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0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08화(208/350)
12월 25일.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의 합동 기말고사 2일 차의 이른 아침.
숙면을 취한 아르하는 기지개를 켜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같았으면 오전에 있는 듣기 싫은 수업을 무시하고 더욱 잠을 자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그러나 오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에게도 흥미로운 일정들이 가득이라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귀찮지만 세안을 하고 아침을 챙겨 먹은 그녀는 리케이온을 어슬렁거렸다.
분명 구미가 당기는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사실이나, 아직 오전에 있을 8강을 치르기에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발이 이끌리는 대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녔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재능이 있는 이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이미 아카데미아에 갔을 때 대부분의 1학년들을 살펴봤기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어제 치렀던 16강처럼 예외가 있을지 몰랐다.
‘리암이라고 했었지. 참 이상하단 말이야. 이끌림을 느낄 정도로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데.’
리암과 벌였던 시합에서 아르하는 처음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르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특정한 감각을 받았고, 그 감각이 강렬할수록 뛰어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 없었던 감.
그러나 리암이라는 녀석은 그런 이끌림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존재였다.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봤자 조금 가지고 놀기 까다로운 장난감 수준이었으나, 상정 외의 힘을 보여 주었다.
감(感)이라는 건 불확실한 감각이니 충분히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껏 항상 맞아 왔기에 예외의 상황은 그녀의 흥미를 동하게 만들었다.
“켁.”
그렇게 이곳저곳을 쭉 돌아다니다가 리케이온의 학생회장인 에디나에게 발각되었다.
리암을 다시 만나 이끌림을 재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아르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아르하는 잡혀가듯 학생회실로 끌려갔고 그곳에는 이미 다른 학생회 임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회의인지 뭔지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르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반항하며 뛰쳐나가는 수도 있지만 그게 시간이 더 지체될 거 같아 우선 따르기로 했다.
겨우 모든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아르하에 대한 화를 삭이던 에디나는 회의를 시작했다.
금일의 일정을 다시금 설명하고, 기말고사 이후에 있을 행사들을 간략하게 알려 주었다.
에디나의 간단명료한 진행에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어 이야기는 본론에 이르렀다.
“오늘 시합을 치르는 이들은 어제보다 더욱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어.”
에디나는 아르하와 가바를 비롯한 몇몇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황금색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에를리히였다.
커다란 지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벌벌 떨고 있는 그녀는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자 흠칫 몸을 떨었다.
“으으. 죄송해요….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
1학년 3위의 기대주 에를리히.
그녀는 32강에서 바르간을 상대했고 패배했다. 상대의 약점이 명약관화한 상황임에도 말이다.
…하기야, 상대는 아카데미아의 수석.
그것도 최근 세간을 떠들석하게 만들고 있는 남자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해도 에를리히의 패배는 뼈아픈 현실이었다.
하다못해 바르간의 숨기는 패나 본 실력을 드러나게 할 수 있었으면 몰라도 그것조차 아니었다.
오후에 있던 16강에서도 압도적인 실력 차로 승리한 바르간은 지팡이로 툭툭 바닥을 때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도 않았으니 수확이랄 게 전혀 없었다.
역시 가장 주의해야 하는 인물은 그이다. 하여간 슈겐하르츠란 골치 아픈 이들만….
바르간에게서 그의 형인 라인카르벤을 연상시킨 에디나. 고운 눈매를 좁히더니 이내 머릿속에서 털어 냈다.
“가바. 몸 상태는 어때?”
“아무 문제 없습니다.”
“확실한 거야?”
에디나는 의심이 된다는 듯 가바를 살폈다.
레온과 격정적인 승부를 펼친 가바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었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치유 마법을 통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확실히 외관상으로는 이제 완전히 나았고, 의사들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긴 했지만 피로와 상처가 몸에 누적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회장님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8강에서도 멋지게 승리해 보이도록 하죠.”
호쾌한 미남인 그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웃었다.
