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화(22/350)
알리시아를 거두었으며 성장을 순조롭게 이끌어 내고 있다. 나는 아카데미아에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리암에게 내 존재를 알렸다.
초기의 목적은 전부 달성했으니 이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 한다.
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빙의한 소설 또한 빙의물로, 내 입장에서 주인공인 리암에게도 주인공이 하나 있다.
액자식 구성이라고 보면 되려나. 진짜와 가짜 주인공을 운운했을 때의 가짜 녀석을 말하는 거다.
원래였으면 우리 고고하고 품위 있는 왕자님께서 당당하게 수석으로 입학하셨어야 했을 테지만 내가 가로채 버렸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아마 상당히 자존심에 금이 갔을 것이다. 지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밀려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놈이라서 특히.
우리 왕자님에게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살 코털을 하나씩 뽑으며 건들면 된다. 너무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슬금슬금 기어가면 된다.
천천히.
느긋하게.
그러다 보면 정확한 타이밍이 도래한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자.
1학년들 중 주연 인물들이. 서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펼쳐 보이며 제대로 충돌하는 시기.
2학기 ‘기말고사’가 되기까지는 아직 멀었으니까.
그전에 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음미하며.
점찍어 둔 인재를 포섭하고.
나를 귀찮게 할 단체에 살며시 독을 흘린다.
그러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 융통성 있게 행동하자.
계획이라는 건 딱딱하여 그것만으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계획과 계획의 사이를 부드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우연성이라는 연골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도련님, 도련님.”
강의실 앞에 선 루이사는 빔프로젝터를 이용해서 발표하듯 공중에 마법으로 일종의 홀로그램을 투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홀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어두운 공간이라 대부분의 학생이 그 반짝이는 마법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말을 거는 인물은 루이사가 아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습니다.”
옆에서 귓속말하듯, 작게 속삭이는 미성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 현상을 신기하다는 듯 약간 입을 벌리며 두 눈을 반짝이는 알리시아였다.
‘음?’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알리시아의 외관에 넋이 나간 몇몇 학생들이 루이사에게 집중하지 않고 알리시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하긴, 알리시아가 쉽게 받아들여지는 외모가 아니니까⎯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해하고 싶지 않다.
저런 것들이 나와 같은 신입생이라니.
‘꼭 저런 것들이 조연을 떠맡아 하지.’
그들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있자 이를 느낀 녀석들은 원래부터 교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조용히 눈동자를 움직이거나, 부끄러운 것을 들킨 사람처럼 놀란다.
특징은커녕 이름도 전혀 기억 안 나는 놈들이다.
그들이 시선을 회피한 것처럼 나도 그들에 관한 관심을 죽이고 있는데. 조연들과는 다른, 익숙한 이의 시선 또한 그 안에 있었다.
‘이게 누구야.’
꼴에 주인공이라고 다른 조연들과는 다르게 그는 알리시아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
그 까닭은 알리시아보다 내가 눈에 띄는 게 아니라, 아마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이겠지.
나와 마주한 리암은 눈을 빠르게 두 번 깜빡이더니 눈을 피한다. 역시 저럴 줄 알았다.
녀석의 암울한 표정을 보니 두뇌가 팽팽 돌아가며 어떻게 해서든 현 상황을 분석,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리암의 표정이 어두워질수록 시소의 원리같이 나의 기분이 고조됨을 느낀다.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나는 저 녀석을 싫어하나 보다.
심지어 이건 바르간의 감정도 아니라 소설을 읽었던 순수한 나의 감정인데도 말이다.
“도련님, 저도 저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겁니까?”
내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언제나처럼 어린아이같이 놀라는 알리시아. 무의식이라 그런지 나를 잡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원래였다면 알리시아는 내 옆자리가 아니라 리암의 옆에 앉아 처음으로 그와 대화를 나누었었지.
소설로 보면 나름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뭐, 지금은 주인공이든 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마법에 헤실대고 있지만.
“…?”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곤 알리시아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진다. 이어서 시선을 내리더니 자신이 나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손을 뗀다.
어차피 또 죄송하다는 말이나 늘어놓을 테니 괜히 말 걸지 말고 교수에게나 집중하자.
“…그렇게 돼서 1학년 때, 두 번의 기말고사와 클래스전(戰) 등이 너희가 졸업에 필요한 점수인 ‘카티아(Cattia)’를 가장 많이 벌 기회다. 카티아가, 너희가 용사가 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거고.”
홀로그램의 이미지가 바뀌며 이와 함께 어두운 강의실을 채우는 빛도 바뀐다. 루이사는 특유의 어조로 당당하면서 익숙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입학 성적에 따라 나뉜 카티아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단 몇 달만 지나도 주변인들과 비교하면 덜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녀가 지금 이 발표를 듣고 있는 누구도 이 대상에서 예외는 없다는 말을 덧붙이자, 학생들이 질색하는 표정을 보였고, 그녀는 이것을 즐기는 듯 길게 웃었다.
짝!
그러고는 손뼉을 치며 꺼져 있던 조명을 도로 돌려놓는다.
“여기까지 대략 설명이 끝났는데 질문이 있는 학생이 있나?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절차상 일단은 묻지.”
귀찮으니까 질문은 받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서 한 루이사는 제 뜻을 제대로 이해한 학생들이 손을 들지 않자 만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기가 찰 정도로 원작 성격 그대로 반영된 녀석이다. 아마 파울라의 친구였지? 어쩐지.
“이후에 조원들끼리 단합 훈련을 하는 일정이 남아 있지만, 아직 우리 반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우린 뭘 하고 있으면 될까?”
루이사는 주변에 있던 한 남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대상자의 인상이며 말투가 내 기억에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주요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 그게 그러니까… 용사로 활동 중이신, 아카데미아 출신 선배들에 관해 이야기하시는 건….”
