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1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19화(219/350)
화사하게 핀 아르텔리온의 붉은 오러.
바르간의 믿을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마나와 그 사역마들.
둘의 싸움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관객들은 술렁이며 그들의 힘을 각자 평가했다.
대부분의 의견은 다양했지만, 이를 간결하게 요약하면 이랬다.
‘저게 정말로 학생들의 싸움인가?’
아무리 결승전이라고 하더라도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신입 용사, 아니… 분명 그 이상이다.
경기를 지켜본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었다.
리케이온의 학생회장인 에디나도, 쑥쑥 자라고 있는 미친 재능의 소유자 아르하도, 직접 아르텔리온과 맞붙었던 가바도.
그리고 리케이온의 정점 총장 하이겔 역시도.
이 자리에 있기까지 쏟아부었을 그들의 재능과 노력에 감탄을 자아냈다.
‘아르텔리온. 검제의 재림이라고 했던가. 부풀어진 이야기인가 했더니 아니었군.’
아무리 끝 무렵이라고 해도 아직 1학년의 학생이 붉은 오러, 심지어 초월의 계위에 발을 디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연 몇이나 되는 인물들이 그 단계에 도달했을까.
아르텔리온은 마치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와 같다.
성급하지만 똑바로, 정석적인 철로를 따라 매우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인재.
오셀 왕국의 왕자, 아르텔리온.
그리고….
“잘했다 바르간! 역시 내 제자야—!!”
고래고래 소리를 내고 있는 이는 아카데미아의 교수 파울라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그녀. 분하다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남교수를 보며 으쓱였다.
“호호호, 검제의 재림이라더니 영 아니었나 보네요 페르기오 교수님.”
“파울라 교수! 열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마세요!”
“어머 설마 지금, 교수님께서 지독하게 애정하시는 학생회의 왕자님께서 큰 망신을 당하셨다고 저한테 성내시는 거예요? 어이가 없어라!”
“허! 그 눈은 옹이구멍인 겁니까? 아주 근소한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교수라는 자가 편파적으로 학생을 대하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대체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원…!”
“어머어머, 교수님이 제게 그 말을 하신다고요? 학생회 담당이라고 해서 평소에 학생회 임원들만 어여삐 여긴 걸 모든 사람이 다 아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튼, 교수님이야말로 이번 기회에 잘 들으세요!”
파울라는 페르기오의 말을 끊었다.
전부터 바르간을 좋게 보지 않았던 그를 향해서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다.
“제가 인정한 천재는 딱 세 명밖에 없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교수님께서 맨날 아르텔리온만 미래의 검제니 뭐니 하면서 떠받드니까 하는 소리 아니에요?! 일단 잠자코 듣기나 하시라니까요!”
“아니, 이 말광량이가 끝까지…!”
페르기오는 노발대발을 하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파울라의 기세가 너무 올라 있었다.
파울라는 세 손가락을 펴며 내밀었다.
“우선, 아카데미아의 총장이자 모두의 스승이신 굴레마시아 님. 이분이야 두말할 필요 없는 천재죠. 그건 인정하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다음으로, 알리시아 양. 교수님도 그녀의 성장 기록을 보셔서 아시죠? 검을 잡은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학생이 붉은 오러를 사용하잖아요. 그런 기록은 어떤 역사를 뒤져 봐도 전례가 없네요.”
“그,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이 바르간 학생이에요. 직접 가르쳐 본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근데 왜 교수님은 바르간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아무리 아르텔리온을 편애하신다고 해도 정도가 지나치세요!”
아카데미아의 수석 바르간.
아카데미아의 차석 아르텔리온.
이 이미지는 입학 때부터 해서 쭉 유지되었었다.
비록 실제 성적의 변화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뇌리에는 저 순위가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르기오는 더욱 바르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아르텔리온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파울라는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쌓여 왔던 불만을 모두 털어 놨다. 하나하나 풀다 보니 제법 감정이 격해지게 되었다.
그러자 당황한 페르기오가 주변 눈치를 보았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자신도 잠시 흥분해 언성을 높였으나 이곳은 보는 눈이 지나치게 많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파울라 교수! 알겠으니까 제발 이제 그만하고 앉읍시다…!”
“흥! 이제 아시겠나요? 다시는 무시하지 마세요!”
