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9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98화(198/350)
핀과 카이만의 예선전이 결정되고 난 후.
카이만과 훈련을 하던 리암은 문뜩 그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
“뭐가 말이오?”
“네가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핀과의 일대일이 잡혔잖아. 혹시 긴장되나 해서.”
“켁. 살아 있는지 뒈졌는지도 모르는데 긴장은 얼어 죽을. 리암 형씨,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자세나 다시 잡는 게 어떻수?”
카이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며 본인의 검 끝에 집중했다. 어느 정도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에 생존해서 돌아온다면 두 걸음이든 열 걸음이든 입학 성적 꼴찌라는 이름에서 꽤 벗어나 있을 테니까.
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카이만에게서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일 터이다.
“아, 형씨 말해 두는데 나는 핀 양반이 싫은 게 아니오.”
그런 리암의 짐작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라고?”
“싫다기보다는 짜증 난다는 게 맞수다.”
“결국 같은 의미 아닌가…?”
“일단 들어 보시오.”
리암과의 대화가 길어질 것 같자, 카이만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는 바닥에 박아 세워 두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벅벅 옷소매로 닦았다.
그러고는 얼굴에 난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험상궂게 생겼어도 말이오. 나는 현실적이고 똑 부러진 사람이오.”
“……음. 어, 어. 계속 얘기해.”
“뭐요 그 반응은? 아무튼, 그 왜 뭐냐… 모든 무기는 만들기 전부터 쓰임새나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수? 활이면 활, 검이면 검. 이런 식으로 말이오.”
“그렇지…?”
“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보오.”
리암은 카이만의 뜻을 추측했다.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카이만은 예전부터 용사에 재능이 없는 핀이 용사를 갈구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았으니까. 아마 적성에 맞는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게 낫다는 말일 것이다.
리암이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눈치를 보이자 카이만은 말을 이었다.
“닭 잡는 칼은 닭을 잡는 데만 사용하는 거요. 물론, 갈고닦아야 하는 건 변함 없지. 녹이 슬어서 잘 베이지 않으면 쓸모가 없게 되어버리는 거니까.”
“그런데 닭 잡는 칼로 소를 잡는 건 맞지 않다. 그 말인 거지?”
“그렇수.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만. 애초에 용도가 다르게 만들어진 거요.”
결국, 태어났을 적부터 개인은 한계치를 갖고 태어나며 그 안에서 최고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쏟는 것이지 그 이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다.
“그 핀이라는 양반을 처음 봤을 때 바로 알겠더군. 닭은커녕 쥐새끼 하나 잡지 못할 검이라는 것을.”
카이만은 그때를 떠올리는 건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런데도 왜인지 모르게 바르간의 관심을 받으며 헤일리온이라는 다시 없을 기회까지 얻었다.
차라리 그 기회를 다른 이, 그래 자신에게 주었다면 더욱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그래서 싫다고는 말하기 뭐하오.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어올라서 그렇지.”
카이만이 차오르는 성을 껌처럼 씹어 대고 있자 이를 듣고 있던 리암은 곰곰이 생각하다 대화를 이었다.
“대충은 알 것 같아. …하지만, 이번에 돌아온다면 그 용도 자체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걸 확인해야지.”
카이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두고보라는 듯 흉터진 눈썹은 곧게 뻗어졌다.
“핀 그놈은 대장의 호의로 기회를 받았수. 그렇다면 증명하기 위해서 이번 무대를 활용하려 하겠지.”
“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분명 그럴 거요. 하지만 그거 아오? 반대로 생각해서 이번에 나에게 막혀 증명하지 못한다면 대장은 놈에게 실망할 것이고 나를 지원하려 들겠지.”
카이만의 노림수는 그것이었다.
현재 핀에게 돌아가 있는 이유 모를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
그리고 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자신의 성취를 드높이는 것.
“내가 놈의 성취를 확인하는 구실로 녀석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릴 거요. 휴학까지 내고 배움을 받고 왔는데 내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서 상대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수.”
핀의 쓰임새가 바뀌었는지, 아닌지.
바뀌었다면 어느 정도로 바뀌었는지.
카이만은 직접 맞붙어 보며 이를 확인하려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특권을 빼앗기 위해서.
“…….”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예선전이 치러지는 경기장.
