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1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13화(213/350)
“……어디 보자.”
모든 관객들에게 제라만의 목을 보인 헤일리온.
침착한 눈으로 모두를 살피더니 손가락을 까딱하며 신성 마법을 발현했다.
솨사삭-!
빛의 입자들이 단번에 날아가 특정 인물들을 구속한 채 입을 막았다.
헤일리온은 마치 장을 보러 가서 물건의 상태를 보듯 유심히 사람들을 판별했다.
‘이 학생도 반응이 거세고…… 저 학생도…….’
제라만의 목을 보자 지나치게 마나의 중심부가 떨리는 이들.
헤일리온은 격한 감정을 보이는 이들을 우선해서 잡아냈다.
축복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일차적인 거름망이다.
“혹시 포박된 인원들 중에 무고한 이들이 있다면 미안해요. 리케이온과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협력해 줬으면 해요.”
미안하다는 말과는 달리, 그는 망설임 없이 마법을 연이어 쏘아 댔다.
혼자서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을 요리하듯 간단히 주무르고 있는 광경은 격의 차이를 아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열 명 정도가 순식간에 잡히게 되자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한 관중은 비로소 숨과 함께 멎어 있던 비명을 질러 댔다.
특히 여신교가 아니더라도 제라만과 연이 있던 이들은 끔찍하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비, 비켜! 비켜……!”
다소 극단적인 상황에 도주를 시도하는 인원들도 생겼다.
걸리적거리는 다른 학생들을 밀쳐 대거나 심한 경우는 마법까지 사용한다.
단순히 패닉 상태라서 보이는 반응치고는 지나치다.
“뭐, 뭐야! 어디에 숨어 있던…… 끄아아아!”
헤일리온은 단독으로 움직이던 게 아니다.
미리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그의 팀원들이 자리를 떠나려는 이들을 신속하게 포박하며 무력화시켰다.
빠르게 진압되어 가는 현장.
학생들은 이것이 단순히 훈련 따위가 아니며, 저기에 있는 제라만의 목 역시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에 헤일리온은 학생들이 공포에 빠지지 않도록 나름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냥 검열의 일환이니까요. 여신교의 신도들을 축출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죠? 그 과정일 뿐이에요.”
그러니 여신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침착하게 있으면 된다.
헤일리온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꺄아아아악!
그다지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알티프와의 전투를 위해 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햇병아리.
부학생회장이었던 제라만이 헤일리온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은 몇몇 학생들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흠…….”
헤일리온은 어쩔 수 없이 정령왕의 힘을 빌렸다.
용사랭킹 2위인 페랑기스가 이런 순간에 쓰라고 잠시 맡긴 정령이었다.
파릇했던 이파리가 급하게 가을을 맞이하듯 그의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
다른 자아가 눈뜬 듯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보이네요.”
처음 겪어 보는 빙의 현상에 헤일리온은 작게 감탄하며 구속을 이어 나갔다.
몸이라는 껍데기를 전부 벗겨 낸 뒤 마나 회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현상이 오롯하게 눈에 새겨졌다.
덕분에 실수를 줄이며 수월하면서도 정교하게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문뜩 알게 된 사실.
‘바르간 학생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준결승을 보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바르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에도 사건의 냄새를 맡고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헤일리온은 왠지 모를 웃음을 지으며 순조롭게 자신의 임무를 이어 갔다.
***
리케이온의 본관에서 다소 떨어진, 뒤편에 있는 숲.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하늘을 가린 탓에 좀처럼 어둠이 가시질 않는 이곳.
“허억, 허억……! 교, 교수님! 조금 천천히 가심이 어떠…… 악!”
“얼른 일어나게! 넘어질 때가 아니야! 모든 신도들이 죽어 나가게 생긴 마당에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을 텐가? 우리마저 죽을 수는 없어!”
“허억! 아, 알겠습니다!”
“젠장, 이게 다 그 빌어먹을 형상파 놈들이 싸놓은 똥 때문이 아닌가……! 그 새끼들…… 리케이온에 있는 우리는 생각도 안 하고!”
조용히 도망쳐야 하기에 특기인 사역마도 소환하지 않은 교수는 이를 갈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뭐? 아카데미아 전복? 개 같은 소리! 녀석들 때문에 우리 무형파(無形派)가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도움은커녕 폐만 끼치는 놈들 같으니라고!’
