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1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11화(211/350)
리케이온의 곳곳을 살펴봐도 아르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기숙사에도, 식당에도, 공원에도.
어디에도 없다.
‘준결승도 안 치르고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학생회장인 에디나는 다급해졌다.
이미 시합은 끝나 버렸지만 그걸 떠나 학생이 실종되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가용 가능한 인원들을 총동원하여 홀연히 사라진 이 말괄량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학생회장의 위엄을 잠시 잊은 듯, 길게 뻗어진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화려한 금발이 난분분하게 날아다니기 바쁘다.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를 수선스럽게 내며 마력의 단서를 찾아보려 하지만 작은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
마치 일부러 지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고서야 이 정도로 종적이 남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
‘혹시… 8강의 시합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숨어 버린 건가?’
시합 전에 그렇게 알리시아를 가지고 놀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아르하.
하지만 막상 시합이 펼쳐지니 격전을 펼치게 되었고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어쩌면 이로 인해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솟아 있던 천재의 자존심이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르하에게 ‘재능의 차이’라는 것을 직접 느낀 에디나였기에 그 심정이 자못 짐작이 갔다.
쓰라림을 넘어 좌절에 빠져드는 감각.
매캐한 연기를 머금은 액체가 온몸을 뒤덮은 채 끌어당기는 불쾌함.
아르하가 그러한 감정을 느꼈더라면… 어쩌면 이렇듯 돌발 행동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아니지. 아르하가 과연 그럴까?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지 않을까?’
에디나는 잠시 뛰던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아르하의 평소 행실을 떠올리면 오히려 길길이 날뛰며 준결승에서 나서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해. 종적이 아예 감춰진 것도 그렇고… 설마 무슨 일에 휘말린 건가?’
학생회장인 에디나는 중앙교회에서 용사들이 대거 찾아온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무슨 사유인지 알려 주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어쩌면 지금 리케이온에서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일이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거기까지 사고가 진척되었을 때. 익숙한 인물이 다가왔다.
부학생회장인 제라만이었다.
“회장님. 여기에 계셨군요.”
“어. 찾아다니느라… 어때? 뭐 좀 알아낸 게 있어?”
“안타깝게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뭔데?”
“단순히 엇갈린 거면 좋겠습니다만, 에를리히 역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에를리히가?”
정령술사 에를리히.
32강에서 탈락하여 일찍이 토너먼트에서 내려왔던 그녀가 아르하와 함께 사라졌다.
통신 가능한 사역마의 반응에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제라만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재 학생회 인원들을 2인 1조로 다니도록 하였고, 이 사실을 총장에게 보고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에디나는 고운 인상을 구긴 채 머리를 짚었다.
“에를리히가 수색하는 게 싫어서 뺄 애도 아니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결승전이 미뤄지더라도 공식적으로 알려서 수색 범위를 넓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카데미아의 도움을 받아야 하다니…. 어쩔 수 없지. 결승 일정을 뒤로 미루고 아카데미아의 교수들에게만 지원 요청을 해. 모든 학생들은 각자 조끼리 모여서 인원 파악을 분명히 하도록 하고 개별 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통제시켜.”
“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미지수니까 조금 과하더라도 그렇게 대처해야 해.”
“맞습니다. 그러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준결승은 중단하는 게 나을까요?”
“준결승은….”
제1 시합이 바르간의 부전승으로 끝나고, 곧 치러질 제2 시합.
아르텔리온과 가바의 경기.
에디나는 속으로 주판을 튕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선 진행시켜. 아직 확정 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의미하게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어. 결승 일정을 미루는 것과 조끼리 다니도록 하는 건 긴급 대처 훈련을 한다고 방송해서 설명해. …응, 일단 그렇게 하자. 알겠지?”
“알겠습니다.”
에디나는 순식간에 대처안을 내밀었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자신도 계속해서 찾아볼 테니 필요하거나 특이 사항을 알게 되면 사역마로 통신을 해 달라는 말과 함께 달려 나가는 그녀.
“…….”
제라만은 한동안 묘한 눈초리로 에디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걸음을 옮겼다.