에디나가 종합한 정보에 의하면 그와 맞붙게 될 8강의 상대는 레온보다 낮게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아마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4강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4강에서 마주칠 인물이 아르텔리온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데 있지만… 우선은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돌연 아르하가 몸을 앞으로 쭈욱 빼며 에를리히에게 물었다.
“바르간은 어땠어?”
“어… 어?”
“네가 머저리같이 당하기는 했어도 직접 상대했으니까 대충은 알 거 아니야? 역시 강한가? 전혀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아르하의 눈동자가 생기 있게 빛났다.
그녀는 불시에 바르간의 주먹을 얻어맞은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마주하며 승부했던 적은 없었다.
경기를 보았다고는 해도 역시 직접 겨룬 상대의 생생한 의견이 듣고 싶었다.
주제를 다시 돌린 아르하의 말에 에를리히는 당황해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으나 에디나의 제지가 들어오지 않자 천천히 입술을 뗐다.
“다른 마법도 아니고 저주 마법에 걸렸어서 나도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컷 당하는 건 나도 봤으니까 알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갑자기 너 혼자서 픽 쓰러진 걸로만 보였을 테니까.”
“…윽.”
“내가 궁금한 건 ‘전혀’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했냐는 거야. 저주에 걸린 당사자니까 그 정도는 파악할 수 있잖아.”
아르하의 물음에 에를리히는 당시의 불쾌한 감각과 함께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감각이 지배당한 감각.
몸이 타인의 것이 되어 버린 꺼림칙하고 거북한 당시의 느낌.
그 순간을 다시 돌이키며 말했다.
“…그 정도로 강했어. 저항이 전혀 먹히지 않았거든.”
“그래?”
아르하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에 길게 호를 그었다.
강하다는 말은 두려움이 아닌 흥미와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한시라도 빨리 직접 싸워 보고 싶다.
방심해서 불완정한 상태였다고는 하더라도 반사 마법을 깨트렸던 장본인.
마법을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으로 대하는 아르하에게 있어, 그와의 시합은 최고의 ‘오락거리’가 될 것만 같았다.
“아르하. 그와의 승부를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다른 시합이 있다는 걸 잊지 마.”
“알고 있어. 알리시아와의 싸움도 기대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에디나의 주의에 아르하는 우습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녀는 애초에 바르간보다 알리시아에게 흥미가 있었다.
자신과 동등할 정도의 재능이 있다고 소문이 난 알리시아에게 먼저 싸움을 건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대가 된다 뿐이지 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이길 수 있어.”
아르하는 자신이 있었다.
아카데미아에서 알리시아를 직접 보았을 때.
기대 이상의 ‘이끌림’을 느끼기는 하였어도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걔 아직 붉은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더만. 시합에서 알리시아를 가지고 노는 거 보여 줄게. 그럼 되지?”
“…….”
아르하의 호언장담에 에디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곧 거두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이해 불가한 그녀이지만 ‘실력과 재능’만은 확실했다.
알리시아. 바르간의 시종인 그녀 역시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임은 맞으나 에디나가 판단하더라도 그녀의 수준은 아르하에 미치지 못했다.
재능의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아니 비슷하기에 더욱.
두 사람에게는 배움의 시간이라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하니까.
에디나는 아르하의 실력과 재능을 신뢰하기로 했다.
“그래, 좋은 결과를 기다릴게 아르하.”
“알겠다니까. 금세 쓰러트리고 올라가는 거 보여 줄게.”
아르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 *
‘대체 왜 안 쓰러지는 거야…!’
시합이 시작된 경기장의 위.
아르하는 몇 번이고 일어나는 알리시아를 보며 이를 갈았다.
—아, 알리시아! 또 일어섰습니다! 보고서도 믿기 힘들 정도의 투지입니다!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인데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서 검을 드는 알리시아! 정말 대단합니다!
두 진행자는 흥분감에 잔뜩 열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알리시아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바로 한 채 버티며 서 있다.
최악까지 치닫는 상태에서, 흐트러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마나 회로의 운용을 강제로 정상화하는 게 매우 익숙하다.
마치 극한의 환경을 수도 없이 극복한 인간처럼.
