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4화(224/350)
리케이온에서 아카데미아로 복귀하는 비공정이 뜨는 날 오전.
“왕자님. 아직 조심하셔야 합니다!”
“팔론. 이제 괜찮다. 부축은 사양토록 하마.”
“아, 왕자님…. 아직 조심하셔야 할 텐데….”
아르텔리온과 팔론 그리고 라우가는 양호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충신 팔론이 자꾸만 귀찮게 구는 것을 거절하는 아르텔리온.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얼마나 걱정하는지는 몸소 체감하고 있으나 이젠 정말로 완치되어 혼자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부패의 불꽃……. 상당히 뒤처리가 곤란한 마법이더군.’
차라리 팔이 꺾이거나 살이 도려내졌으면 모를까.
부패의 불은 쉬는 틈이 없이 살을 갉아먹었고 통증을 안겨 주었다.
그나마 빠르게 수술에 들어가 더 커지기 전에 확산될 피부까지 파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치료 마법으로도 부족하여 인조 피부를 달고 살 뻔했다.
“야, 야야…!”
이만 나가려는 아르텔리온 일행을 부르는 한 여학생.
침대에 기댄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불안하다는 듯 손톱을 질겅질겅 씹던 아르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조심스레 입을 뗐다.
아르하가 저렇게까지 조신조신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너희가 가면 그… 바르간도 가는 거지? 설마 남아 있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아무래도 바르간과의 시합 이후 트라우마 비슷한 게 남은 모양.
아르하는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 달라는 눈빛으로 아르텔리온을 바라보았고.
아르텔리온은 아무런 대꾸도 해 주지 않은 채 밖으로 나섰다.
“야…! 말은 해 주고 가! 야야—! 아, 으으… 머리야…. 왜 그 녀석은 하필이면 머리를 때려 가지고.”
드르륵—.
그렇게 소음을 무시한 채.
양호실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긴 황금빛 머리칼.
오셀 뷔 에디나이다.
“상처는 다 나았나 보네.”
에디나는 아르텔리온을 쭉 훑더니 말했다.
아르텔리온은 적당히 고개를 까딱하며 별말 없이 갈 길을 가려 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팔론과 라우가는 예상외의 인물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숙이더니 아르텔리온을 따랐다.
“붉은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들었는데 설마 초월에 올랐는지는 몰랐어.”
“…….”
에디나의 말이 이어지자 발걸음을 멈춘 아르텔리온.
잠시 속으로 고민하는 건지 가만히 있다가 몸을 돌려 눈을 마주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단계입니다.”
“그야 그러겠지. 초월에 막 들어간 참인데. 그래도 그게 어디야? 초월에 입문하지 못하는 검사들이 수두룩 빽빽하잖아.”
“…누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아르텔리온은 대화가 둘러 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그녀의 목적을 물었다.
에디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가족인데 꼭 일이 있어야만 찾아오나?”
“…….”
“하긴, 꼭 일이 있어야만 대화를 나누긴 했지. 근데 오늘은 아니야. 왕실에서는 편하게 대화 나누기에도 눈치 보이고 자주 보기도 힘드니까 얼굴 좀 보러 왔어.”
“…그렇군요.”
“영 믿는 눈치가 아니네.”
“믿습니다.”
고분고분한 모습의 아르텔리온.
그는 에디나나 다른 가족들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모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 할 뿐인 동생이다.
‘눈치만 좀 적게 보면 좋겠는데 말이지.’
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다른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두 사람.
정실부인의 딸인 에디나와 달리, 아르텔리온의 출신은 측실.
반쪽짜리 왕자인 것이다.
에디나는 아르텔리온이 겪고 있는 고충을 어렸을 적부터 보았다.
그의 고통을 짐작하고, 노력을 가늠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왕자 아르텔리온.
하지만, 에디나의 시선에선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아픈 손가락이다.
물론, 에디나가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외부로 드러내는 일은 없지만 말이다.
에디나는 비교적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뭐… 근데 막상 붙잡아도 별로 할 말이 없네. 늦겠다. 어서 가 봐.”
“네.”
아르텔리온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물러났다.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그.
가라고 해서 진짜 바로 가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동생이다.
에디나는 멀어져 가는 아르텔리온과 그의 동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항상 무감정하게 대꾸하던 그. 동료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지금은 그나마 나은… 조금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하면 좀 좋은가. 아무리 서먹하더라도 오래 얼굴을 마주한 사인데.
