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9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199화(199/350)
예선전이 기권패로 끝나게 되고, 팔이 너덜너덜해진 핀은 치료를 받기 위해 이동되었다.
각종 의료 마법들과 전문의들의 도움을 받게 된 핀.
완치가 될 때까지 무리를 하지 말라는 당부를 듣고는, 오른팔이 붕대로 둘둘 말린 채 병실에 앉아 있었다.
드르륵—.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랜만의 아카데미아 정경을 눈에 담고 있자 문이 열렸다.
차가운 인상의 귀족이었다.
핀은 그자를 기억했다.
“…바르간 님. 오랜만입니다.”
핀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려 했으나 바르간은 됐다며 도로 자리에 앉게 시켰다.
“팔은 언제쯤 회복되는 것이냐.”
바르간은 다른 거추장스러운 인사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언뜻 관심 없고 냉랭해 보일 수 있는 말투였지만,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호의라는 것을 핀은 모르지 않았다.
건강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팔을 휘두르는 핀.
짓고 있는 미소는 그 나이대의 청년에 걸맞은 밝음이 보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온 그림자가 보이는 듯도 했다.
“1주일이면 충분하답니다.”
“그렇군.”
바르간은 핀의 주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에 재회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그는 핀과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은인,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그를 바라보던 핀. 감정을 주무르다가보니 멋대로 입술을 비집고 한마디가 나왔다.
“정말로… 오래간만입니다.”
그 문장은 유독 무거웠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겨우 만난 두 사람.
바르간에게 있어 고작 몇 개월이 지난 정도였으나,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을 핀에게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핀이 눈을 내리깐 채 감회에 젖어 있자 바르간이 먼저 물었다.
“지금 상태는 어떻지?”
“상태요?”
“네 몸과 영혼 말이다. 분리가 된 채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분명 괴리감이 있을 터. 한 번의 일격으로 팔도 그 모양이 된 걸 보면 아직 체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만.”
“벌써 전부 간파하셨군요….”
핀은 차분하게 현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혼백관에 세 번 들어갔다 나온 것과, 그로 인해 생긴 육신과 영혼의 간극.
그것은 이질감을 형성한다.
“…지금은 그래도 제법 기억이 돌아온 편입니다. 막 나왔을 시점에는 제가 누구인지도 몰랐거든요.”
비어있던 핀의 그릇에 본래의 영혼이 들어오게 되자, 그 자리에서 묻혀졌던 원래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게 된다.
핀은 현재 혼백관에 입관하기 전의 기억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물론 그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은인인 바르간 님조차도요.”
같은 조원들.
아르볼 프루탈의 멤버들.
가족까지 잊어버렸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상태였는데 다른 이를 담아 둘 여력은 전무했다.
핀은 죄스럽다는 듯 눈을 내렸으나 바르간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알고 싶은 건 그런 사소한 감성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다.
“핀, 너는 혼백관에 세 번 들어갔다고 하였지.”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바르간이 알고자 하는 것은 정확한 까닭이었다.
역사상, 더 나아가 그가 알고 있는 소설의 내용에서 혼백관에 세 번 들어갔다 나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세 번은커녕 두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열의나 끈기와 같은 감정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건.’
혼백관에서 나왔다는 말은 어느 정도의 성취를 달성하였거나 실패하였거나 둘 중 하나.
실패는 곧 죽음이기에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고.
성취를 달성했다는 말은 ‘재능’을 얻었다는 말이 된다.
혼백관의 입관 조건은 재능의 부재(不在).
즉, 핀은 처음으로 혼백관에서 나왔을 무렵에는 이미 깨달음을 얻고 들어갈 수 없는 영혼이 되었을 터인데 그 후로 두 번이나 더 들어갔다는 것은 조건에 맞지 않는다.
“음….”
핀은 바르간이 뱉은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짐작하였고 잠시 지난 시간을 되새겼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가 혼백관에 무려 세 번이나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이를 버틸 수 있었던 까닭에 관해 말했다.
“첫 번째 혼백관에서 저는 종가르기만을 연습하였습니다.”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검을 휘두르고, 휘둘렀다.
언뜻 깨달음이 보일 즈음이 되자 문이 열렸고 핀은 정신을 잃게 되었다.
그렇게 십 며칠을 온종일 잠으로 지낸 후, 눈을 뜬 그에게 혼백관의 주인인 카닐리스크가 말했다고 했다.
