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9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90화(190/350)
“방금은 내가 방심해서 그런 거야.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다치는 건 오히려 너였을걸?”
아르하는 한 대 얻어맞은 볼을 매만지며 목을 양옆으로 까딱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부러지지 않았고 되레 약간의 호기심을 비추며 바르간을 향해 있다.
바르간은 그런 아르하를 하찮다는 듯 대꾸하며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약한 것들이 반드시 보이는 공통점이 있지.”
“응?”
“핑계가 많다는 점.”
“아하하—! 나, 약하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어!”
아르하는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즐거워했다. 바르간이 한 말을 장난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재능에 관한 절대적인 자신감.
그것이 그녀의 행동을 좌지우지했다.
“아카데미아는 재밌는 사람들이 많이 있네. 알리시아랑도 싸워 보고 싶지만 바르간, 너랑도 싸워 보고 싶어졌어.”
아르하는 자신과 비슷한 경로로 아카데미아에 들어온 알리시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바르간의 존재를 모른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에 꽂히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는 아르하는 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지금 그 관심의 방향이 수정되려 했다.
“역시 너는 제정신이 아니군.”
바르간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투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아르하의 의지를 무시했다.
판을 더 크게 만들었다가는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판단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화를 위해 알선된 교수들이 모습을 보였다.
“지금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몇몇 교수들이 성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쳇.”
아르하는 혀를 찼다. 아무리 주위 눈치를 보지 않는 그녀라 할지라도 ‘그 인물’의 앞에서 나섰다가는 분명 곧바로 제압당할 테니까.
교수들의 무리가 전부 들어오는 듯싶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
아카데미아의 총장 굴레마시아와, 리케이온의 젊은 총장 하이겔.
“아무래도 저희 쪽 학생이 폐를 끼친 것 같군요.”
그의 등장으로 상황이 완전히 종결되었다.
* * *
결국 리케이온은 사과를 보였다.
아르하의 빳빳한 고개는 학생회장인 에디나가 직접 꾹꾹 눌러 간신히 숙이게 만들었다. 도중에 몇 번이나 올라가려고 했던 것을 마법을 사용하면서까지 막았다.
“이번 소란은 저희 리케이온의 학생에 의해 발생된 일입니다. 그 책임을 물어 총책임자인 저, 하이겔 또한 아카데미아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이겔이 머리를 숙이자 긴 머리칼이 함께 흔들거렸다.
비록 사과를 하는 것일지라도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느껴졌다. 총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상당히 젊은 나이의 남자.
리케이온의 총장인 하이겔까지 직접적으로 사과하자 에디나의 표정이 미세하게 침울해졌다.
약간의 억울함과 분노 역시 엿보였는데,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학생회장으로서 나온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수치스럽기도 하겠지.
게다가 그녀는 직접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정리하려던 순간에 내가 개입하여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르하가 아무리 독보적인 천재라고 해도 아직까지는 에디나가 간신히 잠재울 수 있다.
에디나는 오셀 왕국의 공주로 대단한 핏줄을 타고났으며 오랜 교육을 받아 왔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내가 개입함으로서 무게의 추가 완전히 쏠렸다.’
에디나가 아르하를 제지시키고 순조롭게 정리했다면 이 정도로 리케이온이 깊게 사과하지도 않았을 것.
문제의 발생부터 정리까지 아카데미아에 민폐를 끼친 셈이 되었으니 그녀로서는 나름 억울할 만하다.
…뭐, 이렇게 되라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나선 내가 배려할 요소는 전혀 아니지만.
초반에 입장 차이라는 것은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니까. 이로써 아카데미아는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음…?’
순간 리케이온의 총장과 눈이 마주쳤다.
표정을 숨기는 게 능숙한 사내다. 인자한 미소를 띠며 속내를 감춘다. 의미심장한 눈동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2학기 기말고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분위기가 얼추 정리되자 리케이온의 한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의 진행에 따라 드디어 담화가 시작되었고 차근차근 사안들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대략 2시간 정도가 흐르고, 기말고사의 모든 세부 사항들까지 정해졌다.
진행을 맡은 리케이온의 교수가 담화의 끝을 중요 확정 사안과 함께 고했다.
“이로써 리케이온과 아카데미아 1학년들의 2학기 기말고사 합동 회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시험의 무대로 정해진 곳은 리케이온.
