠져나와 이번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된다.
“괜찮아 에밀리. 우린 잘해 낼 수 있어.”
자신만의 특별한 시스템도 있다.
소설의 내용도 알고 있다.
비록 주연의 몸은 아닐지라도 주연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상태창이라는 힘은 마법에 빠삭한 자라고 할지라도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힘.
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
그래, 우린 반드시 이 소설의 해피엔딩을 볼 수 있어.
***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 이번 신입생 수석으로 연설하게 된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의 남자는 당당하게 입학생들의 앞에서 자신을 밝혔다. 그의 동작은 기품이 깊이 배겨져 있었고 어딘가 우아함을 느낄 정도였다.
단어 하나하나에는 뭔지 모를 힘이 실려 있었고, 발성이나 발음이 스피치 전문가처럼 또박또박했다.
마이크의 역할을 하는 마도구를 잡은 손은 한 마리의 백조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거두절미하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말하지.』
품위가 있는 말투에서는 짙은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같은 학생임에도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는 신입생의 대표로 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그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읽은 소설의 주역이었으며 아카데미아의 악역 대장 노릇을 하던 자였으니 모를 리가 없다.
리암은 그를 보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말투가 차가워서가 아니다. 그가 위압적이기 때문도 아니다.
‘뭐야. 이게 뭐야. 잘못 들은 건가? 하지만 분위기는 소설 속 그 사람 그대로인데.’
심장박동은 빨라지며 온몸의 세포가 경종을 울린다.
바르간이라고?
그 악역 바르간?
왜?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왜 네가 거기에 서 있는 거지?
이상하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이번 신입생 수석은 악역인 네가 아니라.
‘주인공’이었을 터인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대사가 결정타를 먹인다.
『너희는 구더기다.』
“맙소사.”
안정적으로 줄거리 위를 달리던 기차가 돌연 탈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