파울라가 자리에 앉음으로써 어찌 저찌 두 사람의 언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를 듣고 있던 하이겔의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뱉은 ‘천재’라는 단어가 메아리처럼 울려 대고 있었다.
‘천재… 천재인가.’
하이겔은 다소 얼떨떨한 눈으로 다시금 경기장의 내부를 눈에 새겼다.
제 나이에 비교했을 때 뛰어난 성취의 아르텔리온.
그 찬란한 황금 머리칼의 남학생은 경기장의 바닥에 누워 있다.
가쁘게 움직이는 심장이 크게 몸을 들썩이게 만들고, 곳곳에서는 부패의 불꽃이 타올랐다.
솜씨 좋은 의료진이 긴급 투입되어 그의 상태를 살피며 부패의 불꽃을 도려냈다.
이 상태로는 들것에 든 채 옮길 수도 없다.
검게 타오르는 피부 가죽을 일부 뜯어내며 지열하는 응급처치가 진행됐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바르간 역시 꽤 상처를 입었으나 아르텔리온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의료진의 손길을 거부한 그는 유니콘처럼 생긴 사역마를 입더니, 순식간에 모든 상태를 회복시켰다.
그가 너무나 손쉽고 완벽하게 자가치료를 마치자 제 할 일을 잃은 의료진은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바르간이 턱짓으로 아르텔리온을 치료하라고 지시하자 이들은 어쩌다 보니 명령에 따르게 되었다.
바르간은 벗어 두었던 안대를 도로 쓴 채 지팡이를 짚었다.
탁—.
경기장을 내려가는 바르간.
그의 사역마들 역시 역소환이 되어 사라져갔다.
그런 와중, 물의 정령 나이아스는 아르텔리온에게 딱 붙어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보였다.
정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궁금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누가 봐도 놀리는 어조였다.
“주인에게 네 번째는 없을 거라고 전할까?”
“…….”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르텔리온. 그가 나이아스의 비꼼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지금의 상황이 비참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후련함’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 부탁하마.”
천재(天才).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남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존재.
하이겔의 기준에 굴레마시아나 아르하 정도가 되어야 그 반열에 올려 두었던 극한의 소수자들.
그런 이들의 사이에 지금.
‘시련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래도 제 눈이 틀렸던 모양이군요.’
하이겔은 슬그머니 바르간의 이름을 올려 두었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장담하건대 그는 현재 리케이온, 그리고 아카데미아의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무력의 성취가 높은 학생이다.
***
에리카와 함께 버선발로 뛰어가는 알리시아.
복도의 끝자락에서 바르간이 지팡이를 짚으며 나오는 게 보였다.
“도려…!”
알리시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를 부르려고 하다 멈추게 되었다.
바르간의 뒷편으로부터 급하게 들것에 실려 나오는 아르텔리온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료진에 둘러싸인 채 그가 바르간을 제치고 앞서 나왔다.
에리카는 아르텔리온이 보이지도 않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바르간에게 달려갔지만, 알리시아는 그럴 수만도 없었다.
언뜻 보이는 아르텔리온의 상태가 너무 처참하다.
그나마 경기가 중간에 종료되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을 수 있다.
“…….”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아르텔리온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은 알리시아.
그녀는 아르텔리온과 눈이 마주치자 곱게 허리를 접어 예의를 갖추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배울 게 많은 시합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의 말을 내보인 채 알리시아는 다시 바르간을 향해 달려갔다.
아르텔리온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눈으로 좇았다.
바르간의 곁에 도착한 그녀는 우선적으로 바르간의 곳곳을 살피더니 에리카와 함께 부축을 도와주려고 했다.
“됐다.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 둘 다 그 정도로 하거라.”
“하, 하지만 도련님…!”
“슈겐하르츠. 그렇게 크게 싸워 놓고는 무슨 말 하는 거야!”
바르간은 손으로 저으며 강경한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이도 저도 몰라 하는 두 사람.
그리고, 어쩐지 씁쓸한 감정을 느끼는 아르텔리온.
“…….”
그는 시선을 거두고 움직이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귀에 들리는 소란이 점차 멀어져 갔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으며 체내의 마력을 정상화….
“와, 왕자님…!”
지나치게 호들갑스러운 말투의 남자.
그로 인해 감기려던 아르텔리온의 눈이 다시금 뜨였다.