“시험 날짜는 12월 24일부터 25일. 이틀간 진행됩니다.”
현대에서 예수의 성탄을 축하하는 성스러운 날로 결정되었다.
…또한 그때는.
시련으로 인해 내 ‘눈’이 멀어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참 쉽게 풀리는 일 하나 없다.
* * *
리케이온과의 담화가 끝나고 나는 일행과 함께 회의실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우는 리케이온의 총장에 의해 둘이서만 남게 되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단다.
다른 이들이 퇴장하는 동안 아르하가 ‘다음에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라고 지껄이기는 했지만 무시했다.
‘알리시아가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천만다행이군.’
어쩌면 저런 녀석을 알리시아 대용으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였을지 모르겠다.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고 있자 하이겔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뛰어난 학생이지만 어디로 튈지 몰라서 말이죠. 곤란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는 아르하를 언급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주먹을 날린 일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장발의 남성 하이겔을 지그시 관찰하였다.
역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태도가 꽤 익숙하며 능숙하다.
…우선 아르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으니 받아 주는 게 일반적이겠지. 그가 나와 사담을 나누고 싶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아르하에 대한 소문도 들었고 천재임은 인정하는 바이나 사회화가 지나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대놓고 아르하를 까내리는 표현을 썼다. 리케이온의 학생을 비하했음에도 하이겔은 불쾌해하는 대신 멋쩍게 웃었다.
“그 점은 부정할 수 없군요.”
“솔직한 제 심정을 밝히자면 그녀를 1학년 대표로 내세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학년 대표로 내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 역시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언뜻 내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줏대를 굽히지 않는 하이겔.
‘이러한 오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르하를 1학년 대표로 내세울 필요성이 있는 것인가?’
나는 그의 뜻을 짐작하며 이어지는 반응을 살폈다.
하이겔은 이미 다 식은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무언가 회상하는 듯한 모습. 차분히 그의 입술이 떼어진다.
“바르간 학생은 ‘천재’를 본 경험이 있습니까?”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리케이온의 정점에 오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천재라는 이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그러나 그가 말하는 천재의 정의는 일반적인 기준을 아득히 벗어나는 듯하다.
“…네. 있습니다.”
나는 알리시아를 떠올리며 솔직하게 답했다.
미친 천재 알리시아. 그녀의 재능을 직접 목도한 첫 순간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온몸에 짜릿하게 전해진 전율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어차피 그는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 내가 알리시아를 시종으로 데리고 아카데미아에 입학했으며 그녀의 천재성 역시 이제는 제법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으니까.
내 대답을 듣자 그는 씁쓸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의 꼬리를 이었다.
“바르간 학생 역시 신동이나 천재라는 이름을 지겹도록 들어 왔을 겁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저 또한 그랬고요.”
“…예.”
격동의 13세를 겪고 나서는 의미를 잃어 훈련을 게을리했음에도 단기간에 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기연의 획득, 마나 총량의 특전, 그리고 바르간의 태생적인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기에 가능했지 아니면 지금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르간 학생도 느꼈다시피 ‘천재’라는 단어는 저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천재란 무엇일까.
미래의 검제라 불릴 아르텔리온 역시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와 같은 핏줄인 에디나 역시 한때 천재 마법사라고 불렸다.
에리카도 마찬가지다. 고유성이 뛰어난 워프 마법과 난이도가 높은 빙결 마법에 대한 적합성이 드러나자 포트레트가의 천재가 나타났다며 한동안 난리였었다.
이곳에서도 천재, 저곳에서도 천재.
속된 말로 조금만 뛰어나거나 특별성을 보이면 개나 소나 천재라고 불리며 환호를 받는다.
물론 이들 역시 전체 인구수에 따지면 극소수에 속하겠지.
그러니까 인정을 받고 부러움과 영광을 차지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단언하건대.
천재는 이러한 족속들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게 값싸고 질 떨어져서는 안 된다. 신성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고귀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
“현 마법사의 정점인 굴레마시아. 그의 전성기를 본 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최초의 마법사를 명맥을 잇는 천재라고 불렀지요.”
되새겨진 장면이라도 있는 것인지 하이겔의 목소리에는 다소의 고양감이 느껴졌다.
