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0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09화(209/350)
“알리시아, 네가 첫 번째로 이루어야 할 목표는 ‘붉은 오러’의 습득이다.”
알리시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루비드 마을에서 수많은 알티프를 몰살시킨 이후.
알리시아에게 저주 마법을 하사함으로써 제대로 된 계약을 맺은 바르간.
그는 알리시아에게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를 언급했다.
“붉은 오러… 말씀이십니까?”
이제 막 검이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알리시아는 붉은 오러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바르간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힘. 정확히 말하면 소수의 무기 사용자들이 오르는 경지를 의미한다.”
흔히 선택받은 검사들만이 사용하는 오러라고 말해지기는 하지만.
정확한 범위는 모든 무기류를 사용하는 무인들에게 해당된다.
바르간은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철붙이가 검이기 때문에 통용되어 불린다고 말했다.
“이제 알았습니다.”
알티프와의 고된 전투로 인해 지쳤음에도, 알리시아는 한 토씨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알리시아. 마검사는 필연적으로 검사가 주축을 이루게 된다. 마법의 성취가 어느 정도 달성이 되고 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검술에 할애하는 게 효율적이겠지.”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도련님… 조금 전, 붉은 오러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네가 용사가 된다면 그 소수들을 다수 접하게 될 것이지만 전체적인 통계로는 그렇다. 여기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예. 그런 대단한 인물들의 반열에 제가 감히 발을 디딜 수 있을지 걱정… 앗!”
“멍청한 것! 대체 몇 번이나 정신교육을 시켜 줘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우으… 죄송합니다….”
알리시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가락은 언제나 매워 눈물이 글썽거렸다.
바르간은 알리시아를 고용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그런 시골 마을까지 가서 데려왔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알리시아가 억지로나마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는 눈치를 보였고.
이에 못마땅한 바르간은 알리시아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더 때렸다.
때린 곳을 또 때려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르간은 그러든 말든 쏴붙이듯 말했다.
“붉은 오러는 새로운 출발선이지 결승점이 아니다.”
“…네.”
“붉은 오러 이후에도 네가 넘어야 할 산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이리도 답답해서야 원. 아둔한 것아 새겨들어라. 너는 2년 차부터는 붉은 오러의 경지에 오르고 그 이후에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
“그럼… 앞으로 1년 6개월이 지난 후, 2년 차에 들어서면 붉은 오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식이지. …뭐,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배운 지 2년을 채우자마자 붉은 오러를 체득하는 건 어렵다고 보지만 말이다.”
바르간은 붉은 오러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정확히 2년으로는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아무리 미친 재능이라도 2년하고도 수개월은 있어야 하겠지.
이에 알리시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당시에는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서라기보단 순수하게 궁금했던 게 컸다.
“붉은 오러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겁니까?”
이에 황금의 기사 아르텔리온이 답했다.
알리시아가 아르텔리온과 처음으로 함께 단련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우선 속성확립이 되어야 하고, 예기(銳氣)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겠지.”
“예기……. 저는 현재 속성확립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예기만을 다스릴 줄 알게 되면 저절로 붉은 오러의 사용이 가능해지는 겁니까?”
“그렇진 않다.”
알리시아의 열의 넘치는 질문에 아르텔리온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이내 그의 고적한 눈동자가 가만히 알리시아를 향했다.
“예기를 수족처럼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후로는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을 필요가 있다.”
“극한의 상황이요…?”
다소 애매한 개념에 알리시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아르텔리온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1학기의 초반.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혀 검에만 집중했다. 부동의 자세로 시간의 구애 없이, 전신의 모든 마력과 감각을 몰입시켰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마나 회로에, 독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뜨거워져 가는 체온.
아르텔리온은 모든 체력을 쏟아붓고 나서야 푸른 오러와 붉은 오러 사이의 경계선을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푸른 오러로 규정되어 있는 자신의 한계치를 돌파하는 것.
‘필사적인 노력’.
그게 붉은 오러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었다.
그리고 지금.
알리시아는 아르하와의 시합에서 자신의 전력을 부딪쳤다.
정신 줄이 끊어질 것만 같아도 어떻게든 붙잡고 일어났다.
푸른 오러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강인한 방패.
되레 거세게 돌아오는 아르하의 반사 마법.
나뭇가지로 바위를 때리듯.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 또 반복하였고.
깨달음을 얻어, 결국 붉은 오러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고작 1년 6개월.
알리시아가 붉은 오러를 사용하기까지에 걸린 기간.