“하여간 건조하기는.”
에디나는 다소 샐쭉한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리케이온의 복도에 드리우는 하얀 햇살.
제법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전의 색이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정말 실망이에요!”
—딱.
잔뜩 흥분한 에를리히의 투정에 의해 바르간의 나이프가 멈췄다.
바르간의 나이프에 잘린 고기의 단면에서 군침 나오는 육즙이 흘러나왔다.
그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에를리히를 바라봤다.
저 얼마나 교양 없고 무식한 자의 면상이란 말인가.
바르간은 입을 열었다.
“에를리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먼저 물으마. 네가 왜 여기에 앉은 것이냐.”
“다른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요. 여기선 아는 얼굴도 없고.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 좀 할게요.”
“우리와는 아는 사이다. 그런 말인가?”
“너무해요! 32강도 같이 치렀잖아요 그럼 아는 사이죠! 그리고 이쪽하고도 제법 대화를 나눴구요. 아, 깜빡하기 전에 손수건 돌려드릴게요. 그땐 감사했습니다.”
바르간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쁜 핀은 얼떨결에 손수건을 돌려받았다.
깨끗하게 빨아 새것처럼 하얀 손수건. 향을 나게 하는 무언가를 뿌린 건지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핀은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변 눈치를 봤다.
에를리히가 돌연 바르간에게 던진 불만 어린 말에, 함께 자리에 앉은 에리카와 알리시아의 심기가 언뜻 불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핀이 그만 말릴까—라고 고민하는 와중에 에를리히가 다시금 말했다.
“아무튼! 정말로 당신에게는 실망했어요. 제가 얼마나 응원했는지 알아요? 기도까지 올렸는데 완전 제 착각이었잖아요! 전 그동안 혼자 뭘 한 건지…!”
“이건 뭐 대답할 가치도 없구나. 계속 그렇게 쫑알쫑알 지난 흑역사를 후회할 거라면 침대로 돌아가 베개나 뒤집어써라.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러기도 하더군.”
“도련님? 설마… 제가 처음 저택에 갔던 날 말씀하시는… 그보다 전부 보고 계셨던……!”
“청승맞게 안 그럴 거예요! 누가 그런 궁상을 떨겠어요!”
“…….”
에를리히의 대답에 알리시아는 묵묵히 입을 잠그며 얼굴을 손으로 감췄고.
바르간은 인상을 구겼다. 식사를 방해하는 외부인이 자꾸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걸 듣기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망상이 그 정도로 현실을 침범하면 그건 병이다. 나에게 떠들어 댈 게 아니라 의사나 찾아 꺼져라. 좋게 이야기하는 건 여기까지다.”
“확실히 그렇긴 해요…! 저는 옛날부터 혼자서 착각도 잘하고 피해 의식도 있어서 괜히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랬어요. 하지만 이번엔… 이번엔…!”
“이번엔?”
“네, 이번에도 제가 잘못한 거죠. 맞아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 놓고 지금 여기에 와서 피해를 드리고 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에를리히.
들어 올린 얼굴에는 삐죽 입술이 튀어나와 있다.
그녀도 순전히 자신의 잘못인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비록 착각일지라도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바르간의 모습에 감화되었던 에를리히로서 어떻게든 한 번 정도는 속 시원하게 불만을 표하고 싶었다.
핀에게 진실을 듣고 난 이후로 꽉 막힌 듯 속이 답답해 괴로웠기 때문이다.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는 건 맞아요. 짜증 나게 굴고 있는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그 튀어나온 입부터 집어넣고 말해라.”
“…네.”
풀이 죽은 에를리히는 입술을 원 상태로 돌렸다.
자신도 놀랄 정도의 추진력으로 그에게 투정을 부렸지만, 막상 전부 뱉게 되니 머리가 차가워지며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자각이 제대로 들었다.
‘난 왜 참지 못하고 막 나가 버린 거야! 알면 얼마나 아는 사이라고… 아이 참!’
일명 급발진.
정신머리가 돌아온 에를리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뻘쭘하게 앉아 있었다.
바르간은 험한 말을 내뱉으며 그녀를 내쫓아 버릴까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며 화두를 던졌다.
확인해 봐야 할 게 있기는 했다.
“네가 왜 지금 이곳에 있는 거냐.”
“네?”
“테이블의 자리가 아니라 비공정 말이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건 리케이온의 소속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보인다만.”