카이만은 눈앞에 구름을 몰고 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1학기에 비하면 확실히 더욱 단련되어 보이는 몸. 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에 비할 바 못 됐다.
아카데미아의 정규적인 과정을 밟는 것으로 모자라 리암과의 꾸준한 대련으로 카이만의 몸은 전보다 한층 발달되었다.
보다 효과적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더욱 빠르게 달려들 수 있도록.
카이만의 신체는 극한의 단련을 마친 상태였다.
아르하에게 창피를 당한 뒤로는 더욱 피말리도록 말이다.
‘신체조건으로는 내가 우위다. 남은 건 기술의 발전도인가….’
판단을 마친 카이만은 주변에 침을 뱉었고,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푸른 오러가 그의 검신을 감싸자 거슬리는 게 보였다.
“언제까지 그 연기 뭉텅이를 데리고 있을 거요?”
카이만은 날이 선 말투로 뱉었다.
핀은 그제야 알았는지 미안하다고 말하며 구름을 경기장 밖으로 쫓았다.
무슨 구조인지는 모르겠으나, 구름은 핀의 말을 따라 순순히 물러났다.
그것을 본 카이만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핀을 도발했다.
“검술 훈련을 갔다온 줄 알았는데 마법사가 되어서 온 건가?”
“너는….”
“카이만이오. 연구회 활동하면서 대놓고 면전에서 개무시를 했는데 설마 기억하지 못하는 거요?”
“…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핀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얼마나 지났다고 그걸 기억 못 하오? 치매요?”
“미안해. 아직 정신이 온전하게 일체화되지 못해서….”
“당최 뭔 소린지 이해할 수 없네.”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은 카이만은 핀을 살폈다.
어리숙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는 핀이 거짓을 뱉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세속의 일 따위는 잊어버린 채 검에만 매진했다는 말인가. 웃기지도 않는군.’
대결에 들어가기 전, 카이만은 그런 생각을 하다 뇌까렸다.
“그래서 댁. 좀 강해진 것 같수?”
어차피 검을 맞대면 알 일.
하지만 가능하면 그의 입으로 먼저 듣고 싶었다.
스릉—.
핀은 묶고 있던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꺼냈다.
딱 봐도 귀한 유물처럼 보이는 검은 그대로 두었다. 그가 빼 보인 건 일반적인 형태의 철검이다.
그러더니 알쏭달쏭하다는 듯 검지로 눈썹을 긁었다.
“강해졌…나? 이게 참… 애매한데.”
“뭐, 비밀이면 됐구려. 이제 바로 알게 될 터이니 지겹게 물을 생각은 없수. 입을 나불거리는 건 여기까지 하지.”
말을 끝내곤 자세를 낮추며 검을 뒤로 뺀 카이만.
곧바로 달려나갈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그는 콧김을 뱉으며 눈을 부라렸다.
이미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린 지는 오래.
남은 것은 전력을 다해 부딪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뿐이다.
파칵.
카이만이 딛고 있는 뒷발의 압력에 의해 경기장 바닥에 금이 갔다.
소리가 남과 동시에, 폭발적인 속도로 뛰쳐나가는 그.
카이만은 그렇게 커다란 한 획을 그었다.
* * *
십만 번.
그것은 핀이 규정한 새로운 하루였다.
혼백관에 입관하고 나서 핀은 기존 시간을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검을 십만 번 휘두르는 것.
그게 핀이 하루를 세는 개념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검을 휘두르다가 십만 번을 채우면 미리 정해 둔 지점의 바닥을 긁어 표시를 했다.
몇 번이나 정신이 나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잡았다.
자신의 목표를 되뇌고, 또 되뇌어 붙들었다.
힘들수록, 정신이 아득해져 갈수록 검에 집중했다. 늘어나는 흔적을 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핀은 자신의 행동에 즐거움 따위를 추구하지 않았다.
성취감 역시 느끼지 않았으며 절망하지도 않았다.
—탁!
남는 거라고는 시간밖에 없는 이곳에서 핀은 시간을 아끼며 검을 휘둘렀다.
일체 쉼 없이, 꾸준하게 바닥과 벽면에 하루의 표시를 남겼다.
그리고, 첫 번째 혼백관이 종료될 시점이 되자.