형상파와 같은 추기경을 모시고 있지만 갈래가 다른 분파, 무형파.
솔직한 심정으로 아카데미아에 숨어있던 형상파들이 몰살당한다고 해도 별 감정 따위는 없다.
감히 성스러운 여신의 본을 뜨고 그 흔적을 남긴다는 불경한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형상파의 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겉으로 들어나게 되었고.
이 여파는 자연스럽게 리케이온에도 찾아와 무형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케이온의 총장 하이겔은 리케이온의 곳곳에 감시용 영상마법을 설치하는 등 모든 정보를 살피는 데 힘썼다.
누가 보더라도 내부에 있는 여신교의 세력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
그래서 기존보다도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바보 같은 놈 하나가 걸려 버렀고, 사태는 작금에 이른다.
“교수님…… 정말로 푸리안은 죽어 버렸을까요?”
“말해 뭐 하겠나! 우리에게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고 퇴학 신청이 되어 버린 것을 자네도 봤지 않은가. 그게 의미하는 바는 확실하지.”
성질을 내비치는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확실성을 더했다.
아카데미아에 숨어 있던 형상파의 가시화.
무형파 소속이었던 학생 신도 푸리안의 소리 소문 없는 퇴학.
리케이온의 곳곳에 설치된 영상 마법.
“심지어는 10위 내의 용사들까지 끌고 왔으니…… 우리를 모조리 색출할 생각임이 분명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교수는 자신을 따라오는 학생에게 신신당부하였다.
학생에게 외쳤지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여신을 진정으로 신실히 모시는 곳은 오로지 우리, 무형파 뿐.
형상파의 값싼 목숨과는 달리 한 명 한 명의 신도가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교수인 자신의 신앙은 더욱 중하고 값지기 때문에 여신교 전체로 보더라도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 되는 중요 인물이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반드시 살아남아 주마!’
그런 생각으로 꼼꼼하게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도 빠르게 용사들이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이 달려 나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
교수와 학생은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도 한 번이라도 더 다리를 앞으로 뻗었고, 가까스로 리케이온의 최외각 지역에 이르렀다.
“여…… 여기까지 오면…… 우선은 괜찮다.”
“네, 네에…… 다행이네요.”
숲의 끝자락에 이른 두 사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공중도시 아카데미아와는 달리 리케이온은 버젓이 지면에 붙어 있다.
둥그런 구 형태로 존재하는 결계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자연의 형태.
때문에 결계 이후에 펼쳐진 건 하늘이 아닌 평범한 지형.
결계만 통과할 수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문제는 ‘결계를 통과한다면’이라는 과정이 붙어 있다는 것이지만.
교수는 결계를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현재 외부에서 내부로의 출입을 물론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말 탈출할 수 있는 겁니까?”
두려움을 보이는 학생이 의심을 표했다.
그 말에 교수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집중을 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쏘아붙이고는, 결계 근처를 조용히 걸어 다니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아, 여기에 있었구나!”
교수는 사막에서 생명수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환하게 웃음 지으며 달려들었다.
-미야옹!
그가 달려든 곳에는 장모종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얗지만 등과 눈 주위에 검게 그라데이션이 져 있는 랙돌 고양이다.
교수가 그 고양이를 번쩍 들자 마치 인형과 같이 축 늘어지며 몸을 맡기는 녀석.
교수의 숨겨 둔 사역마이기도 한 고양이는 외부로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연락망이자, 현재로써 유일한 탈출책이었다.
“……이게 그 연락용 사역마로군요?”
“맞네. 평소에 이 녀석을 통해 비밀리에 연락할 수 있었지. 상급 사역마 중에서도 극도로 희귀한 아이일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예쁘게 생겼습니다.”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외관도 외관이지만 그 능력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교수가 괜히 자랑스레 떠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사역마는 무려 ‘물체를 통과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체를 분자 수준으로 나눠서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두꺼운 벽이 있어도 마치 아무것도 가로막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그것은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리케이온의 결계도 마찬가지였다.
리케이온과 내부와 외부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던 교수는 이 사역마의 입 안에 유리병 편지를 넣음으로써 연락을 주고받는 게 가능했다.
“한데……. 이 아이로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십니까?”
“내 ‘축복’을 이용해야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신체의 크기를 조절하는 그것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설마, 작아진 채 사역마의 입안에-!”