—아해야, 너는 정말 이해를 아득히 초월하는 꼴통이로구나.
카닐리스크는 놀랍게도 핀이 재입관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종가르기만을 죽도록 행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보잘것없고 하찮은 이유.
—1만 년으로도 부족하다니… 이쯤 되니 본좌도 심히 당황스럽구나.
1만 년.
한 번 혼백관에 입관하고 나면 받게 되는 최대치의 세월.
핀은 깨달음을 얻었기에 나온 게 아니었다.
얻지 못했기에 추방당한 것이다. 까치발을 서고서야 힐끔 보게 되었을 뿐 어중간한 재능이라도 얻지 못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지독하게 재능이 없기에 다시금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로 혼백관에 들어가게 되었고, 감을 잡기 시작한 종가르기의 응용을 연습했습니다. 제 스승이신… 크샤놀 님의 검술을 토대로요.”
초식, 발동작, 호흡법, 횡가르기…….
종가르기에 관해 제법 식견이 생긴 핀은 크샤놀의 검술의 다른 동작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억지로 때려 박으려고 해도 기어이 안 되던 것들이, 점차 물길이 넓어지듯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그런데도 핀은 혼백관이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재능을 얻지 못하였고, 또다시 1만 년이 지나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카닐리스크가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영혼이기에 그 모양 그 꼴이냐는 말이었다.
“그때도 정신을 잃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일주일 정도로 줄었더군요. 사실 세 번째로 혼백관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기말고사를 잊은 지 오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압박감 때문에 발걸음을 옮겼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미 그때의 핀에게 처음에 다짐했던 목적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언어능력 역시 후퇴하여 말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인지하는 것은 허수아비와 검 한 자루.
그리고 검술과 잘 알 수 없는 훈련의 원동력뿐.
‘강해지고 싶다.’
아마 그 원동력을 언어로 표하면 그게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짐작해 본다.
……그렇게 또다시 검만 주야장천 휘두르며 1만 년이 다 채워질 무렵.
—아, 완성됐다.
핀은 자신의 검술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아하하…. 참 한심하죠? 남들은 한 번이면 된다는 데 저는 세 번을 꽉 채워서야 겨우 얻다니… 크샤놀 님이 알게 되시면 분명 비웃으실 겁니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핀.
멋쩍게 웃으며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언급했다.
“혼백관에서 보았던 성취를 체화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요. 이를 견딜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건 또 별개죠.”
“…….”
바르간은 기술을 견디지 못한 핀의 팔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경지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몸을 완성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바르간.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핀은 자책을 이었다.
“심지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붉은 오러나 속성확립과 같은 깨달음은 얻지 못했으니… 제 분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안색이 어두워져 가던 핀은 인식을 했는지 도로 인상을 펴며 최대한 환한 기색을 보였다.
“아, 그래도.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이니 전처럼 막연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크게 대단한 성취가 아니긴 하지만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 때문에 혼백관에서 ‘재능’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지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남들은 지도를 사용해서 가는 길이거늘.
혼백관에 입관하는 자들은 그 지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보다 먼저 길을 갔다 와 본 후에 그 기억을 되새기며 걸음을 옮긴다.
비록 지도는 없을지라도, 덜 헤매고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핀.”
바르간은 잠잠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확인해야 하는 게 많이 있다. 아직 정확한 정보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지나치게 캐묻기보단 지금 현 순간 정도는, 지친 그가 쉴 수 있게 돌이켜 보는 틈을 주기로 했다.
“영겁의 세월은 어땠나.”
너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나.
바르간은 그렇게 물었고 핀의 눈동자는 다시금 과거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좋…았습니다. 비록 성취가 부진하긴 해도 제게 다신 없을 기회였으니까요.”
핀의 영혼은 현재 몸에 적응 중이다.
바르간에 대한 은혜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 마음이 강하지 못했다.
용사가 되려는 목적 의식도 상당히 파헤쳐져 있어, 이제서야 차츰차츰 뿌리가 제 위치를 잡아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적으로 돌아오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랬다.
“시간과 육체의 구애를 받지 않고 검을 단련할 수 있다니… 놀랍잖아요. 덕분에 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고,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긴 것 같습니다.”
바르간이나 크샤놀에 대한 감사, 보다 높은 성취를 이뤄 내지 못한 죄스러움.
자격지심(自激之心).