—제2 시합! 아카데미아의 아르텔리온! 리케이온의 가바! 두 사나이의 시합이 지금 시작됩니다!
방송으로는 진행자의 고양된 목소리가 기계의 잡음과 함께 들려왔다.
* * *
그르르륵—!
붉은 오러가 잘 단련된 무인의 푸른 프로텍터와 맞부딪히며 긁힌다.
무엇이든 잘라 내는 붉은 힘은 그 푸른 빛이 만만치 않은지 쉽사리 베어 내지 못하고 있다.
금이 가는가 하면 도로 회복이 되고, 베는가 싶으면 잽싸게 몸을 날려 회피해 버린다.
아르텔리온과 가바는 격정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시합이 시작된 지 10분이 지난 지금.
승부의 행방은 어디로 향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가바는 아르텔리온을 꽤 철저하게 조사했는지 그의 버릇이나 기본 행동 패턴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감각도 좋고 눈치까지 빨라 작은 예비 동작 하나라도 보이면 미리 대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세상을 떠돌면서 배운 교훈은 대부분의 승부는 승부가 벌어지는 동안이 아닌, 벌어지기 전에 결론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고 강해질 수 있다.
가바는 그것을 알았다.
콰강—!
검의 면을 주먹으로 휘둘러 친 가바.
붉은 오러의 반동으로 자신의 주먹에 두른 프로텍터에 금이 갔지만 덕분에 허점이 발생했다.
가바는 신속하게 반대 발을 돌려차 그의 하체를 노린다.
중심을 잃으면 제압하는 건 한순간이다.
그런 판단으로 다리를 차려는 그 순간.
“……!”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기를 느낀 가바.
급히 일격을 멈추고 되레 거리를 벌렸다.
만약 지금 공격했으면 시합이 끝났을 것이다.
“후우…. 큰일 날 뻔했네. 하마터면 다리가 잘릴 뻔했어.”
가바는 돌려차려 한 다리를 껄렁거리며 흔들어 보였다.
동시에 잠시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숨을 돌리며 프로텍터를 수복했다.
황금의 기사 아르텔리온 역시 전신에 퍼진 마나의 비율을 조절하고 붉은 오러에 힘을 주었다.
가바는 지금이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순간이라고 보았고 입을 열었다.
“준결승을 치러야 할 상대가 한 명 사라졌는데 별로 궁금하지 않나 봐?”
“…관심 없다.”
“역시. 알리시아 이외의 여성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구나?”
“…….”
붉은 오러가 순간 출렁였다.
전투 중에도 변함없이 일관된 양의 마나를 공급받던 오러가 알리시아의 이름이 나온 찰나에 과잉 공급되었다.
무뚝뚝해 보여도 의외로 알기 쉬운 왕자님이다.
가바는 하얀 이빨을 보이며 웃음 지었고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미안하지만, 마지막에 알리시아의 마음을 받아 내는 건 나야. 여자관계도 깨끗하게 정리했으니 토너먼트만 우승하면 방해될 건 없어.”
가바의 의기양양한 모습.
아르텔리온은 침착한 눈동자로 그의 기세를 담고 있다가 문뜩 물었다.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응? 네가? 좋아. 내 물음에도 답해 줬으니 나도 말해 줄게. 뭔데?”
“너는 저번에도 알리시아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아아. 그랬지. 그래서?”
“너와 나의 승부에 어째서 그녀가 끼어 있는 거냐.”
“…뭐?”
“네가 그녀에게 애정이 있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나와는 무슨 연이 있는지 모르겠더군.”
아르텔리온의 발언은 농담은 아닌 듯했다.
그는 정말로 모르는 눈초리였고 이에 가바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왕실의 교육을 받아 왔을 그가 이런 간단한 거 하나 모른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온실 속의 화초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연애 경험이 없어서?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뜻이지?”
“그야 네가 나와 마찬가지로 알리시아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경쟁자이기 때문이지. 뭘 당연한 걸 묻는 거야?”
이번에 어안이 벙벙해진 건 아르텔리온이었다.
황금 덩어리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의 초점이 잠시 풀렸고,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바의 말.
겨우 정신을 차린 아르텔리온은 검을 들었다.
