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2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225화(225/350)
“토벌에 참여하지 말라니요?”
“하이겔에게 언뜻 들었어요. 고유술식 시련의 남은 개월…. 처음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그것은 고유술식에 관한 팁을 전해 받을 수 있는 하이겔에게만 말했던 사실.
하이겔…. 그 입 싼 자가 헤일리온에게 나불거린 모양이다.
“하지만 헤일리온 님. 토너먼트를 치른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언제나 예외 사항은 있기 마련이죠. 이번엔 바르간 학생이 그 예외에 속했네요.”
“즉, 제 전력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군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요. 바르간 학생이 평소의 기량을 펼치지 못한 채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평소의 기량이라….
확실히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시각이 보이지 않는 현재. 앞으로 남은 두 달의 시련의 윤곽이 전보다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데.
촉각부터는 일상생활도 힘들어질 정도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시각보다 촉각이 고난스럽다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이프를 눈 감고 잡을 순 있어도 손가락이 전부 잘린 상태에서는 잡지 못하지 않는가.
그것과 비슷한 정도의 차이다.
사물에 대한 감촉의 감각이 사라진다는 건.
사물을 드는 데 필요한 근력조차 계산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니까.
“흠….”
“바르간 학생도 충분히 위험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이참에 하나뿐인 제자를 어이없게 잃고 싶지 않은 스승의 마음도 헤아려 주세요.”
“뒷말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헤일리온 님의 의견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굳이 이 악물고 반박하며 일찍 전장에 나서려 할 필요는 없다.
사실 헤일리온이 꺼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먼저 말을 하려고 했으니까.
촉각도 문제일뿐더러, 이보다 더욱 질이 나쁜 건 마지막 달인 오감의 제한을 받게 되는 달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시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찌 된 게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위험도가 증가하고 있다.
방식과 형태가 명확해질수록 주의해야 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 그래도 오해하지는 말아요. 완전히 제외되는 게 아니라 고유술식이 완성되면 합류해야 하니까요.”
“어째… 제가 영 싫어하지 않는 눈치니 말을 바꾸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사안이었는데 말의 순서를 나중으로 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내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일부러 나중으로 미뤘다는 거 아닌가.
스승이라는 작자의 심보가 아주 고약하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찌 되었든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입니까. 뭐, 익숙하기는 합니다만.”
소설 밖의 경험에 더하자면 입대를 두 번 하게 되는 꼴이지만.
배경과 따라오는 이익이 다르다.
애초에 아카데미아나 리케이온이 군인을 키우는 사관학교이기도 하고.
저런 커다란 에피소드에서 아예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수색 기간이 짧진 않을 텐데 이를 대폭 생략하거나 뛰어넘게 되는 게 아닌가.
“바르간 학생.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그럴 리가요. 제 개인적인 이유 탓에 전우들과 첫 삽을 함께 푸지 못함을 한탄스러워할 뿐입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면 상관없지만요.”
…이후, 헤일리온과 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대략적인 수색의 방식을 미리 전해 들었다.
아직 세부적으로 대대를 나누지도 않은 상황이기에 확실히 이렇다—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나중에 합류할 때에 요긴하게 쓰일 정보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문뜩 그가 물었다.
“그런데 시련의 마지막 달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 건가요?”
“제자의 경험을 참고하시려는 겁니까?”
“시련에 있어서는 바르간 학생이 저보다 선임이니까요.”
“그건 맞군요.”
헤일리온에게는 제법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정도 정보는 줘야지 나중에 딴소리를 안 하지.
나는 반사적으로 계산을 마치고 충분히 이익이라는 판단하에 입을 열었다.
“시련의 마지막 달. 단순히 오감만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마구잡이식으로 착란이 올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감각을 빼앗기고 제어할 수 없는 꿈에 빠지는 것.
그게 내가 마주할 마지막 시련이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슈겐하르츠! 착란이 올 거라니… 한 달 동안 환각 저주에 빠진다는 말이야? 나는 그런 말 전혀 못 들었어…!”
헤일리온의 강습이 끝나고.
함께 복도에 나온 에리카가 말했다.
저 작은 체구의 그녀가 커다란 눈망울을 불안하다는 듯 떨고 있다.