그런 감정들이 흐릿하게 핀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바르간 님께도 감사하고… 또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핀.”
바르간은 핀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은 잘 짜여져 단단한 척하는 외면이 아닌, 듬성듬성할 지라도 진실을 담고 있는 내면이었다.
“이제 괜찮다.”
“…….”
“여긴 혼백관이 아니다.”
“바르간 님…….”
그래. 사실, 자격지심이고 뭐고는 별개의 일이다.
지금 핀의 영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른 이들과의 관계나 자신에 대한 혐오의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바르간이 이를 먼저 알아주니 핀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밝은 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슬슬 한계.
억지로 짓고 있던 입꼬리가 아래로 쳐졌다.
그동안 누구에게 토로한 적 없는 진심을, 참아 내고 또 참아 온 말을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혼백관에서의 시간은 엄청 길더라고요. 최대한 모른 척 지내려고 해도…. 하하……. 네… 정말로 길더라고요…….”
푹 내려간 핀의 고개.
그는 마른침을 삼키더니 이내 길게 숨을 뱉었다.
그가 이야기했다.
“사실… 사실 말입니다.”
아직 거리낌이 보이나 핀의 입술은 떨면서도 꾸준히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입 밖으로 내밀고 싶었으나 하지 않았다.
3만 년 동안 꺼내지 못한 그 연약한 말. 그 말 한마디를 겨우 꺼내 보이는 핀.
“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고 할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딴생각이 잠식하려 들 때마다 더욱 검에 매진했다.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 길고 긴 길을 걸으려면 오로지 무심(無心)만이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진짜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지독한 고독.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정적.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 세계에서 3만 년.
그가 흘리는 땀에 눈물은 한 방울도 섞인 적 없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자.
의심하려 들지 말자.
그저 검을 휘두르자.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어느새 핀의 눈동자에 가득 차오른 뜨거운 눈물. 흐르지는 않은 채 담겨만 있다.
그는 바르간에게 물었다.
너무 오랫동안 참아 와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저… 이제 울어도 되는 거죠…?”
짧은 인생에 있어서도 아주 잠깐.
망가진 팔이 회복될, 그 정도의 기간만이라도.
“잠시 쉬어도 되는 거죠…?”
“…….”
바르간은 함부로 답을 주지 못했다.
아무리 오만하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대하는 그라고 하더라도, 핀이 겪어 온 세월의 무게를 감히 가늠하려고 하는 것조차 무례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대신 거짓과 연기의 가면을 벗고,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와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건넸다.
“수고했다. 핀.”
비로소 흐르는 핀의 눈물. 가득 담겨 있던 물방울들이 연이어 흘러내렸다.
신기하게도, 바르간에 관한 핀의 감정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의 문장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핀은 한참을, 한참을 울었다.
* * *
핀과의 대화를 마치고 기숙사로 도착한 바르간.
그는 핀 앞에서는 말하지 않은, 복잡한 사고를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격이 최소한의 성취에 불과하다라.’
카이만과의 전투에서 보였던 핀의 종가르기.
마법사인 그가 보더라도 그 검술은 두말할 것 없는 달인의 영역이었다.
상대가 직감이 뛰어난 카이만이기에 피해서 망정이지 맞았다면 분명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그 정도의 검이 혼백관이 인정한 최소한의 성취…?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다면 혼백관을 나온 이들이 이 소설 세계의 정상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었을 터.
분명 어중간한 성취를 달성한 이들이 대부분인 게 확실할 텐데 어째서?
‘정보에 오류가 있거나, 설명이 빠진 부분이 존재한다.’
전자라면 정보가 부족한 지금, 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핀.’
바르간은 핀의 눈을 떠올렸다.
그의 어스름한 눈동자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무려 3만 년 가까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오로지 검만을 휘두른 청년.
그런 그가 겨우 도달한 최소한의 성취.
‘설마… 최소한의 성취라는 게….’
혼백관의 기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의 퍼센테이지, 즉 각자 그릇의 크기에 따라 상이하다면?
아직 확정 난 것은 없다.
증거가 충분치 않다.
그러나,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대기만성(大器晩成).
핀은 지금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
바르간은 끝없이 넓어진 자신의 가설을 갈무리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되었건 이 어리숙한 녀석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야 아프겠다만 가능하다면 이대로 쭉, 만족하거나 으스대지 말고 정진하는 게 그를 위한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