알리시아는 전투에 익숙했다.
즈아앙—.
알리시아의 검에는 바람의 속성이 확립된 오러가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선명한 푸른 빛의 오러는 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한 세기를 뿜어 댔다.
—그런데 이거 계속 경기를 진행시켜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심판이 움직이지 않습니다만, 과연 괜찮을지….
—관계자들이 유심히 관찰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괜찮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알리시아 학생의 기세를 보고 있으면 전혀 밀린다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모쪼록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진행자 중 한 명은 종이를 빠르게 넘기며 알리시아의 프로필을 살폈다.
리케이온의 관계자인 그에게 알리시아가 보이고 있는 기지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 근처… 아, 찾았다.’
필요한 정보를 물색하던 진행자는 입으로는 능숙하게 진행을 하면서도, 눈으로는 글자를 훑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정보였으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진짜로 이렇다고? 프로필이 잘못된 거 아니야?’
진행자는 심지어 아카데미아에서 제공한 알리시아의 약력을 의심했다.
그야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저 정도의 성취를 보이면서 이제 마법을 배운 지 1년 반 정도라니!
심지어 검술은 그보다 기간이 짧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
역대급 천재라고 불리는 아르하도 마법을 배운 지 3년은 지났다.
이게 사실이라면 리케이온의 자랑인 아르하보다 높은 성장세를 계속해서 보였다는 뜻이다.
‘…같은 아카데미아 1학년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에게 고용되어 그의 전속 시종으로서 일하였고, 이와 함께 마법과 검술을 익혀 왔다고 주장.’
인적 사항을 살피던 진행자는 관중석의 한편에 앉아 있는 검은 안대의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알리시아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발굴해 낸 그.
눈이 보이는지 모를 바르간은 정확히 경기장을 향한 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알리시아가 대단한 시합을 펼치고 있다고는 해도 아르하가 유리한 상황임은 변하지 않았다.
갈수록 상처가 늘어나는 것은 알리시아이며 아르하는 체력이 조금 지친 것일 뿐 말끔하다.
그런데 그녀의 주인이라는 작자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웃어?
제 지인이 다치는 것을 즐기는 미친놈이거나, 그게 아니면 다른 수를 노리고 있거나.
어찌 되었건 절대로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다.
진행자는 알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시선을 도로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아르하가 알리시아에게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소용없다고 했잖아!”
“…….”
알리시아는 묵묵히 푸른 오러가 빛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아무리 아르하가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고 의지를 꺾으려 들어도 알리시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투홧—!
돌풍을 일으키며 달려 나가는 알리시아.
커다란 검은 무게를 잃은 것처럼 순식간에 휘둘러졌고, 아르하는 반사 마법을 펼치며 그녀의 검을 막으려 들었다.
“몇 번을 해도 안 먹힌다고!”
목구멍이 긁어질 정도로 강하게 소리치는 아르하.
자신의 목을 곧바로 날려 버릴 것처럼 매섭게 다가오는 검 대신 알리시아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맹금류와 같이 살기가 가득한 눈.
평소에 보이는 사근사근함이 완벽히 사라진 포식자의 눈이다.
아르하는 그것을 꺾고 싶었다.
전력의 차이를 실감시켜 무릎꿇게 만들고 싶었다.
‘이 정도 했으면 포기를 할 줄도 알아야지…! 언제까지 이런 미련한 짓을…!’
그 순간, 아르하는 보았다.
푸른 오러와 푸른 알리시아의 눈동자.
그 망막에 비친 오러의 빛깔이 강해지며 색깔이 바뀐다.
‘뭐…?’
핏물보다는 연한 찬연한 아름다움.
붉은 빛깔의 오러가 알리시아의 망막에 맺혔다.
쿠드득, 드득—.
서서히 파이기 시작하는 아르하의 반사 마법.
그녀의 목을 노리는 붉은색 오러가 목숨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알리시아는 붉은 오러를 검에 둘렀다.
분명 저번까지만 하더라도 예기가 부족했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X발.’
아르하는 위기에 봉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