텅 빈 천장이 있어야 할 곳에 두 명의 인물이 들어서 있다.
펑펑 소리 내어 울면서 하늘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한 팔론. 조용히 눈물을 머금은 채 걱정하고 있는 아르텔리온의 방패 라우가.
“이, 이럴 때가 아니지. 라우가! 우리 때문에 속도가 늦어져선 안 된다. 한시라도 빠르게 왕자님을 이송시켜야 해!”
아르텔리온의 충신인 팔론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지 못함을 지적했다.
이에 라우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섰다. 입을 열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들의 등장으로 적막으로 잠잠해야 했을 주위가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소음은, 듣기 싫은 잡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아르텔리온은 그를 걱정하는 두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가까이에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읊조렸다.
“…그동안, 미안했다.”
장황하기는커녕 지나치게 생략이 많은 사과.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와 같은 기본적인 단어들이 전부 빼먹어져 있는 문장이었으나.
팔론과 라우가에게는 생략이 아닌 내포의 의미를 가졌다.
“와, 왕자님… 왕자님!”
“흐끄윽…!”
지나치게 감격한 팔론은 버퍼링에 걸린 듯 연신 왕자님이라 곱씹었고.
라우가는 눈물을 참기 힘들어 손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 짧은 사과가 그들에게는 과분하리만큼 충분한, 그러고도 훨씬 남는 한마디였다.
“저, 팔론…! 평생 아르텔리온 왕자님에게만 충성할 것입니다! 저희에게는 왕자님만이 유일한 리더이십니다!”
“저, 저도… 저도 그렇습니다.”
이송되는 아르텔리온을 따르며 울먹이는 두 사람.
아르텔리온은 그동안 자신이 이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되새기며 잠시 눈을 감았다.
***
모든 토너먼트의 일정이 종료된 이후.
날은 어두워지고 교류회의 밤이 찾아왔다.
“오, 이번에는 빨리 입었네?”
머리색과 같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에밀리.
마지막으로 이상한 점은 없는지 제 몸을 살피다가 말했다.
“도움을 받은 것도 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그렇네. 어때 리암?”
“아주 잘 어울려.”
“영혼 조금만 더 넣어 줄래?”
“너무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예뻐.”
“아니, 그 정도로 넣을 필요는 없고….”
아닌 척해도 배시시 웃음 짓는 에밀리. 붉게 물들어 가는 귀 끝이 드레스 색과 닮아 있다.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줄 심산인 에밀리는 리암을 쭉 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도 멋지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건 아니지만.”
“나도 알고 있거든요. 평범하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미안할 건 없네요.”
“하여간 끝까지.”
쿡쿡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
드레스와 정장의 대여부터 어딘가 익숙한 배경이었지만, 오고 가는 대화는 완전히 달랐다.
에밀리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입학 시즌에 있었던 환영회 생각나네.”
“맞아. 그때랑 비슷한 듯 많이 다르지만.”
“정확히 뭐가 다른 건데?”
무언가 기대한다는 듯한 에밀리의 눈빛. 그녀는 리암에게 바짝 다가서며 은근슬쩍 서로의 손등을 부딪쳤다.
이에 리암은 부딪힌 손을 급히 올리며 헛기침을 했고, 고개를 돌렸다.
“크흠. 뭐… 그런 게 있어.”
“뭐야 싱겁게.”
“싱거운 게 아니라 신중한 거야.”
“대체 언제까지 신중할 건지…. 오래는 안 기다린다?”
반응이 시원치 않았는지, 에밀리는 새침하게 돌아서며 먼저 몇 걸음 앞서갔다.
리암은 부끄러움이 가미된 눈빛으로 복도의 벽을 바라본 채 뒷머리를 긁었다.
‘쉽지 않네. 원래 이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리암은 소설 밖에 있었을 때를 회상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 남몰래 좋아하던 여자애와 친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말을 걸고… 어?
돌연, 이상을 깨닫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책에서 찢겨 나간 것처럼, 돌연 나타난 글 사이의 공백처럼.
원래 세계에서의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소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과거가 혼동되는 일이 잦아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깨끗하게 지워진 감각은 없었다.
과연 순간적인 일일까. 그렇지 않으면….
과거를 회상하던 「 」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미지의 두려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