마치 길가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듣는 에리카의 투정 어린 말에 옅은 그리움마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네가 한 달 동안 어떤 것을 보게 될지,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또 어떤 수모를 당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건데.”
“알 수 없지. 어쩌면 그 안에서 몇 번이나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러니까…! 그런데 어떻게 내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어!”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온 에리카가 내 옷을 구겨 잡았다.
키 차이가 워낙 나, 내 가슴팍 정도에 에리카의 자그마한 얼굴이 있다.
하얀 피부에는 오목조목 달려 있는 눈코입이 있다.
그 사이에 굴곡이 져 그녀의 슬픔을 자아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 에리카. 네 말대로 이번 시련은 위험하다.”
어쩌면 지금껏 있었던 그 어떤 순간보다 험난할 수 있겠지.
그 말에 에리카는 입을 열려 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올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에리카의 우려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내 의지는 확고하다.
“어쩌면 광인이 되어 시련이 끝나더라도 분간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에리카.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
“너는 내가 고작 고유술식의 시련에 져 버릴 정도로 유약하다고 보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나를 봐 오고 겪어 온 너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행동을 하기 전 수많은 계략을 짜내고 대비책을 준비해 두었지.”
“이번에도 그렇다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자신 있게 입꼬리를 올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오만하다고 여겨질 만한,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을 업신여기는 건방진 미소이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불쾌하거나, 화를 일으킬 수 있는 표정.
하지만, 지금의 에리카에게는 꽤 반대의 의미로 효과적이었다.
“응…. 믿을게.”
곧게 세워져 있던 그녀의 가는 눈썹이 완만하게 내려갔다.
입가에 지어진 옅은 미소를 보니, 아직 완전히 불안감을 씻어 내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이 정도면 우선은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으로 에리카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곤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에리카 역시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내 옆을 따랐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을 알리시아의 객실.
어쩐 일인지 알리시아가 저녁 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주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시종으로서 옳지 못할 수 있지만.
그녀의 부탁이 흔한 일도 아니고, 말을 하면서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뱉어 대면서 하기에 들어주기로 했다.
‘밥을 먹고 오지 말라고 한 걸 보면 뭔가 음식을 만들어 주려는 것 같은데…. 큰 의미가 있나?’
점심을 먹고 나서 헤일리온의 강습을 6시간 동안 받고 또 저녁이다.
다소 속이 더부룩할 수 있는 일정.
기껏 땀을 씻어 내지도 못하고 가는 건데 별 의도도 없는 식사면 혼을 내 주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에리카 님.”
알리시아는 마치 우리가 올 타이밍을 알았다는 것마냥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방의 중앙에는 테이블과 두 개의 좌석.
그 위에 푸드커버가 덮힌 양은 쟁반이 있다.
‘준비한 음식은 두 종류인가.’
앞접시도 나와 에리카의 것으로 두 개를 준비했다.
알리시아는 마치 가게의 종업원인 것처럼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도록 유도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슈겐하르츠가에서 일할 때 입는 시종의 옷.
저번에도 보긴 했는데 정말로 요리할 때 애용하는 모양이다.
‘음? 이 냄새는….’
독특한 향이 났다.
후각의 시련 이후, 더욱 발달하게 된 내 코는 음식의 종류를 유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알아내고 싶어서라기보단 맡게 되니 어쩌다 알게 된 것이지만….
묘한 일이다.
냄새가 맞다면 분명 ‘그 음식들’일 텐데. 알리시아가 조리법을 어떻게 알고서?
“저어… 도련님, 그리고 에리카 님.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변변치 않은 실력이지만 짬짬이 준비해 봤습니다.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짬짬이라는 표현을 굳이 집어넣은 건 내가 뭐라고 할까 봐겠지.
참나. 전에도 말했지만 제 할 일만 다 하면 취미 생활을 해도 나무라지 않거늘. 주인을 뭐로 여기는 건지.
…잠깐.
그러고 보니 나는 알리시아를 시종으로 고용하면서 몇 번 그녀의 음식을 맛봤지만, 원작에서 알리시아가 주인공에게 요리를 대접한 적은 없잖아?
그리 생각하면 또 드문 경우이긴 하다.
600화가 넘는 장편의 이야기 속에서 한 번도 리암에게 요리를 해 준 적이 없으니.