미친 재능과 끝없는 노력의 결과물.
알리시아의 검신은 붉게 물들었고, 아르하의 반사 마법과 격돌한다.
쿠드드득—.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벌써 튕겨 나가 그 운동에너지가 고스란히 알리시아의 피해로 되돌아왔을 터이다.
하지만, 현재 알리시아의 검은 조금씩 아르하의 반사 마법을 갉아먹고 있다.
아르하는 적지 않게 당황하여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저항한다.
아르하는 반사 마법과 함께 다중 원소 마법을 발현시켰고, 알리시아는 붉은 오러를 담은 채 저주 마법을 발동시켰다.
콰강, 가가강—!
거센 풍압과 폭발음이 연이어 터지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찬 경기장의 본 모습이 보이게 되었을 때.
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승자가 결정되었다.
* * *
알리시아와의 시합이 끝나고 아르하는 일찍이 경기장을 내려왔다.
이미 시합은 진즉에 끝났음에도 관중들은 필사의 항쟁을 보여 준 알리시아의 이름을 외쳐 대기에 바빴다.
쿵—!
아르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어둑한 복도의 벽을 때렸다.
반사 마법을 입히지 않았기에 뼈에 금이 가고 손 가죽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아픔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아르하는 진정하고 있지 못했다.
‘X발. 이게 무슨 꼴이야…!’
아르하는 알리시아와의 시합에 승리했다.
준결승에 진출한 인물은 알리시아가 아닌 아르하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르하의 속은 뒤집어져 난리가 났다.
이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기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문제는 그 과정.
알리시아를 가지고 놀 예정이었던 아르하는 전력을 다했음에도 알리시아와 막상막하를 이루었고 ‘간신히’ 승리했다.
자칫 실수하면 패배했을 수도 있었던 상황.
‘실전 경험의 차가 분명했어…. 내가 알리시아보다도 먼저 마법을 배웠는데도…!’
알리시아가 시합 중반에 깨달음을 얻어 반사 마법을 깨트린 것만 하더라도 열이 뻗쳐 죽겠는데, 그녀의 검과 마법이 무척이나 노련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용사와 싸우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투에 익숙한 알리시아.
그나마도 알리시아가 초반에 본 피해가 워낙 크니까 승리할 수 있었다.
만약, 알리시아가 시합 시작부터 붉은 오러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졌을지 모른다.
그 사실이 아르하의 이를 빠드득 갈리게 만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야. 불과 몇 주일 전만 하더라도 알리시아와의 차이는 확실하게 지금보다 컸었다. 그런데 그 간격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어. 재능으로 밀린다…? 내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
아르하에게 노력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마법이란 장난감.
하나의 오락 요소였던 마법은 가지고 놀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이들의 성취를 압도할 수 있었다.
아르하는 그 과정이 재밌었다.
범인은 3년이 걸려서 겨우 완성하는 술식을 단 3일 만에 보란듯이 구현해 낼 때, 허망하다는 듯이 넋이 나가 있는 범인을 내려다보는 쾌감.
훨씬 일찍 마법에 입문한 엘리트들을 가뿐히 넘어섰을 때의 압도적인 우월감.
천재라고 칭송받는 자들을 ‘재능’으로 눌러 뭉갰을 때 절망하는 표정을 눈에 담는 낙(樂).
마법 그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다른 이들이 보이는 무력감이 아르하가 마법을 연구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재미였다.
그런 아르하가 이번에 난생처음으로, 타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소위 ‘열등감’이라고 불리는 이 감정은 극도로 불쾌하고 성질이 나서 하마터면 손톱으로 얼굴을 긁을 뻔했다.
“뭐가 잘못됐던 거지…? 재능으로 내가 딸리는 일은 없어. 절대로. 환경의 차인가…?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 잠깐, 알리시아는 바르간에게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 왔다고 했어. 그렇다면 바르간에게 무언가가 있는 건가?”
아르하는 조급했다.
외부에서 문제점을 찾으며 알리시아의 빠른 성장의 원인을 찾으려 애썼다.
실전 경험은 벌써 뒤처지지만, 마법의 성취에 있어서는 아직 아르하가 앞섰다.
선두를 빼앗길 수 없다.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재능으로 상대를 절망시키는 건 오로지 자신만의 특권이다.
“뭐냐. 뭐 때문에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야…!”
시합으로 입은 피해가 적지 않은 아르하였지만, 전문의들의 치료는커녕 치유 마법을 걸지도 않았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성난 음성을 곱씹을 뿐이었다.