“…너를 이기고 나면 결승전에서는 더 큰 강적이 버티고 있지. 물론 절대로 지지 않을 거지만.”
“…연심. 연심이라.”
“쑥맥 왕자님. 그런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시고 저랑 결판을 지으시죠. 알리시아를 쟁취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긴 하지만 당신 역시 무인으로서 전력을 다해 보고 싶은 상대거든.”
“잘 모르겠군. 하지만….”
아르텔리온의 붉은 오러가 변형한다.
가바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거늘, 스스로 금이 가기 시작하며 파편화되기 시작한다.
동시에 느껴지는 중압감.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강대한 힘.
“하하…. 뭐야 잘 알고 있잖아. 뭐가 모르겠다는 거야. 이런 숨겨 놨던 기술까지 꺼내 들고.”
붉은 오러의 발전형.
아르텔리온만의 고유 형태.
그 초기의 단계를 눈에 담은 가바는 호승심이 끌어올랐고, 아드레날린이 터져 나왔다.
유리 조각같이 사방으로 깨져 나간 붉은 오러.
그것은 각자가 의지를 가진 듯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며 그가 더하는 마나에 비례해서 수를 불렸다.
고적한 아르텔리온의 눈동자는 루비 보석함을 연상시키는 그 한 폭의 그림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지고 싶지는 않다.”
두 사람은 다시 격돌하기 시작했다.
* * *
두 남자가 싸우는 결정적인 원인.
알리시아는 시합을 보지 못한 채 양호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곁에서는 리암과 에밀리가 선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리암 씨. 일찍 퇴원하게 돼서 다행이에요.”
그녀의 옆자리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던 리암은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다.
리케이온의 의술과 마법, 단련된 리암의 신체 덕분이었다.
“고마워. 알리시아도 빨리 회복되면 좋을 텐데.”
“저도 아마 내일 중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오, 그렇구나! 그건 잘됐네! 앗! 으윽….”
“리암!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니까 조심해! 안정이 최우선이란 말이야!”
에밀리는 리암의 부축을 해 주었고 리암은 머쓱하게 웃었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에밀리는 알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리암과 마찬가지로 알리시아의 쾌유를 빌다가 말했다.
“8강에서 되게 멋있었어.”
“…네. 감사해요. 비록 져 버리긴 했지만요.”
“그래도 아쉽게 진 거잖아. 붉은 오러까지 쓰게 되고. 이제는 정말로 1학년 중에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겠는걸?”
“과찬이세요.”
서로 간의 칭찬이 오고 갔다.
리암은 양호실에 있느라 알리시아의 시합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대화가 이어지자 에밀리는 금일로 끝날 기말고사의 이후 일정을 언급했다.
“리암, 리케이온에서 체류하는 동안 종업식을 겸해서 교류회를 연다고 했었지?”
“응. 아마 파티 형식으로 연다는 것 같던데.”
“파티…! 기대되네요!”
알리시아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아카데미아에 입학할 때를 제외하곤 인생에서 파티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알리시아에게 파티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였다.
에밀리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파티를 즐기려면 빨리 몸 상태가 좋아져야겠지?”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내일이면 퇴원해도 된다고… 아, 으으으….”
“리암이랑 똑같네. 둘 다 뭐 하는 거야.”
웃음꽃이 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리암과 에밀리는 잠시 후 양호실을 나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실내.
알리시아는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도련님께서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르간을 연상한 알리시아.
8강이 끝나고 그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칭찬을 되새기자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들어 이불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커튼이 쳐져 아무도 보지 못함을 알지만 괜스레 그리되었다.
—드르륵.
그때. 양호실의 문이 열리고 걸음 소리가 들렸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누군가.
‘리암 씨…? 뭔가 두고 가셨나?’
알리시아는 자신의 방향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그일 것이라 여겼으나, 곧 생각을 접었다.
발걸음에서 들리는 소리나 보폭이 다르다.
누구지…? 익숙지 않은 소린데.
그리고….
턱—.
알리시아의 침대 앞에 멈춰 선 그림자.
커튼에 누군가가 비치자 알리시아는 긴장했다.
‘마나를 모으고 있어.’
이 수수께끼의 누군가는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