리케이온을 떠나 아카데미아로 향하는 대형 비공정.
도중 동선이 겹치는 헤일리온과 페랑기스의 팀원들도 함께 타고 있는 상황이다.
에를리히는 그건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페랑기스 님의 조수로 활동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기로 했거든요. 1년간 휴학을 하게 되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서 감사히 받아들였죠.”
“적당히 잘 갔다 붙였군.”
“뭐를요?”
“아니다. 알 필요 없다.”
바르간은 잘라 둔 고기를 입안에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인공정령이 깃들어 있는 에를리히는 아직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
정확히 말하면, 인공정령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데까지만 힘쓸 수 있는 중이다.
그나마도 페랑기스만이 억제할 수 있으니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용사랭킹 2위인 페랑기스가 언제까지고 리케이온에 있을 수 없으니 에를리히가 조수를 명목으로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막상 당사자는 전혀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바르간은 한심하다는 듯 에를리히를 바라보자, 에를리히는 이해를 못 하며 자신의 얼굴에 묻었나 확인했다.
‘페랑기스가 제자 하나는 지독하게 아끼는군.’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건가.
2위에 이름에 걸맞지 않는 유약함이다.
“…그런데 좀 여쭤볼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나이아스랑 아르카네와 어떻게 계약을 맺었는….”
“안 된다.”
“네?”
“더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으니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아직 식사도 제대로… 엥? 언제 다 드신 거예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는 바르간.
대꾸는 해 주지 않고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식사를 마친 바르간은 비공정 안에 마련된 연무장으로 갔다.
알리시아와 핀은 제 할 일을 하러 떠나갔고, 에리카는 적당한 구석 자리에 앉아 바르간의 수련을 지켜봤다.
헤일리온을 주도로 하는 오랜만에 받는 강습이었다.
“좀 아플 거예요.”
“언제는 안 아팠던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좀 ‘많이’ 아플 거예요.”
미리 언질을 해 준 헤일리온은 가차 없이 신성 마법으로 둘린 주먹을 바르간의 복부에 꽂았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허리가 만곡하게 휘는 바르간.
하마터면 내장이 전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순간이다.
아니, 그 전에 조금 전에 먹었던 식사를 쏟을 뻔했다.
이 정도면 성마법사가 아닌 무투가를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 잘 참네요. 역시 바르간 학생이에요.”
“제법 즐거워 보이시는 군요…. 하나뿐인 제자의 고통이 그리도 재밌으십니까?”
“제자의 고통을 즐기는 게 아니라 성장을 기뻐하는 거예요. 전이랑 비교할 수도 없게 방어력이 높아졌네요. 꽤 신성 마법의 밀도를 빽빽하게 넣었는데요.”
“…헤일리온 님과의 수련 이후로 맷집을 키우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었으니까요.”
중앙교회에서 헤일리온의 수련을 받던 시절.
바르간은 헤일리온의 강력한 신성 마법을 온몸으로 맞으며 저항해 왔고.
이로 인해 방어력을 높일 필요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프로텍터를 단련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었다.
‘게다가 현재 착마한 어둑이는 세이만의 날개를 먹은 상태이니 이 정도 버티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오히려 헤일리온의 괴물 같은 출력에 혀를 내둘러야 한다.
이 양반은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알면 알수록 원작에서 묘사된 것보다 성취가 아득히 높아지는 것 같다.
‘괴물 같은 녀석.’
연이어 다른 부위를 얻어맞은 바르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프로텍터나 세이만의 날개가 아니었다면 부러졌을 것이다.
“우선 여기까지 할까요.”
“…제 부패 마법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실컷 당했던 바르간은 이젠 자신의 차례라면서 손날에 부패의 불꽃을 피어오르게 했다.
이를 보던 헤일리온은 사람 좋은 인상을 보이며 말했다.
“이해는 되는데 그건 조금 뒤로 미루죠.”
“어째서죠?”
“가미긴 토벌대에 관해서 바르간 학생에게 말해야 하는 게 있거든요.”
기존 스토리에서 벗어난 커다란 에피소드.
헤일리온이 이에 관한 말을 하려고 하자, 바르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부패의 불꽃을 꺼트렸다.
흠씬 두들겨 패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크지만 그보다 스토리의 전개가 중요하다.
헤일리온은 그의 준비가 된 거 같아 말했다.
“바르간 학생은 이번 토벌에 참여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