그러다 아르하는 돌연 말했다.
“말 걸지 마. 지금은 너 따위와 대화할 때가 아니야.”
어느 순간부터 아르하의 주변에 다가온 학생회의 인물.
익숙한 그 지인은 채 말을 걸기도 전에 차단당했고, 평소였다면 물러섰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말이다.
—나는 너와 대화하고 싶은데?
불쾌한 조소를 머금은 그 대답에 아르하는 눈살을 구겼다.
이게 지금 누구 놀리려고 온 건가.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아서 주체를 못 하겠는데, 지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마나를 꺼내 보이는 게 아닌가.
아르하는 알리시아에 관한 생각을 멈추고 눈깔을 부라렸다.
감정에 반응한 마나가 성난 파도와 같이 일렁이며 올라왔다.
“내가 꺼지라고 했지?”
대기에서 뒤엉키기 시작하는 각자의 마나.
정전기를 일으키듯 반발하며 서로를 노렸다.
—그런 몸 상태로 버틸 수는 있겠어?
비웃는 듯한 음성에 아르하는 이성을 끈을 놓았다.
넘실거리는 마나의 주도권을 쥐고 술식을 발현시켰다.
“죽고 싶은 모양인데. 아주 곤죽을 내 줄게.”
* * *
한편, 경기장의 위에서는 알리시아가 긴급 치유 마법을 받고 있다.
타박상과 골절이 대부분인 알리시아의 몸.
들것에 실리기 전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무리해서 꼬인 마나 회로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게 급선무였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어렵사리 뜨고 있는 좁은 눈매 사이로 바르간의 모습이 보였다.
몸을 일으킬 수 없었던 알리시아는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체력과 마나를 소진하여 입을 떼는 게 겨우였다.
바르간은 그런 알리시아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말이냐.”
“도련님께서 그렇게나 기대를 하셨는데 지고 말았습니다. …이번 일로 인한 질책은 달게 받겠습니다.”
알리시아는 붉은 오러만을 노렸던 게 아니다.
진심으로 시합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겸허함을 가졌다.
그런 알리시아에게 바르간은.
“어이없긴. 리암 녀석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구나.”
자신을 대체 얼마나 가혹한 주인으로 보는 거냐며 말을 덧붙였다.
“너와 아르하의 차이는 명확했다. 내가 네게 바란 것은 이런 잔 승부에서의 승리가 아니야.”
“예…?”
“너는 나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때는 항상 둔하게 굴더구나.”
그는 무릎을 접어 알리시아의 가까이에 다가왔다.
손가락으로 툭툭 가볍게 그녀의 이마를 건드는 바르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알리시아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조금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느냐?”
“어떤 때를 말씀하시는 건지….”
“붉은 오러 말이다. 나는 네가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를 2년이라고 보았지.”
바르간은 짧게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금 시야를 넓혀서 크게 보았을 때. 이번 기말고사의 순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멸망하려는데 이까짓 순서가 뭐가 그리 중하단 말인가.
바르간은 알리시아라는 인물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음에도.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에 최소한 2년은 필요할 것으로 여겼다. 사실 그마저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았다.
아무리 미친 천재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알리시아는 그 예상이 기분 좋게 빗나가게 해 주었다.
바르간은 그 점을 짚었다.
“이런 식으로 내 계획을 틀게 만드는 건 기뻐하기에 마땅한 일이다. 네가 받아야 할 것은 나의 꾸지람이 아니라 칭찬이라는 말이다.”
“도련님….”
과거 파울라가 했던 비유를 빌리자면.
알리시아의 괄목적인 성취는 정말로 교과서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바르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안대로 가려져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눈가도 둥글게 구부려졌음이 분명했다.
“네가 이렇듯 훌륭한 결과를 보여 주었는데, 어찌 너를 질책할 수 있겠느냐.”
“…….”
좁게 벌어진 알리시아의 눈가 사이로, 푸른 눈동자가 잔잔한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런데도 파문의 중심은 곧게 자리잡혀 꼿꼿이 버티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는 소녀의 수줍음을 닮아 조심스러웠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알리시아는 진심을 고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자신의 성과로 여기지 않았다.
잘못만이 오로지 자신의 것. 그 외의 영광은 오로지.
“모두 도련님의 덕분입니다.”
“여전하긴.”
바르간은 작게 웃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을 시킬지라도, 끝까지 육체와 정신을 몰아붙여도.
알리시아는 여전히 알리시아였다.
“이럴 때 정도는 자랑해도 괜찮다. 미련한 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