뭐, 아무튼 준비했다니까 우선 저 양은 접시에 집중해 보자.
“알리시아. 네가 최근에 남는 시간에 요리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우리를 대접할 줄은 몰랐구나. 그래,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한번 보겠다.”
“…….”
“뭐 하고 있는 거냐. 어서 덮개를 열지 않고.”
“아, 앗. 넵! 열어야… 네, 열겠습니다. 정말로 열겠습니다. 도련님?”
“어서 열어라.”
막상 음식을 공개할 때가 되니 걱정이 되는 건지 주저하는 알리시아.
내가 보채기 시작하자 반강제로 덮개를 잡아 올렸고, 음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뜨끈한 연기가 짙은 냄새와 함께 올라왔고.
그 냄새는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낯선 고추장의 냄새였다.
‘역시 떡볶이랑 튀김인가.’
축제에서 알리시아와 먹었던 음식.
비록 그때는 미각을 잃었을 때였기 때문에 식감이나 매운 통증밖에 즐기지 못했지만 이렇듯 다시 내 앞에 나오게 되었다.
“…….”
“도련님…?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랬다.”
“그러하십니까….”
알리시아가 곱게 모은 양손이 꼼지락거렸다.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나는 그녀가 더 불안해하기 전에 앞접시에다가 떡볶이와 튀김을 옮겨 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시 봐도 정말로 떡볶이랑 튀김이다.
평생을 빵이나 스프만 먹었을 알리시아가 한식… 그중에서도 분식을 만들었다.
레시피는 대체 어디서 난 것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말캉한 떡의 식감과 꾸덕한 고추장 소스. 설탕을 섞은 단맛과 매콤함이 어울렸다.
‘내가 알던 떡볶이의 맛이다.’
로제니 짜장이니 해서 변화한 게 아닌 오리지널의 맛.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맛있는 포장마차 떡볶이다.
나는 자연스레 포크를 튀김 쪽으로 향했고 마찬가지로 입에 넣은 채 음미했다.
씹을 때마다 바삭한 껍질이 입천장에 닿았고, 그 안에 감춰진 달콤한 고구마가 혀를 부드럽게 감쌌다.
놀랄 정도로 똑같다.
이 소설 세계에서 앞으로 먹을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던 고향의 맛이다.
‘분식은 내가 축제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음식이었지.’
떡볶이나 튀김에 관한 요리법이 아카데미아에 있지는 않았을 터.
요리법을 모르니까 그토록 자투리 시간을 쏟아부어서 여러 차례 시도를 했던 건가….
한 번 맛봤던 맛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완벽주의 성향의 알리시아라면 특히나. 이처럼 선보이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갔을 것.
즉, 그녀는 나에게 이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잠을 줄여 가며 일을 했던 것이다.
검의 수련만 하더라도 충분히 지쳐 쓰러질 법하거늘.
“…….”
“도련님의 입맛에 맞으신 거 같아 다행입니다.”
알리시아가 말했다.
내 눈은 안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지금, 알리시아가 얼마나 행복한 여인의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녀가 왜 이런 미소를 짓고 있는지를.
“……제법 잘 따라 했구나.”
나는 평범하게 생각나는 말을 뱉었다.
입가의 끝을 살짝 올려 다소 즐거움을 느낀다는 듯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리시아는 황송할 따름이라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해를 따라 머리를 드는 해바라기처럼 천천히 허리를 편 뒤 말했다.
“수색대에 합류하기 전에… 도련님께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더.
나는 음식에 대한 얘기에서 조금 멀어지기로 했다.
“가미긴의 수색대인가. 너는 헤일리온의 부대에 속할 예정이라 했었지.”
“예, 제 개인 사정으로 인해 또다시 도련님을 곁에서 모시지 못하게 되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중앙교회의 명인 걸 어찌하겠느냐. 너는 거기서 네 할 일을 잘 해내면 된다.”
“네, 도련님.”
쓸쓸하다는 듯. 아쉽다는 듯.
아련하게 미소 짓는 알리시아.
“도련님께서도 그동안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전장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했다.
…한편.
테이블을 마주해 앉아 있는 에리카.
떡볶이를 포크로 집은 채 입에 넣은 포트레트가의 차녀는.
“……매워.”
제 혼자서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읊조렸다.