아카데미아의 총장인 굴레마시아를 라이벌로 여기면서도 언제가 반드시 따라잡고 싶은 목적지로 여기는 것이다.
“…바르간 학생. 저는 그러한 존재들만이 천재라는 명칭에 손색이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은 잘 쳐줘 봤자 진짜를 잘 흉내 낸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장식이 정교해도, 품질이 뛰어나도 결국은 가품.
진짜와는 차이가 있다.
“…….”
하이겔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금 달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부터가 본론인지 어조의 강약이 달라졌다.
“3년 전의 어느 날. 제3위험군과 그 무리가 한 시골 마을에 들이닥쳤습니다.”
여신교의 한 주교가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마을을 급습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체로 삼는 것.
잔혹하긴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사건.
당시 하이겔은 우연하게도 그 마을 인근을 지나고 있었고, 위험을 감지하고는 현장에 달려들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체가 되어 있었고, 저는 그들을 화장(火葬)하면서 생존자를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제급을 토벌하던 하이겔은 문뜩 이상함을 감지했다.
사제급들이 지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오합지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뚜렷한 목적이 없어 보였다.
마치 리더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들은 방황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제3위험군으로 보이는 개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믿기 힘들게도 그 개체는 이미 죽어 있었고, 14세의 어린 소녀만이 그 피에 젖은 채 앉아 있더군요.”
그것이 아르하와 하이겔의 첫 만남.
아르하는 주교를 죽였다.
마법의 교육을 일절 받지 못한 14세의 소녀가.
알티프의 지성체를 살해한 것이다.
그녀는 바르간보다도 빨리, 주교의 향수를 몸에 뿌렸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자 세상은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이겔이 주교를 퇴치했다고 여기고, 그렇게 알려졌지만.
원작에는 제대로 적혀 있어 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이겔은 나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리시아를 발견한 나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거라는 반응이다.
“아르하를 데리고 와 가르침을 주면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죠. 그녀가 천재라는 사실을요.”
그 전까지의 아르하는 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가지고 노는 정도로만 다루었다.
즉, 자연스럽게 마법을 독학하여 마법을 장난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맞추기 위해서인가.’
기괴할 정도의 천재성.
나는 그것을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설정으로 보았다.
시기상 가장 늦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히로인 알리시아.
본래 재능이 범인에도 미치지 못한 주인공 리암.
그리고 그들의 경쟁자 중 한 명으로서, 마찬가지로 주변에 비해 현저히 늦은 스타트를 끊은 타교의 라이벌 아르하.
이들이 기존에 천재라고 불렸을 이들과 싸우면서 성장하고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이 차이를 보정할 ‘무언가’가 필요했을 터이다.
그렇기에 알리시아와 아르하에게는 ‘미친 재능’을.
리암에게는 ‘상태창’을 주었던 것이겠지.
어쩌면 바르간의 ‘방황’ 역시 시기상의 수준을 맞추기 위한 도구로 볼 수 있다.
악역은 적절한 타이밍에 당해야 하니까.
“물론 바르간 학생의 재능을 무시하는 발언은 절대 아니에요.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는 없다시피 하니까요.”
하이겔의 말에 나는 작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 말은… 굴레마시아 정도 되는 천재들은 내 나이에 이미 지금 내가 이룬 성취를 뛰어넘었다는 게 아닌가.
하기야, 알리시아나 아르하가 ‘방황’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르간이 받은 과정 그대로 받아 왔다면 지금의 나보다 높은 성취를 이룩했겠지.
아니지. 설령 거쳤더라도 마찬가지인가. 그들이 본래의 바르간이 가지고 있던 재능보다 뛰어남은 확실하니까.
또한, 하이겔이 바르간의 방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 리도 없고 보이는 결과값이 전부일 테니 그렇게 판단하는 게 올바르다.
하지만… 그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바르간 학생의 행보가 저와 맞물릴 거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하이겔은 내가 아르볼 프루탈이라는 연구회에서 규칙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인재들을 육성하고 있음을 짚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내 행보를 쭉 읊으며 나의 방식이 리케이온과도 합치하며 상생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바르간 학생과 도움을 주고받고 싶어요.”
그는 비로소 본연의 미소를 보였다.
마치 교섭가와도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가의 웃음이다.
“저는 고유술식의 시련에 도움을 주도록 하죠. 그 대가로 저를 도와 움직여 주세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는 시련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