“오오, 옳다 옳아. 나도 정확히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루이사는 대답을 한 학생의 등을 손으로 팡팡 때리며 호쾌하게 웃었다.
지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손에 등을 맞게 된 그는, 상당한 충격이 전신을 감쌌으나 칭찬을 들어서인지 환한 안색을 보인다.
“그런 의미로 무기고에 가서 연습용 무기를 받도록 한다. 조장들은 조원들이 각자 어떤 무기를 골랐는지 보고하도록.”
“저… 그럼 선배들에 대한 건….”
“자자, 빨리 조원들끼리 모여서 움직여.”
***
널찍하고 밝은 내부의 무기고로 이동한 우리는 각자 직접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판단되는 연습용 무기류를 고르고 있었다.
이것은 신입생들이 멋대로 실전용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없도록 한 장치였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놈들이 마음대로 휘두르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무게도 그렇고 강도도 그렇고 아쉬운 점이 많은 검입니다.”
알리시아는 나이아스와 가장 유사해 보이는 대검, 클레이모어를 선택했는데 몇 번 휘둘러 보고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을 뱉었다.
“1품 유물인 나이아스만 들고 다니다가 이런 허접한 철 덩어리를 집으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시골구석에서 자란 여식이라 할지라도 몇 번 귀한 것을 접하다 보면 보는 눈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반 농민들이 한평생 할 수 없을 경험과 물건들을 봐 온 그녀의 평가가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
“너희도 어서 고르도록 해라. 시간은 충분히 있다만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는 조원이 되고 나서부터 어두운 안색으로 일관하는 에밀리와, 한마디는커녕 입을 벌리는 것조차 목격한 적 없는 세레나. 두 여자에게 말했다.
그들 외의 또 다른 조원인 남자, 핀은 신이 나서 이리 저리를 돌아다니기 바쁜데 이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세레나는 내가 재촉하자 몇 번 흘깃 보더니 조용히 몸을 움직여 근처에 있던 활을 집어 들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에밀리는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는데 아무래도 리암과 떨어진 충격이 큰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 나랑 같은 조가 돼서 충격을 받은 건가?
“어차피 네 녀석이 연모하는 놈은 같은 반이 아니더냐. 애새끼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렇게 궁상떨고 있을 거지?”
“뭐, 뭐야… 당신이 뭘 안다고…요.”
말은 저렇게 해도 그 녀석의 이야기를 했다고 죽어 있던 눈동자에 생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감정적인 녀석이다.
“내 눈이 장식으로 보이더냐. 네가 틈만 나면 몰래 다른 조의 남성을 보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너는 처음 반에 도착했을 때 그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지. 이 말은 즉, 높은 확률로 아는 사이라는 말일 테고.”
“훔쳐보지는 않았어…요! 그냥… 그 아, 아니지. 지금 내가 이걸 왜 설명하고 있는 거야.”
에밀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걸어가 진열되어 있던 발키리 소드를 골라 들었다. 길이가 중간은 되어 양손으로 휘두르는 검이다.
“이거면 충분해. 어차피 나는 근접 무기 사용자로 이 조에 편성된 거잖아…요.”
“그딴 것 말고. 쇼트 소드나, 커틀러스 같은 리치가 짧으며 파고들기 쉬운 것을 선택해라.”
“단검보단 장검이 일반적이고 익숙한데.”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덜떨어진 것을 조원으로 둘 생각은 없다. 네 특기가 무엇인지, 어떤 게 가장 효율적일지를 고려해라.”
어차피 머지않아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검을 깨닫게 될 것이지만 미리 알려 준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에밀리는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나중에 무기를 바꿀 기회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이번 한 번은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하려는 건 좋은 자세이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꿀 테니까 알아 둬…요.”
경어를 사용할 건지 말 건지 확실하게 해 줬으면 할 정도로 답답한 언어 구사다. 그녀와 나의 계급 차이가 명확한데 이토록 애매한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은.
아카데미아에서 동급생끼리는 계급에 상관없이 반말이나 가벼운 존칭어를 사용하도록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래였으면 ‘요’는커녕 굽신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해야 정상이건만 아카데미아에서는 예외의 상황이다.
별로 마음에 드는 규칙은 아니나 앞으로 수많은 규칙을 어기게 될 예정이므로 이 정도는 귀족의 관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네가 있던 촌구석에서는 말투를 그따위로 하도록 배웠나?”
“이건 단지 어색해서 그런 거지 우리 마을이 이상한 게 아니야… 요!”
“…….”
이 한심한 장면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알리시아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그럼 자신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시종 관계는 예외다. 감히 나에게 반말을 뱉겠다는 허튼 생각은 버려라.”
“그, 그런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했을 뿐입니다!”
“과연 그럴지. 알리시아. 네가 나를 얕잡아 보는 날은 너에게 끔찍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으리라고 여깁니다만, 조심하겠습니다…. 저어, 하온데 도련님께서는 어떤 무기를 선택하신 겁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품에 감췄던 물건을 보였다.
이 쓰레기의 창고에서 건질 것은 하나도 없으나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한다면 이게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해서 고른 물건이다.
“도련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혹시 잘못 고르신 게 아닌지….”
『선택이 완료된 조의 조장은 와서 보고해. 이제 곧 단합 훈련장에 가야 하니까.』
알리시아의 의문에 대답해 주기도 전. 루이사가 마력을 담은 언어로 모두에게 뜻을 전달하자, 나도 그것에 맞게 움직였다. 알리시아에게는 간단하게만 대답해 줬다.
“우선 갔다 오겠다.”
핀 녀석은 무기를 다 골랐으려나. 아직도 고르지 않았다면 어차피 어중이떠중이 조연이니 대충 아무거나 적어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