“그야 위험한 건 알고 있네. 하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어차피 이대로 있다가는 언젠가 죽을 목숨, 도박인 셈치고 해 봐야지.”
교수는 자기의 몸 크기를 멋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무생물인 유리병과 편지는 항상 원래대로 재구성이 되었으니, 어쩌면 생물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여러 실험을 해 보는 것이었는데!’
이미 그럴 시간은 없다.
여신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
마른침을 삼킨 교수는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따라와 준 학생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만 가겠네. 자네는 남아 신도로서의 책임을 다하게.”
“네? 같이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건가! 내 축복은 남에게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제 와서 헛소리를……! 잠깐, 그러고 보니 자네 정말 왜 나를 따라온 겐가?”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내 축복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고, 여기까지 온다고 해도 무형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텐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언제부터 이 학생과 함께 있었지?
왜 묻는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주고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교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을 한 채 학생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에 장신.
길게 빠진 팔다리에 보이는지 의문이 드는 검은 안대.
“자네와 같은 신도가…… 무형파에 있었나?”
누구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런 멍청한 질문에 안대를 쓴 학생의 입가에 길게 호선이 그어졌고.
입이 열렸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교수님, 저는 여신교의 신실한 신도,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이 아닙니까?”
“바르……간?”
“예, 바르간요. 벌써 잊으신 겁니까?”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누군가 그게.
무형파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고?
아니, 리케이온에서도 본 적 없는 이름이다.
다시 보니 입고 있는 교복도 리케이온의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아.
아카데미아의 교복.
……아, 생각났다.
바르간.
아카데미아의 수석 바르간!
그 녀석이……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지?
탁-!
바르간은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교수에게 걸렸던 모든 저주가 풀리며 모든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새파랗게 안색이 질려 가는 교수를 향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교수님,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신 겁니까?”
그는 손가락으로 교수의 몸을 가리켰다.
시선을 내리자 잔뜩 부어 오른 몸뚱이가 붉게 변모하고 있다.
입고 있던 옷도 체격의 변화로 곳곳이 터져 나갔고 기포와 같은 것들이 꿈틀꿈틀 침식하여, 어느덧 목 위까지 차올라 있었다.
체내에 있는 ‘신충’이 여신교에 대한 정보를 유출시킨 벌로서 강제 변이를 일으키는 증거였다.
“흐으아아악!”
교수는 비명을 질렀다.
목소리까지 꽤 바뀌어 상당히 이질적이다.
지성이 없는 알티프가 된다는 것은 곧 자아의 상실.
자아의 상실은 죽음.
교수는 숲을 지나오면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나를……! 나를 속이고 정보를……!”
“교수님, 탓할 인물이 잘못되었습니다.”
바르간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 짓고 있는 비아냥의 웃음은 자리 잡혀 내려갈 줄 몰랐다.
“교수님께서는 저주 마법을 건 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탓하셔야지요. 사역마를 다루는 테이머라고 해서 사역마들만을 단련시킬 게 아니라, 자신의 몸 역시 단련하고 배워야 하는 법입니다. 약한 주인 따위 누가 따르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니 지금과 같이 우스운 꼴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르간이 그렇게 업신여기자 교수는 성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상당히 알티프화가 진행되어 더욱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콰드득-!
순식간에 얼어붙은 하체.
움직임을 제지당한 교수는 단순무식하게 힘으로 얼음덩어리를 부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얼음 덩어리는 빠르게 범위를 넓혀 갔고, 이윽고 그의 흉곽까지 다다랐다.
“간단한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변하고 만 건가. 더 이상 얻어 낼 정보는 없겠군.”
읊조리던 바르간은 그에게 다가가 검지를 내밀었다.
닿은 곳은 심장이 있는 부근.
그의 손가락 끝에는 부패를 머금은 초고밀도의 마력포가 모였다.
범위를 좁히는 대신 밀도를 최대치까지 높혀 위력을 극대화하는 기술.
점이 되어 합쳐지는 잿빛의 빛이 한계치까지 치닫게 되자 바르간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마도구를 꺼냈다.
음성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는 마도구였다.
“교수님께서 제게 주신 가르침은 잘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즈아앙-!
말이 끝나자마자 작고 강렬한 플래시가 깜빡이듯 숲이 순간적으로 밝혀졌고.
교수의 흉곽에는 1cm 남짓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