—끌끌끌. 아해야. 너는 내가 본 연놈들 중에 가장 미친 놈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백지의 세계가 그가 남긴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검게 물드는 동안 핀이 연습한 동작은 단 하나.
처음에는 바르간이 추천하였고, 칸투르만이 그나마 인정했던 움직임.
종가르기.
그 단순한 몸동작을 극도로 추구한 핀은.
그제서야 겨우 ‘깨달음’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경기장에서.
“……!”
핀을 향해 달려들던 카이만의 동물적인 본능이 외쳤다. 등줄기를 가파르게 타고 올라온 소름이 경고했다.
그의 앞에서 세로로 내리꽂히고 있는 핀의 검.
저건 맞으면 안 된다. 검으로 맞부딪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저건, 저 검이 몸에 닿는 순간 분명.
즉사(卽死).
전력을 다해 피해야 한다.
그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젠장……!’
그그그극—!
카이만이 힘껏 달려 나가던 발을 멈추고 급히 바닥에 검을 내리찍는다.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검이 바닥을 갈면서 속도를 줄여 나갔다.
다리를 비틀면서까지 어떻게든 방향을 바꾸려 드는 그.
그리고.
—쉐악!
검이 내리쳐졌다.
허공이 갈라졌다.
아니, 핀이 검을 휘둘렀다.
그저 그뿐이었다.
“허억… 허억….”
카이만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일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치 산소를 차단당한 사람처럼 카이만은 숨을 헐떡였다.
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죽을 뻔했다.
본래 달려들어 핀을 물어뜯으려 했던 카이만, 하지만 그의 본능에 의해 공격이 아닌 회피를 하게 되었다.
피하지 않고서야 배길 수 없었다.
그나마, 대범하고 호전적인 카이만이기에 현재 경기장 위에서 버틸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었으면 꽁무니 보이지 않게 도망치기에 바빴을 터이다.
꽈악. 카이만은 억지로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본인의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그만… 그만 벌렁거려!’
빠르게 핀과의 거리를 벌린 카이만.
그의 전신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모욕적이다.
분하다.
범재에도 미치지 못하던 토이렌 트로아 핀.
바르간의 특혜를 독차지하고 분수를 모르던 녀석.
그런 핀의 검에 맞부딪히기는 커녕 피하는 것 말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잔뜩 겁을 먹고는 움츠려 버렸다.
‘두려움을 느꼈다. 녀석의 검에서…!’
두근두근.
가쁘게 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킨 카이만의 고동이 다시금 빨라진다.
차갑게 바라본 현실이 조금 전과는 반대의 이유로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카이만의 온몸에 엔돌핀과 열이 훅 하고 돌았다.
이빨은 빠득빠득 갈아지고, 눈 주위의 혈관은 굵다랗게 올라왔다.
그는 죽음을 목격하였음에도 굴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물러설 순 없어.’
이 자리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이고자 하는 것은 핀 혼자가 아니다.
카이만, 핀과 기준이 다를지언정 강함에 대한 지독한 열망. 그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자신은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특별한 검이다. 크게 성장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런데, 천금 같은 기회를 앞두고 저런 쥐 잡는 칼에게 질 수는 없다.
절대로.
‘절대로. 질 수 없다.’
화염과 같이 타오르는 카이만의 의지가 맹렬하게 치솟았다.
오러가 반응하며 형태를 바꾸었다. 불의 성향을 띠게 된 오러는 푸른 불꽃과 같이 타올랐다.
속성확립.
최근 리암과 함께 연무하면서 이루어 낸 성취.
카이만은 혼신을 다해 만들어 낸 그 불꽃을 검에 담았고, 포효를 질렀다.
콰득—!
발을 내뻗어 다시 핀에게 달려간다.
그가 발걸음을 이을 때마다 바닥에 금이 가며 자국을 남겼다.
‘그래, 인정하마. 핀 너는 강해졌다. 하나 이번 승부에서 승자는 나, 카이만이다!
카이만은 검을 휘둘렀다.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하는 그의 검은 그의 목을 벨 것처럼 날아가다가.
“아, 저 항복합니다.”
핀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힘없이 멈춰 섰다.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핀은 너덜거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방금 일격으로 팔이 부서져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